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밖으로 나아가자 히13:11~16 11.09.25.인터넷설교녹취
▲서론 / 히브리서 전반부는 <승천하신 대제사장 예수>를 강조한다.
히브리서 시작은 1장부터 높으신 곳, 하늘 보좌에 앉으신
대제사장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히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그 말씀이 마친 다음에, 승천하신 예수를 바라보자고 한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마다,
그분은 지금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대제사장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강조한다.
◑영문 밖에서 육체가 버려지시다
▲히13: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영문밖: 이스라엘 진영camp밖 주1)
위 구절은, 구약의 속죄제사를 설명하고 있다.
대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짐승을 잡아서,
그 짐승의 피는 성소 안에 가지고 들어간다.
성소에 가져가는 그 짐승의 피를 뺀 나머지 부분은,
즉 고기는 번제로 제단에서 태워서 드린 후에
그 외 남은 잔해물은.. 영문 밖에서 불살라 버렸다.
레4:12, 그 송아지의 (남은 것) 전체를
진영 바깥 (영문밖)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서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를지니라. (레4:1~12를 읽어보시라.)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구약시대의 속죄제사와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구약의 속죄제사 그 모습, 그대로 죽으시고,
그 육체가 ‘영문 밖에’ 버려지셨다는 것이다. ↓
▲히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영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브리서 전반부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강조해서 설명한다.
그 대제사장이 하는 일은, 백성들을 위해 속죄제사를 드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직접 자기 육체로 (송아지가 아니라) 속죄제사를 드리신 일을 설명한다.
12절 서두의 ‘그러므로’는,
11절의 ‘구약의 속죄제사와 마찬가지로’ 라는 뜻이다.
예수님도, 피는 이미 예루살렘 성안에서 거의 다 흘리셨다.
채찍에 맞으시면서, 가시관을 쓰시면서, 그 피를 다 쏟으셨고,
그분의 육체는, 구약의 제사처럼,
영문 바깥 쓰레기 버리는 곳에서,
즉 골고다 언덕에서, 또한 버려지셨다는 것이다.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라는 촉구
▲히13:13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 사람들의 관심은 보통 어디에 있는가하면,
우리의 죄를 씻는, 피를 가지고 그 성소 안에 들어가는 일에만 관심이 간다.
그런 성소 안 대제사장에게 관심이 집중된다. (‘영문 밖’과 반대 개념)
2. 구약의 대제사장은,
그 죽은 짐승의 육체를 버리는, 영문 밖에.. 대제사장은 안 간다.
그 육체를 버리는 일은, 즉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일’은,
아주 낮은 사람들, 별 거 아닌 사람들이
번제 태우고 난 짐승의 잔해를.. 영문 밖에 (신약에는 예루살렘 밖에) 내다 버렸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신자들은 마치 대제사장이나 높은 사람들처럼, 성소 안에만 관심 가지고,
영문 밖에 버려진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능욕을 당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특별히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것인데,
구약 제사법에 능통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구약의 속죄제사에 빗대어서, 복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마지막 13장에 이르러
‘여러분이 너무 성소 안의 피에만 관심이 있는데,
그와 동시에 영문 밖에 버려진 잔해,
즉 골고다 십자가에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한다.
▲오늘날, ‘영문밖’에는 관심 없는 신자들
1. 모든 신자의 관심은, 내 죄를 씻는 성소 안에만 관심을 가진다.
짐승을 죽여서, 그 피를 빼서, 그 피를 가지고
우리 대신 대제사장이 휘장 안에 들어가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 죄를 씻기 위해서, 속죄제사를 드렸다.
우리 모든 신경은, 성소 안의 대제사장에게 가 있다.
그 보석 패를 가슴에 달고, 제사장이 화려한 옷을 입고,
성소에 그 피를 갖고 들어가는 것, 거기서 우리 죄가 씻어지기 때문에
우리 모든 관심은 거기로 간다.
그러나 영문밖 대제사장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2. 그리고 그 제사하고 남은 짐승의 사체를 갖다가, 버리는(태우는) 사람이 누군가?
아주 직급이 낮은, 심부름꾼이나, 노동자들이었다. 그들만 영문밖으로 나아갔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영문밖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한다.
영문 바깥에서 그 제사 드리고 남은, 용도가 필요 없는 그 사체를 태운다..
그것을 태우는 곳이 영문밖 ‘재버리는 곳’이었다.
우리나라 교회 초기에 영문밖 교회란 이름이 많았다. (성문밖, 서문밖.. 같은 뜻)
왜냐하면 교회는 숫자가 얼마 없고,
세상에서 교회는 이미지가 ‘그리스도의 능욕을 지는’ 이미지였다.
그런데 오늘날은 ‘영문밖 교회’라는 이름은 참 찾아보기 드물다.
요즘은 ‘영문밖’이 아니라, ‘영문안의 센터 교회’이다.
도시의 길목의 목 좋은 데는 다 교회가 있다.
교회는 더 이상 ‘영문밖’이 아니라, ‘영문 안 센터 교회’로 그렇게 바뀌고 있다.
그런데 히브리서를 쓰신 분은,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영문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이 제사의 그림 중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 피를 다 빼버린, 그 육체를 불사르는 곳,
사실은 거기에 골고다 사형터가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곳도, 재버리는 곳이었다.
아무도 가기 싫어하는, 신경쓰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 레위기와 다르게, 레위기가 집중되는 곳은 성소 안인데,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 피로써 죄인인 우리를 거룩하게 하려고,
영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 곳으로 나아가자! .. 를 촉구한다.
예수님은 그 재버리는 곳에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예수님이 거기 계신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성소안(피)과 영문밖(육체) 둘 다 봐야 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본문은, (간과되기 쉬운) 영문밖을 강조한다.
▲우리는 성소 안에 관심 있지, 영문 밖에는 관심이 없다.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우리 예배의 포커스가 어디가 있는가?
하늘의 성소 안인가?
아니면 영문 밖의 재버리는 곳인가?
우리가 예수 믿고, 은혜 받고 성령을 받으면,
그러면 미국의 성령운동 하는 사람들처럼, 관심이 그냥 하늘보좌에 있다.
주님의 임재, 하늘 보좌, 성령의 계시, 이런 데만 관심을 갖게 된다. (즉, 성소 안)
그때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영문밖 재버리는 곳, 예수님이 거기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즉, 영문밖)
그리고 ‘우리는 그의 능욕을 지고, 영문밖 그에게 나아가자’ 히13:13
주님이 어디에 계시는가? 참 놀라운 말씀이다.
히브리서의 시작은, 미국의 성령운동가들이 말하는대로
하늘 성전, 우편 보좌에 들어가셨다.
히브리서 앞의 부분은, 그것을 말씀한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뒷부분은,
주님이 영문밖에 계신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영문밖에 그 분에게 나아가자’고 말씀한다.
둘 다 맞다. 영은 하늘 보좌에 계시지만,
육은 영문밖에 버려지셨다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에 은혜를 받고, 예배에 집중하지만,
그것이 시작이지, 그것은 완결이 아니다.
우리의 예배의 완성은, 하나님의 임재가 아니라, (성소 안)
하나님의 임재가 전혀 없고, 사람의 관심도 없는.. 재 버리는 곳, (영문 밖)
거기에 주님이 계신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끝까지 ‘영문밖에 나가기 싫다’는 태도로 앉아계시면 안 된다.)
▲히13:14, 우리가 누리는 장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장구한 도성'은.. 장엄한 '예루살렘 성'이고, '영문 안'이다.
그런데 그런 '장구한 도성'은 없다는 것이다. 결국은 다 없어지고, 허물어지고, 사라진다.
그러므로 '영문밖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13
여러분 이 땅에서 버림받은 곳(영문밖)이,
우리가 천국에 갈 때에야, 그곳이 진짜 '영구한 도성'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곳은 우리가 위로 받을 곳이 아니다. 우리가 위로 받을 곳은, 천국이다.
그래서 계21장에, 그날에 주님이 우리의 눈에서 우리의 모든 눈물을 씻어주신다고 말씀한다.
여러분, 우리의 눈물이 이 땅에 위로로 씻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 주님이 그날에 우리를 위로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이 땅에서 위로 받지 않는다. 내 스스로 위로를 취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받기 위해서, 나를 스스로 위로하지 않는다.
영문 밖에 나아가는 자는, 세상에서 위로를 받지 않는다.
이 땅에는 장구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영문 바깥에서 천국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지성소 같은 임재 안에서 야, 예배가 이렇게 좋으니까, 하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보다 더 실재는, 영문밖 재버리는 곳, 그에게 나아가자는 것이다.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우리는 주님을 노래하는 것이, 휘장 안에 들어가신 주님보다,
어떻게 영문 바깥에서 고난을 받으셨나.. 그 주님을 노래해야 한다.
나를 위하여 영문밖에서 고난 받으신 주님을, 노래하게 된다.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그 영문밖 주님을 찬미하는 것이.. 또한 예수 이름을 전도하는 일이 된다.
우리들은 그래서 믿는 자들끼리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주님을 증거하는 예배를 드리게 된다.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제사라는 것이다.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눠주고, 어려운 사람에게 나아가는 것, 이게 제사라는 것이다.
여러분, 이 두 가지 제사가 더하여, 우리에게 골고루 있기를 바란다.
이럴 때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온전하게 알게 된다.
이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한다. (성소 안과 영문 밖)
주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주님의 영은, 휘장 안에 성전 안에 계신다.
주님의 육체는, 영문밖 재버리는 곳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두 곳 다 나아가야 한다.
영적인 일을 사모하여, 휘장 안에만 거하시겠는가?
아니다. 복음이 없는 곳, 실족한 자들, 그들이 있는 ‘영문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의 예배만으로 자족해서는 안 된다.
영문밖 재버리는 곳, 그에게 나아가자.
주님은 착실한 큰 아들보다, 집나간 아들,
손해만 끼친 작은 아들에게 마음이 가 계신다.
요셉이 없는 아버지 야곱은, 11형제가 아무리 잘 해도,
요셉이 없는 그 고통을 메꾸지 못했다.
아버지의 마음은, 착실한 성안이 아니라, 영문밖 재버리는 곳에 가 계신다.
오늘날의 신학교의 신학생들, 성가대원들, 교회를 위한 많은 봉사가 있다.
목사보다 더 많은 예배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곳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아무 힘이 없다.
그 교회봉사는, 그냥 우리들 자신을 위한 잔치요, 노력일 뿐이다.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면서, 주님께 예배에만 열심인 것은,
바리새인의 외식이다. 이것이 종교이다. 현대교회는 바리새인의 외식으로 가득하다.
불신자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서, 예배에는 열광한다.
학생들의 예배를 보시라. 열광한다. 그러나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
마치 사우나에서 나온 것처럼 확 식어버린다.
저도 두렵다. 저는 지금 저 자신에게 목사인 저 자신을 위해서 설교하고 있다.
왜냐하면 목사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믿는 사람에게는 말할 성경말씀이 많은데,
불신자에게 전할 복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예수님이 주의하라고 한 바리새인의 외식이다.
그러다보니까 많은 중직자들도, 믿는 사람끼리 만나면 할 얘기가 많은데,
그런데 불신자들과 만나면.. 할 얘기가 없다.
그들에게 전할 ‘복음’이 없다는 것이다. 할 얘기가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저 자신부터가 정말 두렵다.
그저 예배만 잘 되고, 그러면 교인들이 더 늘어나면,
믿는 사람 안에서만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말한다.
너부터 영문밖, 재버리는 곳, 그에게로 나아가라.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예수이다. 그분은 영문밖 재버리는 곳에 계신다.
믿음은, 주님만을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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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영문 밖>은.. camp 밖이란 뜻이고, 이스라엘 12지파 camp를 뜻한다.
<성문 밖>은.. 예루살렘 성문 밖이란 뜻이다. 둘은 같은 뜻.
또한 이 쓰레기 소각장은, 예루살렘의 서쪽 문 바깥에 있으므로 <서문밖>이란 말도 된다.
<서문밖>은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교회 이름에 <서문밖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