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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의 무덤

LNCK 2011. 12. 1. 18:55

교회는 나그네의 무덤        마27:3~8, 행20:28        11.04.03.설교녹취 Ro#23. 52'~59'



(그래서) 성경은, 의인들이 모여 있는 교회를 ‘나그네의 무덤’(피밭, 아겔다마)라고 한다.

무슨 뜻인가?


▲은 삼십으로 나그네의 묘지를 사다.

가룟 유다는 자기 죄를 뉘우치고, 은 30냥을 도로 반납했다.

그리고 ‘내 죄는 내가 책임진다.’ 하고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 마27:3~5


이렇게 볼 때, 어쩌면 베드로는, 더 나쁜 사람이다.

세상적 관점으로 봤을 때, 남자답고 의로운 사람은 가룟 유다이다.

‘스스로 뉘우쳤고, 자기 죄에 대해 책임을 지고 목매달아 죽었으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를 ‘의롭다’하지 않고, 그것을 ‘죄’라고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자기 의로움’의 추구를 인정하지 않는다. (유다의 자살은 자기 체면이었다.) 

오직 ‘하나님의 의’만 참된 의라고 가르친다.


그 은 30냥은 당시에 큰돈은 아니었다. 당시 노예 한 사람의 몸값이었다.

세상이 예수를 그렇게 싸게 취급했다는 것이다. 당시 노예는 아주 가치가 없는 존재였다.


대제사장들이 그건 큰돈도 아니었고,

또 피값으로 지불되었던 꺼림칙한 돈이었기 때문에,

성전금고에 넣지 않고, 그걸로 밭을 샀다.

그래놓고 그 밭을나그네의 무덤’으로 만들었다.


마27: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예수의 피값으로 밭을 샀는데, 성경은 그 밭을 나그네의 무덤이라 그런다.


그런데 성경은 성도를 <나그네>라 부른다.


히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벧전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성도가 이 역사를 살아가는데, 이 역사 속에서 성도는 나그네이다.

이 세상은 나그네로서 지나가는 곳이고, 본향은 천국이란 뜻이다.


▲교회는 ‘나그네의 무덤’이다.

그런데 사도행전 20장에 가면,

바울이 예수님의 피값으로 산 것이 ‘교회다’ 라고 말씀한다.


행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자기 피로 사신 것이.. 교회라고 말한다.


마27:7에, 예수님의 피값으로 제사장들이 사 놓은 것이 나그네의 무덤, 피밭이었다.

그런데 행20:28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은 교회라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교회=나그네의 무덤이 된다.

둘 다 예수님의 피로 산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나그네의 무덤’이다. 무슨 뜻인가?

-나그네로 사는 것이 성도의 정체성인데,

-거기에다 더하여,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성도의 정체성이다.

-그 예를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삶으로, 몸으로 보여주셨다.


그래서 진짜 교회는 ‘성도의 무덤’이 된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목적으로 모이지 않는다.


이 세상의 나그네들이 마치 코끼리들이 자기들의 무덤을 찾아가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찾아와서, 모여들어, 거기에 묻히는 장소이다.


육적 자아가 교회 안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교회는,

육신의 정욕이 묻히는 곳이고,

안목의 정욕이 묻히는 곳이고,

의인들의 피가 (핍박 받아서) 줄줄 흐르는 곳이다.


예전에는 자기가 괜찮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복음을 듣고 나니까,

자기가 죄인 중의 괴수임을 깨닫는다.


좌우에 양날 선 검이 나를 뚫고 들어와서, 나를 수시로 찌르니까

피가 철철 흐른다. 그래서 피밭이다. (예수님의 피가 흐른 밭이지, 가룟 유다의 피는 아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전해지는 설교는,

성도의 육적 자아를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데 도구로 사용되는 게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여 그들을 위로해 주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죽이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설교는 아파야 한다.


▲교회는 사람의 need를 채워주는 곳이기 이전에,

여러분, 오늘날도 수많은 목사들이 안수를 받고, 교회를 개척하는데,

사업하는 사람들은 개업하기 전에 보통은 시장조사를 한다.

만약 그런 방식으로 목회자들이 시장조사를 해 보면,

세상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뻔하다. 그것은 ‘현세적 복’이다.


그러면 요만큼이라도 뭘 아는 사람은,

그 수요자가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켜주어야, 거기에 사람이 모인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 그러한 수요자들의 욕구가 뭔지, 필요 need 가 뭔지 아는 똑똑한 사람들이,

'복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의 자존심들을 확 살려주는 얘기를 해야 한다. (자존심이 죽는 것이 성경적인데)

긍정의 힘을 말하면서

‘다 잘 될 거야, 헌금만 열심히 하고 봉사만 열심히 해 몇 배로 늘어 날거야!

그래도 안 되면 내게 축복권이 있으니까, 안수해 드릴께!’

그런 식으로 얘기할 것이다.


▲교회는 ‘나그네의 무덤’이다.

교회는 성도의 육적 자아가, 땅속 깊이 계속 묻히는 무덤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의 피값으로 사신 곳이다.

거기서 성도는, 예수님이 피를 흘리신 것처럼, 자아가 죽는 피를 흘리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 그 어떤 방식도 다 소용없는 거네요.

당신의 나라 임하실 때, 나를 좀 기억해 주세요, 하나님의 의를 제게 덧입혀 주세요!’

이 절대의존을 고백하는 자로 지어져 간다.


이게 성도의 죽음이요, 무덤이다. 그게 피밭이다.

그런데 거기에 진짜 쉼이 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예수님께로 오라고 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주님이 주시는 쉼은?


..........................................

 

 

★ <하나님의 의> 관련 설교 중간 정리 

 

1. 아브라함, 예수님의 예표

 

2. 세상에서 심판 받고, 최후 심판 면한다

 

3. 아벨의 증거, 의인의 증거

 

4. 재림 예수에게로 달려가시라

 

5. 나그네의 무덤

 

6. 주님이 주시는 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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