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1

세상에서 심판 받고, 최후 심판 면한다

LNCK 2011. 11. 29. 20:25

 

◈세상에서 심판 받고, 최후 심판 면한다    벧전3:20~21,   벧후2:5      11.03.27.설교일부녹취

                                                                                                                            Ro#22. 52'~60'

 

◑'의'는 한 사람을 통해 주어진다.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 그 후손에게 의가 주어졌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의가 주어진다.

 

롬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아래에 노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창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왜?)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노아의 가족이 아니라, 노아 한 사람의 의로움을 보셨다.

 

그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자들이 살아나는 것,

그래서 그냥 그저 받는 것이.. ‘의’의 한 가지 특징이다.

(나머지 사람은, 그 의를 수여받는다. 동참한다. 혜택을 누린다. 예, 순교자) 


     마찬가지로 모든 성도의 삶에서

     의의 현실, 십자가의 현실, 복의 근원됨의 현실이,

     실제화되어 나타나게 되는데..


     여러분 한 명이 죽어서, 다른 이들에게 의가 전파되는

     그러한 그림이 여러분의 삶속에서부터 장차 드러날 것이고,

     이미 과거에도 그런 경험을 하신 분이 계실 것이다.


내 한 사람 때문에, 누군가 의를 선물 받을 수도 있다. 그건 하나님이 하신다.

여러분은 그 자리에서, 그냥 자기 믿음 지키시면서, 살면 된다.

그 삶이 한 알의 밀알같은 죽음의 삶이다.

노아, 아브라함이.. 예수님처럼.. 그렇게 살았다.



◑의인은 ‘죽음’을 경험한다.


벧후2:5,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의를 전파하는 노아.. 왕따 당했다.

노아는 의인이니까, 자기 삶 자체가 의를 전파하는 삶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 세상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가 하면,

거의 정신적으로 맞아죽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도 노아의 전도(심판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 아무도 방주에 안 들어왔으니까.

그게 의인의 삶이다. 그게 또한 예수님의 삶이셨다.


그들 세상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떠난 이 역사의 실체는 무서운 최후의 심판이라는 것이

도저히 감지 안 되기 때문에,


그들은 ‘왜 우리가 여기서 나가야 해? 왜 여기(세상)서 피해야 돼?’

그러면서 방주 안으로 안 들어온 것이다.


노아 가족은, 눈만 뜨면 세상이 자기를 바보 병신 취급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거기서 피해서, 그들을 피해서.. 방주로 들어온 것이다.


그게 바로 ‘의인의 죽음’이다.

그들만 방주 속으로 들어간다.

그게 의인된 여러분의 인생 속에서 똑같이 나타난다.


▲세상은 심판 때까지도.. 못 깨닫는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이 심지어 홍수에 쓸려 내려가서 죽으면서까지도

‘내가 지금 왜 죽고 있는지를 몰라’ 하는 것이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마24:38~39 


쓰나미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들은,

자기 가방하고 귀중품을 끝까지 손에 꼭 붙들고 죽어 있었다고 한다.

‘이게 뭐야?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모르니까 여전히 세상 것을 붙들고 .. 그렇게 망하는 것이다.


세상이 그렇다. 아무리 복음을, 최후의 심판을 얘기해도.. 모르고, 못 깨닫는다.

그리고 자기 ‘가방’ 재산 을 꼭 붙들고 있는 것이다.


▲물은 심판의 도구인데, 동시에 구원의 도구

그래서 아래 구절에, 노아와 그 가족들을 물에서 구원했다 하지 않고   from water 

물로 구원했다 그런다.  by water  (혹은 through water)


벧전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8명이라. 

 

'물로' ..  from water이 아니라 by water이다.

'물로부터'가 아니라,  '물에 의해서'이다. (혹은 물을 통해서)

 

물은 죄를 진멸하고, 잘라버리는 용도로 심판의 도구로 하나님께서 쓰신 것이다.

그러면 노아 가족을 '물로 부터' 구원했다.. 가 맞을 것 같은데,

성경에 '물에 의해' 구원 받았다고 기록한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물에서 건져지는 것을 구원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심판의 물에 의해서, 노아가 구원받았다 라고 말씀한다. by water 

불신자에겐 심판의 물이, 동시에 신자에겐 구원의 물인 것이다.

 

     최후의 불심판도 마찬가지다.

     의인은 '불심판에 의해' 구원받는다.

     -그 불심판이 무서우니까.. 그걸 아니까.. 사전에 피하는 것이다.

     -노아도, 물심판을 두려워해서.. 사전에 방주를 지으면서, 심판을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노아의 홍수같은 ‘심판의 물’이 그들에게 감지되면

재수 없다고 생각하지,

‘야 이거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큰 일 나겠구나!’ 하면서.. 회개하지 않는다. 피하지 않는다.


다만 노아 같은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들은

그걸 심판의 현실로 인식하게 되고,

‘야 여기서 빨리 빠져나가야 되는 거구나!’ 하고

물에 의해 by water 구원 받더라는 것이다.


그것이 성도의 역사속 현실이다.

(심판의) 물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는 자들에게는 저주의 물이 되고,

그들은 전혀 감지를 못하고, 피하지 않고, 대비를 안 하니까.. 결국 심판받는다.

 

똑같은 물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어지면

그게 경고가 되어서, 물에 의해 by water 구원받는 도구가 된다.


이번 일본의 쓰나미도,

사실 경고를 받는 사람들은 성도들이다.

성도만, 그런 재해를 보면서, 최후 심판의 경고를 받는 것이다. by 쓰나미이다.


▲성도는.. 살 동안에는 환란을 당하나, 최후 심판을 면한다.

노아는 120년 동안 계속 세상으로부터, 바보취급 당했다.

‘의’를 전파하는 사람은.. 그와 같은 죽음의 고난을 통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도(노아)는.. 세상에서 고난/환란의 죽음을 통과하면서.. 최후 심판 때 구원 받는다.

불신자는.. 세상에서 성도를 비웃고 놀리다가.. 최후 심판 때 죽음을 맞게 된다.


노아는 10~20년은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100년을 기다려도 비가 오지 않았을 때,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거기에다 먹고 살아야 되고, 방주 짓는데 경제적 손실, 

그리고 또 방주에 쓸 양식을 저축해야 되고.. 

죽도록 일하고 또 죽도록 욕 먹어.. 


그런데 역사 속에서 그 (환란의) 물을 맞았더니,

진짜 심판의 물이 내려오니까, 방주가 그를 덮더라는 것이다.

그게 의인들의 현실이다.

 

 

◑우리 대신 심판 받으신 예수님


▲언약이 홍수 심판을 막아준다.


창9: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위 창9:11에서, 언약을 통해, 그 언약이

모든 홍수(물, 심판)으로부터 사람들을 막아주었다고 했다.


여기서 지금 ‘홍수’(물)는.. 뭔가를 멸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멸하다’가 cut off인데,

이게 창 15장에 나오는 ‘쪼개다’와 같은 단어이다.


‘자르다, 쪼개다’는 단어가 언약이며, 할례와도 같은 말이다. 

멸하다=자르다, 쪼개다=언약=할례이다. 다 같은 뜻이다.


그런데 그 저주의 물을,

예수 방주가 대신 막아 주었다.


인간들이 빠져죽어야 할 (멸함을 당해야 할, cut off되어야 할) 저주의 물을

십자가에서 쪼개지신 (cut off되신) 예수께서 대신 막아 주셨다.


창15장에서, 하나님이 친히 쪼개진 제물 사이로 지나가시면서,

스스로 언약을 체결하신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스스로 쪼개지신 예수님의 언약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에게 닥치는 모든 죽음을.. 대신 막아 주셨다.


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스스로 쪼개져 버리셨다.

그 언약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재물을 쪼개 놓고

‘이 언약이 지켜지지 않으면, 이 쪼개진 제물 사이로 지나간 자가 쪼개지는 거야’

라고 언약을 하셔놓고, 하나님 혼자 지나가겼다.

그건 내가 쪼개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십자가에서 쪼개지셨다.


여러분 인생에는 그 ‘심판의 물’이 반드시 들어와야 된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여러분이 그 ‘심판’을 경험하셔야 된다.


그러나 살아가는 가운데 ‘그 심판의 물’을 경험하는 성도만,

‘최후 심판의 물’을 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이 대신 심판을 받아주시기 때문이다. 노아의 방주처럼

또는 십자가처럼!


그러므로 ‘심판, 환란, 물’은

성도로 하여금, 세상을 피하게 하고, 천국과 하나님을 향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히 성도에게

세상에서 살아갈 동안에 환란, 심판, 고난을 겪게 하신다.

그래서 대신 심판을 받으신.. 언약, 십자가, 방주, 예수께 피하도록 하신다.

그 사람만 최후 심판을 면한다.

 

마치 면역주사를 맞은 사람이, 그해 독감을 이기듯이!

사는 동안에 심판을 받은 사람만이.. 예수께 피하면서.. 최후 심판을 이긴다.

 

▲물에 의한 심판/구원인 - 세례


벧전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세례는 할례.. 다 죽이는 것이다.

할례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 세례이다. cut off.. 잘라낸다.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쪼개져 죽었고, 물에 빠져 죽었다.

그래서 세례 받을 때, 머리에 물을 뿌리는 것은,

머리까지 물에 차서, 내가 노아의 홍수처럼, 홍해 도강처럼 빠져 죽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세례라는 것 자체가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성도에게 있어서 ‘죽음’은.. 죽음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거기서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심판을 받으신.. 예수의 죽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예수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 심판의 무서움을 깨닫고, 예수께 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가 나를 대신해서 죽고, cut off 되고.. 내가 그 혜택으로 살아난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그런데 그 세례의 물이 무엇을 하느냐 하면,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게 하는 것이라 했다.

그 번역은, ‘선한 마음이 하나님만을 간구하게 하는 것’.. 이란 뜻이다.


‘에페로테마’ 라는 단어가 무엇을 향하여 ‘찾아가다’는 뜻이 있는 게 아니라,

‘간구하다, 호소하다’ 라는 뜻의 찾아감이다.


왜냐하면.. 심판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나를 구원하시기로 언약하신,

즉, 대신 형벌 받으시기로 언약하신

하나님을 찾아가서.. 그 분께 피하는 것이다.


'분류 없음 > 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3320 아벨의 증거, 의인의 증거   (0) 2011.11.30
겨자씨 비유 .. 천국 관점  (0) 2011.11.30
아브라함, 예수님의 예표  (0) 2011.11.29
표지판이 바뀌다  (0) 2011.11.28
천국을 현실감있게 살아야   (0) 2011.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