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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연단과 경건훈련 - 링량탕 周神助

LNCK 2011. 5. 25. 20:20

◈육체의 연단과 경건훈련    딤전4:7~16   타이베이 링량탕교회,周神助 목사님, 출처 


 


◑바울이 디모데에게 목회를 맡긴 이유


‘딤전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이 말씀은, 디모데가 성도들에게 혹시 업신여김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아직 어리다는 뜻인데요...


▲젊은 디모데에게 목회를 맡기는 바울의 염려

디모데전서 본문 앞에서, 바울이 교회의 책임을 디모데에게 위임할 때,

디모데가 젊은 목자, 젊은 목회자임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또 디모데에게 위임할 때,

교회를 목회하는 것은, 적지 않은 문제들이 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상한 교훈(교리)들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교회 안의 식구들 사이에도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늘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리더들을 어떻게 선택하고 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교회 안에 ‘귀신이 가르침’이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딤전4:1~3

이런 귀심의 가르침은, 겉으로 보거나 말할 때는 모두 좋아 보입니다.


바로 혼인을 금하는 등의 일이나

어떤 음식들은 먹지 말라는 일들로

겉으로 보기에는 그 가르침들이 멋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르기를, 목회에 있어서,

이런 교회 안의 문제들이나 어려움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자인 디모데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목회자 디모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

그래서 바울은 ‘네 자신과, 네 가르침을 주의 깊게 살피라’고 권면합니다.


‘그대 자신을 조심하고, 그대의 가르침의 내용을 잘 살피시오.’ 딤전4:16

Take heed unto thyself, and unto the doctrine.  KJV

Watch your life and doctrine closely. NIV

(개역에는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약간 모호합니다.)


▲사실 저도 지난 30여 년간 교회를 섬기면서,

교회에 적지 않은 문제들이 늘 발생함을 지켜보았습니다.

물론 지금 현재에도, 우리 주변에 여러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교회에서는.. 목회자인 제 자신이요,

가정에서는.. 가정을 돌보는 가장 여러분 자신(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목사님은, 목회하면서 경험했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었는지요?’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자신을 극복하고 다스리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지금, 목회 초년병 디모데에게, 그렇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대 자신을 조심하고, 그대의 가르침의 내용을 잘 살피시오.’ 딤전4:16


▲여러분의 가정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자녀가 말썽을 부린다고, 그래서 우리 가정은 늘 문제라고 푸념하지만, 

사실은 가장인 아버지의 문제요, 그 어머니의 문제입니다.


자녀가 불순종하고 방종 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자녀가 부모를 존경하지 않거나,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올바른 본을 보이면,

자녀는 결국 그 부모를 존경하며, 그 권위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정의 문제는, 결국 부모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교회의 직분자인 우리 리더들이,

하나님 앞에서 각자 올바로 서고, 건강하게 신앙생활 한다면,

교회의 여러 갈등과 문제들.. 사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바울이 젊은 디모데에게 교회를 맡긴 결정적 이유

바울이 디모데에게 교회를 맡긴 것은,

디모데가 매우 성숙했거나, 완벽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디모데를 믿고 맡겼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바울은, 디모데가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

스스로를 살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 가르침을 스스로 살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딤전4:16


디모데가 자기 경건생활을 훈련하고,

또한 자기 육체를 연단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딤전4:8


그래서 디모데가 ‘자기를 살피기’를 계속한다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은,

결국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우리 각자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를 직면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회 문제, 경제 문제, 심지어 국가 문제까지도 염려합니다만,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각자 자신입니다.


자기 가정 문제, 사회 문제, 경제 문제, 심지어 국가 문제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주안에서 신앙이 안정된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자기가 갈 길을 올바로 발견합니다.

괜히 사회 탓, 국가 탓, 남의 탓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모든 환경적 어려운 문제들은,

그에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완벽한 사람을 찾지 마십시오.

디모데가 완벽해서, 사도바울이 그에게 목회를 맡긴 것은 아닙니다.

‘그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살피고 있는가?’

‘그래서 그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가?’

그것을 보고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를 맡긴 것입니다.


여러분, 회사에도,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살피고 있는가?’

‘그래서 그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가?’

그것을 보고서, 그 사람을 믿고, 책임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삶의 과정에서 여러 문제들이 필연적으로 불거지지만,

결국 모든 문제는, 성숙한 지도자의 지도력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해결됨을 봅니다.


디모데의 신앙인격이 점점 성숙해 나감을 따라서,

교회와 성도들 역시, 그와 함께 점점 성장해 나갈 것을.. 바울은 내다본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이고, 나아가 우리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성장할 때, 동반성장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무슨 문제로 인해, 고민하고 계십니까?

그 문제에서 눈을 돌리십시오.

그리고 우리 각자 자신을 바라보십시다.

본문처럼, 우리 자신을 주의 깊게 먼저 살피십시다. 딤전4:16



◑1. ‘육체의 연습’도 필요합니다.


▲사실 디모데는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네 위장(병)을 위해서 포도주를 조금씩 마시라고 했습니다. 딤전5:23


본문 말씀 중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 라고 말씀합니다.  딤전4:8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육체의 연습’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경건, 영적 생활’에 대해서만 집중하다보니..

크리스천 가운데, 사역자들 가운데,

건강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연습(운동)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그래서 크리스천들이 ‘육체의 운동’을 너무 등한시하는 것은 아닌지요?


▲여담입니다만, 본문에서 바울이

‘육체의 연습은 유익이 약간만 있다’고 한 것은..

 

그가 만약 21세기에 성경을 썼다면,

‘육체의 연습도 유익이 상당히 많다’라고 썼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문화는, 모두 건강을 필수적으로 챙기잖아요.

그런데 왜 ‘약간만 유익이 있다’고 했을까요? 


추측컨대, 그때는 대부분 다 걸어 다녔습니다.

자동차, 오토바이, 이런 교통수단이 거의 없었으니까,

대부분 걸어서 다녔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성인병이 없이 건강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질병이 있었겠지만,

적어도 오늘날 우리들처럼 ‘운동 부족으로 인한 질병’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연습은 유익이 약간만 있다’고 하지 않았을까요?

대부분 걸어다니다 보니, 건강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건 기본이었습니다. 

 

물론 여담(추측)이었습니다.

 

제 의도는, 오늘날 우리 정황에서는,

육체의 운동은 ‘유익이 꽤 있다’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성인병이 많으니까요!


▲중화 신학교에 장 전도사님이, 신학교 오기 전에 발마사지를 하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전도사님께, 하루는 발마사지를 받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의 경험에 의하면,

(발마사지를 하면서, 전문가가 발바닥을 눌러보면,

몸의 어느 부위가 안 좋은지, 알 수 있다고 하잖아요.)


불신자들보다는 신자들의 건강이 더 안 좋고,

신자들보다는 목회자의 건강이 더 안 좋고,

목회자보다는 그 사모님의 건강이 더 안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연습, 즉 운동량을 볼 때,

불신자>신자>목회자>사모님 순으로 운동량이 점점 더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리 크리스천들이,

너무 경건의 연습만 집중하다보니, 육체의 연습을 등한시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늘 기도하고, 말씀연구하고, 목회에 열중하다보니.. 운동할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모세가 120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던 이유는, 그가 광야에서 80년간 걸어 다녔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우리 일행이 성지순례를 가는 길에, 시내산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은 돈을 내고, 낙타를 타고 시내산에 올라갑니다.

사실 보통 사람이 걸어서 오르기에는, 꽤 높은 산입니다. 등산에 왕복 5시간 소요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한 번 ‘모세의 심정’을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서는,

낙타보다는 걷는 것이.. 더 나아 보였습니다.


제가 실제로 시내산을 등산해 보니, 그때 제가 50세가량이었거든요,

그런데 숨이 차고 매우 힘들었습니다.

 

모세가 생각나더라고요. 80세가 넘은 노인장이,

거기에다 양손에는 두 돌판까지 들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건강이 대단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고요.

그만큼 모세가 열심히 광야에서 ‘걸어다녔다’는 결과입니다.


▲경건의 훈련도 매우 중요하지만, 육체의 훈련도 무시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다윗도 들판에서 시를 지어서 하나님을 노래하면서도,

양을 치면서, 돌팔매를 던지는 연습을 하면서,

걸어 다니면서 육체를 연습했습니다.


여러분, 소나 양을 치는 곳에 한 번 따라가 보십시오.

거의 하루 종일 이동합니다. 하루 종일 걷는다는 뜻입니다.

요즘 목동들은 차를 타거나, 말을 타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다윗도,

경건의 훈련만 하지 않았습니다. 육체의 연습도 했다는 것입니다.


목동이었을 당시에 다윗은

아마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더 건강했겠습니까. 지압이 잘 되니까요.


예수님도 각 성을 걸어 다니셨고,

바울도 엄청난 거리를 도보로 여행했습니다.  *관련글 / 바울이 앗소로 걸어간 이유


그러므로 그 당시에는,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바울은 ‘육체의 연습은 약간 유익하다’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경건의 연습’에 비교하면, 약간만 유익한 것은 맞습니다만..)


▲우리는 백 년 전에, 대만에 선교사로 오셨던 렌즈버러 의사를 기억합니다.

그 분은 영국에서 배를 타고 대만의 타이난에 도착하신 후,

짱화에 오셔서, <짱화 크리스천 병원>을 설립하셨습니다.


그 분은 타이난에서 짱화까지 걸어가셨습니다.

그때는 차도 없고, 찻길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금년에 68세인데요, 60년 전 제 어릴적만 해도,

그 당시에 사람들은 근시가 없었습니다. 눈이 다 건강했습니다.

대단 사람들은 과거에 많이들 산속에서 살았습니다.

매일 먼 산만 쳐다보고, TV는 없었던 시절이니.. 시력이 좋을 수 밖에요.


그리고 저도 어릴 적에, 먼 길을 걸어서 다녔는데, (차도 없었습니다.)

돌길을 맨발로 걸어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발마사지를 따로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 중에 누가 성인병을 걱정했습니까?

아예 ‘성인병’이란 말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육체의 연습 bodily exercise 은 약간만 유익하다’고 했던 것입니다.

육체의 운동은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었으니까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오래 앉아 있습니다.

집에서,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외출할 때는, 차를 탑니다.


이런 나쁜 습관은, 고쳐져야 합니다. 본문은 말씀합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딤전4:8


우리는 이 본문을 대할 때,

경건의 연습에만 착념하지 말고,

육체의 연습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크리스천들이

경건의 연습에만 몰두하다가, 육체의 연습에 게을리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둘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이것도 여담인데요, 제가 어릴 적에 말을 안 들으면,

어머니께서 제 귀를 잡아당기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자주 귀를 안마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귀에는 3백여 개의 경락이 있어서,

자주 눌러 주시면 좋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제 경락을 눌러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실제로 해 보시면, 정말 머리가 시원해지실 것입니다.


살려면.. 움직여야 합니다. 활동해야 합니다.

활동하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문을 자주 움직이지 않으면, 녹이 슬어서 못 쓰게 됩니다.

물이 움직이지 않으면, 이끼가 낍니다.

공기가 통하지 않으면, 답답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도 움직이지 않으면.. 못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식습관도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1, 2, 3으로 드십니다만,

건강을 위해서는 3, 2, 1이 좋습니다.

 

아침을 3, 점심을 2, 저녁은 1로 약간만 드시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1, 2, 3, 4로 드시는 분도 있습니다. 야식을 4로 드시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0, 2, 3, 4로 드십니다. 아침을 거르시는 분입니다.

이런 식습관은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물론 오늘 설교의 핵심은 ‘경건의 연습’에 있지만,

    ‘육체의 연습’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한 몸’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사도요한은, 성도들의 건강을 축복했습니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우리는 영혼과 몸이 균형을 이루어, 잘 되어야 하겠습니다.

(특별하게 ‘하나님의 섭리로’ 아픈 사람 빼고요)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걸어 다니며, 산책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찬양과 경배시 박수치기, 뛰고 굴리기도.. 건강에 좋습니다.

    손바닥에도 경혈들이 있어서, 박수를 치면 건강에 매우 좋습니다.

    집에서 기도하고 찬양할 때도, 박수를 치면서 해 보십시오.


▲감사하게도 요즘 교회 앞 공원에서 <찬양체조>를 하는 것을 봤습니다.

찬양으로 체조하는 것..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포인트는 찬양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영혼이 잘 됨같이.. 몸도 강건해야’ 하겠습니다.


요즘 어떤 사람들은, 법륜공/요가/기공 등의 운동을 통해서,

그들의 신비종교로 미혹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건강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는, 찬양체조 같은 것도 필요하다면 계발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통해 이단으로 빠지는 사람들을 막고,

그들을 오히려 운동을 통해서 전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경건의 훈련


경건의 훈련은, ‘버리는 것’과 ‘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입술의 경건 훈련 (버리라)


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후2: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딤후2: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이상의 말씀을 통해서, 바울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경건의 훈련은.. 우선 우리의 입을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욕이나 더러운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또 한편으로는 더러운 말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만,

만약 우리가 자주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말, 불평의 말을 한다면,

이는 모두 경건 훈련을 방해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가 이런 언어들을 버리도록 도와주시도록,

우리가 늘 깨어 있어서,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말이 교만하며

겸손한 사람은, 말부터 겸손합니다.

마찬가지로, 경건한 사람은.. 말부터 경건합니다.


단순히 부정적인 말을 안 하는 차원을 넘어서,

남들을 세우고 격려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이런 ‘경건의 말’의 훈련을 할 때,

우리 삶과 믿음이, 더욱 경건하게 세워져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부정적인 말, 긍정적인 말의 차원을 넘어서

또 다른 차원의 말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것은 ‘학문적 허세, 신학적 자랑과 변론’입니다.

그것도 버리라고, 디모데에게 권면 합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교회가 가장 어두웠던 중세 시대에, 그런 어리석은 신학적 논쟁이 성행 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성찬의 방식에 대한 논쟁, 세례의 방식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에 관한 논쟁도 있고, 성령론에 관한 논쟁도 있습니다.


신학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은 필요합니다만,

그렇다고 논쟁을 하지는 마십시오.


신학의 정립보다 더 필요한 것은, 경건의 훈련입니다.

종종 경건의 훈련을 제쳐놓고, 신학적 논쟁을 일삼는 일은.. 무익한 일입니다.

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2. 생활의 경건 훈련 (피하라)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딤후2:22


우리가 올바른 신학을 추구하는 이유도,

결국은 그것을 통해서 경건에 이르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으로 좀 틀려도, 경건한 사람이,

신학적으로 올바르지만, 불경건한 사람보다는 훨씬 더 하나님 앞에서 소중합니다.


바울의 이 권면은, ‘신학은 아무렇게나 되어도 괜찮다’가 아니라,

신학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건이다’라는 권면입니다.


제 아버지가 93세에 미국에서 중병에 걸리셨을 때

우리 형제들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우리에게 남기실 말씀이 있는지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경건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저희에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은

경건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경건을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단련은 약간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가, 경건을 훈련할 때,

우리 자녀 세대로, 부모를 본받아 경건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


한국의 한경직 목사님도, 노후에 후배 제자들에게

‘참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라고 권면했습니다.

‘경건의 훈련’을 평소에 늘 계속하라는 뜻이었습니다.               ▣ 교회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