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전 재건의 열망, 질투 고후11:2~4 11.10.02.설교녹취 40'~끝
※앞선 하나님의 질투, 열심, 하나님은 교회를 ‘질투’ 하신다에 계속 이어지는 설교문
◑하나님은 자신이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에 대해 ‘질투’하신다.
▲목회자이든지, 일반 성도이든지, 그가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면,
비방을 통해서든지, 자기 목적을 위해 교회를 이용하는 것이든지,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올바른 말씀을 전하지 않는 것이든지,
자기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 사람들을 당을 지어, 분리를 가져오는 것이든지..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서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를 질투하시기 때문에,
특별히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교회의 참된 모습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일어나셔서, 분노하신다.
내가 ‘하나님의 질투’를 업신여기고,
그 질투하심을 소홀히 여기며, 내 자아를 따라서 자행자지하면,
하나님의 질투가 나를 대적하신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그의 영이 먼저 죽어간다.
그 상태로 자기 영이 절대로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성전 건물’은 상징이요, 모형.. 원형은 ‘성도 가운데’
▲구약의 성막, 성전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집으로 의도하지 않았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놓고 봉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하6:18,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즉, 성전 건물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지..
하나님이 붙박이로 거주하시는 집은 아니란 뜻이다.
그래서 사66:1에 보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사66:1
그러니까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은,
성막/성전에 집 짓고, 거기 사실 계획이 애당초 없으셨다.
그럼 하나님은 어디에 사시기 원하셨나?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기 원하셨다.
▲출애굽 백성들을.. 주의 처소(거하시는 곳)로 삼으시다.
그래서 출15:17~18에 보면,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위 구절에 나오는 ‘처소’, ‘성소’가.. 나중에 ‘성막’이 되는데..
(위 시점은 홍해 도강 직후 아직 성막이 만들어지지 않은 시점)
성막은.. 하나님 임재의 모형, 또는 가시적 건물이고,
하나님의 거하시는 곳의 원형은.. ‘백성들 가운데’였다.
하나님은 그걸 원하셔서,
그들을 출애굽 시키셨고, 홍해를 건너게 하셨다는 것이다.
아래 구절도 그런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시114:1~2,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거하시는 처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左同)가 되었도다.
하나님은 애당초 처음부터 어디에 성전 삼고 거하기 원하셨나 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성전 삼고 거하기 원하셨다.
그것의 모형, 상징, 가시적 형태가.. 구약의 성막(성전)이었다.
그 성막은,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있었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쉐키나의 영광이) 계셨다.
그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3지파씩 주위에 배치되었다. 주1)
하나님은 친히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며, 그 가운데 두루 행하시며,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은 그들을 치료하시고, 인도하시고, 앞서 가시기 원하시는..
성막은.. 그런 하나님의 의중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구약의 모형이, 신약에 원형으로 드러났는데.. 바로 <교회>였다.
이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으며,
그래서 우리 죄를 대속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실 수 있게 되신 것이다.
그 일은, 성령이 우리에게 오심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성령의 모습으로, 우리 속에 내주하시게 된 것이다.
오늘날 개신교회는
몇 가지 교리적 지식만에 너무 올인하고 있다.
‘대속의 교리, 믿음의 교리’ - 성도들이 이것 하나만 붙들고 있다.
(이것도 극단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요, 성도는 하나님과 연합, 동행한다>는
그래서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라는 중요한 핵심을
완전히 덮어놓고 있다.
‘대속 대신 값을 치름과 믿음’ .. 이것을 머리로/지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과연 그가 구원 받을까?
오늘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없으면.. 그는 하나님께 멀어진/떨어진 자이다.
▲회막을 만드신 목적도, 하나님이 그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기 원함이었다.
출29:42~46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내가 그 회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위 구절은 신약 성경에 그대로 인용된다.
고후6:16~17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성소)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지금 ‘하나님이 그 백성들 가운데 거하기 원하신다’는 주제를 살피는 중인데,
그것은 구약부터~신약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는 하나님의 의도요, 목적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영광으로 임하시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백성들 가운데 거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을 거룩하게 하기 원하신다. 출29:44
-하나님은 백성들 가운데 운행하기 원하신다. 그들을 만나시기 원하신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기 원하신다. 말씀으로 지도하기 원하신다.
오늘 이런 하나님의 임재가,
오늘날 우리 각자/공동체의 성전 속에 나타나고 있는가?
◑교회를 회복시키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질투
▲하나님이 시온을 향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셨다.
성막과 성전은,
단순히 구약시대에 제사지내는 형식적 장소를 넘어서,
신약시대의 교회의 그림자였다.
하나님은 오늘도, 교회를 질투하시고,
교회가 회복되고 다시 세워지기를 원하시고,
그 열심으로, 오늘도 그 일을 주도해 나가신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이 영광의 임재로 머물러 계시면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를 주님께로 이끌어 주시고,
우리 가운데 죄악들이 보이게 하셔서..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시고,
우리의 세상적 가치관들을 내려놓게 하시고,
주님이 우리를 빚어 가시고,
우리의 길을 지도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앞 길을 보이시고,
개인과 교회의 가는 길을 인도하시면서
열방과 민족들이.. 교회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서,
하나님께 돌아오기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열망이다.
이 일이 되어지기 위해서, 오늘도 하나님은 크게 분노하심으로 질투하신다. 슥8:2
그 하나님의 질투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가 더욱 온전한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전이 되도록 역사하신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는.. 이 사실이 ‘교리’로만 남아있다.)
▲하나님의 질투를 가졌던 바울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질투 Jealous)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바울은, 하나님의 질투를 가졌던 사람이었다.
바울은,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이 가졌던 질투를.. 똑같이 가졌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 하려 한다.
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이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고후10~13장에, ‘당시 거짓선지자, 거짓사도’에 대해, 바울이 언급하고 있다.
그들 거짓선지자/사도들의 특징은 ‘자기 영적인 체험을 많이 자랑’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광명한 천사처럼 자기를 과장’하는데, 고후11:14
누구든지 자기 스스로 자기를 자랑하며/높이며/널리 홍보하는 사람은..
그러면서 헌금을 수거하는 사람은.. 거짓사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들은 자신을 ‘슈퍼 사도’로 과장했다. *super apostles
고후11:5에 보면, ‘나 바울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는데
NIV성경은 “super-apostles”라고 번역했다.
영어성경에 따옴표 " "가 붙어 있다.
그들이 자기 스스로를 "슈퍼 사도"로 불렀다는.. 그 말을, 성경이 그대로 인용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실제로 고린도교인들이,
그들을 ‘슈퍼사도’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 ‘슈퍼사도’들은
성도들을 자기 종을 삼고, 자기편에 줄 세우고, 자기 유익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의 열심(질투)’로 분노하면서,
고린도 성도들을, ‘슈퍼사도’가 아닌 그리스도께 중매하려 했다.
우리가 지금, 바울처럼, ‘하나님의 질투(열심)’으로 일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하나님의 질투(열심)’가 우리에게 일하시게 될 것이다. 징계를 받는다는 뜻
................
주1)
그런데 ‘금송아지 숭배 사건’으로 하나님이 진노하셨을 때
모세는 일정기간 진 바깥에 <회막 tent of meeting>을 지었던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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