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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부모의 사랑 표현하기 - 조쉬 맥도웰

LNCK 2011. 5. 18. 20:40

◈자녀에게 부모의 사랑 표현하기               엡6:4                       출처보기

조쉬 맥도웰  Affection, Approach, Accountability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6:4





◑서론, 자녀를 훈계하기 이전에, 사랑의 관계 형성이 중요합니다.


▲친밀한 관계가 결핍된 가운데, 부모의 원칙 고수는, 자녀를 반항하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자녀교육을 잘 하려면, 훈계를 잘 하고/잘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훈계 이전에, 먼저 자녀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와 부모사이에 서로 정이 들어야 합니다.      affection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가운데서,

아무리 자녀를 훈계하고, 좋은 말로 타이르는 것은.. 오히려 독입니다.


만약 부모가 자녀에게 충분한 사랑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 부모는, 자녀를 훈계할 자격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평소의 삶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항상 사랑으로 대하여,

자녀는 ‘나는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있어!’ 하는 느낌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을 때, 자녀는 스스로 자존감이 생깁니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 하는 자존감은, 자녀에게 대단히 소중한 것입니다.

그 청소년기의 자존감은.. 부모의 사랑 받음으로부터 형성되는 것입니다.


만약 자녀가 아빠와 엄마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사춘기를 지나기 전후로, 그들은 또래 친구들에게서 사랑을 구할 것입니다.


자녀는, 자신이 사랑 받을 만큼 소중한 존재임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서,

자기 또래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쉽지 않습니다.

부모가 표현을 잘못하면, 자녀가 도리어 부모를 더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자녀에게 부모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몇 가지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1. 부모는 언어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affection


▲자녀들은 반복적으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가정에서 이렇게 목표를 정했습니다.

저는 매일 우리 자녀들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 또는 그 비슷한 말을

하루에 10번씩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사역에 바쁘다보니,

그렇게 10번을 말한 날보다는, 2~3번만 말한 날이 많았습니다. 물론 15번 말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제 목표는, 매일 10번씩 사랑한다고 말하기로, 굳게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은,

이것은 어려서부터 서로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어릴 적에 한 번도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았던 부모가,

한 번도 그렇게 말하며 자녀를 껴안아 주지 않았던 아빠가,

이 강의를 듣고, 어느 날 불쑥 집에 가서,


16살 된 자녀에게 ‘I love you’ 라며 껴안아 준다면 부모도 그게 쉽지 않겠지만

아이는 소름 돋는다며.. 기겁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장 ‘아빠, 어디 아프세요?’ 라고 반응할 것입니다.


이때는 조금씩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little by little 조금씩, 서서히.. 자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보십시오.


가장 좋은 때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입니다.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춘기가 되어도, 그 말을 하루에 10번을 들어도, 거부감이 없습니다.


▲언어로, 관계의 다리를 놓으십시오.

십대 아이가 다 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십대 자녀들도,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부모의 사랑받기를 갈망하고 있으며,

아니 어쩌면, 어린 아기 때보다, 더 많은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 부모의 사랑표현의 첫 단계는 “말로 하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너는 정말 특별한 아이야”
“나는 항상 널 생각하고 있단다”


이렇게 말로 표현할 때, 관계의 다리가 형성됩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 소통하려면, 먼저 다리가 놓여 져야 하는데,

그 가장 기초는 ‘사랑의 언어 표현’입니다.


아시다시피 부모의 세계와, 자녀의 세계는 전혀 다른 별세계입니다.

그래서 서로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 소통을 가능하게 하려면, 먼저 다리가 놓여져야 합니다.

그 다리를 놓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사랑의 언어’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제 계속에서, 다리를 놓기 위한, 보다 발전된 방법을 알아봅시다.



◑2. 적절한 신체적 표현을 사용해야 합니다.    affection


포옹, 키스, 어깨동무, 손잡기 등으로,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언어적으로만 표현할 뿐 아니라,

“적절한” 신체적 표현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여기서 “적절한”이란 말에 유의 하십시오.    

너무 과도하게 표현해서, 자녀에게 무안을 주면 안 될 것입니다.

십대 아이들도, 이런 사랑의 표현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조쉬 맥도웰은 50년간 전 세계를 다니며,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만난 젊은이들 중에,

<아버지와 사랑의 관계>를 원치 않았던 청년들은 없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부모를 미워하고, 집을 뛰쳐나오기 원하는 청소년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청소년들을, 단 15분 내에 눈물 흘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비장의 무기는, ‘제가 우리 아들과의 사랑의 관계’를 이야기 해 주는 것입니다.


만약 제 얘기를 듣는 청소년이 여자이면,

‘제가 우리 딸과의 사랑의 관계’를 이야기 해 줍니다.


그러면 모든 청소년들은, 비록 그들이 자기 부모를 끔찍이 싫어하는 아이라 할지라도,

그 따뜻한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는,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은, 말로는 ‘부모가 싫어요. 나는 가출할 거예요!’ 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모두 갈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도 아버지와 그런 관계를 갖고 싶어요!

제 아버지가 저를 그렇게 대해 주기를 바랬어요!’


▲제가 아버지인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만약 여러분의 아들 또는 딸이

여러분에게서 충분한 사랑과 애정을 받지 못하면,

그들은 또래 친구 또는 다른 대상(애인)을 찾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충분히 사랑 받고 싶은 갈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또래 압력 peer pressure’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십대가 되면, 또래 친구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연애 코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우리 자녀들이 빗나갑니다.


그러나 자녀가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 신체적 표현, 즉 안아주고, 아기의 손을 잡아주고, 볼에 뽀뽀해 준다면,

아이가 자라서 10대가 되어서도, 또래 친구들과 일찍 연애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것이 충족되기 때문에, 일찍 연애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부모는, 그래서 자녀가 나이가 차도, 결혼할 생각을 안 해서 걱정이라고 합니다.

부모의 사랑이 그만큼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일례로 저는, 제 아들과 그 친구들 몇 명,

또한 제 딸과 그 친구들 몇 명을, 몽땅 데리고 야구 경기장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 딸과 아들은, 각각 틴에이저 야구부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동료 야구부원들을 데리고, 레이커스 야구팀 경기를 보러 갔었습니다.


저희 일행은, 다 같이 피자를 먹고, 대형 주차장을 가로질러, 야구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때 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손에 우리 아들 손을, 한 손에 우리 딸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양 손에, 다 큰 아이들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어쩌면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주위에 그들의 친구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데도, 우리 가족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아빠와 아들과 딸이, 서로 다정하게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우리 아들과 딸은, 그런 모습을 자기 또래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불편해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우리 가족은, 서로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부모와 자녀사이에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요지는.. ‘신체적 사랑의 표현’은.. 자녀가 어릴 적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춘기가 지나서 시작하려면.. 서로 어색해서 못 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오지 않았다면, 조금씩 작은 것부터 천천히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특별히 자녀의 친구들이 쳐다보고 있는 자리에서는,

자녀에게 신체적 사랑의 표현을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을 표현할 때는, 자녀의 반응을 민감하게 살펴보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지, 아니면 그 수준에서 중단할지 판단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자녀와 관계의 다리를 놓는 2번째 단계입니다.

적절한 <신체적 사랑의 표현>입니다.



◑3. 자녀의 세계에 동참하십시오.        approach


▲관계가 결핍된 원칙의 강조는, 자녀를 반항에 이르게 합니다.

Rules without Relationship Lead to Rebellion!

이 말은 너무 중요하니까, 아예 외우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아무리 올바른 이야기를 해도, 자녀가 오히려 반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일단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녀와 소통하고, 자녀를 훈계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관계 형성을 위해서

1. 사랑의 언어를 말해야 하고,

2. 사랑의 신체 표현을 해야 하고,

3. 이 단락에서 <자녀의 세계로 동참하는> 단계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부모가 자세를 낮추어, 자녀의 세계에 접근해 들어갈 때,

그 작전이 성공적일 때, 자녀는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빠도 좋아하는구나.’

‘내가 관심 가지는 것에, 엄마도 관심을 가지시는구나.’

-자녀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그제야 진정한 가족관계가 이뤄집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자녀의 세계로 한 번 접근해 들어가 보십시오.


고전13장에,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상대방의 유익, 상대방의 관심사에

나 자신을 맞추어 주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부관계로 치면,

남편은, 아내가 좋아하는 쇼핑, 또 무슨 대화에.. 관심을 갖고 들어주는 것입니다.

어떤 남편은 그것에 동참하는 것을, 정말 두드러기 날 정도로 싫어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안 되면,

항상 자녀가, 부모 관심사에 동참하도록 요구 받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가고 싶은 곳에, 따라 나서야 하고,

부모가 먹고 싶은 것에, 자녀가 맞추어야 하고,

자녀는 관심도 없는데, 아빠가 좋아하는 운동경기를 관람해야 합니다.

이래서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세계로, 한 발자국 발을 옮겨 보십시오.


여러분이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자녀가 어릴 때, 아빠가 자녀가 같이 놀아주어야,

아빠가 노쇠해지면, 자녀가 아빠랑 같이 놀아줍니다.


자녀가 어릴 때, 아빠가 바쁘다고 같이 놀아주지 않으면,

아빠기 노쇠해졌을 때, 자녀는 아빠랑 같이 놀아주지 않습니다.

억지로 그렇게 하려고 해도, 서로 서먹서먹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저처럼 이렇게 늙어 보십시오.

자녀가 이 늙은 아빠의 세계로 들어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젊었을 때부터,

자녀의 눈높이로 자신을 낮추어서, 같이 놀아주는 것은,

아주 아주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딸과 놀아주기 위해, 얼마나 바비 인형놀이를 많이 했는지요!

제 막내딸이 어렸을 때, 바비 인형에 푹 빠져서 놀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저는, 출장을 갈 때마다. 그 도시의 인형가게에 가서,

바비 인형에게 입힐 드레스를 사서 딸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딸과 함께 거실 바닥에 앉아서,

바비 인형에게 새옷을 입히며 같이 놀았습니다.

저는 그 소중한 기억들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혹시 늙어서 치매가 되어 그런 소중한 기억들을 다 잊어버릴까봐 걱정 될 정도로

저는 우리 어린 자녀들과 함께 놀았던, 그 소중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 나이가 되어서, 다 늙어 보십시오.

이때 가장 소중한 것은, 과거에 우리 자녀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 들입니다.

그것은 자녀에게도 중요하지만, 부모에게도 똑같이 소중한 추억들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일에만 몰두하지 마시고,

자녀의 사춘기 이전이 특별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처럼, 여러분, 자녀들의 세계로 지금 들어가십시오. step in!

그러면 나중에 여러분이 노쇠해 졌을 때, 자녀가 여러분의 세계로 들어올 것입니다.


     자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특별한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다음 단계를 공부해 봅시다.



◑4. 상대방의 관심사에 주목하십시오.    approach


▲저는 자녀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인지 항상 발견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관심사는, 반년마다 새롭게 바뀌기 때문입니다.


제 아들이 10살쯤 되었을 때입니다.

그 또래의 남자 아이들은, 길에 지나다니는 스포츠카의 이름을 댈 수 있습니다.

“아빠, 저건 페라리고요, 저건 렘브로기니 예요.”

“저기 지나가는 것은, 포르쉐고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요즘 스포츠카에 관심이 많구나.”

그래서 저는, 아들의 세계로 들어가서, 아들의 관심사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우리 집 근처의 ‘고급 자동차 판매점’의 전화번호와 주소들을 다 적었습니다.


저는, 고급 스포츠카를 파는 모든 자동차 대리점에,

이렇게 편지를 적어 보냈습니다.

‘저는 어린 자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무척 애쓰는 아버지입니다.

요즘 제 아들이 스포츠카에 빠졌습니다.

혹시 제가 시간을 내서, 아들을 데리고, 귀 대리점을 방문하면,

우리 아들을 차에 한 번 시승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대리점에서 무료시승 하잖아요.


그러자 제가 편지를 보낸 ‘모든’ 자동차 대리점에서

기꺼이 그러겠노라는 답장을 보내 왔습니다.


저는, 하루 시간을 내어서, 아들을 데리고,

자동차 대리점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고급 스포츠카에 시승을 해 보았습니다.

아들도 신나 했지만, 저도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들이 운전해 주는 고급 스포츠카를, 그것도 몇 대씩이나, 바꾸어 타고 달려 보았습니다.


제가 아들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의 관심사와 함께 했던 그 날은,

정말 복된 시간이었고, 아름다운 추억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소중했던 시간은,

스포츠카를 시승해보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차 안에서 저는 아들과 진지한 신앙적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고급 스포츠카의 물질주의에, 아들이 현혹될까봐 염려해서입니다.


아들은, 지금 장성해서(32세) 자기도 아빠가 되었지만,

그 날의 소중한 추억을 지금도 두고 두고 얘기합니다.

하루는 제게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아버지, 이제 우리 아들도, 스포츠카에 관심 가질 나이가 되었어요.”


지금 제 아들이, 어디에 가서, 자녀 양육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제 부모님이 제게 주신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부모님이 제 삶으로 들어오셔서,

제 관심이었던 스포츠카에 함께 관심을 가져주셨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녀의 세계로 들어가서 동참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늙어 노쇠해졌을 때, 자녀가 여러분의 세계로 들어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 줄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항상 이 질문을 했습니다.

‘요즘 내 자녀들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인가?’


제 아들이 11살쯤 되었을 때는, 만화책에 빠졌습니다.

헐크와 스파이더맨에 빠져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그래서 저는 출장을 갈 때,

아들이 써준 헐크와 스파이더맨 만화책 목록을 가지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 만화책을 사려고, 시내로 갔습니다.


이제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거기서 사 온 새로운 만화책을, 아들과 함께 마룻바닥에 앉아서,

그 만화책을 같이 읽곤 했습니다.

그것이 제 아들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아빠는 세상에 나가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항상 책을 집필하느라 바쁘면서도,

내 만화책에 관심을 가지시는구나.’


이제 교사가 된 제 아들의 방은,

여전히 스파이더맨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 방 천정을 줄로 가로지르는, 스파이더맨 장난감도 있습니다.


더 기분 좋은 일은, 이 선물이 대대로 물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제 교사 아들이,

자기 아들에게 (제게는 손자죠)

스파이더맨과 헐크를 선물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잘 키우면,

자녀도 자기 자녀를 대대로 잘 키울 것입니다.


▲우리 자녀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자녀의 세계로 잘 들어가신 것입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우리 아빠도 소중하게 여긴다.’


자녀가, 엄마와 아빠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을 때,

서로 사랑하는 진정한 가족이 되고, 

가족은 서로에 대해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서로 대화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며,

서로의 관계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자녀에게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같이 소중히 여겨 주십시오.


그게 배구, 야구, 농구, 육상, 만화책, 바비 인형 등 그 무엇이든지,

자녀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들의 관심사에 같이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원래 힘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법입니다.


어린 자녀는, 부모의 세계에, 관심을 가질 힘/능력이 없지만,

부모는, 어린 자녀의 세계에, 얼마든지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언어로 표현하며,

-사랑의 신체 표현을 하며,

-자녀의 세계로 접근해 들어가서, 관심을 가져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있습니다.



◑5. 책임감을 심어주십시오.  accountability


관계 형성의 주요 원칙 중 하나는 ‘책임감’입니다.

자녀와 관계를 형성해 가면서,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들에게 책임감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책임감을 심어주면, 자녀는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 ‘나는 책임이 있다.’

둘째, ‘나는 사랑 받고 있다.’

이게 무슨 얘기인지, 설명을 들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정당한 한계와 원칙>을 주고, reasonable limits & rules

그 위반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지 않으면,

십대 자녀는, 부모가 자기를 진정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자기를 방치한다고 느낄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정당한 한계와 규칙을 주는 것이,

그리고 그 위반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자녀 입장에서 볼 때,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관계가 결핍된 상태에서, 위반의 책임만 물으면, 자녀는 반항하게 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정당한 한계와 원칙>을 제시해야 합니다. reasonable limits & rules

예를 들면 ‘귀가는 밤 10시까지다. 음주나 흡연은 안 된다.

거짓말은 안 된다.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등입니다.


그 <정당한 한계와 원칙>을 정할 때는,

부모 독단적으로 정하지 말고,

자녀를 참여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적에도,

아이들과 협의하여 ‘꽃밭에서 꽃을 꺾지 않는다. 음식을 흘리지 않는다.

식당에서 떠들지 않는다. 길에서 뭘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등의

<정당한 한계와 원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키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자녀가, 나중에 자라서, 사회적 법규도 잘 지킵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의와 불의에 대한, 분명한 관념이 생깁니다.

아이의 도덕성이 길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겼을 때는, 어떤 처벌을 받게 될 것인지,

그 처벌의 한계도, 아이들과 함께 미리 약속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럴 때, 아이들은, 혹시 위반해서 처벌을 받아도, 반발하거나 상처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배고플 때는, 장을 보러 가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가 고픈 나머지, 이것 저것 막 사게 된다는 말이죠.


마찬가지로, 부모가 화가 나 있을 때에는,

절대로 아이를 훈계하거나 처벌해서는 안 됩니다.

그때는 언제나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화가 나서,

혹시 극단적인 훈계, 극단적인 처벌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배우자가 말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리는 배우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또한 남편이나 아내를 말릴 때는,

아이들 보는 앞에서, 그 권위를 무시하고, 배우자에게 대들거나 나무라면 안 됩니다.


‘여보, 잠시 저 방에 들어가서, 우리 의논 좀 할까요?’ 하면서,

그 자리를 피해서, 아이들 안 보는 데서, 배우자를 말려야 합니다.

그래서 아빠나 엄마의 권위를, 서로 세워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훈계할 때는,

아빠는 엄마의 조언을 듣는 것이 좋습니다.

엄마는 아빠의 조언을 듣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극단적인 처벌을 피하고, 합리적인 처벌을 하는 길입니다.


그럴 때, 자녀들은, 부모의 권위에 상처를 받지 않고,

오히려 그 처벌을, 부모의 사랑과 관심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래, 내가 한 잘못은 내가 책임을 져야지. 내가 이렇게 벌 받는 것은 당연한 거야!

아빠의 처벌은 정당하며, 우리 아빠는 나를 사랑해서, 내가 잘못 하는 것을 못 보셔!’


이렇게 자녀는, <정당한 한계와 원칙> 아래서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인격으로,

점점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