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을 위하여 무장하시라 벧전4:1~2 11.08.19.인터넷설교녹취
다니엘 선교사
만약 지금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급하게 전달하고 싶으신 음성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멀지 않았으니, 준비하라’일 것이다...
◑영적인 시차 時差 time difference
각 나라마다 시차가 있듯이,
영적 시간에도, 각 나라마다 영적인 시차가 있다고 본다. 이것은 제 설교자의 통찰력이다.
▲미국의 영적 시간은.. 제가 보기에는 밤10시쯤 된 것 같다.
아침부터 일어나 열심히 일하며, 한 시대의 부흥을 이끌었고 (200년 전 상황)
많은 선교사들을 해외로 보내다가 (100년 전 상황)
이제 날이 저물었다. 몸이 졸리기 시작한다.
‘좀 더 깨어있자’며 스스로 몸부림치고 있다. - 이것이 지금 미국의 모습이다.
▲한국의 영적 시각은.. 지금 오후 3~4시쯤 된 것 같다.
아침에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나서,
점심 먹고, 또 열심히 일하다가
오후 서너 시가 되면.. 좀 긴장이 풀어진다. 몸도 나른해진다.
‘좀 더 일해야지..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 마음 먹지만,
동시에 피곤해져서, 어서 빨리 퇴근해서, 쉬고 싶은 마음도 있다.
▲중국 동부(북경, 상해, 대련, 청도, 동북 3성) .. 지금 오전 9시 경이다.
마치 아침에 막 출근한 직장인이
왕성하게 업무에 임하는 것처럼,
지금 중국 동부에는, 기독교 복음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다.
‘내가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뭘 할까요?’ 물으며, 지금 막 활기가 돌고 있다.
▲중국 서부(신장의 이슬람권, 또는 티벳의 라마 불교권).. 새벽 6시
여기는 지금 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전에 다 잠자고 있다가, 겨우 지금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있다.
아직 왕성하게 일을 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오전 9시가 될 것이고,
그때는 중국의 동부처럼, 또 왕성하게 일을 시작하는 때가 올 것이다.
중앙아시아도 아마 지금 ‘새벽 6시’쯤 되는 것 같다.
▲더 서쪽으로 중동(이란~이스라엘~북 아프리카) .. 새벽 3시
여기는 아직도 다 계속 잠자고 있다.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중에, 선택받은 몇 명만.. 남들보다 먼저 눈을 떴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한국에서 오후 3시에 하던 사역을, 중동에 가서 똑같이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거기는 새벽 3시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기타치고, 길에서 찬양하며, 노방전도도 할 수 있지만, (오후 3시니까)
중동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새벽 3시라서, 다 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 안 실내에서라도, 그렇게 기타치고 찬양하면,
민원신고 들어와서, 다 잡혀가서, 추방된다.
거기서는 ‘다 자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남들보다 먼저 눈뜬 사람’을, 먼저 조용히 찾아가는 것이다.
그 사람들만 불러내어, 조용히 사역하는 편이.. 지금 현재 시점에서는.. 지혜롭다.
▲영적 표준 시각 GMT는 지금 몇 시일까? *Greenwich Mean Time
한국이 몇 시이고, 중국이 몇 시인가?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영적 표준 시각’으로 계산해서, 지금이 과연 몇 시인지 아는 것이다.
영적 표준 시각은.. 예수님의 승천을 기준해서 새벽 0시가 시작했다고 볼 때
지금은 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다.
주님의 표준 시간(영적GMT)은,
밤11시를 훌쩍 넘기게 가리키고 있는데,
지금 나는.. 오후 3시 정도로 느끼고.. 아직 시간이 넉넉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주님은 마지막 시대, 마지막 방법으로
지금 모든 경영(경륜)을 이루어가고 계시는데,
지금 내 인생은 급하지 않고, 느긋하게, 지금 몇 시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시간은 마냥 영원히 주어지는 것처럼 살고 있다면
-영적인 갑옷으로 무장해야 한다. 전시태세로 갈아타야 한다는 것이다.
◑1. 무장하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벧전4:1
▲갑옷을 삼으라
갑옷을 삼으라는 말은.. 무장을 갖추라는 뜻이다. arm yourself
전시상태로 돌입하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갑옷을 입지 않고(무장하지 않고), 전시태세를 갖추지 않으면..
너희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베드로가 서신을 쓸 당시 환경이, 영적으로 긴장감이 팽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전혀 반대의 말을 하고 있다.
‘미래는 괜찮아질 거야’
‘꿈과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살면.. 다 잘 될 거야’
‘대학만 제대로 나오고, 직장만 잡으면.. 너는 문제 없어!’
어떤 물질적 환경만 놓고 보면, 이런 말은 일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10년 전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음식을 먹는다고..
지금 우리 삶이 10년 전 과거보다 정말 괜찮아졌는가?, 다 잘 되어졌는가?
아마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물질적 풍요만 갖고는, 결코 평안하게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10년전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 하더라도,
‘마음의 갑옷을 입거나, 영적인 무장을 하고 살지 않으면..’
오히려 그 물질적 풍요 때문에, 더 망하게 된다.
▲성경은 ‘내일은 환란이 온다’는 세계관을 제시한다.
성경이 전반적으로 제시하는 ‘미래관’은
‘미래에는 환란이 온다’는 관점이다.
물론 미래로 나아갈수록, 하나님의 나라가 더 확장되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더 왕성해지는 면도 있지만, 실제로 역사는 그러해 왔다.
그 반대측면으로, 미래로 나아갈수록, 사탄의 나라도 점점 더 확장되어,
세상에 악은 더 많아지고, 그래서 미래에는 더 큰 환란이 온다는 것이다.
*과거 미국과 소련의 양극 냉전 체제를 연상하시면 쉽게 이해된다.
▲그래서 분명한 사실은, 어제보다 오늘, 내 믿음 지키기는 더욱 힘들어 졌다.
오늘보다 내일은, 내 믿음 지키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가면 갈수록 내 믿음 지키기는 더욱 힘들어지지..
더 쉬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 미래를 결코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도 베드로의 권면을 인상 깊게 받아들여서,
마음의 갑옷을 입고, 영적인 무장을 하고, 전시태세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점점 믿음 지키기가 힘든 시대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여러분, 그래서 저는 청소년들을 보면, 막 애가 탄다.
왜냐하면 25년 전에 제가 학교를 다니면서,
그 불신 분위기속에서 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제가 감당해내어야 했던 어려움,
또는 그 악함의 강도가,
그때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감당해내야 하는
그 악함의 강도가.. 하늘과 땅차이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교회들의 청소년들은,
과거에 우리가 가졌던 믿음 정도만 가지고서는..
절대 이 사회에서, 자기 믿음 지키면서 살아가기 어렵다.
지금 우리 교회의 청소년들이
학교와 사회에서 참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과거에 우리가 청소년 시절에 가졌던 믿음보다, 몇 배 더 강한 믿음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세상이 몇 배로 더 영적으로 악해 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 우리 어른들은,
20년, 30년 전에 내가 믿었던 그 신앙을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지금 청소년들은, 과거 우리의 청소년 시절 때보다
몇 배 더 강한 성령충만의 신앙이 요구되어진다.
안 그러고는.. 이 세상의 이렇게 강한 유혹에서.. 이겨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혈기왕성한 시절은 더 그렇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지금 이 세대 청소년~청년들의 믿음이,
과거에 우리가 청년시절에 가졌던 믿음보다.. 더 연약해졌을 수도 있다.
그러면 전멸된다.
그러므로 벧전4:1절처럼,
지금 우리가 재무장하고, 영적 전시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2.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벧전4:1
‘갑옷을 삼는’ 것은, 다른 말로 ‘고난 받으신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다. ↑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유혹과 싸우신 그 모습과..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신 그 마음과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다. 히5:7
내가 타인의 구원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심한 고난을 당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하여,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던.. 그 주님과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반드시 고난이 있다는 뜻도 된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수반되는 고난이 무엇인가?
-그것은 ‘죄의 유혹과 싸우는 고난’이다.
죄의 유혹이 너무나 거세게 밀려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고난을 받아야 한다.
고난 없이.. 그것을 이기기는 어렵다. 히12:4참조
당신은 ‘몸부림침’이 있으신가?
-그러면 당신은 진정한 크리스천이 맞다.
이때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게’ 해달라고 기도하여, 승리하시기 바란다.
당신은 ‘몸부림침’이 없으신가?
-그러면 당신은 잠자는 크리스천인 것이다.
몸부림침 없이, 죄를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3. 육체의 남은 때를 계산하시라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4:2
▲정욕을 따라서 사는 삶이 있다.
‘정욕’이란.. 물질욕, 명예욕, 육체의 정욕, 식욕 등을 뜻한다.
사람은 타락한 ‘육’을 갖고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본능적 욕망들이다.
본문은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과, 정욕을 따르는 삶이 대비된다.
거듭난 사람이, ‘정욕을 따르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당연히 있다. 성경에는 그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한다.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영혼이) 죽었느니라 딤전5: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3:1
진정 거듭난 사람은, 혹시 한 번 ‘정욕을 따르더라도’.. 즉시 돌이키고 회개한다.
하나님이 징계를 하셔서.. 그를 돌이키게 하신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무장하라’고 권고한다. 벧전4:1 arm yourself!
무장하고 전시태세로 살아야,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되기 때문이다.
무장하지 않으면..
거듭난 성도라도.. 자기 육체를 따라서 살기 십상이다. 그 결과는 영적 죽음이다.
▲육체의 남은 때를, 계산하며 사시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벧전4:2
‘육체의 남은 때’란
‘자기 개인적 종말까지의 때’란 뜻도 되지만
‘주님 재림까지의 때’도 된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구절 벧전4:7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와 그 시대 성도들은,
<자기 육체의 남은 때>도 계산하고 살았지만,
또한 <주님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늘 계산(생각)하며 살았다는 뜻이다.
당신이 ‘그리스도의 신부’인지/아닌지.. 한 가지 증명할 단서가 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사시는가? - 신부가 맞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오시든지/말든지.. 날을 세어보지 않는가? - 신부가 아니다.
과거에 한국에서, 중동에 일하러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있었고,
기다리지 않았던 아내가 있었다. 그 결말을 우리가 보았다.
남편을 기다리지 않았던 아내는, 자행자지하다가,
남편이 돌아왔을 때, 결국 망하고 말았다.
주를 향하여 이 (다시 오심)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3:3
재림까지 남은 때를,
육체의 정욕대로 살도록 자기를 내버려 두었다가는,
‘부끄러움을 당하는 다섯 처녀’가 될 것이다. 마25:11~12
▲체감 속도는 더 빠르다.
여러분 앞으로 20년 남으셨는가?
그 체감 속도는.. 마치 10년처럼, 아니 그 보다 더 짧게 느껴지실 것이다.
여러분이 사셨던, 과거 10년을 생각해 보시라. 체감속도는 마치 5년처럼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여러분 앞으로 사역할 시간이 10년 남으셨는가?
그 체감 속도는.. 마치 5년처럼, 아니 더 짧게 느껴지실 것이다.
이제 우리 각자가 “곧”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뜻이다.
남은 시간을 계산하며 살아야 한다.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벧전4:5
'분류 없음 > 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판 전에 부흥 온다 (0) | 2011.09.20 |
---|---|
예수님이 내 인생의 목적 (0) | 2011.09.19 |
3200 사랑할 줄 아는 종 (0) | 2011.09.17 |
참된 부흥은..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 (0) | 2011.09.16 |
방언의 역사적 의미 Charles Price (0) | 2011.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