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질투, 열심 출34:14 사9:7 11.09.18.설교녹취, 정리
출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for the LORD, whose name is Jealous, is a jealous God
◑'질투'와 '열심'은 같은 단어
▶1. 히브리어 ‘카나’는 한 단어인데,
한글에 ‘질투’와 ‘열심’으로 다르게 번역되었다.
영어성경도 마찬가지로 ‘jealousy(질투)’ 와 ‘zeal(열심)’로 다른 두 단어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 똑같은 단어요, 똑같은 뜻이다.
‘질투’는.. 그의 마음속에 ‘열심’이 있다는 뜻이다.
성경에 ‘하나님의 질투’가 나오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질투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열심’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하나님의 질투’가 나오면,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해해야 하고,
또한 ‘하나님의 열심’이 나오면, ‘하나님의 질투’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질투’로 번역한 구절 jealousy | 하나님의 ‘열심’으로 번역한 구절 zeal |
출20:5, (십계명 2계명 후)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
사9:7 (메시야 탄생 예언 후에)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출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니라. |
사37:32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이스라엘의 구원)를 이루시리이다 |
민25:11,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했다. |
사63:15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의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긍휼이 내게 그쳤나이다 |
신32: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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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
|
※아래는 인간이 사용한 ‘질투/열심’ (↔하나님) *카나 (인간의 질투/열심은 거의 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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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73:3 *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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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이 요셉을 질투했다. 창37:11 | |
*라헬이 레아를 질투했다. 창30:1 | *삼하21:2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어서 기브온 사람을 죽임 |
*http://www.blueletterbible.org/lang/lexicon/lexicon.cfm?Strongs=H7068&t=KJ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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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에서도, 히브리어/헬라어 시간에, 아예 위 사이트 활용하는 법을 가르쳐주면,
원어 공부하는 수고를 1/50으로 줄이면서도, 매우 쉽게 원어를 활용할 수 있음. 단 영어가 약간 되어야 함.
▶2. 하나님의 이름은 ‘질투’
출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for the LORD, whose name is Jealous, is a jealous God
하나님의 이름이 많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 샬롬, 여호와 라파 등
그 하나님 이름 중의 하나가 ‘질투’이다. ‘질투라 이름하는’ ↑
하나님의 이름이 ‘질투’이다.
그래서 영어성경에, '질투'란 말을 대문자 J로 쓰고 있다. ↑ 출34:14
▶3. 하나님의 성품도.. ‘질투’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리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름이 ‘질투’일뿐만 아니라, 성품도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즉 열심내시는 하나님이시다.
‘질투’는 하나님의 성품 중 가장 중요한 성품 중 하나이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이시듯이
동시에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구약의 모든 율법을 가장 압축하면 십계명인데,
그 십계명의 처음 두 계명이, ‘질투의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출20:3~5
‘질투’는 그만큼 하나님의 우선적이면서, 중요한 성품이란 뜻이다.
▶4. 질투는.. 곧 열심이다.
그럼, 하나님의 질투에서, 그 질투란 말은 무슨 뜻인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질투’는 인간적인 질투와는 다르다.
인간적인 시기와 질투는.. 죄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의 그림자도 없는데,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분이란 말은
이것은 인간적인 시기와 질투(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면 하나님의 질투는 무엇인가?
<하나님께 속한 소중한 것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여러 곳에서
질투jealousy라는 말 대신에, 열심 zeal이라는 말을 대체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질투가, 바로 하나님의 열심을 가리키기 때문에 그렇다.
▶1.에서 서론적으로 이미 자세히 설명 드렸다.
▶5. 하나님의 질투는 심히 크시다. ←주제
하나님의 질투는, 얼마나 크냐 하면, 하나님만큼 크다.
사실 그것이 우리에게 소망이 된다.
하나님의 질투가 얼마나 큰가 하면, 사9:6~7에 나타나 있다.
사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위에서 열심은, 질투라는 뜻이다. *카나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이 예언을 주실 때
그 당시 예언을 들은,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예언을 받아서 전한 이사야마저도,
앞으로 인간으로 태어나실 메시야가.. 하나님 자신이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구절을 다른 방면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으로 오실 수 있다는 것인가?
정말 천지개벽이 백번 일어나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은.. 바로 하나님의 질투/열심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기 위해서
엄청난 역사를, 능력을 행하셨는데,
그 엄청난 능력들도 이 사건(성육신)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아무 것도 아니다.
그 엄청난 일은.. 하나님의 열심/질투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질투 때문에 징계를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질투 때문에.. 구원 받는다. 너무 감사하다.
◑적용
▶1. 저는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되
점 없고, 흠 없는 거룩한 교회로 세우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주셨다고 성경에 나온다.
또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주님 앞에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권면한다. 벧후3:14
그러한 하나님의 의도하신 교회(성도)로 회복되어지는 것
그래서 주님이 오실 때, 들림 받을 주의 거룩한 신부로 회복되어지는 것은
우리 인간의 관점으로는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오늘날의 우리 교회의 현실을 보면,
이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 변모할 것이라는 것은,
인간적 관점으로는 완벽하게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질투/열심을 가지고.. 이루실 것이다.
또한 실제로 지금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환경을 보면, 굉장히 절망적이지만
우리가 항상 낙관적으로 미래를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그것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2. 회복과 부흥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성도는
종종 하나님의 질투의 심정을 가지고서야.. 중보기도 하게 된다.
그 마음이 들어야, 중보기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질투는, 중보기도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윗, 바울, 모세,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분들 속에 하나님의 질투가 있었고, 그들은 하나님의 질투를 갖고서 중보기도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투는, 중보기도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 전체를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의 부흥을 기다리고,
부흥을 위해 기도하며, 부흥을 갈망하는 이런 시점에서,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회복시키기 원하시는데,
이 놀라운 일들을 위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질투를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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