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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1

하나님을 즐거워하라 Rick Joyner

LNCK 2011. 10. 14. 19:43

◈하나님을 즐거워하라                    느8:10              릭 조이너, 출처

 

신앙이 경건한 성도일수록.. 늘 우울하지 않고.. 평소에 늘 활기찹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사는 훈련을 합시다.


우리는 분명히 매우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에 접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일부 하나님의 백성들이.. 웃으면서 죽을 만큼

그분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하나님을 즐거워하였고,

주님을 뵙고자 하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있었기 때문에

웃으면서 죽었다는 말이다.


나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고 있는 성도들 위에

큰 기쁨이 도래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이 기쁨이 하나님의 백성의 현저한 특징이 되었기에,

그들을 다른 세상 사람들과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느8:10에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말씀한다.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를 강건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안심시켜 드릴 것이다.


마지막 시대가, 인류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들은 모두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현시대를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온 세상이 언제 이렇게 엄청난 파멸의 위협에 놓였던 적이 있었던가? 

세상에 도래하는 것들로 인해, 우리가 언제 이렇게 두려워한 적이 있었던가? 

한 번 세상을 둘러보시라. 

거의 모든 문제는, 인간들의 해결 능력을 벗어나고 있다. 

인간의 지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만 같다.’


하지만, ‘위로부터 오는 지혜’로 사는 성도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한 번 살펴보면..


▶1. 의를 추구할 때, 평강과 기쁨이 온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평강희락(기쁨)이라.” 롬14:17


하나님 나라의 근본적인 특징은 기쁨이다. 

하지만 기쁨은 저절로 먼저 오는 것이 아니다.  

기쁨은.. 의로운 삶,

즉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 옳은 것을 행하며 사는 결과로 찾아온다.


이는 어떤 환경에 의해서도 빼앗길 수 없는 평강을 초래한다. 

이 평강은 다른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평강의 결과로 참된 기쁨이 초래된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매일 하나님의 편에서 옳은 일(의)을 행하면서

사랑 안에서 자라고,

또한 그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면서

그분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어야 한다.


▶2. 참된 기쁨은, 세상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16:11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들이 헌신해야 할 가장 기본이다.


우리가 기쁨을 누리기 위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다른 모든 것은

사실은 우리를 결코 기쁘게 못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참 기쁨과 만족을, 세상 것들이 결코 대신 충족시킬 수 없다.


우리가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문다면,

동굴조차도 가장 멋진 저택보다 더 찬란할 것이다.


우리에게 그분이 없다면, 가장 멋진 저택도

이 땅에 있는 지옥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며,

진실로 하나님을 구하는 자들이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한 자들이 될 것이다.


▶3.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통치가 온 세상에 가득하므로.. 기뻐한다.

 

시97:1~6절의 말씀을 묵상해 보자.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불이 그의 앞에서 나와 사방의 대적들을 불사르시는 도다.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도다. 


산들이 여호와의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밀랍같이 녹았도다.

하늘이 그의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의 영광을 보았도다.”  시97:1-6


우리는 어떻게 ‘모든 백성’이 그의 영광을 보았다고 말씀하는지.. 궁금할 수 있다. 

나는 엘리자베스 베렛 브라우닝(Elizabeth Barret Browning)이

이것을 아주 잘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이 땅은 하늘로 가득 차 있고,

모든 평범한 덤불은 하나님으로 불타고(afire  with God) 있다. 

오직 이것을 볼 수 있는 자만이 신발을  벗을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단지 그 주위에 앉아서 블랙베리를 딸 것이다.” 


이제 이해를 하시겠는가?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찾는 것을(looking for) 멈추고,

그분을 바라보기 (looking at)시작해야 한다.


그분은 모든 곳과 모든 상황 속에 거하신다. 이해가 되시는가? 

그렇다면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4.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형통함과) 기쁨을 주신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시106:1-5)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행해야 할 기본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그 일을 행한다면,

우리가 그분을 찾으면 만나리라는, 그분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5. 기쁨으로 안 섬기면, 포로 된다.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서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신28:47-48)


여기서 우리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포로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본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을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도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속으로는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입술에는 웃음을 머금는 거짓 즐거움이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행하라는,

즉 거짓이 없이 진실한 삶을 살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가 슬프거나 우울해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보는 대신에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환경을 보고 있다는 증거다.


어떤 우울증은 화학적 불균형이나 영적 공격에 의한 것이 될 수 있지만,

거의 모든 우울증은 자기중심성(self-centeredness)에 뿌리를 둔다. 


우리가 자신을 바라본다면 우울해질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기쁨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분을 바라보기 때문에 초래되는 기쁨이야말로 참된 기쁨이다.


▶6.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하면.. 힘이 생긴다.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주라.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느8:10)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위의 말씀을 들었을 때는, 냉혹한 상황아래에 있을 때였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마쳤지만, 여전히 적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고,

여러 면에서 매우 힘든 상황 속에 있었다. 우리 역시 힘든 상황을 겪을 수 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 세상에서 환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것들을 기쁨으로 통과하지 않으시는가!


▶7. 시험을 통해, 온전해지니까.. 힘들어도 기뻐하시라.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당신이 당하는 환난이 당신으로 하여금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한 것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는가?    


시련이 이러한 결과로 나아가는 통로다.

이것을 안다면 우리가 시련을 통과할 때에 왜 행복해하지 않는가? 


▶8. 내 힘과 능력으로 살지 않고, 성령으로 살면.. 은총, 은총의 기쁨이 넘친다.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슥4:5-7)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처럼 우리를 위한 모델이다.  

스룹바벨은 ‘바벨론에 심겨진’ 혹은 ‘혼동 속에 심겨진’이라는 의미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길로 나아가지 않았던 하나님의 백성을 속박하는 장소였고,

혼동은 오늘날 하나님의 길로 나아가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을 속박하는 개념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이 세상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혼동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사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 역시 우리 앞에 있는 산더미 같은 문제들을 보면서

“은총, 은총”이라고 선포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그러한 것들이 평지가 될 것이다.

 

       <신간  모닝스타 코리아 저널 27호 , “하나님을 즐거워하라” 중에서


..........................................


◈슬플 때, 신앙으로 극복하는 사람                      출처


▲슬플 때.. 사람은, 보통 다른 우상에게로 달려갑니다.

우리가 슬프고 우울하고 마음이 무겁고 혼란스러울 때

그러한 때에 우리는 누구에게로 달려갑니까?


내가 슬프고 우울할 때, 주님 말고 다른 데를 달려간다면 (여행, 취미, 쇼핑, 기타 우상)

그렇다면 우리가 그의 나라를 더 좋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1. 한나


▲슬플 때, 주님 앞으로 나온 여인

한나는 매일 매일 주 앞에 나아왔던 한 여성입니다.

그녀는 비탄에 잠겨 눈물 흘리며 상한 마음으로 나아왔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사무엘상 1:10).


한나의 남편에게는 한나 외에 또 다른 아내 브닌나가 있었는데

그녀는 여러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었으므로

브닌나는 이것으로 밤낮 한나를 괴롭게 했습니다.


성경은, 이 여인이 한나를 "격동케"(6절) 했고 번민케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 한나는 그녀 남편의 사랑을 깊이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그녀를 안심 시킬 수 없었고 슬픔을 가라앉힐 수도 없었습니다.


남편은 그녀에게 말합니다.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8절)


그러나 한나는 깊은 비탄에 잠겨 눈물 흘리고 슬퍼하며, 성소 제단 앞에 섰습니다.


그녀는 제사장 엘리에게 대답했습니다.

"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나는 ...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쏟아 부은 것뿐이오니 ...

내가 지금까지 기도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기 때문입니다." (삼상1:15-16)


한나는, 자기 슬픔을 안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오늘날 많은 믿는 사람들은

슬프고 우울하고, 눈물 흘리고, 상하고 시련을 겪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분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행복하고 즐거울 때까지 그의 앞에 나아가는 것을 기다리겠어요."


우리는 손뼉 치고 찬양하고 즐거운 예배를 드리며

여호와 앞에 나아가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의 이러한 답변은

우리가 슬플 때조차 그에게 나아가야 함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다시는 슬픈 기색이 없으니라.  

그리고 한나는, 여호와께 깊은 기도를 드림으로서

그로부터 마음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삼상1:18).


이것을 두고서.. 보통은 ‘기도 응답’이라고 말합니다.

아직 현실로 이루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루어진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한나의 마음속에 있던 ‘근심과 고통’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실제로 아들 사무엘을 낳은 것은,

그 후로부터 적어도 1년이 지나서였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벌써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1) 먹었습니다.

2) 다시는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삼상1:18).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근심되는 문제를 놓고, 간절히 기도한 후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면..

1) 먹게 됩니다.  마음이 편해졌고, 식욕 즉 삶의 의욕이 다시 생겼다는 말입니다.

2) 다시는 얼굴에 근심하는 기색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슬플 때, 종종 주께로부터 멀리 벗어나려고 합니다.

최근에 나는 설명할 수 없이 슬픈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가 없었습니다.


내가 뚜렷이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날 아침 ‘오늘 저녁때까지 기다리겠어. 그때는 괜찮아 질 테니까.

그때는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기도하기를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나로 하여금 즉시 느헤미야를 펴게 하셨습니다.



◑2. 느헤미야


느2장을 읽을 때, 나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어떤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장은 무겁고 답답한 마음으로 주 앞에 나오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을

격려하는 내용으로 담겨져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었습니다.

그는 친척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이 훼파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곤경에 처해 있으며

고국의 형편이 매일 매일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사랑했으므로 슬픔과 비통에 잠겼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20년에 니산 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 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느2:1-2).


여러분은 일반 백성들이 수색에 잠겨 왕 앞에 나아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특히 궁정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랬습니다.


느헤미야는 그것이, 자기가 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왕은 느헤미야가 수색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수색(근심)에 잠긴 느헤미야를, 고국에 보내주었으며

또한 그에게 왕실의 보고를 열어 재정도 지원해주고, 조서도 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했던 소원을

왕에게서 인가 받았습니다.


내가 말하려는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슬프고 어두운 안색을 한 채 이교도의 왕 앞에 나아가서,

상상을 뛰어넘는 호의, 동정심 그리고 축복을 구하고.. 받았는데.. 

 

그렇다면

우리의 왕 되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짐을 벗겨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면서

슬픔가운데 있는 그의 자녀들을 얼마나 측은히 여기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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