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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도.. 이루어진 사실

LNCK 2011. 11. 24. 09:22

◈성화도.. 이루어진 사실      롬4:23~24, 8:11, 히10:10       설교 녹취, 정리

 

※성화 문제를.. 우리는 보통 ‘미래적 사건’으로 보는데,

성경이 말하는 강조점은 ‘과거(완료)적 사건’으로 보는데.. 어쩌면 더 무게가 실려 있다.

(그런데 이런 해석 관점은, 성화론의 일부 입니다. 성화에 대한 자기 책임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우리는 양쪽을 다 봐야 합니다. 즉 믿음으로 주어지는 성화와, 자기가 이루어가는 성화의 양면)

 

 

◑1. 의인으로 여겨주시는 은혜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 함께 부활을 의미

 

골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해서 세례를 받는데,

(여러분, 대부분 세례를 받으셨을 것이다.)

그 의미는 

예수님과 함께 내가 죽고, 예수님과 더불어 내가 살아나는 것이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어떤 은혜가 임하느냐 하면,

의인으로 여겨주시는 은혜’가 임한다.   

 

롬4장에 아브라함의 믿음의 예를 쭉 들면서

4:22 그러므로 이것(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내가 진짜 의로워서가 아니라,

 

내가 예수와 함께 죽고,

내가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났고,

그래서 이제는 의롭다고

하나님께서 ‘여겨지는 은혜’를 나에게 주신다.

 

아브라함이 믿을 때,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겨주셨듯이,

그 ‘여겨주시는 은혜’가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롬4:23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나 OOO로 내가 믿을 때

하나님이 내게 <의롭게 여겨주시는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이게 매우 중요하다.

왜 중요하냐면, 우리가 모두 현 주소는 ‘죄인’이다.

우리가 매일 죄를 짓고 살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 오셔서는 단정한 옷 입고, 신사숙녀처럼 앉아 계시지만

그 배속에 배설물들이 다 들어있듯이,

그게 아직 바깥으로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 그게 바깥으로 나오면.. 사람들이 다 기겁하며 서로를 피할 것이다.

 

그것처럼 우리는 여전히 죄인으로 산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루어진 사실’은

      (신약에 ‘이루어진 사실’이란 표현이 종종 나온다. 눅1:1, 2:15, 요19:28)

예수님이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서, 죄를 대속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걸 우리가 믿는다.

여전히 우리 안에 배설물과 같은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보면 뻔뻔스럽게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루어진 사실’로 믿는다.

 

 

◑2. 믿음으로.. ‘의로 여겨주시는 은혜’를 받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히11:1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바라니까,

그것이 내게 실상reality으로 그대로 이루어진다.

 

지금 우리가 죄짓고 넘어지는 것이, 나의 실상이 아니다.

‘하나님이 의인으로 여겨주시는 그 은혜’가 나의 실상이다.

 

‘내 삶의 현주소(죄인)’와 ‘이루어진 사실(의인)을 믿는 삶’

이 둘 가운데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

 

우리가 현실은 죄를 짓고 넘어지고,

넘어지면 절망하고,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진다.

 

이 ‘내 현실, 현주소’와 ‘예수님이 이미 이루신 일’ 사이에

그 엄청난 간격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바로 믿음으로 채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그 말씀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으로 채워야 한다.

 

즉, 믿음으로, 그 둘 사이의 괴리감을 극복하는 것이다.

내 현실은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믿음으로, 내가 의인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믿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주님의 십자가로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니까!

 

정리하면,

롬4:23~24,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자는,

아브라함처럼,

의로 여기심(칭의)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내가 완전한 의인은 아닐지라도,

나는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고 ‘이미 이루어진 사실로’ 믿고 살아가야 한다.

그 가운데, 점점 의인으로 성화되어 갈 것이다.

 

 

◑3. 내 속에 성령님이.. 도우신다.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하나님)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여러분, 우리에게 죄만 있는가?

아픔, 상처, 연약함도 있고, 지난 기억의 부담도 있고..

 

이런 죽을 몸에서, 이런 죽을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 죽을 몸을 살리시고, 일으키신다. ↑

 

▲이것은 역설적 진리이다.

그래서 우리가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는

이런 역설적 진리를 맛보게 된다.

 

여러분들, 정말 살다보면 절망적 순간을 많이 경험하신다.

배신당할 때, 가정적으로 어려울 때, 인생의 길이 막힐 때,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 죽은 것보다, 더 절망적인 사실은 없다.

우리의 죄악, 고통, 괴로움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의 절망에서, 다시 일으키심을 받았다면,

우리의 죄악, 고통, 괴로움에서 벌떡 일으킴 받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일으키심’ - 원래 부활을 의미하지만, 삶의 고통에서 일어나는 것도 포함된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성령님이시다.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8:11

 

그 성령님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기 때문에,

그 성령님은, 지금 성도 안에 거하시는데,

하나님이, 그 성도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일으키신다는 것이다. 롬8:11

 

우리가 가난해져봐야 얼마나 가난해지는가?

우리가 배신당해봐야 얼마나 큰 배신을 당하는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죽으신 것만큼 절망적/비참한 사건이 어디 있는가?

 

그런 절망적이고 비참한 순간에,

성령님께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셨다고 성경에 나온다.

그 분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이다. 못 고칠 질병이 없다.

새롭게 못할 상처가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죄의 결박이 없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 능력을 확신하고 이렇게 조롱했다.

고전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성도에게 절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성령님을 우리가 신뢰하므로

지금은 내가 때로 무덤 가운데 갇힌 것처럼 캄캄한 현실 속에 있으나,

지금 내가 또 여전히 회개하고도 죄를 짓는 연약한 질그릇 같은 모습일지라도,

 

예수님을 죽은 자들을 가운데서 살리신 성령님의 능력을 내가 신뢰하므로

내가 이루어진 사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로 살아가게 된다.

 

 

◑4. 믿음을 내 입술로 고백하시라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이렇게 믿는 사람은.. 삶에서 계속

믿음의 고백을 하시라.

(위 사실을 머리속에 생각만 하고 있으면.. 자기에게 손해다.)

 

믿음의 입술의 고백을 할 때

‘나는 의롭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성령으로 일으킴 받았다. 나는 고침 받았다. 등’

그때 ‘여겨주시는 은혜’가 내게 더 크게 임한다.

 

아브람과 사래의 나이가 많아서 자신들을 보니 죽은 것 같았다.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다.

 

보통 사람들처럼 세상을 사는 데는 문제가 없는데

말씀대로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마치 아브람이나 사래가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이 느낀 것처럼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무기력하고, 죄만 짓고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런 희망도 없고, 가능성도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바꿔주심으로서

그들의 ‘입술의 고백’을 바꾸어 주셨다.

(계속 ‘아브라함’, ‘사라’로 부르니까. ‘열국의 아비여!’ ‘열국의 어미여!’)

 

그래서 그들의 믿음이 강화가 되어, 자식을 낳은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성화/성결 문제에 있어서

절망하고 좌절하여 자신이 죽은 것 같이 느끼지만,

 

그들의 입술의 고백을 바꿀 때,

그들 속에 믿음이 일어날 것이고, 믿음이 활성화 되면서,

점점 성화에 이르게 된다.

 

성경에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믿음에 의해서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히10:10

 

그런데 그 믿음을 활성화하는 것이 내 입술의 고백이다.

바울은 “말씀이 가까워서 네 마음에 있고 네 입술에 있다.”고 했다. 롬10:8

 

입술로 말씀을 고백하다보면..

마음에 믿음도 강화/활성화/굳세게 되는 것이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5. 성화도..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다.

 

※성화 문제를.. 우리는 보통 ‘미래적 사건’으로 보는데,

성경이 말하는 강조점은 ‘과거/완료적 사건’으로 보는데.. 어쩌면 더 무게가 실려 있다.

 

우리가 예수를 믿다보면 죄를 짓는다. 얼마나 속상한가?

철야기도까지 나와서 경건하게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또 죄를 지으면 얼마나 스스로 자괴감이 드는가?

 

특히 직분자가 스스로 무너지면.. 정말 스스로 큰 낙심에 빠지게 된다.

또 직장에서 현실의 큰 장벽을 느낄 때.. 정말 한숨이 나온다.

 

얼마나 우리가 나를 보면서 나약해 지는가?

나만 나를 실족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에서 나를 실족케 한다.

사탄도 나를 비방한다. 정죄한다.

그래서 나를 KO 직전까지 몰고 가기도 한다.

 

이 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불신이 생긴다.

‘주님 왜 저를 이 모양으로 만드셨나요?’ 하는 원망도 생긴다.

 

이런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에

우리는 ‘그래,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

이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과 함께 살아났다. 성령님이 살리셨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이시다.

그 절망의 순간을, 그 어두움의 순간을 뚫고,

사망의 권세와, 죄의 권세를 이기신 분이시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을 믿는다면,

내 눈에 보이고, 내 귓가에 들린다면,

‘그래 나는 이미 거룩하여졌지!’라고 억지로라도 믿어야 한다.

 

이것은 시제로 ‘완료’ 이다.

사탄이 아무리 나를 정죄하더라도

내가 거룩해진 것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완료’로 끝이 났다.  대표적 구절이 고전1:30이다.

 

히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하기아조, 완료, 수동 분사

 

시제가 완료라는 뜻은, 이미 완료되었다. 끝난 사실이란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더 이상 진노의 얼굴로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긍휼의 얼굴로 바라보신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것처럼

상거가 멀지만 달려오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신다.

 

 

◑6. 긍휼의 원리

 

이 믿음(십자가에서 주님이 이루신 모든 일을 믿는 믿음, 성화 포함)이 우리에게 있을 때,

내 감정과 이성과 의지가 역동적으로 깨어나면서

우리에게 긍휼의 원리가 작용하기 시작한다.

은혜의 통치가 내게 적용된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아무 것도 안 일어나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한다. 롬8:1

그래서 이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통치하실 떄,

하나님의 신적인 능력이 작용하면서

우리 안에 아직 남아있는 죄성들이 그때 무너진다.

 

아픔의 사슬이 끊어진다. 미움의 가시가 뽑아진다.

터진 나의 영혼의 살들이 아물어 지고,

못 고칠 질병이 없어지고, 못 해결할 문제가 없어진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때

예수님 자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긍휼의 원리가 어디서 나오는가? 십자가에서 나온다.

그래서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게 된다.

 

그래서 구원의 열매가 맺혀진다.

나눔을 베풀게 되고, 오리를 가자는 자에게 십리를 가 주고,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돌려댄다.

그래서 믿음이 그 행위로 온전하게 된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받는) 긍휼의 원리

거듭난 사람은 옛사람이 죽은 사람이다.

새사람은 (고후5:17)은 

성령님의 통치를 받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게 긍휼의 원리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성령님의 통치를 받는 이 새로운 피조물,

즉 나는 성령님에 의해 살아야 한다.

 

그래서 갈5:25에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성령으로 사는 자는 성령에 의해 산다.

성령에 의해 살아난 자는, 성령으로 살아간다.

 

롬8:2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라고 했다.

 

성령으로 살림을 받은 자는, 성령에 의해서/이끌려서 살아간다.

-이것이 긍휼의 원리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무슨 말인가?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고,

내 에너지 공급원이 긍휼을 통해서 공급된다는 것이다.

 

긍휼의 통로 가 막혀버리면, 아무 힘도 공급되지 않는다.

마치 머리가 다 깎인 삼손처럼 무능해지고, 무력해진다.

 

우리가 슬럼프에 빠지고, 침체가 온 것 같고,

내가 연약해지고, 기도가 메말라 간다면..

이러면 반드시 공급해야할 수로가 긍휼이다.

‘이게 막힌 것 아냐?’ 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이 긍휼을 원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에게 너무 중요하다.

그래서 십자가가 매일 필요하다.

 

     ▲매일 십자가로 가까이 가서 <긍휼>을 길어 올린다.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노니..

구세주의 흘리신 피로써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저는 과거에, 이 찬송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구원 받았다는데, 과거 완료로 끝났다는데,

왜 매일 십자가로 또 가야하나? ..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날마다 십자가를 붙들어라!’ 이 말씀이 왜 중요하냐면

우리는 긍휼에 의해서 에너지를 공급받기 때문이다.

그 십자가에서, 긍휼을 날마다 더욱 새롭게 공급받기 때문이다...

 

이하 rfcdrfcd.tistory.com/15981481 에 따로 정리했습니다! (중요해서 따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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