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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2~2003

옥합을 깨뜨리는 마음 2669

LNCK 2010. 9. 30. 16:34

◈옥합을 깨뜨리는 마음                        막14:1~10                       02.05.29.설교스크랩



교회사가인 라토렛은 교회역사를 연구하면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결론을 얻었습니다.

"교회를 지켜온 사람들... 그들은 신학자가 아니다. 정치가도 아니었다.

부유한 사업가도 아니다. 심지어 목회자도 아니었다.

이름 없이, 인정받음 없이, 주의 제단에 사랑을 바친 수없이 많은 성도들!

바로 그들이 교회 역사의 주인들이었다."     ... 본문 중에서



▶도입 일화  주1)



◑1. 주를 향한 사랑의 마음


▶아마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축하하는 잔치

본문 막14:3절에 보면 사건의 발단을 소개하면서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라고 기록합니다.

저는 이 식사가, 평범한 초대식사가 아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한 보은의 잔치성격이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요12:1-2절에 "유월전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쌔.."


마리아의 가족 중에 그 오빠인 나사로는, 가장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가 죽었습니다. 얼마나 절망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다시 살았습니다.

이것은 또 얼마나 감격이었을까요? 그래서 잔치가 열린 것입니다.


마가복음 본문에 문둥이로 소개된 시몬은, 아마 문둥이였다가

주님의 기적의 터치로 치유를 경험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의 제안으로 잔치장소를 그의 집안으로 정했을 것입니다.

가난했던 나사로 집안보다, 시몬의 집이 훨씬 더 공간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집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그런데 이 잔치석상에서 갑자기 마리아가 옥합을 들고 나오더니

그 옥합을 깨고 그 속에 있던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아니, 저 비싼 향유를 저렇게 허비해도 되는가?"였습니다.  :4


   그러나 이 여인은 말없이 예수님의 몸에서 발까지 흘러내리는 향유로

   이제는 예수님의 발을 씻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주님을 향한 이 여인의 사랑이었다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낭비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돈을 써보신 경험이 있으신지요? 아까우셨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아직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사랑에는 낭비의 본능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낭비합니다.

생각을 낭비합니다. 물질을 낭비합니다. 아니, 우리의 존재 그 자체를 낭비합니다.


낭비할 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마리아의 심정이 이런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낭비라 해도, 제 정신이 아니라 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내 영혼을 살리신 주님, 내 오라비의 생명을 되돌려 주신 주님,

-이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이 옥합을 깨뜨리게 한 것입니다.


교회사가인 라토렛은 교회역사를 연구하면서 중요한 결론을 얻었습니다.


"교회를 지켜온 사람들--그들은 신학자가 아니다. 정치가도 아니었다.

부유한 사업가도 아니다. 심지어 목회자도 아니었다.

이름 없이, 인정받음 없이, 주의 제단에 사랑을 바친 수없이 많은 성도들,

바로 그들이 교회(에클레시아)의 주인들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마리아 같은 성도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켜온 주역들입니다.

옥합을 깨뜨리는 마음 - 그것은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를 지키는 사람들도, 이런 마리아의 영성을 지닌 성도들입니다.



◑2. 전부를 드리는 마음


마리아가 주님께 향유를 부어드리는 방법에는 3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옥합을 열어 향유를 조금 붓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헌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중요한 손님의 내방시 향유가 준비된 집에서는

손님의 머리에 향유를 몇 방울씩 떨어트리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훌륭한 최소한의 예의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옥합을 열어 향유를 전부 주님께 부어 드리는 방법입니다.

이 정도면 최고의 헌신으로 평가 받을만 합니다.

그리고 옥합은 다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마리아는 이 정도의 헌신으로도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셋째 방법을 취했는데,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전부 주님께 부어 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이 옥합이나 향유는, 주님이외의 다른 대상을 향해서는

결코 다시 사용되지 아니할 것을 고백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주께 드려진 헌신이 전부를 드리는 헌신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최소한의 헌신이나, 최고의 헌신이 아닌, 전부의 헌신을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이런 마음의 헌신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었다"고.   :8


마리아가 실제로 드린 향유는 300데나리온에 달했다고 본문은 기록합니다. :5

300데나리온은 300날(약 1년)의 품삯에 해당합니다.

중요한 원리는 주님 앞에서 전부를 드리는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전적 헌신을 드린 일입니다.


설교가 밴스 해브너 Vance Havner는

'전적인 헌신'에 대하여 설교했을 때

한 지적으로 보이는 여인이 집회 후

"목사님, 왜 가능하지도 않은 전적인 헌신을 설교하시나요?

그냥 80-90%만 헌신하라고 설교하시는 것이 현실적인 도전이 아닐까요?" 하더랍니다.


이때 밴스 해브너는 이런 반문을 했다고 합니다.

"부인, 당신은 당신의 남편이 당신에게80-90%만 헌신하고

나머지 10%는 다른 대상에 헌신해도 만족하시겠습니까?

우리의 헌신이 전적인 헌신이 아니라면 그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마리아의 옥합을 깨는 마음-그것은 전부를 드리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김준곤 목사님의 글을, 젊어서 읽을 때는, 그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김준곤 목사님의 심정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습니다.

 

“나는 내 무의식과 꿈속까지 예수 의식화가 된 골수 예수쟁이이고 싶다.

나도 성몽이나 식몽, 개꿈 같은 것을 꾸기도 하지만,

내 많은 꿈속에 예수가 있고,

40일을 금식 기도할 때도, 밥 먹는 꿈보다 예수 꿈을 더 많이 꾸었다.


(나는) 일생에 두 번 의식이 죽었다 깨어난 경험이 있는데,

그때도 나는 예수의 의식 속에 깨어났으며,

나의 언어의 대부분이 예수를 설교했고,


내가 쓴 수 천 통의 편지와

길가며 쓰고, 밥 먹다 쓰고, 자다 일어나 쓰는 글도 예수이며,

내 딸들을 위해 써 놓은 한 줄 유서도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며,

내 묘비명도 예수일 것이다.


예수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신앙의 순도는 100%이고 싶다.

내게 흠도, 티도 없는 최후의 순수하고 진실한 것이 있다면,

목숨이 열두 번 다 한 후에라도 더욱 사랑하고만 싶은 예수님이다.”


이 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이 길을 가시지 않겠습니까? (이 단락 삽입글)



◑3. 기회를 붙잡는 마음


오늘의 본문의 문맥이 마리아의 헌신을 소개하며 주목하는 이유 중의 하나

십자가 사건을 앞둔, 그녀의 헌신의 때입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마리아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본문 바로 다음구절인 10절을 보십시오.

이 사건직후에 가롯 유다의 예수님을 팔기위한 음모가 시작됩니다.

때는 바야흐로 예수님의 지상생애의 마지막이 가까운 시기였던 것입니다.


본문 1절은 정황적으로 당시에 예수님의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막14:1

예수님을 둘러싸고 매우 긴박하게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었고,

따라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러다 예수님이 체포당하시고 돌아가시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여성 특유의 직관으로, 만일 이런 상황에서 돌아가시면,

예수님 장례를 준비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아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 집으로 달려가, 아마 자기의 미래를 위해 예비한 소중한 자산이었던

인도산 고급향유가 들어있는 이 옥합을 가지고 와

이를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 드린 것입니다.


이때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의 마음

-그것은 기회를 붙잡는 마음이었습니다.


자,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나요?

"저가 내 장사를 미리 준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8


마리아의 헌신을 비난하며, 그것으로 차라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지만,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7


예수님은 결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과소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희가 나를 위해 다르게,

너희의 사랑을 표현할 필요가 있는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와의 작별의 시간에 중요한 일은, 의미 있는 작별을 하는 일입니다.

그 시간에 꼭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울 사람을 찾아보자고 할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헌신에도, 헌금에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잃어버리면, 나는 이 소중한 헌신의 역사에, 예외자로 남을 뿐 인 것입니다.


비전센타가 오픈되어 수많은 영혼들이 주의 은혜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소중한 역사에는 나의 헌신, 나의 눈물, 나의 기도가 있었다고

오고 오는 세월동안 간증할 수 있다면..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기회가 주어져 있을 때에, 그 기회를 잃지 말고 주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회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옛날 희랍의 시랴큐스 거리에는,

기회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한 조각상이 도심 복판 광장에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동상인데, 날개를 달고 있었는데, 날개가 발에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앞머리는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였다고 합니다.


조각상 아래엔 이런 글귀가 씌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그대를 만들었는가? 리시퍼스. 그대의 이름은 기회.

왜 그대(기회)는 날개를 발에 달고 있는가? - 좀 더 빨리 빨리 다니기 위하여.

왜 그대의 앞머리는 그렇게 무성한가? -내가 올 때 사람들이 쉽게 붙잡도록.

왜 그대의 뒷머리는 대머리인가? - 내가 지나가면 다시 붙잡을 수 없기 때문에.”

기회란 정말 그런 것입니다.


........................


주1) ▶도입 일화

 

유명한 팝 아티스트인 엘튼 존이 부른 노래 가운데

"바람속의 촛불"(Candle in the Wind)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는 이 노래를 우리시대에 살았던 여성가운데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살았던

두 여성의 죽음을 추도하기 위해 바쳤습니다.

한 여인은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였고, 또 한 여인은 찰스 황태자비였던 다이애나였습니다.


1973년 처음 이 노래가 탄생했을 때 두 번째 단락의 가사는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내 보기에 당신은 바람속의 촛불처럼 살았어요.

비가 내려도 누구에게 갈 수 없었던 당신. 그때 내가 당신을 알았더라면.

하지만 난 어린애였죠. 이제 당신이 전설이 되기전 당신의 촛불은 벌써 타버린 것을."

그는 이 노래로 불행한 인기여우 마릴린 먼로의 죽음을 애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1997년 9월 다이애나비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장례식에서

다시 이 노래를 조금만 개작하여 이렇게 리바이벌 시켰던 것입니다.


"내 보기에 당신은 바람속의 촛불처럼 살았어요.

비가 내려도 석양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 당신은 지금.

여기 영국의 푸른 언덕길마다 당신의 발자국은 남아.

하지만 이제 당신이 전설이 되기 전 당신의 촛불은 벌써 타버린 것을."


엘튼 존의 이 노래가 사상최대의 앨범기록을 세우고,

이 두 여인을 향한 추모의 발걸음이 아직도 그치지 않고,

이 두 여인의 사진이 세계도처에서 계속 재생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가히 이 두 여인의 인기를 실감할 만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 두 여인보다 더 유명한 여인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여인은 마릴린 먼로나 다이애나가 등장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유명했습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몬로나 다이애나의 전설이 사라진 먼 훗날에도

여전히 그 인기를 유지할 것입니다.


이 여인의 인기는 예수님에 의해 예언된바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9절)


그렇습니다. 소위 설교자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그리고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이 여인의 존재와 헌신은 계속 기억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은, 주님이 인정하시고 기억해 주시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여인은 무엇을 했기에 이렇게 기억될 것입니까?



◆관련 일화 - 멸치 대접 받고, 감동 받은 사연

 

10년 전 나(정원순 신부)는 필리핀 민다나오 섬, 다바오city에서 2년간 산 적이 있다.

그곳 학생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던 나는, 매주 토요일에

가난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주일에 돌아오는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그룹은 한 신자 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저녁식사는 밥과 반찬 한 가지뿐이었는데, 그 반찬이라는 것도 검지 크기만한(약간 큰) 멸치였다.


그 가족은 멸치 대가리와 꼬리를 먹고, 우리에겐 몸통을 주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했고 당황했다.

함께 간 필리핀 동료 수사가, 내게, 이 가족은 손님이 와서 대접은 하고 싶은데,

있는 것은 멸치뿐이어서 그러니, 맛있게 먹어야 기뻐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다음날 수도원에 돌아온 나는, 아침기도 중에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을 떠올렸다.


그 가족은 비록 가난하지만,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나누는 그 태도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삶의 자세가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전5:16~18) 살아가기에,

그 조그마한 멸치로 외국(한국)에서 온 수사를 감동시킨 것이다.

                                                                                                                          ▣ 헌신,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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