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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과 쓰나미의 은총 3 - 오가와 스구미치

LNCK 2011. 5. 15. 00:21

www.youtube.com/watch?v=JX1013OVKwA

◈지진과 쓰나미의 은총 3                  눅9:18~25                  출처보기

 

오가와 쓰구미치 목사 설교 녹취

 

 

◑도입

 

찬양팀의 가사↓를 묵상해 보니, 지금 일본 상황에 걸맞은 은혜를 주신 것 같습니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속에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 보리라♬  설교 전 성가대 찬양

 

제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이렇게 어두운 뉴스만

계속해서 접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여러분 성도님들도 마찬가지겠지요.

태평양 전쟁 이래로 처음인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밝은 뉴스를 찾아보려고 다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TV를 보니, 일본 동북부 재해지역에서

웃음을 잃은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와서

공 하나로 축구를 시작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자, 어른들도 함께 뒤고 싶다며 합류했고,

함께 어울려 축구를 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고 하더군요.

 

TV에 나오는 그 축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보는 이까지 즐거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작지만 즐거운 소식을 또 하나 전해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종이접기로 만든 벚꽃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몇몇 성도님들이 정성껏 종이를 접어서,

큰 벚꽃도 만들고, 작은 벚꽃도 만들어 보내주셨습니다.

 

이번 재해에 이렇게 생명을 지켜주신 것을 주님께 감사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하고, 손자들과 이야기하셨다고 하네요.

그래서 교회에 장식하라고, 이렇게 벚꽃을 색종이로 예쁘게 접어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이 꽃을 동북지역에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작은 정성이나마, 재해민 여러분을 격려해 드리려고요.

 

우리는 동북지역 재해민 여러분의 응원단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위해서, 뜨겁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동북 지역에, 아직 벚꽃이 피는 봄은 먼 것 같습니다만, 

주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지금은 일본 역사의 분수령

 

▲본문 설명 : 복음서의 분수령 turning point

본문에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고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눅9:20

 

그러자 예수님은 비로소 ‘당신의 십자가에 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눅9:22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기 전에는, 이런 가르침 십자가 수난 예고

한 번도 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자,

비로소 예수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십자가와 부활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와타나베 젠타 목사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일컬어서,

‘복음서의 분수령’과 같은 발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고백을 기준으로, 복음서를 둘로 나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십자가 전과 후)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지금 일본 나라와 일본교회가, 이런 분수령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환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정확한 신앙고백을 드리고 있으며,

이후로 우리 일본 나라와 교회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영적으로 분수령을 지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에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습니다.

곳곳에서 화재가 나고,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였는데요.

 

이 날은 일본교회 역사의 분수령 分水嶺이 된 날이라고.. 저는 봅니다.

 

왜냐하면 재난을 당한 동북부 지역 일본 성도들은,

전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신앙과 믿음의 토대 위에 더욱 굳게 서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 전역에서도, 우리 성도들이, 이런 재난을 통해서,

그동안 혹시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고 살며, 교만했던 적이 있었나? .. 하며

자신을 돌아보며, 깨어 경성하는 기회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확실한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주님의 십자가 사역이 비로소 시작되는 전기가 되었던 것처럼,

 

이번 재난을 통해서,

우리 일본 성도들이 확실한 신앙고백을 드리는 계기가 된다면,

일본 교회는 이 기회를 통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교회가 살아날 때, 일본 나라도 새롭게 변모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날은 일본교회 역사의 분수령이 된 날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대로, 예수가 정말 그리스도(주님)이시라면

정말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시고, 구원과 심판을 주재하시는 분이시라면,

 

그 분을, 내가, 정말 그리스도(주님)로 받아들이고 섬겨야 하는 문제를..

우리 인류는, 우리 일본인들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예수를 피상적으로 믿는 이유는,

‘그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즉 대 주재요, 심판주이심을’

적당하게 믿거나, 이론적으로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정말 피부로 실감나게 믿는다면,

적당하게 신앙생활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확실한 믿음의 고백 위에 올바로 세웁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라고 확실히 고백하는 계기가 됩시다.

     그럴 때, 우리 일본 교회는.. 확실히 변화되는 전환기를 맞이할 것이고,

     이번 3.11.재해는.. 오히려 새로운 변화의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일본인의 ‘폐 안 끼치는 문화’

 

▲이틀 전에, 저는 도쿄의 한 호텔에서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님을 뵈었습니다.

프랭클린 목사님(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아들)은

아프리카에서 큰 집회를 가지신 후

이번 일본 지진과 쓰나미에 대해 소식을 들으시고,

아프리카에서 일본으로 달려오신 것입니다.

 

그 분은 <사마리아인의 지갑>이라는 국제구호단체를 운영하고 계시는 데요,

캐나다와 미국 교회들에 호소하여,

구호물자를 점보제트기에 가득 싣고 오셔서, 재해지역에 전달해 주셨습니다.

 

프랭클린 그레이엄은, 일본 목회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번 일본 지진과 같은 큰 재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데, 왜 이런 재난이 일어날까요?’라고 질문합니다만,

사실 저는 그 이유, 그 하나님의 섭리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확실히 아는 것 한 가지는,

‘이런 재난이,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본을, 동북지역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전파할 좋은 기회라고 믿으며,

그래서 제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이렇게 급히 달려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지진피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제가 할 일이 있다면 시켜달라는 자세로,

아프리카 집회를 마치고, 미국에 들리지 않고, 직접 일본으로 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일본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독생자 예수를 주실 정도로(요3:16), 일본을, 동북지역 주민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일본인은 남에게 ‘폐를 안 끼치는 문화’가 있습니다.

뉴욕에 사는 어느 일본계 미국인이, 아사히 신문에 이러한 글을 투고하였습니다.

 

“일본인들은 도움을 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태도를 확실히 하지 않습니다.

제 주변의 미국인들은, ‘일본이 도움을 받고 싶으면,

솔직하게 도와달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합니다.

 

지금 일본은, ‘Please, help me’라는 말을 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우리 미국인들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미국문화 입니다.

 

일본문화는, 하나를 알면 열을 알아주길 바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십분 알아서 헤아리고 알아주길 원하는 문화니까요.

(상대방에게 폐를 끼칠까봐, 자기 입으로 도와달라는 말은 못하는 문화입니다.)

 

우리가 미국문화를 공부할 때, 이런 사례를 듣게 됩니다.

 

지금 어린아이가 길에서 넘어졌습니다.

‘저런! 아이가 넘어졌군. 얼마나 아플까. 피도 나네!’

그러나 미국인들은 즉각 가서 도와주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가 ‘Help me!’라고 말하면, 그제야 가서 도와주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아이의 의지를 존중하여, 무조건 도와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문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에도 시대 문화라는 게 남아있어서

‘부탁도 안 했는데, 나를 도와주고 난리야, 자기나 잘할 것이지!’라며

부탁도 안 했는데 도움 받은 것을 속으로는 고마워하면서도,

입술로는 자존심을 내세옵니다.

 

(일본인은 좀처럼 남에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일절 폐를 끼치지 않는 문화인 것 같습니다.

 

비슷하게 한국에도, 자녀들이 노부모 집에 선물을 사서 들고 가면,

‘왜 쓸데없이 돈 쓰면서 사 왔느냐’고 겉으로는 호통 칩니다. 속으로는 좋아하면서도요.)

 

교토는 이런 체면문화가 더 심합니다.

길가다가 지인을 만났을 때,

‘지나가시는 길에 한 번 놀러 오세요!’ 라는 인사를 받았다고 해서,

진짜로 지나가는 길에 그 집에 놀러 가면, 상대방은 매우 당황해 합니다.

 

그 집 사람이 현관에서 ‘들어오세요.’ 라고 말했다고, 정말 집안에 들어가려고 하면,

‘눈치 없는 사람’이라고 눈총을 받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의 문화에 따른 대화법이나, 표현방법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에노모토 목사님께 이렇게 따지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탁도 안 했는데, 자기 마음대로 십자가에 매달려놓고는

사람들에게 구원받으라고 하다니.. 너무 뻔뻔한 거 아니오!”

 

이에 에노모토 목사님은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십자가에 달려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라고 대답하셨다는군요.

 

(남에게 부탁하기 어려워하는, 일본인이나 한국 사람을 위해서는,

스스로 알아서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를 도와주신 예수님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우리가 부탁도 안 했는데,

이번에 프랭클린 목사님께서 점보제트기로 물자를 보급해 주신 것은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빌 윌슨 목사님은, 얼마 전에 우리 교회를 방문하시면서,

담요를 30만 장이나 가져다 주셨습니다.

많은 의사선생님들도, 의료봉사로 동북 땅을 밟아주셨습니다.

(우리는, 비록 부탁하지 않지만, 도와주시는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재해를 당한 가운데서 ‘고난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폴 트루니에는 <고난의 의미>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①‘고난을 겪어야만 열리는 은혜의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아니고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교훈,

즉 고통을 통해서만 배우게 되는 인생 레슨이 있다는 것입니다.

 

②‘고난을 겪는 사람과, 그 고난을 나눌 때에만 열리는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위로하며, 그 고난을 함께 나누지 않으면,

우리는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몇몇 경험들은, 결코 갖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직 ‘고난을 겪는 사람과 그 고난을 나눌 때만’ 얻어지는 것이니까요.

 

동북부 재해민 여러분도, 폴 트루니에의 이 말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고난을 겪지 않고서는,

동북지역에 일어날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재해민들과 고난을 함께 나눔으로 말미암아,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은혜의 세계가 열리는 것을..

우리 모두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③‘고난을 겪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고서는,

영생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고난, 그 십자가, 그 수난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깨닫고, 감격한 사람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더 확대해서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좇는 우리 성도들도,

‘고난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묵상하고, 삶으로 살아내는 그들이,

진실로 구원 받은 성도요, 십자가의 길을 가는 성도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 길을 갔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일본교회 성도들은, 그런 의미에서, 중대한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이런 고통의 시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삶으로 고백할 때,

우리 개인과 일본교회는.. 중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일본교회의 변화는.. 일본 나라의 변화까지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제가 (그레이엄 목사님을 만난 자리에서) 후쿠시마 제일교회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담임 하토 아키라 목사님은, 지금 재해지역에서 대피 생활 중이라고 합니다.

아직 교회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시다는 군요.

 

목사님의 교회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10 km도 채 떨어지지 않는 곳입니다.

‘후쿠시마 제일교회’라는 이름은, 오래전 미국 선교사 분께서

이 교회가 후쿠시마에서 첫 번째로 개척된 교회임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하토 목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기도편지를 써서,

그 자리에 모인 목회자들에게 소식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지금 50명 성도와 함께 대피하여

표류생활과 방랑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다들 직장을 잃고, 집 열쇠조차 잠그지 못한 채 나왔다고 합니다.

 

목사님과 성도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한 자리에 모여 찬양을 부르고,

아침이 되면 새벽 예배를 드리며,

주먹밥을 먹은 후에 또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기도제목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오후엔 전화를 걸어, 가족친지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밤이 되면 기도를 드리고 잠자리에 드는,

마치 천국과도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성도들은 뉴스를 들을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며,

우리 교회는 ‘울보 교회’가 다 되었다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정도로, 눈물이 마르도록 늘 눈물로 지낸다는군요.

 

사토 목사님의 160명 성도분들은 모두 무사하며,

성도분 가족 중 함께 대피 생활을 하던 3명의 영혼이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힘겨운 고난 한가운데서, 그들은 소중한 자기 영혼의 구원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토 목사님의 간증을 듣고, 놀라운 일을 이루신 우리 주님을 찬양 드립니다.

 

 

12장에 이르는 목사님의 뉴스레터(기도편지) 가운데,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기적은, 성도들 가운데 그 누구도,

‘하나님은 왜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 거야?’

‘하나님은 없어! 이제 믿나 봐라.’

라고 불평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소재를 확인한 160명 성도들도 모두 입을 모아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입니다. 앞으로 더욱더 하나님을 신뢰 하겠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들의 신앙이 그렇게 단단해 졌을까요?” (재난을 계기로 입니다.)

 

사토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 자리에 모인 목회자들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여러분, 부디 동북 지역 교회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가족 간증

 

▲지난 주간에, 오카와 (설교자) 가족 25명이, 가족 모임을 가졌습니다. 

참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형님은 일본에서 전도 일정을 마치고, 미국의 집으로 돌아가시기 때문에,

형님 살아생전에 미리 치르는 장례식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형님이 미국에서 혹시 상喪을 당하셔도,

거리가 멀어서 우리 가족들이 미국에 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6형제와 그 가족, 자녀들, 모두 25명이 모였는데요,

가족 모임에 그렇게 많이 모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저희 누님은, 77세이신데, 목회자 안수를 받으시고,

지금은 이즈와 이토 성결교회에서 전도에 힘쓰고 있는데요,

집안의 장녀이기 때문에, 우리 집안의 가족사에 대해서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3살 때,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저희 가족은 도쿄 요츠기에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강 건너 동네가 공습을 당해 불바다가 되고,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답니다.

당시 방공호에 대피했던 기억이, 제게도 조금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는, 전쟁 전에는 목회를 하셨지만, 전쟁 때문에 불가능하게 되자,

‘오카와 제작소’라는 회사를 차리셨습니다.

아마 비행기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을 겁니다.

 

하루는 중학생이었던 누님이, 근처 좋은 저택 앞으로 가더니,

“아저씨, 조금만 있으면 우리 가족이 이 집에서 이사와서 살 거에요.” 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누나에게, 돈을 많이 벌어서 그 집을 돈을 주고 샀으므로,

이제 곧 그 집으로 이사 갈 거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그 저택 주인이 깜짝 놀라서,

아버지께 찾아와서,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집주인에게, 돈을 주고 당신 집을 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가 사기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돈을 모두 잃고 말았지요.

 

사기를 친 사람은, 얼마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기꾼의 형님이 믿는 신자였다고 합니다.

 

그 형님이, 자기 동생이 저지른 죄에 책임감을 가지고,

우리 가족을 가쓰시카구 혼덴가와바타 136번지에 이사시켜 주셨는데,

아주 보잘 것 없는 연립주택이었습니다. 다가구주택 인듯

 

그 집에서도, 세 가구가 함께 살아야 했었는데,

하루는 이시카츠라는 여목사님께서 이사를 오셨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은, 그 가정교회 옆집에 살게 된 것입니다.

 

가정교회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전쟁 직후, 가난하던 시절이었지요.

우리는 온 가족이 총출동하여, 그 여목사님의 사역을 도왔습니다.

 

그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며,

저는 아버지가 사기를 당한 덕분에, 그 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재헌신해서 다시 목회자로 돌아가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누님은 그게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더 '어려운'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기를 당하고, 그 집으로 이사하면서,

누님들은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우리는 아르바이트 해서 공부할 터이니

아버지는 목회하시라며, 열심히 아버지를 격려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도, 자신은 전도사 부인이 되려고 결혼했지,

공장장 부인이 되려고 결혼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목회하지 않으면, 친정에 돌아갈 거라고 반 협박하셨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여섯 자식을 데리고, 개척전도를 할 수 없다며, 포기하려 하셨지요.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아십니까?

도쿄 아라카와 강에 태풍이 와서 제방이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범람한 강물이 주택지를 덮쳐서,

강 옆에 있던 우리가 살던 연립주택은, 완전히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제 목까지 물이 차올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불도, 다다미 방바닥도 모두 물에 젖었고,

지대가 낮았기 때문에, 물도 잘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카와 제작소는 저희 집 뒤에 있었는데요, 그때까지도 계속 공장을 운영하신 모양

기계와 부품들이 물에 잠겨 다 못쓰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이 기회에 아버지가 헌신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어려운 재난들이 집에 계속 찾아올 것이라며 아버지를 설득했고,

이 때 아버지는, 공장을 문 닫고 저희 여섯 자녀를 데리고 시즈오카로 가셔서,

제2의 목회인생을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 저희 가족은.. 홍수가 나서, 살던 집이 물에 잠기고,

물이 쉽게 빠지지 않아서,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이번 쓰나미를 연상하셔야

그리고 사기를 당해서, 모든 재산을 잃었지만,

그 덕분에 주님께 재헌신 할 수 있었습니다.

 

큰 집을 빼앗기는 사기 덕분에,

또한 공장의 기계가 다 못 쓰게 되는 홍수 덕분에,

저희 집은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다시 목회생활로 돌아가셨고,

여섯 자녀 중에서, 목회자가 여럿 나왔습니다.

 

지금 재난을 당한 동북 지역 형제, 자매 여러분!

고난 이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고통을 당하시는 여러분과,

같이 고통당하는 일본 교회와, 일본이,

마치 베드로의 신앙고백처럼, 주님과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주님 안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재해민 여러분은 지금 힘든 고난 가운데 있지만,

앞으로 상상도 못할 기적이 일어날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그 증거는,

우리 가족을 보십시오. 

 

물난리 때문에, 완전히 새롭게 전환기를 맞이했습니다.

온 가족이 주님 앞에 새롭게 헌신하게 되었고,

지금 부모님은 소천하셨지만, 우리 형제들은 주님 안에서 서로 우애하며,

또한 복음사역을 섬기며, 천국생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가족모임에서, 둘째 누님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너무 행복하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또 지진이 일어날까.. 불안하십니까?

 

눅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예수님께서는 큰 목소리로,

자기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셨습니다.

 

유대인 어머니들이, 아이에게 가르치는 첫 번째 기도는,

‘내 영혼을 하나님 손에 부탁합니다’ 라는 시편의 다윗의 기도라고 합니다.

유대인 아이들은 이렇게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지요. 참으로 훌륭한 교육입니다.

 

유대인의 역사는, 지난 수 천 년간 늘 핍박을 받아왔으므로,

그날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아주 위태로운 역사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 일본인들도, 그 날 밤에, 지진과 쓰나미가 닥칠 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갑작스레 재난이 닥쳤습니다.

 

지금 많은 일본인들은, 2차, 3차 여진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곤히 잠든 사이에, 만약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닥친다면.. 하고 우리는 불안해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기도하셨던 것처럼,

수없이 많은 위태한 밤들을 보냈던 유대인들이 기도했던 것처럼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하고 기도드리시고,

믿음으로 편안한 잠을 주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아마 33년 동안 매일 밤마다,

주무시기 전에, 이 기도를 반복하셨을 것입니다.

그러시다가 마지막 순간에, 같은 기도를 하신 후, 숨을 거두셨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기도를 연습하고 훈련하면,

아마 우리도 그 때가 왔을 때, 이 기도를 드리고, 숨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재해를 통해서, 한 가지 큰 교훈을 배웠습니다.

언제 최후의 순간이 올지 모른다는.. 정말 경각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늘

‘아버지여, 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부탁합니다!’라는 자세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밤이, ‘그 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아버지를 의탁함으로써, 편안히 잠들 수 있겠습니다.

 

이 시간, 저와 함께 한 번 고백해 보십시다.

“아버지여, 제 모든 것을 주님께 부탁드립니다!”

 

▲기도

주님, 지금 새학기를 맞이하여, 모두가 마음이 들떠야 할 그 시점에,

우리들의 마음은 너무나 침울해져 있습니다.

그동안 세계경제대국 이라는 둥, 그 자리를 최근에 중국에 빼앗겼다는 둥,

그런 생각만 하면서,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던..

하나님을 잊고 우상숭배를 드리던 민족이었음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주여, 이 나라의 교만과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도록, 저희를 붙들어 주옵소서.

이번에 우리의 신앙고백을 확실히 재점검하는 기회가 된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그리스도로 확실히 믿을 때, 우리 교회와 나라가 새롭게 변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동북지역 주민들과 그 관계자들이, 이 메시지를 들을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이 땅이 다시 회복될 줄 믿습니다.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분수령이 될 것을 믿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개미처럼 일하여 나라를 회복시켰지만,

같은 방식의 회복을 반복케 마시고.., 더 중요한 회복을 잊지 않도록 우리를 인도하옵소서.

 

정부와 지도자, 모든 교육자와 이 땅의 리더들에게, 깊은 깨달음을 더하시어,

이 땅을 지혜롭게 지도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예배당을 잃은 목회자와 성도들에게도 주님의 위로와 격려를 더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 자비를 베풀어 주실 줄 믿사오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 더 읽으실 분 .............................

 

 

     ◑赤身(알몸)의 은총                               *赤身 : 적신, 붉은 몸

 

①아담과 하와는, 알몸이지만, 은혜로 가죽옷을 입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알몸이었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짓자, 그 영광은 벗겨지고 말지요. 롬3:23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몸인 그들에게, 은혜로 가죽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인간은 자기들의 힘으로, 무화과나무 잎으로 그 알몸을 가려보려 했지만,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은혜의 가죽옷으로만, 인간은 자기 수치를 가릴 수 있습니다.

 

②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고, 알몸이 되었습니다.

집도 무너지고, 가축은 다 사라졌고, 자녀도 다 죽었으며, 몸까지 병들었습니다.

 

욥1:21,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그런데 욥1:21절, 욥이 말한 ‘알몸’ 역시,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은’(창2:25) 것과 같은 단어.. 히브리어 ‘아롬’이 쓰였습니다.

 

이러한 알몸 가운데 찬양하는 욥을, 하나님은 칭찬하십니다.

‘너는 내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만큼 온전하고 진실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그는 여전하지 않느냐?’ 욥2:3

 

하나님은 ‘알몸’인 욥을 눈여겨 보셨습니다.

하나님이 눈여겨 보시는 사람은, 이미 크게 성공한 사람입니다.

 

③‘알몸’(아롬)은 이사야서에도, 포로로 잡혀가는 그들이

알몸으로 잡혀가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20:2, 3. 4

 

포로로 잡혀가는 것은, 고난이었지만,

그 고난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나서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알몸이지만, 그래서 마치 포로생활을 하는 것 같이 수치를 당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성도의 그 영광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④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십자가에 알몸으로 달리셔서

우리 알몸의 수치를 대신 담당해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그 어떤 영광도, 하나님의 영광에는 발끝에도 못 미칩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롬3:23

오직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영광을 잃고, 알몸이 되었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또는 스스로 만든 무언가로,

자기 알몸을 가리려고 애써보아도, 알몸은 알몸일 뿐입니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집과 가족, 의식주 모든 것을 잃고,

정신마저 빠져나가 빈껍데기만 남은 사람들,

재해민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런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알몸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잃어버린 영광을 다시 회복시키시려고,

주님이 알몸으로써 모든 수치를 대신 받으시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을 믿음으로써, 알몸의 수치에서 - 영광의 부활을 입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