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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과 쓰나미의 은총 1 욘1:12 출처보기
오카와 쓰구미치 목사님 설교 녹취, 정리 *원제목 : 대 재난은 나 때문입니다
▲동북지방 주민 여러분, 재난과 싸우고 계신 여러분을 위해 큰 박수로 응원을 보냅니다.
그리고 원전사고 수습을 위해 애쓰시는 결사대 여러분,
또한 그 결사대속에 자원한 크리스천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응원의 기도를 드립니다.
또한 전 세계에서 일본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주 안의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지원과 기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대 지진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도쿄 도지사가 발언한 대로, 일본인들이 죄를 많이 지어서, 그 보응을 받는 것일까요?
그런데 저는 더 깊은 뜻이 있다고 보는데요..
하나님이 일본을 사랑하셔서, 이런 큰 시련을 허락하셨다는 것인데요...
제가 이번에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사건을 묵상하다가,
주님은 저를 요나서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아래 말씀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욘1:12
◑1. 나 때문이요!
▲요나는 ‘당신들에게 임한 이 재해는, 나 때문이다’는 놀라운 발언을 합니다.
천재지변은 잊어버릴 즈음에 찾아옵니다.
자연재해니 막을 방법이 없다고, 포기하는 것은 상식입니다만,
요나는, 놀랍게도, 모두 자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요나서를 읽다가,
이번 일본 동북부 재해는 ‘나 때문이요!’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평소에 일본의 영혼 구령을 위해서, 열심히 전도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은 비상한 방법(이번 재난)을 동원하셔서, 일본을 구원하려 하십니다.
그리고 나태한 우리를 각성시키고 계십니다.
물론 자연재해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지만,
그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은 지금 일본을 구원하시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재난을 통해서요..
그런데 만약 내가(우리가), 평소에 열심히 일본의 구원을 위해서 힘을 썼다면,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런 재난을 안 보내셔도 되었을 것입니다.
요나가 미리 니느웨로 가서 열심히 전도하고, 심판을 선포했더라면,
그 풍랑의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나는, 풍랑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것은 우연한 천재지변이 아니라,
전도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한 자신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일본에 이 큰 풍랑이 닥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전도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한 자신에게 있다고 보고,
‘나 때문이요!’하며 요나처럼, 우리가 회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면,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전9:16
여러분, 위 말씀에 의하면, 우리 모두가 ‘요나’입니다.
요나만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재앙이 닥치는 원인자가 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 요나를 벌주기 위해서, 모든 배에 탄 사람이 고통을 받았듯이,
그런 나를 벌주시기 위해서, 내 주변 사람들이 함께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 일본 동북부 재난도
‘복음을 전하지 않는’ 나를 포함한 일본 크리스천들에게 화가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 요나를 심판하셨듯이,
지금 하나님은 복음전파에 미온적인.. 나(일본 크리스천)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일본 신개역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가 화를 만나리로다.’
좀 더 실감나지요?
여러분, 복음을 전하지 않는 개인, 민족, 인류는 멸망합니다.
크리스천이 남들보다 예수를 먼저 믿게 된 것은, 자기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전파를 위해, 하나님께서 그를 먼저 부르신 것입니다.
만약 이를 무시한다면, 마치 협박 같지만,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 화를 만날 것이다!’ 라고요. 고전9:16
자기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크리스천이, 요나처럼 화를 만날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풍랑을 만난 것은, 나 때문이라’는 요나서의 말씀은,
오늘 동북대지진을 만난 우리 일본 크리스천들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말씀입니다.
바로 내가, 이 재앙의 원인자라는 뜻입니다.
이런 개념은, 크리스천이 아니면, 생각지도 못할 것입니다.
요나가 ‘나 때문이요’ 라고 고백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할 수 있었지요.
이렇게 ‘나 때문이요!’ 하면서 회개하는 자세가,
지금 일본 크리스천들에게 꼭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 자발적 회개가.. 우리 일본교회와 일본을.. 이 재앙으로부터 구원할 것입니다.
▲나아가, 재앙 중의 가장 큰 재앙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원한 멸망’입니다... (이 부분은 각자 묵상합시다.)
◑2. 나를 위해서요!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은, 나를 인함이요’라는 구절은, 욘1:12
‘나를 위함’이라는 말씀으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for my sake
실제로 KJV성경도 ‘for my sake, 나를 위하여’로 번역했습니다.
일본개역성경도 ‘나를 위하여’ 풍랑이 일어났다고 번역했습니다.
풍랑이 일어난 것은, 요나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일어난 것이기도 하지만,
요나를 돌이키게 하기 위하여, 일어난 것이기도 합니다.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은, 나를 위함’이라는 말씀입니다. for my sake
이 세상에 아무 의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환란은 ‘나를 위하여’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일본이 이 재난을 당한 것은,
나를 위해서요, 우리 일본교회를 위해서입니다.
▲과거에 제가 말라리아에 걸려서 죽을 고비를 넘겼던 것은,
지금 돌아보면, 저를 위해서나, 이 교회를 위해서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40년 전에 제가 탄 배가 침몰한 뻔했다가, 겨우 목숨을 부지했을 때도,
그 풍랑은 저를 위해서 온 것이었습니다.
출항할 때만 해도, 폭풍이 불 기미가 없었기에, 배를 출항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뭔가 내게 말씀하시려고’ 맑은 하늘에 갑자기 폭풍을 주셨습니다.
제가 6년 동안 재판에 회부되었던 것도,
저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이었음을 마음에 새깁니다.
▲폴 트루니에가 말한 바, ‘고난을 겪지 않고는 열리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깨달음입니다.
아쉽게도 인간은, 매우 연약한 존재라,
평안한 환경 속에서는.. 이런 어려운 환경이 닥치기 전에는..
참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참 진리는, 문제가 닥쳤을 때에..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도 다 동의하시지요?)
성경에, '광야 가운데서 주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고백이 있습니다만,
이는 광야에 내쫓겨야만 얻을 수 있는, 은혜의 세계가 있음을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일본이 당한 재난은, 우리에게 큰 은혜가 된다는 것이며,
'우리를 위한 재난'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재난을 통해서,
남편을 먼저 보내거나, 부인을 잃은 사람은.. 남은 인생이 변하게 될 것입니다.
자녀를 먼저 보낸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슬픈 일이지만,
이런 일들을 계기로, 자신이 영원한 세계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이번에 당한 재난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이 마이너스가, 어떻게 플러스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한국은 죄송하지만 36년 동안,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마이너스가 플러스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그 고난을 통해, 기도를 배우고, 오늘의 부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중국의 공산주의 정권은,
기독교를 포함해서, 모든 종교를 중국에서 금지시켰습니다.
성도들은 큰 핍박을 받았고, 선교사들은 모두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나 모택동이 그런 탄압을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중국의 부흥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2001년 911사태로 미국의 WTC빌딩이 무너지는 끔찍한 일을 목격했습니다.
그것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고,
문제는 그 이후에, 그 마이너스가 얼마나 플러스가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번에 우리 일본이 2011. 3. 11일에 당한 재난을 통해
(재난을 당한 분들에게는 대단히 슬픈 일이었습니다만)
앞으로 그 마이너스가.. 플러스가 될 수도 있고,
그 마이너스가.. 그대로 마이너스로 남아있을 수도 있고, 더 큰 마이너스로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 교회를 위해, 일본 땅을 위해
나 자신이 바로서고, 일본교회와 일본이 바로서서, 이 역경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를 위한 재난'입니다.
또한 수많은 희생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지금 우리 일본에,
그 마이너스가 플러스가 되는 징후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일본 크리스천 가운데서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이후에
일본 주요 도시가 폐허가 되다시피 했을 때에도, 다시 일어섰으니,
이번 재난도 분명히 극복할 것입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것은,
과거처럼 그저 물질적 면에서의 극복만 말고,
이 재난이, 일본의 영적인 부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너무나 애석할 것입니다.
◑3. 재난 가운데 부르짖는 요나
▲부르짖는 기도
요나는 빛 한 점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회개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욘2:1~2
오늘 우리가 이 재난 가운데 할 일은,
주님께 부르짖는 일입니다.
행2장 오순절 부흥의 마지막 결론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고 했습니다. 행2:21
(*‘부르는’ 에피칼레오의 ‘칼레오’는 큰 목소리로 부르짖는 것을 뜻합니다. ‘에피’는 옆에서, 향하여)
누구든지 부르짖는 자는 구원 받는 것입니다.
부르짖지 않는 자는.. 구원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는다고 했습니다. 욘2:2
‘스올’은 무덤이요, 캄캄한 어둠의 땅속을 뜻합니다.
가장 절망적인 상태, 즉 스올에서, 요나는 자포자기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부르짖었습니다.
오늘 재난을 당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요?
아마 요나는, 스올의 뱃속에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더니, 내게 화가 미쳤구나!’ 이렇게 회개하며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은 요나에게 다시 한 번 복음을 증거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번 기회에 부르짖어서
‘다시 한 번’ 일본 전역에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얻어야 하겠습니다.
아니면, 이 재난은, 마이너스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플러스로 돌이키라고 마이너스 상황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렇게 플러스로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요나처럼 ‘부르짖는 기도’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2011. 3. 11. 우리는 평생 잊지 못할 대지진과 쓰나미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전날인 (1945년) 3월 10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 날은, 2차 대전이 종결되기 직전, 도쿄에 대공습이 있었던 날입니다.
그날 공습으로 무려 10만 명이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미국 폭격기가 도쿄의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었고,
그 3백대의 폭격기는, 도쿄에 사는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1만8천 개가 넘는 폭탄을 투하했고, 도쿄는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집을 잃은 사람들이 판잣집을 지었습니다.
양철 지붕에, 비만 겨우 피할 수 있는 어느 허름한 집 앞을
한 크리스천이 지나가는데, 집 안에서 찬송가가 들려왔습니다.
그가 집 안을 들여다봤더니,
한 젊은 여인이, 아기를 안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자세히 보니, 아기가 혈색이 없는 게, 아마도 죽은 듯 했습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문을 밀고 들어가서,
자신도 크리스천인데, 지나가다가 찬송가 소리를 듣고 들렀다며,
왜 죽은 아기를 안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제까지 예수를 믿어왔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 아기가 이렇게 죽고 나서, 비로소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내어 주실 만큼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재난이 아니고는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은혜’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 재난은 나로 인하여 일어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위하여 일어난 재난입니다.
우리는 이때 요나처럼, 물고기 뱃속에서라도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마이너스를 → 플러스로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부르짖지 않으면,
우리 일본교회와 일본은
마이너스가 마이너스로 계속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르짖을 때,
마치 니느웨 성이 회개하듯이, 일본이 주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 중략된 부분 ......................
◑우리 삶에서, <악한 영>의 문제는, 깨끗이 처리되어야 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불안과 공포의 시대에, 악한 영이 우리의 마음을
마음껏 조종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악한 영들에게도 이름이 있는데요,
‘불안의 영, 불신앙의 영, 불순종의 영, 죄를 좋아하는 더러운 영, 불신의 영’ 등입니다.
지금 같은 불안의 시대에는, 특별히 이런 악령들의 역사가 심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을 향하여, 우리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막16:17~18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저는 오래 동안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에 대해 가르쳐주신 것은 좋지만,
그 첫 번째 예로,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을 든 것은.. 조금 의아했습니다.
‘오히려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은, 5개 표적 중에 맨 뒤에 언급하시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실수가 없으시며, 성경에도 오류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만사를 악한 영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물론 잘못입니다.
‘오늘 된장국 맛이 영 아니군, 이건 악한 영의 방해가 틀림없어!’
이건 아닙니다.
‘오늘 시험을 죽 쑤었어. 악한 영의 궤계 때문이야!’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은 자기 탓입니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은 불안과 공포의 시대에, 악한 영이 우리의 마음을
마음껏 조종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지금 같은 불안의 시대에는, 특별히 이런 악령들의 역사가 심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을 향하여, 우리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OOO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런 것은 오순절파만 전매특허가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첫 번째 표적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막16:17~18절에서 첫 번째 순서로 위치한 것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서, 우리가 명심해야 한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악한 영에게 조종당하지 않으려면, 다음 3가지가 필요합니다.
①말씀 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짧은 것도 좋으니, 성경말씀을 암송합니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면,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을 암송하십시오.
그러면 ‘두려움의 영’은 사라질 것입니다.
단 한 줄의 이 짧은 말씀이, 여러분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②항상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당장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중에 기도하리라’ 하기 전에, 그 즉시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이렇게 짧은 기도라도, 5초, 10초간만이라도 순간 순간 기도하십시오.
이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③날마다 찬양하십시오.
주님은 성도의 찬양가운데 거하십니다. 시22:3
여러분 타락한 크리스천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다. 찬양을 부르지 않습니다.
오직 주일날 교회에서만 그렇게 하고, 평소에 집에서는 일절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타락한 크리스천이라는 증거입니다.
타락한 크리스천은, 사탄의 타깃이자, 먹잇감입니다.
사탄은 이런 크리스천을 노립니다.
그가 아무리 머리가 비상하고, 훌륭한 상식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이라 해도,
매일을 말씀/기도/찬양 없이 산다면.. 사탄이 그에게 틈을 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을 물리칠 영적인 힘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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