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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위대성

LNCK 2011. 6. 19. 22:01

◈모세의 위대성                     신34:10                  02.02.10. 설교녹취

 

이해 안 되는 하나님의 처사

모세를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고 왜 코앞의 느보 산에서 죽게 하셨을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모세는 일등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야 마땅하지 않는가?

 

물론 모세가 므리바에서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아니한 사건 때문이라는 기록이 있다.

물론 거기서 모세는 잘못을 범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한 번의 실수와 잘못은,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수고한 모세의 공적을 무너뜨릴 수 없다.

만약 그것 때문에 가나안에 못 들어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가혹하고 지나치신 판결이다.

 

모세의 위대함

그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자신의 후임으로 여호수아를 세우고,

그 다음에 느보 산에 올라가서 죽었다.

여기에 모세의 위대함과 훌륭함이 뚜렷이 드러난다.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려 40년 동안 한결 같이 인도한

모세의 삶은 참으로 위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40년 목회의 길보다 몇 배나 더 위대하고 훌륭한 것은,

모세가 느보 산에서 묵묵히 생을 마감한 것이다.>★

 

여호수아가 아무리 훌륭했다 하더라도 모세가 가나안에 끝까지 들어갔더라면,

그는 가나안에서 모세를 이어 훌륭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 했을 것이다.

 

모세는 워낙 거목이었기 때문에 그 그늘에 가려, 여호수아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모세의 뒤를 이어 모세만큼 지도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의 그늘을 없애시기 위해서

모세를 느보 산에서 죽게 하셨다는 생각을 해 본다.

 

모세는 이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여호수아가 자기의 그늘에 가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스스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된다.     

 

신약의 모세, 바나바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고 성도를 핍박했던 전과가 있던 바울이

당시 초대교회 지도자였던 바나바의 조력자요, 동역자가 된 것만 해도 큰 기적이었다.

그래서 성경엔 ‘바나바와 바울’로 나온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성경엔 큰 설명 없이 ‘바울과 바나바’로

그 이름의 순서가 바뀌어져서 나온다.

이것은 바울의 역할이 바나바의 역할보다 더 앞섰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는 거꾸로 바나바가 바울을 보조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바뀜의 상황에서도 바나바가 바울을 항상 따라다녔다는데 있다.

나중에 마가 때문에 갈라서기 전 까지는,

바나바는 적어도 바울이 자기보다 앞서는 일에 대해 시기하지 않았다는 점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

 

바나바에게 중요했던 점은 ‘하나님의 복음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파되느냐’는 것이었지,

‘누가 누구를 앞서느냐는 비교의식’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렇게 볼 때 바나바는, 권위 이양에 있어서,

신약의 모세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죽임으로써, 후배인 바울을 위하여 길을 열어줄 줄 알았던

참으로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교훈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모세와 같이 큰 일을 감당하신 훌륭한 지도자들이 많이 계신다.

세계 교회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흥한 한국 교회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에 필적할 수 있는 기적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출애굽 기적에 모세같은 지도자가 있었듯이,

한국 교회 부흥의 기적엔 모세같이 큰 하나님의 종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한 가지 문제점이라면,

그 모세 같은 지도자들이 느보산에서 죽지 못하고

끝까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 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는 여호수아가 설자리가 없고,

바울을 배출하는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

 

더 나아가 가나안까지 들어간 모세 때문에,

교회가 더욱 퇴보하고 파멸하는 길을 자초했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자기를 부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모든 영광과 존귀를 하나님께만 돌리고

자신은 이름 없이 사라지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자기 혼자만 독주해서는 안 되고, 동역자와 후계자를 세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스스로 조용히 느보산에 올라가 자신을 은폐하고,

기쁜 마음으로 여호수아를 세우고 돕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정말 훌륭한 지도자 

정말 훌륭한 지도자는 자기 자신을 키우고 세우는데 그치지 <않는다>.

<정말 훌륭한 지도자는 후계자와 백성을 키우고 세우는 사람이다.>★

 

지도자가 성공했을 때, 자신의 후계자를 세우는데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그것보다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자하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그래도 상대적으로 비교 평가할 때, 정치를 잘 했고 애국심이 투철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성공한 이후에, 뒤를 이을 후계자를 세우고 깨끗이 물러나지 못했다.

결국 자기가 없으면 나라가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말았다.

 

끝까지 자신이 인솔해서 무리하게 가나안에 들어가려 했기 때문에,

자신과 나라가 모두 어려워지고 말았다.  

 

일부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해서,

자신은 느보산에서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되며,

끝까지 자기가 인솔해서 가나안까지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평생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수고한 것을

헛된 것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하나님의 교회를 개인의 명예와 유익을 위해 좌지우지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경직 목사님의 예

이런 점에서 한경직 목사님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셨다.

한목사님은 하나님이 한국 교회에 주신 축복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그 분은 ‘한국교회에 모세와 같은 지도자’로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최소한 십 년 이상 더 목회하실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후계자를 세우시고 자신은 스스럼없이 은퇴하신 데 있다.

 

그래서 <당신이 친히 목회하실 때 보다, 후임이 목회하실 때

영락교회가 더욱 성장했다. 한목사님의 위대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분 이 사실을 꼭 명심하시기 바란다. 나는 이번 설교를 준비하다가 깨달았다;

자신이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서 교회를 부흥시키는 사람도 훌륭하다.

 

그러나 정말 더 훌륭한 지도자는, 자기 후임을 잘 세워서

자기 때보다 교회가 더욱 부흥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영락교회의 예에서 보듯이, 그 교회는 한경직 목사님 때보다

후임인 박목사님 때 더욱 부흥했고 교회의 정점에 도달했었다.

 

박목사님도 훌륭하시지만, 자기 후임을 통해

교회가 절정에 도달하도록 유도하신 한목사님은 더욱 훌륭하셨다.

 

이런 역할과 모델을 보여준 지도자가 그 후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어쩌면 한국교회의 비극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일할 때 그 단체가 정점(peak)과 절정기에 도달하기 원한다.

나에게도 그런 어리석은 마음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동안교회를 섬겼던 기간이 동안교회 역사상 가장 정점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만약 제 후임자가 동안교회에서 저보다 목회를 더욱 잘한다면

마음이 꺼림칙하고 걸리는 것이 아직 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나는 훌륭한 목회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런 어리석음과 싸우고 있다.

 

자신이 목회할 때 교회가 정점에 도달하는 목회자는 훌륭한 지도자에 그친다.

그러나 정말 훌륭한 모세와 같은 지도자는,

자신이 세운 후임자를 통해 교회가 정점에 도달하게 하고,

자신은 느보산에 올라가서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의식이 우리 한국 교회에 필요하다.

물론 그 후임자는 또 다른 후임자를 세우면서,

그 교회는 과거보다 더 높은 정점에 이를 것이다.

 

이와 같이 정말 훌륭하고 위대한 지도자는

자신의 후임자 또는 자신의 제자를 통해 그 영광이 드러난다.

이렇게 후임자를 통해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자신은 철저한 자기 부인이 요구된다.

 

▶나는 모세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

제가 청년 시절에, 어떤 권사님은 기도원에서 기도하시던 중에

내가 목사가 되는 환상을 보셨다. 그 후 권사님은 특별히 저를 두고

‘모세 같은 지도자’가 되게 해 달라고 계속 중보기도 해주셨다.

 

그 기도 덕분인지 나는 정말 모세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

그것은 다름 아닌 ‘느보산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모세의 위대성은, 홍해를 가르고 열 가지 재앙을 내린 것이 아니라,

조용히 죽은 ‘자기 부인’에 있다.

 

한국에 원로목사 제도가 있는데,

원래 취지는 목사의 은퇴 이후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일각에서의 원로목사제도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느보산에서 죽지 못하고 가나안까지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절대 원로목사 되지 않기로 지금부터 결심한다.      

 

▶모세의 십자가 영광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고 가르치셨다.

 

이와 같이 모세는 철저히 자신을 부인했고,

후손들은 그의 무덤조차 찾을 수 없었다(신 34:6).

 

그러나 이렇게 억울하게? 무명으로 죽은 모세는

<죽은 이후에 생전보다 더 큰 사람이 되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신34:10

  

모세가 죽은 후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등장하지 못할 정도로

위대하게 역사에 평가된 것은.. 느보산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죽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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