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Ykx6BDpSCP4
◈메시아 대망 신앙의 허점 마2:1~12 인터넷설교스크랩, 편집
*대망 : 간절히 기다림
▲도입 예화/ 안 되는 요인이, 바로 내 속에 있다.
알베르 카뮈의 <오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체코의 한 깊은 산속에 마르타라는 처녀가
어머니와 둘이 살면서 여관을 경영합니다.
이 두 모녀에게는 꿈이 있어요.
바다와 태양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이 마르타가 남쪽, 지중해 연안으로 가서,
그 아름다운 바다와 태양을 그리기를 원해, 그 곳에 이사하는 것이 이들의 꿈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겐, 이사하는 꿈과 함께, 참으로 강렬한 기대가 있어요.
뭐냐 하면, 20년 전에 집을 나간 오빠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기대와 꿈에 힘입어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사는 이들 모녀는,
돈을 모으기 위해서, 참으로 악의에 찬 계획을 세웁니다.
여관에 들어오는 투숙객 중에서 부유해 보이는 손님들에게
수면제를 먹여서 금품을 갈취하고, 그들을 강물에 버려서 죽입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참으로 부유하게 보이는 한 남자가 찾아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까 성공해서 귀향길에 있던 사람이에요,
이 사람에게 여지없이 수면제를 먹이고, 금품을 빼앗고, 강물에 던져 죽입니다.
그런데 빼앗은 그의 금품을 정리하면서 그의 신분증을 보니까,
그가 바로 20년 동안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아들이고 오빠라는 사실을 알고,
이 두 모녀가.. 망연자실해서.. 자살한다는 내용의 소설 입니다.
알베르 카뮈는, 이 소설에서, 인간의 부조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행복을 위해, 뭔가 강렬하게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 기대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내 속에 있다는..
그 부조리를 드러내는 것이에요, 알베르 카뮈가.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기대합니다, 행복을 열망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행복할 수 없는 이유를, 자기 스스로 자기 속에 담고 있는 것이에요.
이게 바로 인간이 실존적으로 처해있는 부조리의 상황이라는 겁니다.
얼마나 부자 되고,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런데 전혀 부자, 성공할 수 없게 하는 요인이 내 속에 있는 것이에요.
(이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니고..)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모두가,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면서도,
가짜 믿음의 사람이 되는 이유를.. 우리 스스로 자기 속에 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동방박사 등장의 미스터리
▲1. 어떻게 동방박사들이, 그렇게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요?
동방박사는 알려진 대로 천문학자(점성가)들입니다.
하늘의 별을 연구하는 자들입니다. 그 천체의 움직임에서
이 땅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의 의미를 찾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이역만리를 찾아와서
마구간 구유에 뉘이신 예수그리스도 메시아에게 경배를 하는
최초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까?
왜 메시야를 고대하던 이스라엘 선민들은 다 무관심하고,
어쩌면 아무 상관도 없는 이방인들이, 그 먼 길을 몇 달을 걸려서 찾아 왔을까요?
그리고 실제로 유대의 왕이신 메시아 그리스도께 가서 경배한 자들은
이 동방박사 밖에 없습니다. 목자들을 제외하면..
왜 가까이 있던, 같은 혈통인 유대인들은, 경배하지 못 했을까요?
▲2. 어떻게 유대인들이, 그렇게 무관심했던 것일까요?
동방박사가 바벨론이 있던 지역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찾아와서
‘유대의 왕으로 나신 이’을 찾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온 예루살렘이 다 발칵 뒤집혀집니다.
헤롯왕은, 유대의 왕이 태어났다는 얘기를 듣고, 기절초풍을 하게 됩니다.
헤롯왕이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제사장과 모든 서기관들을 다 불러서
유대 왕에 대해 묻습니다. ‘어디서 태어나느냐?’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믹5:1~2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율법사 이런 사람들은,
구약성경의 율법과 예언에 통달한 자들입니다, 도통한 자들입니다.
그때는 책이 아주 귀했을 때였고, 사람들은 보통 성경을 외워서 사용했습니다.
그 구약성경이 메시아를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래서 '중간기' 430동안에 특히 메시아를 강렬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라기~신약 사이
그런데 정작 진짜 메시아가 이 땅에 태어났을 때,
아무도 그 메시아를 맞이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마치 이것은, 알베르 카뮈의 <오해>라는 작품과 마찬가지로,
모녀가 20년 동안 기다리던 아들을, 어머니 손으로 죽여 버린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런 실패의 요인이, 유대인 자기들의 내부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가 지적하는 메시아 신앙의 허점
▲마태가 이러한 자료들을 갖고서, 마태복음을 쓸 때는,
이미 마태는.. 예수님의 십자가/부활/승천을 다 경험한 뒤입니다.
그런데 왜 마태는, 동방박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마태복음을 기록한 것일까요?
다른 복음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동방박사 이야기를, 마태가 쓰게 된 이유가 뭡니까?
(마태는, 지금 참담한 자기 심정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메시아 도래의 예언을 아주 달달 외우고 있는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왜 메시아를 맞이하지 못했을까요?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메시아 대망 신앙’에 허점이 있었다는 것을..
마태복음의 서두부터 밝히는 것입니다.
그게 뭘까요? 여러분!
이 설교를 드리는 이유는,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문제와 똑같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신자들이, 겉으로는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믿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그저 ‘자기의 소원이나 들어주는 전능한 신’ 정도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이용하는 것이며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2천 년 전에, 유대인들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신 것을 보고도.. 아무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원했던 메시야(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본론
▲1. 동방박사.. 하늘을 쳐다보고 살았습니다.
동방박사가 이방인이고, 이역만리 떨어진 타지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불원천리하고 유대로 와서, 아기예수께 경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또한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신 이유는,
이들은 하루 종일 오직 하늘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 하늘이 ‘천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동방박사들은, 이 땅의 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늘을 관측하는 자들이었고, 하루 종일 마음이 하늘에 가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마태가 이들을 등장시킨, 그 상징적 의미로 볼 때, 그렇습니다.
‘마음이 하늘에 가있는 자들’이라야만,
메시아를 메시아로서 맞이할 수 있고
메시아를 정면으로 맞닥뜨려서 그 분께 경배드릴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마태복음은 지금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거예요.
▲2. 반대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땅만 쳐다보고 살았습니다.
메시아를 강렬하게 기대했습니다. 동방박사는 비교도 안될 만큼…
동방박사가 메시아를 기대했겠습니까?
아니에요, 메시아라는 인격을 기대한 게 아니에요, 그들은 하늘을 관측한 것이지.
땅에서 마음이 떠나있던 자들인 것뿐이지요.
그런데 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메시아라는 인격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허점은,
바로 이 땅에서의 메시아를 기대한 것이에요.
메시아가 오시면..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이루어 주실 것이고,
다윗시대의 태평성대를 이 땅에 팔레스틴 땅에 이루어 줄 거라고 믿었고,
그들의 마음의 시선은, 땅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온통 관심이 땅(세상)과 현실에 집중되어서
이 땅을 해결해 줄 메시아를 기대했고,
그리고 그 기대에 못 미치자,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립니다.
20년 동안 집을 나간 아들을, 오빠를 기다리던 마르타 모녀가
성공해서 돌아온 오빠를 못 알아보고, 그를 죽여서 강물에 버리듯이
1500년 동안 예언되고 강렬하게 기다리던 그 메시아를
이들은 십자가에 죽여 버리고 맙니다.
왜요?
메시아를 통해서 땅/현실/세상을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메시아를 못 받아들이고, 못 알아보고, 죽여 버리고 맙니다.
▲3. 오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오늘날 우리의 그리스도 신앙의 허점이, 똑같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고대합니다.
그리스도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내 삶의 현실/현장/세상 여건 가운데서..입니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그리스도와 적대관계에 서게 될 수도 있습니다, 헤롯왕처럼.
왜 헤롯왕이 메시아를 죽이려 합니까?
모든 ‘왕’들은 메시아를 죽이려 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제사장도 서기관도 다 ‘왕’들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왕인가 하면,
내 현실의 삶의 문제에 대해서, 내가 해답을 내린다는 점에서
내가 왕인 자들이에요, 다 내가 왕인 자들입니다.
내 삶에 주인이 ‘나’입니다. 주님도 ‘나’(王)를 위해, 뭔가를 해 주셔야 되는 분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동적으로 그리스도를 내 중심에서 밀쳐 냅니다. 위에서는 ‘죽인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돈 문제를 예를 들면
내가 ‘이 상황에는 돈이 있어야 해결된다’라는 답을 내고 있습니다.
이게 왕입니다, 왕이에요.
이렇게 왕이면서 그리스도를 찾고 있는 동안,
오신 그리스도를 죽이는(밀쳐내는) 입장에 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분을 통해서 이 땅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욕심 뿐입니다.
그 이외에는 아무 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참 그리스도를 죽이는 자들이라 이겁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그리스도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땅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차적 목적이 아닙니다.
땅/현실을 해결하러 오신 분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이 땅으로부터 나를 끄집어내시려는(자유케 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마음이 벗어나서 하늘에 다가 있던 동방박사들이
인류최초로 그리스도께 와서 경배를 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3:1~2
▲오늘 내 현실이 ‘마구간’ 같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마구간에 준하는 그런 현실을 내게 주셨다면, 왜 그랬을까요?
아마 그 현실이 아니면,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맞이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래야 동방박사들처럼, 하늘을 쳐다보지,
아니면.. 계속 땅의 것에 더 집착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원래 있는 사람이, 땅의 것에 더 집착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내 현실은 마구간 같을 수도 있습니다만, 꼭 물질적인 ‘마구간’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마구간에 비로소 오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아래 부분, 다른 설교 녹취.........................
▲오늘날 우리가 모이는 무슨 ‘대회’ .. 이거 예수님을 밀쳐 낼 수 있습니다.
그 모임의 주류가..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성공하고, 고지를 점령하고, 많이 가져서, 세상적 힘을 축적한 후에,
그 힘으로 내가 하나님을 섬기고, 선교사업을 하겠다.. 이런 분위기로 흘러간다면..
그건 (비판적으로 보면) '자기 중심적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 받으신 예수, 십자가 지신 예수, 아기로 오신 예수를 밀쳐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는 아무 관심이 없고,
나를 축복주고, 성공시켜주고, 로마에서 독립시켜줄 메시아를 원하는 자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비판적으로 보면 주류가 아직 그렇습니다.)
그때 차라리 예수님은,
동방박사를 불러서 경배를 받으실 것입니다.
자기 백성이, 아무도 자기를 경배하지 않으니까요.
▲너무 local church만 생각하지 마시고, universal church(보편적/우주적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할 때 ‘(나는)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가 나옵니다.
여기서 ‘거룩한 공회’란 무엇인가요?
-영어로 the holy universal church 라는 뜻입니다.
전 세계의 교회가 한 몸, 하나라는 뜻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련글 / 보편적 크리스천
원래 ‘교회’의 DNA는 유니버설 한 것입니다.
local church도 현실에서 중요하지만, universal church 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시공의 한계 때문에, 현실적으로 지역교회에 속해 있지만,
우리가 신앙고백하는 교회는, 어떤 지역교회이기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피값을 주고 사시고, 그가 친히 그 교회의 머리가 되신,
우주적인 교회를 고백하는 것이며, 그것을 함께 지향하는 것입니다.
선교를 통해,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활동은,
'나는 우주적인 교회를 믿습니다.'
특히, 선교는 이런 마인드가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성도 개인이, 자기중심적 사고를 내려놓아야.. 그리스도가 보이고
(안 그러면, 못 박고 맙니다. 중심에서 제외시켜 버리고, 중심의 보좌에 자지가 앉습니다.)
목회자가, 개교회 local church 중심적 사고를 내려놓아야.. 메시아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2천년 전 당시의 서기관, 율법사들과 똑같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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