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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난 지혜

LNCK 2011. 11. 12. 18:09

◈위로부터 난 지혜                 약3:13~18       11.09.18.설교스크랩,  출처

 

 

◑서론

 

▲지금은 지식, 정보의 시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쓴 <제 3의 물결>은

우리 시대에 시대적 반향을 일으킨 위대한 도서 중 한권으로 손꼽힙니다.

 

제1의 물결은..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가장 오랜 시간(1만년)에 걸쳐 진행되어온

농업화의 물결입니다.

 

제2의 물결은.. 근대 산업화의 물결입니다. 농업화 제1의물결 에 비교하면

아주 짧은 시간 약2백년 이었지만,

인류 삶에 끼치는 영향으로는 파격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제3의 물결은..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변화로써

더욱 짧은 시기에 일어난 가장 최근의 물결이지만,

인류의 삶에 더욱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중입니다

이것은 소위 지식을 기반으로 한 ‘정보화의 물결’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지식정보화의 시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 혹은 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시대에도 여전히 지식,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바로 야고보서가 말하는 지혜입니다

 

지식, 정보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지혜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현실

사실 오래 전 부터 인류는 지식지혜를 구별해 왔습니다.

 

일찍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지혜는 지식을 적절하고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기술’이라고 말했습니다.

지식이 많아도, 지혜가 없어서,

그 지식을 올바로 사용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문제는, 지식 정보화 사회를 바탕으로

지식의 양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 혹은 올바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하는 지혜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폭발적 속도로 증가하는 지식

애플 베리가 전달하는 정보에 의하면

1900~1950년까지 단 50년 만에 축적한 지식은,

그 이전 모든 인류역사(약6천년)동안 축적한 지식과 맞먹는다는 것입니다. 2배로 증가한 것입니다.

 

그 후 10년 마다, 인류의 지식은 2배씩 증가하고 있는데,

앞으로 그 증가속도는 더욱 빨라져서

2020년이 되면, 매 73일 마다, 인류의 지식의 양은 갑절로 증가 될 것이라고 예언 합니다.

 

이런 지식의 폭발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별로 행복해지지 못하다는 것이.. 지식의 함정인 것입니다

 

왜냐고요? 성경에 의하면 지식은 많아지지만,

참된 지혜가 증가 하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지혜에도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지적 합니다.

진짜 지혜와 가짜 지혜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가르치는 진짜 지혜는 무엇일까요?

 

 

◑1. 참된 지혜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약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로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이렇게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령의 9가지 열매와 비슷합니다.

한 마디로 은혜스럽습니다. 안정되어 있습니다. 평안한 가운데 얻어지는 지혜이고,

그 지혜가 누구를 해치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지혜)이 그렇습니다.

A가 이기고, B가 지는 그런 지혜가 아니라,

A와 B가 모두 윈윈하는 뜻이요, 지혜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성결, 화평, 관용, 양순이 임합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와 반대가 무엇 입니까?

약3: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 하지 말라.”

 

다음 15절은 이런 행동의 배후에 도사린 지혜의 정체를 밝힙니다.

약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다시 말하면, 위로부터 나지 아니한 지혜는,

세상(땅)에 속한 지혜요, 육신정욕에 뿌리박은 지혜요, 마귀적 지혜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성경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3가지 세력으로, 세상육신마귀를 들고 있습니다.

 

위로부터 나지 아니한 모든 지혜의 근원은

세상이든가, 내 속에 자리 잡은 육신정욕이든가, 아니면 마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난 지혜를 얻는 비결은 무엇 입니까?

 

지식은 책이나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지만

참된 지혜는 하나님으로 부터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미 그 지혜를 얻는 방편을 약1:5절에서 가르친 바 있습니다.

 

약3: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를 구하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정말 지혜를 구해서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 특별히 지혜를 구해서 하나님께 받은 이유는,

그가 자기 개인적 용도로 쓰지 아니하고

모든 백성을 재판할 용도로 (즉, 공익을 목적으로, 왕상3:11)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고..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습니다.

 

▲정리하면,

오늘날 ‘지식 정보화 시대’에 지식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지혜가 오히려 무시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위로부터 난 지혜(약3:17)를 구하면 주신다’(약3:15)고 가르칩니다.

우리모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솔로몬처럼, 받은 신비하고 신령한 지혜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인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제 경험 나눔

돌이켜 보면.. 부족하지만 제가 담임 목사로 재직하는 동안 이루었던

감사했던 모든 사역은.. 기도로 얻어진 지혜의 결론 이었습니다.

 

반면 후회스런 모든 것은.. 기도 없이 충동적으로 벌린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먼저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전설적인 기도의사람 조지 뮬러의 삶의 비밀은

"기도 보다 먼저 앞서지 말자,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자"였습니다

 

 

◑2. 참된 지혜는 인간관계를 세우는 지혜입니다.

 

▲마귀에게서 온 지혜는.. 인간관계를 나눕니다.

우리 마음속에 솟아난 지혜가

위로부터 난 지혜인지, 땅에 속한/마귀에 속한 지혜인지를 분별하는

지침이 무엇 입니까?

 

그 지혜를 사용하는 결과로

-이웃들이 결속 되었는지 

-이웃들이 나누어 파당을 이루었는지.. 살펴보시면 됩니다.

 

‘마귀devil’의 원어는dia+ballo곧 ‘사이를 가르다’는 뜻 입니다

마귀의 역사를 극복하지 못하면 부부가 분리되고, 부모와 자식이 등을 지고,

목사와 교우 들이 반목합니다.

 

노사가 대립하고 인간관계가 파열음을 일으키는 모든 현장이

바로 영적 전쟁터입니다

 

이 현장들에서 일하는 대표적인 귀신들이 바로 시기와 다툼의 영들입니다

 

약3:16절을 보십시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약3:14~15에서, 시기와 다툼은

세상과, 육신과, 마귀에게서 온 지혜라고 했습니다.

 

지혜가 다 좋은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위로부터 온 지혜’만 신령하고 좋은 것입니다.

 

어쨌든 시기와 다툼, 즉 마귀적인 지혜를 사용한 결과는..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6

 

▲십자군과 성 프랜시스

최근 출간된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이야기>를 보면

십자군 전쟁 당시 그들이 아무리 그럴듯한 정당한 명분의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소위 십자군 지도자들 사이에, 얼마나 시기와 다툼의 영이 가득했는가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약 6차에 걸친 원정 가운데, 성지 탈환에 성공한 적도 거의 없습니다.

성지 탈환 실패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왜냐하면, 1차원정에서 예루살렘을 탈환했는데,

그 성 안과 주변의 약 1백만의 사람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대량학살 했습니다.

 

만약 6번 다 성공했더라면, 그 대량 학살이 6번 계속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지탈환 안 하는 것이.. 차라리 ‘하나님께 영광’이었던 것입니다.

성지를 탈환할수록.. (그 명분을 이루는) 대량학살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으니까요.

 

그러나 같은 시기 13C에, 십자군과 정 반대의 길을 걸어간 성도가 있었는데,

아씨시의 성자 프란치스코와 그 공동체 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들의 평화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 사랑하며..

자신을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도가.. 오늘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한국교회에

아니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 기도야 말로, 진정한 지혜에서 나온 기도였습니다.

 

※오늘날 힘이 커진 기독교는

무슨 때마다 기독교의 세력numbers을 과시하려 하고,

기독교에 대항하는 이단, 안티와 같은 세력들에 대해서는

마치 ‘십자군 전쟁’을 선포하는 듯한.. 마귀의 거대한 유혹에 직면해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물질, 인맥, 세상 권세를 등에 업고 싸우려는 것은.. 마귀적 지혜입니다.

그러나 프란시스처럼, 평화의 기도를 올린다면.. 그것은 위에서 난 신령한 지혜입니다.

 

 

◑3. 참된 지혜는 선한 열매를 거두는 지혜입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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