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루어진 사실 욜2:28~31, 벧전2:9 스크랩 글, 정리
옳은 내용이라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서론
지난 시간에 <치유>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라고 살펴보았습니다. ☞ 병을 짊어지셨다
이 시간에는, 마찬가지로 <예언>이 이미 이루어진 사실임을 살펴보겠습니다.
<구원>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듯이,
<치유>도, <예언사역>도.. 이미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즉, 성경적인 <예언 사역>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라는 뜻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니까요..
▲예를 들면,
과거에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 생활을 36년간 했습니다.
그러다가 815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면 ‘해방’은 이미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효력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혹자는,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하신 것은, 그 당시의 ‘단회적’인 사건이요,
오늘날에는 성경이 완성된 후로는 그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해방’이 단회적 사건이었나요?
오늘날에는 ‘해방’의 효력이.. 우리에게 전혀 미치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령의 사역’들은.. 계속되어지고 있고, 계속 되어져야 정상입니다.
◑요엘의 예언이 행2장에 성취되었습니다.
욜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이미 성취된 사건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베드로는, 행2장의 성령강림이
위 요엘서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설교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행2:16
행2:17~18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베드로는 지금 명백하게 요엘서의 본문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때에 성취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미 성취되었다’에 밑줄을 그은 이유는,
우리가 종종 이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직 미래에 다가올 사건으로만 예상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아래 찬송을 부를 때
“모든 민족에게 주 성령 부어 주소서... 하나님의 백성 주의 말씀주시고”
Lord pour out your Spirit on all the peoples of the earth
특히 후렴부에 더욱 그런데요..
“그 날엔 주의 영이 임하여 큰 부흥 이 땅 위에 일어나리라
모든 영혼 깨어 일어날 때 주 예수를 부르는 자 구원되리...”
많은 사람들이, 이 찬양을 부를 때, 미래적으로만 부르는 것 같습니다.
(이게 꼭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현재적/미래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과거적 사건, 성취되었다’에는 별로 초점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복음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전체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일부만 부분적으로 이해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셨고요,
그래서 우리는 예언/환상/꿈을 꿀 수 있습니다.
이미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성령충만을 사모해야 하고,
예언/환상/꿈을 갖는 능력과 은사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만
그것이 이미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구하는 것과,
그것이 이미 성취된 줄 모르고, 미래에 이루어질 사건으로만 알고 있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일례로, 이미 815해방이 된 줄 알고 사는 것과,
저 산속이나 외딴 섬에서, 해방된 줄 모르고, 해방을 기다리며 사는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장에 가서 사 오신 (이미 이루어진) 사탕을 달라는 것과
아직 아버지가 장에 가기 전에, 사탕을 달라는 것과는.. 차이가 큽니다.
▲이미 성취된 것을 알 때.. 우리의 간구는 힘이 생기고, 확신을 갖게 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당신은 예언/환상/꿈을 꿀 수 있고,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요엘의 예언이.. 행2장에서 이미 성취되었으며..
우리는 지금 그 성취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은 것도, 치유 받은 것도 마찬가지로..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만..)
요엘서와 사도행전 본문에 나타나 있는 ‘예언’, ‘환상’, ‘꿈’은
모두 구약시대 때 계시를 위해 사용되던 도구들이었습니다.
즉 본문에 “이제 이것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날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 예언과 환상과 꿈들은
하나님께서 구약 때, 선지자를 통해서 계시를 주시던 방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말씀은, 과거에 선지자에게 주셨던 직무가
성령과 함께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신을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11:29)
우리는 신약 시대에 와서는
더 이상 제사장이나 선지자나 왕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벧전2:9)임을 가르칩니다.
(‘선지자’가 포함되지 않았지만,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계시를 전달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14:17, 26)
즉, 새 시대인 신약시대에는 성령이
바로 이 계시 전달의 중추인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우리가 구약의 선지자처럼
예언/환상/꿈을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우리 한국교회들이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것을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격정적인 일”이 일어나야
설득력이 생기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만,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사역을.. 믿고.. 받아들이는..
그것이 십자가에서 종결되었다는 .. 그런 신학이랄까요?
그런 관점이 우리에게 상당히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2:17절의 말씀을 설교하거나, 찬양을 부를 때도,
이미 ‘성취된’ 사실을 망각하고,
장차 ‘다가올’ 사실에만 초점을 맞출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신학적 오해이며, 실제로 신앙생활에도 도움이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장차 미래에 나에게 일어날 어떤 “격정적인 부흥운동”을 바라보는 것 보다,
(물론 이런 시각도 필요합니다만..)
과거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우리가 다 선지자되었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하고 놀라운 사건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제
(그러나 과거사건으로만 보는 것도 무리고요. 현재 시각으로도 봐야죠)
그래서 요엘서의 본문이 사도행전에서 성취되었다고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엄청난 의미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놀라운 기쁨에 빠지고, 하나님의 역사에 감탄해야 하는 것입니다.
.........................
▲내가 기도하지 않아도, 주님은 내 곁에 계시지만..
피에트라 수도원의 긴 아침기도가 끝난 후, 풋내기 수사가 수도원장에게 물었지요.
“기도를 통해, 인간 존재가 하나님에게 가까워질 수 있습니까?”
수도원장이 말했습니다.
“답하는 대신 하나 묻겠다.
너의 간절한 기도가, 내일 아침 해를 뜨게 하겠느냐?”
“해가 뜨는 것은 우주의 섭리니까, 제가 기도하지 않아도 해는 뜰 것입니다.”
“그 말 속에 네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 가까이에 계신다. 네가 얼마나 기도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풋내기 수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말씀인즉, 우리의 기도가 쓸모없다는 것입니까?”
“절대 그런 말이 아니다.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해돋이를 볼 수 없듯,
하나님께서 늘 우리 곁에 계셔도.. 기도를 하지 않으면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늘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이.. 성령님과 실제로 동행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얻습니다.
성령님을 가까이서 느낍니다.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에게 성령의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간절히 기도하고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만이..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시대가 열렸지만, 내가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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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여서, 요엘서의 본문 중
“피와 불과 연기”라든지,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는”것과 같은 본문이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요엘서의 본문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이것이 직접적인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은 나중에 일어날 일이다.. 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 부분 역시 사도행전에서 성취되었다고 하였으므로,
그 일이 오순절날에 일어났다고 보아야만 합니다.
성경이 이런 기상현상이나 무서운 징조를 말할 때,
반드시 직접적인 ‘현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즉, 직접 해가 어두워지거나 달이 피가 되지 않았지만,
성경은 오순절 성령강림이 이러한 역사적 대격변임을
저런 표현을 빌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되겠습니다.
(성경에서는 나라가 망한다거나, 역사적 격변이 일어날 때를
기상현상과 결부지어 상징적으로 쓰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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