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전에 부흥 온다 벧전4:3 인터넷설교참조, 편집
▲심판 전에 왜 부흥이 오는가 하면,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때문이다.
쉽게 예를 들어 말하면,
‘40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지리라’는 요나의 선포를 듣고,
온 니느웨 성의 12만 백성들이 다 금식하고, 회개했는데
그것이 바로 ‘심판 전에 부흥이 온 결과’ 였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니느웨 성의 백성들은, 용케도 붙잡았던 것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심판 전에 부흥이 오는데,
즉 하나님이 그를 감동하사,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데,
그것을 무시하면.. 심판이 필연적으로 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평소에 부흥(평소에 심령이 뜨겁고, 열심을 회복함)이 오는 것이 제일 좋고,
그렇지 않으면, 최후의 회개(부흥)할 기회를 주실 때, 돌이키는 것이 좋고,
제일 안 좋은 것은,
‘심판 전에 부흥을 주시는 데도, 그것을 무시하다가.. 끔찍한 징계를 당하는 것’이다.
막차를 놓쳐버린 셈이 된다.
◑‘부흥은.. 심판 대신 자비를 베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최후의 노력이다.’
라는 말이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1차 영적 대각성 운동>은 미국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했다.
당시 미국의 지역교회들은, 미국 독립운동의 모판이요, 모태였다.
에드워즈가 목사가 31세가 되던 1734년 겨울을 전후로 300명이 회심하고
200가구였던 노스 햄턴 주민 전체가 중생을 경험하는 부흥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파동은 점점 번져갔고, 조지 휫필드의 가세로 확장되어
1차대각성 운동(The Great Awakening, 1734~1744)으로 성장하여
미국 뉴잉글랜드 전역에서 5만 명이 회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1차 영적 대각성 운동, 1734~44>은
그 결과나 열매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남북전쟁 전에, <2차 영적 대각성 운동>이 있었다.
‘부흥은 심판 대신 자비를 베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최후의 노력이다.’
라는 관점에서 볼 때,
2차영적대각성운동은, 남북전쟁 전에
그 전쟁을 막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부흥이다.. 라고 볼 수도 있다. 주1)
남북전쟁(1861~1865)은 사망자만 약 50만에 달하는 비극적 전쟁이었다.
그렇게 전사자가 많았던 이유는, 나폴레옹식 진격 전법에 있었다고 한다. 그냥 서서 전진해 가는 것.
그 전에 찰스 피니(1792~1875)를 중심으로 한 <2차 영적 대각성 운동>이 있었는데,
그 부흥운동은 1834년에 시작되어,
길게는 그가 소천한 1875년까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부흥운동은 1834~35사이에 가장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다고 한다.)
어쨌든 결과를 놓고 보면,
피니의 부흥운동(2차대각성)은, 남북전쟁을 막지 못했고,
피니는 생전에 남북전쟁을 자기 눈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부흥은.. 심판 대신, 자비를 베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최후의 노력이다.’
라는 관점에서 볼 때,
남북전쟁 전에, 찰스 피니의 부흥운동이 있었지만,
그 부흥이 전역으로 확산되지 못했거나, 반대자들의 심한 반대로 좌절되었거나..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최후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것은 비슷한 시기에 웨슬리가, 영국에서 신앙부흥운동을 일으켜서
영국에서 유혈시민폭동을 막고, 평화롭게 근대 민주주의를 이룬 것과 비교된다.
이 내용을 개인적으로 적용하면, 아래와 같다... ↓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이제 그만큼 힘들게 살았으면 충분하지 않니?
위 본문의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를 풀이하면, 바로 그런 뜻이다.
‘네가 네 마음대로 음란, 정욕, 술취함, 방탕, 연락, 우상숭배를 하면서
이방인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아보니.. 과연 그게 행복하더니?
과연 거기에 참 행복이 있더니? 그만큼 힘들었으면, 충분하지 않니?
오히려 그 삶이 너무 힘들지 않더니? 그러므로 지나간 때가 족하다.
이제 다 정리하고, 내 품으로 돌아오너라! 이제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
-이렇게 인자하게 타이르시는 주님의 음성이다.
영어로 이런 표현이 있다.
When God says No, that means don't hurt yourself!
‘하나님께서 하지 마! 하실 때는, 더 이상 너 자신을 해치지 말아줘!’라는 뜻이다.
‘네가 네 자신을 해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못 봐 주겠다.
많이 했잖아? 이제 그만하자.
많이 힘들었잖아. 많이 괴로웠잖아?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이제 주님께 돌아와서, 새롭게 인생을 살아가자!’ 하는 뜻이다.
▲저는 아주 어려서,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며 성장했다.
그래서 친구들은 주로 일본인들인데,
그 중에 한 명 A는 목회자의 아들이었다.
한국에서도 목회자의 자녀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기 쉬운데,
일본에서 목회자의 자녀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래 저래 A는 많은 반항을 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내었다.
중1~고3 때까지 6년이나, 아버지(목사)께 반항하고, 교회에 반항하고,
하나님께 반항하면서 컸다.
A가 어느 날 교회에 왔는데, 보니까 머리를 온통 노랗게 물들여서 뒤로 넘겨서 나타났다.
마치 엘비스 프레슬리의 헤어스타일 같아 보였다.
밤이 되면, A는 오토바이를 타고 왱왱거리며 도로를 질주했다.
그의 등에는 일본 사무라이 긴 칼을 두르고 있었다.
본드를 얼마나 심하게 흡입했는지, 이빨이 다 뽑혀나갈 정도였다.
A는 반항의 끝에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살아보았더니, 무슨 큰 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도 자기를 버리신 것 같고, 하나님도 자기를 용서 안 하실 것 같았단다.
너무 오래 떠나 있었기에,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인 것 같았다고 한다.
오직 자살로, 모든 것을 다 잊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을, 자기 스스로 지기로 선택한 방식이.. 자살이었다.
그래서 A는, 혼자 인적이 없는 산속으로 올라갔다.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자기 손목을 자해했다.
점점 추워지고, 눈 앞이 캄캄해 지더라고 한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엄청난 서러움과 외로움이 자기 가슴에 찾아왔다.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이 놓치지 않고 A에게 찾아오셨다.
“므요꺄로?” (족하지 않느냐?)
‘이제 네 방황이 족하지 않느냐?
지금까지 내 품을 떠나, 너 자신을 해치며 산 것이 족하지 않느냐?
이제까지 네 마음대로 살아본 것이.. 그 허무함이.. 족하지 않느냐?’
이런 뜻이었다.
A는 그 순간 잠이 들었다고 한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나서보니, 출혈이 멈추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비틀거리며 산에서 내려와서,
‘지나간 때가 족한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는데,
지금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목회자로 섬기고 있다.
▲마치는 말
오늘 우리는 개인/공동체적으로 ‘족하지 않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만큼 자행자지 했으면 되었지 않느냐? 족하지 않느냐?’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벧전4:3
서두에 말씀드린 내용을 다시 말씀 드린다.
‘심판 전에 부흥이 오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감동하사,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인데,
그것을 무시하면.. 심판이 필연적으로 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평소에 부흥(평소에 심령이 뜨겁고, 열심을 회복함)이 오는 것이 제일 좋고,
그렇지 않으면, 최후의 회개(부흥)할 기회를 주실 때, 그때라도 돌이키는 것이 좋고,
제일 안 좋은 것은,
‘심판 전에 부흥을 주시는 데도, 그것을 무시하다가.. 끔찍한 징계를 당하는 것’이다.
막차를 놓쳐버린 셈이 되는 것이다...
(이 설교에도 ‘부흥과 심판은 같이 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
주1)
대개 부흥은 심판대신 자비를 베푸시기 위한 하나님의 최후의 노력이다.
미국이 경험한 (2차) 대각성은, 남북전쟁 직전에 찾아왔다
전쟁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주신 부흥이었다.
만약 이 부흥의 열기가 계속 되었다면,
미국 역사 최악의 유혈사태를 피함과 동시에
(평화롭게) 노예제도를 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정치적 열심당원이었던 노예제도 폐지론자들이
부흥을 정치운동으로 변질시키면서
미국의 미래가 (잘못) 결정되었고, 유혈사태가 불가피해졌다.
노예제도 폐지론자들은, 미국에서 가장 용감하고, 진리를 사랑하며,
자기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대부분 크리스천이었고, 동시에 진정한 애국자였다.
하지만 이들은 극단으로 치달았고, 조급함의 광풍에 휩쓸렸다.
목표(노예제도 폐지)는 숭고했지만, 그 수단이 잘못되었다.
그 결과 화해가 아닌, 전쟁으로 열기를 부추기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도 그럴 수 있다...
<교회사에 감춰진 예언> 릭 조이너, 예수전도단 출판사,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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