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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0 귀신보다 예수님이 더 위험하다!?

LNCK 2011. 11. 7. 10:40

◈귀신보다 예수님이 더 위험하다!?       마8:28~34           출처보기


※⁉표가 같이 나오는 이유는, 감탄(와, 맞다)

  의문이 동시에 있다는 뜻입니다. (정말 그런가?)

 


▲1. ‘귀신보다 예수님이 더 위험하다’ .. 과연 그런 말이 성립될 수 있는가요?

예수님은 우리가 다 아는 대로 구세주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귀신보다 더 위험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귀신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병이 걸리거나, 사업이 안 되면

귀신이 가져다주는 화가 끼고, 마가 끼었다면서

부적을 써서라도 귀신을 집안에서, 사업장에서 쫓아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우리의 성품은 굉장히 귀신 친화적입니다.

그래서 귀신의 도움을 받아서, 편하게 살겠다는 마음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들린 두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시면서

귀신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서, 2천마리 돼지떼가 물에 빠져 몰사한 사건입니다.

그러자 그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보고 떠나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지방 사람들은, 귀신보다도 예수님을 훨씬 더 위험한 인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0


귀신들린 자들은 난폭하고 무섭고 흉악했습니다.

(막5장에는 이런 사실이 더 상세하게 나오는데, 자기를 묶은 쇠사슬도 끊는다고 합니다.)


‘멀리서’.. 라는 말에 주목해 봅니다.

귀신들린 자가.. 광폭하고 무섭지마는

동네 사람들은, 그들을 멀리 두고 그냥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귀신은.. 거리만 조금 멀리 두기만 하면.. 위험하지 않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는, 온 동네 주민이 다 일치단합해서 요청합니다. 

‘이 지방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는 안되겠습니다. 아예 완전히 떠나주세요!’


예수님을 귀신보다 더 위험한 분으로 느낍니다.

그래서 이 지방에서 아예 떨어져 나가달라는 얘깁니다.


귀신들려 광포하고 난폭한 자는

거리를 멀리 두기만 하면 함께 공존할 수 있겠는데,


그 광포하게 무서운 사람을,

마가복음에는 자기 몸을 자해하고 쇠사슬로도 제어가 안 되는 그 광폭한 자들을

얌전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을.. 그들은 위험한 인물로 보는 겁니다.


그 무시무시하게 ‘군대귀신’이 들렸던 자들을 얌전하게 만드셨는데,  막5:9

귀신이 나가게 만드셨는데.. 오히려 예수님을 떠나달라고 얘기합니다.

자기들의 지방에서, 삶의 현장에서.. 아예 떠나달라고 얘기합니다.


▲2. 도대체 왜 이 가다라 지방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귀신보다 더 위험합니까?

예수님 때문에, 돼지 떼가 몰살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바로 예수님을 위험인물로 보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가다라’ 지방은.. 큰 도시가 아닙니다.

그런 조그마한 마을에 2천마리 돼지 떼란 엄청난 재산이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하여간 이 2천마리의 돼지 떼가, 그들의 생활 기반이었어요.

아마 근처의 로마 군대에 군납을 했을 것입니다.


귀신보다 더 위험한 인물로 보는 겁니다.

귀신은 멀리 떨어뜨려 놓으면 살 수 있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생활, 우리의 경제적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이 지방에서

나가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위험인물로 쳐버리는 겁니다.


왜요? 생활안정을 위한 기반을 뺏어가셨으니까요.

(여러분, 돼지 2천마리.. 계산해 보세요. 큰 사업입니다.)


그럼 주님은 왜 구태여 그런 식으로 귀신을 쫓아내십니까?

아니 그렇게 아니라도 많이 쫓아 내셨잖아요?

꼭 돼지 떼를 피해 입히지 않고, 그냥 쫓아내시면 됩니다.


그것도 돼지 떼로 들어가겠다는 것은.. 귀신이 원하는 거였어요.

귀신의 원하는 말을, 다 들어줄 필요 없잖아요.


왜 귀신이 원하는 대로 하시고,

동네사람들에게는 생활에 기반이 되는, 돼지 떼 재산을 다 없애 버리십니까?


오히려 예수님께서 돼지에게 안수해 주셔서

돼지가 새끼를 10마리 낳던 것들이, 20마리씩 낳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야 전도의 효과가 나타나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 되잖아요!


근데 왜 생활기반 자체를 없애버리십니까?

두 사람 건져내겠다고?

아니에요, 온 동네사람들을 다 건져내겠다고 돼지 떼를 없애신 겁니다.


이 장면만 보면, 예수님처럼 위험하신 분이 세상천지에 없습니다.

어쩌면 귀신보다 더 위험하십니다.

 

지금 마태복음의 전체진행이 어떻게 흘러갑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구축하고 싶고 원하고 이루고 싶은 것들을

‘구하라 주실 것이요’ 하면서.. 다 주시는 예수님이십니까?

     아니에요, 오히려 쪽박 깨시는 예수님이십니다. ☞ 동냥 쪽박이 깨져야 참 제자

 

우리의 가족관계 위에, 하늘의 은혜가 무조건 부어지도록 만드시는 분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관계 자체가 깨져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새로운 관계로 새로 태어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기존의 가족관계조차도 깨버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귀신보다 훨씬 더 위험하신 분이세요.

여러분이 원하는 이 땅 위에서의 생활 기반을 다..

돼지 떼 몰살시키듯이 몰살시켜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입장이 그런 거예요.

왜요? 우리 마음을 건져서, 하늘나라로 올려야 되니까요.

 

우리 인간 본성은, 원래가 기복주의라서, 성경을 나도 모르게 기복주의적 관점에서 보게 되지만..

지금 마태복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인간 본성에 반하는 <천국 복음>을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천국을 받아들이고, 생활하며, 가게 되려면.. '세상의 우상을 먼저 버리라!'는 것입니다.

 

▲3.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나타납니다.

실제로 돼지 떼와 같은 나의 사업과 직업

나의 모든 이 땅에서 안정된 삶을 위해 구축하는 이 토대들을

먼저 다 제거하셔야 돼요.


그러나 완전히 회개하고, 우상을 버리고, 깨어지고 나서,

오직 예수님만 나의 주님으로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을 때,

‘돼지 떼와 같은 나의 사업과 직업’은.. 새롭게 세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십자가에서 내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너무 우리가 아파하고 너무 괴로워 하니까,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우리 마음만 온전히 세상에 대해 죽는 역사를 이루어 내시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돼지떼를 몰살시키기 전에,

내가 먼저 내 마음에서 돼지떼를 몰살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  자기 십자가, 자아의 죽음

 

그래서 돼지떼를 쳐다보더라도.. 무슨 개미떼처럼 무덤덤하게 보이면..

예수님이 굳이 돼지떼를 몰살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목마름의 진짜 이유


그러므로 안정되어 보이는 삶의 여건이 있을지라도

거기에 마음을 붙이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습니다.


계속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내 마음을 붙이고 있는 삶의 여건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야 돼요.

주님이 원하시는 겁니다.


정녕 이게 안 되면, 정녕 십자가를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안 되고

주님께서 선택하셔서 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제부터 시작 될 것이에요.

생활기반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돼지떼를 몰살시키신’ 것입니다.

그게 몰살 되어야, 내가 천국을 바라보니까요!

그렇다면 오늘날, 나의 애지중지하는 돼지떼는.. 과연 무엇입니까?


조심하십시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은, 귀신보다 훨씬 더 위험한 분이십니다.


귀신은 그냥 멀찍이 떨어뜨려놓고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가까이 오시면,

우리에게 천국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삶의 기반과, 애지중지하는 우상들을.. 가차 없이 몰살시켜 버리십니다.

 

▲사랑하니까.. 무너뜨리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주시려고 하는 것을 분명히 아세요!

이 세상에서 성공과 형통을 주시려는 게 아닙니다.


대신에 천국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 마음이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왜 자꾸 떠나라고 얘기합니까?

     그게 인격적인 차원으로 표현하자면 사랑이니까요.


A라는 남자와 B라는 남자사이에서 고민하다가

A라는 남자를 접어버리고, B라는 남자에게 갑니다.

그러면 B라는 남자에게 가기 위하여는, A라는 남자에 대해서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사랑이에요.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왜 세상에 대해 자꾸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라고 애기합니까?

사랑,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에.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며 마음이 이 세상을 떠날 각오와 결단이 되지 않으면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귀신보다 더 위험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한, 선민으로 생각하시는 한,

이제부터 여러분이 아직도 십자를 붙잡고

마음이 하늘로 올라갈 결단과 각오가 안 되어 있다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모든 안정된 삶을 위한 생활기반을

하나씩 하나씩 뺏어 가시는 분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으면,

병원에 데려가서, 빨리 수술시키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비록 째고 깁는 것을 쳐다보는 것이.. 너무 큰 고통이지만요.


예수님도, 사람들을 사랑하시니까,

천국 생활에 지장이 되고, 천국 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수술실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돼지떼를 강물에 밀어넣듯이요..


귀신보다 더 위험하게 느껴지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안전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애인으로 느껴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관련글  거라사 땅처럼 황폐한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