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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LNCK 2011. 5. 16. 11:57

◈게으름          신앙수필, 모두 스크랩 글





◑1. 게으름                  잠10:4                출처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10:4


김남준 목사님께서 쓰신 <게으름>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큰 충격과 감명을 받고 아이들에게 적극 추천했습니다.


그래서 딸아이와 지금은 제대한 둘째 아들까지 모두 읽었습니다.

한동안은 가정예배 때, 같이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살아오면서 그동안 경험으로 많이 깨달은 것이지만

게으름에 대해 가장 피부로 크게 느껴지는 건,

게으를 때 더 게을러지고.. 부지런할 때 더 부지런해지는 현상입니다


제 경우도, 실제 살면서 가장 바쁠 때에, 가장 많은 일을 처리했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많이 남았을 때에는

해야 할 일들을, 자꾸 다음으로 미루어버리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아마 게으름에도 관성의 법칙이 존재하나 봅니다.

게으르면 더 게을러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예정된 만남이 갑자기 미루어지면서, 오전을 그냥 TV를 보며 지냈습니다.

자세도 이불을 반으로 접어서 기대어, 절반 누운 자세입니다.


포즈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세가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12시가 지납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그러다가 다시 잠깐 사이에, 오후 3시가 넘습니다.

정말이지 잠깐사이였습니다.

안되겠다고 부랴부랴 일어나서 약속을 정하고 움직입니다.

평상시 3시간이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저는 사람을 많이 대한 직업상의 경험으로, 게으른 사람을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약은 사람입니다. 흔히 약삭빠르다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게으름과 관련 없는 것 같지만, 사실 게으른 사람들입니다.


큰길로 가는 것이 두렵고, 능률이 오르는 것 같지 않아서,

즉 게을러서.. 그 결과 약삭빠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게으른 사람은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심각한 경우는, 남들은 물론, 자기 가족도 책임지려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일에서도 게으른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장 공통적인 부분은, 자신과 자신 주변이 변화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가능하면 하던 그대로 자신을 고집하는 것이

제가 본 게으른 사람들의 대부분의 공통점입니다.


▲책 <게으름>에서 스크랩한 글을 나누어 봅니다.


‘무기력한 게으름 뒤에는,

자기 마음의 정욕을 따라 살고자 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자기 정욕대로 살기 쉽다는 뜻이군요.

 

‘분명한 목표 없이, 하나님을 향한 추구함이 없이,

되는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바로 게으른 사람의 모습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먼저 그의 신앙이 나태해졌다는 증거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우리 마음과 육체의 게으름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결국 자기 인생이 엉망이 되고 맙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10: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고,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잠12:2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르느니라.’ 잠26:14

     -게으른 사람은, 결국 가난하게 되고, 성공하지 못합니다.


▲영적인 게으름을 생각해 봅니다.

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게을렀던지 생각해 봅니다.

‘아이고, 벌써 50줄 넘었네!’

몸이 하나 둘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하는데,

머리 속에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은 걸 보면.. 제가 게을렀던 탓입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하소서!


아니 게으름 이전에, 분명한 목표(하나님께 받은 소명)가 없었던 건 같습니다.

세상 욕심에 이끌려 살다보니, 분명한 목표(소명)가 흔들렸던 거지요.


*자신의 영혼에 참된 변화가 없는 것에 대한.. 정직한 고뇌

*변화되지 않는 자신을 향한.. 진지한 염려와 경건한 근심

*진리를 알고자 하는 실천적인 열심

*그것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모함 

     -만약 이런 것이 없다면, 그동안 제가

      ‘영적인 게으름’에 사로잡혀 살아왔던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그저 주신 단 한번 뿐인 인생을,

일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그냥가게 마옵소서.


사연 버리고, 생각 버리고,

남은 인생을 아껴 쓰게 도와주소서.


나중에 하나님 만날 때에

‘수고하였구나,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받고 환영받는

그런 사람 되게 하옵소서...

 


◑2. 자녀교육               삼상2:1~10           출처


제가 크게 아파서 입원할 무렵

성경말씀 <역대상, 역대하>를 읽고 있었습니다.


역대상을 읽으면서 크게 감동 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성전건축을 준비하며 자신이 짓는 것이 아니라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건축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가 직접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아들과 딸아이에게 물려주어 이루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드릴 때에 마음이 참 편했습니다.


사실 저의 경우는 내 자신이 살아서

좋은 브랜드를 세상에 남기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브랜드도 몇 개를 준비해서, 패션 그룹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회사를 접고, 몸이 병들면서,

‘하나님께서는 제가 직접 이루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구나..’

느끼게 됩니다.


나이로 봐선, 다시 시작하기에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성경말씀 중 다윗의 사례를 통해 느낌을 받습니다.


다윗은 피를 많이 흘려 성전건축이 안되지만

저의 경우, 너무 많은 죄를 지어 불가능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의욕을 두고, 욕심이 많은 저를 아프게 해서

일에 대해 너무 강한 저의 의지를, 강제로라도 이렇게 꺾으시는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주위 분들의 여러 사례에서

자신이 자녀보다 강하면, 그분의 자녀들이 많은 상처를 입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상처는

공부로, 성격으로 반드시 나타나는 부정적인 현상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 앞에 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녀 때문에 부부싸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녀 때문에 인생을 열심히 살고 등등

자녀에게 본을 보이고 자녀를 위해 한평생 봉사해야

그 자녀들이 제자리를 잡는 모습입니다


가장이라 해서, 어머니라 해서.. 자신이 자녀의 주인이 되면 안 됩니다.

자녀보다 내 자신을 우선순위에 먼저 두면,

반드시 그 상처가 자녀에게 어떠한 결과라도 남기는 모습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6:4


저의 경우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청소년기에 매일 같이 모여 돌아가면서 기도를 드리는 그 부분이

저의 경우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안 하면, 청소년기엔 힘들 것입니다.


주위에서 어떻게 그렇게 자녀들을 반듯하게 키웠냐고 칭찬을 받습니다. ㅎㅎ

그러면 저는 늘 그럽니다.

매일 같이 가정 예배를 보시라고요.


아이들에게, 부모가 같이 손잡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가정교육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가족 모두 모여 기도를 할 때 보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땡땡이 친 것, 친구와 싸운 일, 숙제 안한 것 등등

기도하며 회개하면서.. 행동들이 스스로 바로 잡아지는 모습입니다


구약성경에 ‘한나’라는 어머니가 계십니다.

처음에 한나는 아이를 갖지 못해 많은 괴로움을 당합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기를 낳으면 하나님의 아이로 키우겠다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하루는 기도에 심취해 있는 모습에

제사장이 당신은 왜 술이 취해 자고 있느냐 라고

오해할 정도로 기도에 열심이었습니다.


결국 아이를 잉태하고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젖을 떼자말자

약속대로 하나님의 아이로 제사장에게 아이를 맡겼습니다.

그 아이라 자라서 유명한 선지자 ‘사무엘’이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나에게 지혜가 많은 것을 느낍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과 약속을 지킨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아이 앞에 보여진 그녀의 기도의 삶 삶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한나의 기도>가 남아 있습니다.

여인을 숫자에도 치지 않던 시절에,

한나의 기도가 성경에까지 남아 있는 것은..

그가 얼마나 기도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웅변해 줍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 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 이니이다.


여호와 같이 거룩한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이 반석도 없으심 이니이다.


심히 교만한 말을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는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자는 쇠약하도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기도 하시며 올리기도 하시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시는 도다.


가난한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 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 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뢰로 그들을 치시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삼상2:1~10


그 당시 한나를 보면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며

그 기도가 본이 되어서, 기도내용이 성경에 남은 것을 보면

어머니 한나의 믿음과 지혜가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지혜가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성경은 한나와 같은 시기에 ‘엘리’라는 제사장의 경우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악행이 심하여 문제가 컸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자식에게 엄하지 못하고, 자식을 방치하다시피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자식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자녀교육이, 가문을 살리고 죽이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사례입니다.


주님이시여

한나의 믿음과 지혜를 저에게도 주시옵소서.


주님이 허락하신 가정이, 예배로 기도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장성한 아이들이 또 가정을 가지면,

그 아이들도 이렇게 자자손손 대를 이어

변함없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이 가정을 통해 나타나게 하소서.

이 가정과 가문의 모든 영광 받으소서!


.............................



◑너는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겔12:5         출처

 

제가 구약성경 에스겔을 읽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면 ‘너는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는 ‘내가 여호와임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들이 계속 반복되어 나오면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즉 택한 백성인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셨습니다.


비록 택한 백성을 심판하심으로써

‘너는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될 것이라’ 라고 말씀하실 때에도,

그 심판은, 심판을 위한 심판이 아니라,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심판인줄로 믿습니다. 


겔6:7, 또 너희 중에서 살륙을 당하여 엎드러지게 하여

너희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

  

겔12:15, 내가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로 흩으며 열방 중에 헤친 후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겔16:62,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서 너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니


이방인들의 심판 뒤에도

"내가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게 하셨다 하라"고 말씀하시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겔30:19, 겔38:23, 겔39:6, 등

     (※에스겔서에 ‘여호와인줄 알리라’는 구절이, 찾아보니까 약 56회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쉬지 않고 나를 따라다니면서 열심으로 사랑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역사는 쉬지 않는 것입니다.


그동안 제자신이 얼마나 많이 하나님을 배반했는지 모릅니다.

모두를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배반을 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이 모두를 덮고도 남을 만큼, 그렇게 사랑하고 계십니다.

     ‘너는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그것도 바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증표인데도

쉽게 불평이 나오고 쉽게 원망에 빠지는 저였음을 고백합니다.


배반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은 마귀가 심어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끝까지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이시오,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마귀는 나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처럼 올라가게 만들다가

언젠가는 땅을 기는 벌레만도 못하게 불쌍하고 처량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시고, 저를 끊임없이 따라 다니면서

항상 귀한 보배로 사랑해주고 계십니다.


요즘 신약성경 누가복음을 읽고 있습니다.

핍박을 받는 가운데서도, 쉬지 않으시고 기도하시고 병 고치시는 예수님 이십니다.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끝없이 사랑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그 사랑이 이어지기에, 하나님을 수도 없이 배반한 저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결국 모든 마귀의 장난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고 이기게 하심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하십니다.


지난 주일 예배 때 목사님 말씀 중에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배반한 것보다 더 크다’는 말씀을 듣고 나서

에스겔의 이 말씀이 같이 ‘오버랩’ 되곤 했습니다.           *두 개가 겹쳐짐


그리고 며칠 마을 뒷산인 개운산에 오르면서

수차례 ‘이 말씀을 기록하라’는 내적 감동을 받습니다.


이외에도 써야 할 몇 편의 글이 더 있었지만, 게으른 탓에 시기가 지나니

그만 생각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난 아직 그 목적을 알 수는 없습니다만

그것조차 하나님이 사랑하시기에 하신 말씀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나의 모든 배반을 용서하시고 더 큰 사랑으로 반겨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끊임없이 열심으로 사랑해 주십니다.

     ‘너는 내가 여호와 하나님인줄 알게 되리라’


혹시 누구라도 하나님을 배반하여 자책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아님 어려운 환경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분이 계신가요?


    그 어려운 환경이,

    ‘너는 내가 여호와 하나님인줄 알게 되리라’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요, 사랑인줄 믿으십시오.


그동안 하나님을 몰랐던 분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사랑하고 계십니다.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와 사랑의 역사는 잠시라도 쉬지 않으십니다.


나의 모든 배반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이 훨씬 더 크십니다.

     ‘너는 내가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