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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은혜의 중간 과정

LNCK 2011. 12. 2. 11:11

 

◈하나님의 사랑, 은혜의 중간 과정   창12:1~5      설교스크랩, 축약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이런 말을 쉽게 하고, 또한 쉽게 믿지만

예, 결과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과정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피눈물 납니다. 



◑아담의 본성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가혹한 명령 ‘네 근본을 떠나라’

노아를 찾아오신 하나님은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고,   주1)

아브람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다른 주문을 하시는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합니다.


무슨 이런 하나님이 다 있는가요?

아니 잘 살고 있는 사람을 무작정 떠나라니요!


누구 인생 망칠 일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일궈온 터전을 다 버리고 일가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니요!

이건 죽으라는 말입니다.


인정人情에 매여 살아가는 것이 인간일진데!

그런 인간에게 인정을 끊어버리라는 것은 죽으라는 말입니다. 이건 너무 합니다.


아브람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전혀 낯선 하나님입니다.

인간을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죽이시는 하나님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을 위해서 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하나님이 숨어 계시는 것이 인간들에겐 유익입니다.

차라리 찾아오고 나타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아니 인간을 찾아오면 반드시 끝장을 내는 하나님이니, 어찌 달갑게 맞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은 숨어 계신다는 것을 보았어요.

사 45: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 이시니이다”


숨어 계신 하나님은, 인간들의 원함이나 애씀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스스로가 계시(啓示)하여 주시지 않는 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는 요원합니다.(멉니다)

 

※차라리 하나님이 숨어계셔 주는 편이, 인간적 관점에서는, 더 낫다는것입니다.

   괜히 나타나셔서, 우리 삶을 휘저으시고, 괴롭히실 바에야.. (그러나 영생의 관점에선 다릅니다.)


이렇게 되면 아브람은 인간적으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은 셈입니다.

부모도 친척도 형제도 친구도 보지 못합니다. 영영 이별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야속합니다.

아브람 입장에선 얼마든지 원망 할 수가 있습니다.

왜 많고 많은 사람들을 내 버려두시고, 날 찾아 왔단 말입니까?


지금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라고 섬기는 분이.. 바로 이런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시면.. 우리 인생을 끝장내시는 분입니다.


교회에서 종종 말하는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란 말은,

그 개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혹하리만큼 혹독한 시련과 연단을 거쳐서.. 결국 구원을 이루어 주시니까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시니까 좋으신 하나님’이란 뜻은.. 글쎄요, 오해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이란 말속에는

‘하나님은 끝짱 내시는 하나님’

‘망하게 하시는 하나님’ .. 이런 뜻이 숨어 있습니다. 빙산 아래의 얼음처럼.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께서 불러 주지 않으면,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불러 주지 않은 자는, 오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열심히 뛰어서 교회를 부흥시켜 놓았어요.

그리고 큰 성전(?)을 지어 놓았어요.

이제 내일이면 헌당식(?)을 한다고, 온 천지에 광고를 해 놓았습니다.


설레고 흥분되는 밤입니다.

내일이면 온 세상이, 이 정목사가 피 땀 흘려 일구어 놓은 교회를

세상에 알리는 날입니다. 벅찬 가슴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아! 내가 피 땀 흘려서 이루어 놓은 업적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가자!’ 그럽니다.

느낌이 좀 이상합니다. ‘어디로요?’


‘그동안 수고 했으니 죽으라고! 이제 천국에서 편히 쉬라니까!’

‘예~에? 무슨 그런 농담을 하십니까?’


‘넌 내 말이 농담으로 들리느냐!

난 네가 그동안 너무 수고를 해서, 이젠 쉬게 해 주려고 왔어!’


그러면 제가 뭐라고 할까요?

아마도 저는 ‘하나님 미쳤습니까?’ 라고 할 것입니다.


‘아니 지금까지 죽을둥 살둥 하면서, 교회를 부흥시켜 놓았는데

이제 와서 죽으라니요? 이건 너무 억울합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 당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에 저는 늘 이런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이라도 하나님이 오셔서

‘정목사 그 동안 수고 많았다! 이제 그만 가자!’ 라고 하실 때를 소망하고 삽니다.


암튼 어느 시대이고,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오셨다는 것은, 곧 종말을 말합니다.

인생 종 쳤다는 뜻입니다.


노아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이나, 아브람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지금까지 지켜왔던 자기 기득권을 다 버리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인간을 망하게 하는 하나님입니다.


이런 하나님은.. 인간은 싫어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봅시다.


왜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을까요?

그냥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가요?

왜 꼭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합니까?


이는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 속에는

신앙생활의 본질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좇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떠나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 말씀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의 근본(根本)을 버리는 일입니다.

근본을 버리는 일은.. 곧 아담 안에서 태어난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 있는 나는 가짜에요.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지 않고 죄인의 형상이 담겨져 있어요.

이 아담 안의 나는 죽어야 할 나이고, 떠나야 할 나입니다.


▲떠나지 않으면.. 자기 중심으로 신앙생활 합니다.

아담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요.(기복주의)

왜냐하면, 아담 안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이해하기 때문이에요.


아담 안에 있는 나는.. 오직 나 밖에 몰라요.

하나님도.. 나를 위한 하나님이고,

부모도.. 나를 위한 부모이고,


자식도.. 나를 위한 자식이고,

친척도 친구도.. 모두가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자들이에요.


옛 사람 아담 안에선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존재케 하려고 해요.

죄인의 본성은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 자아의 죽음을 싫어해요.


그래서 부모도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친척도, 이웃도, 형제도,

심지어 아내나 자식까지도 나를 위하여 존재하기를 위하여 이용을 해요.


연애할 때 당신 없으면 못산다고 해 놓고도.. 막상 결혼해 보세요.

자기를 힘들게 하면.. 내가 왜 이 인간하고 결혼을 했던가?

후회하지요.


왜 이런 생각들이 듭니까?

자기중심적으로, 애인을 사랑해서,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속을 뒤집어 보면, 결국은 ‘자기 사랑’이지요. 거기에 애인을 희생시킨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본토 친척, 옛 사람을 떠나지 않은) 인간이란..

남을 배려하고 살만큼 너그러운 존재가 아니에요.


다 아집 덩어리입니다.

자기 욕심을 위해서 사랑한다고 하는 겁니다.


자신을 불편하고 힘들게 하면.. 가까운 이웃도 다 죽이고 싶어요.

이게 인간이에요.


내 속의 죄가.. 나를 힘들고 불편하게 하는 자는.. 모두 적으로 간주하도록 하기 때문이에요.

다 자기 중심적이요, 자기 사랑이지요. (그리스도 중심적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니 나의 근본으로부터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가 없어요.

나의 근본으로부터 떠남이 없으면.. 하나님도 이용대상이에요.

결국 신앙생활 하면서도 우상숭배로 흐르게 되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인정사정없이 근본을 끊어버리라고 하시는 겁니다.

신약적 표현으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거기서 자아를 죽이고)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너를 낳아준 고향으로부터 떠나라는 겁니다.

너를 위하여 살지 않는.. 그런 세상으로 가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근본이 아닌 새로운 근본으로 만들고자 하심입니다.

그래서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오자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꿔 주는 겁니다.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이란 말입니다.

넌 이제부터 옛 사람이 아니고, 이제부터 새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옛 사람 아브람은 자신을 위하여 살았지만,

새 사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하나님의 나라/구원 역사를 위해서 사용되어지는 도구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자기를 비우고 버리는 삶을 살도록 이끄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찾아오시면.. 근본을 바꾸는 일을 단행 하십니다.

옛 아브람의 근본은 아담이라면.. 새 아브라함의 근본은 하나님입니다.

새로운 근본이 되려면.. 옛 근본으로부터 떠나야 해요.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려면.. 아담 안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곧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어, 성공하고, 만사형통 하겠다는 신자에게는

이런 사실이, 전혀 자기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들으면 콧방귀만 뀝니다.


 

◑‘아브람이 떠난 것’을 이제 신약적으로 이해해 봅시다.


마귀로부터 떠나고, 율법으로부터 떠나는 것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했지요.

그럼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것은

영적으론 마귀로부터 떠나는 것이 됩니다.


마귀는, 선악과를 먹게 해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지요.

그럼 이 시대 선악과는 무었입니까?

 

율법의 의(義)이지요.


유대인들이 왜? 망했습니까?

율법에 의(義)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 율법 외에 한 의를 주셨잖아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이지요.


이렇게 되면 율법은 선악과가 되지요.

율법은 정죄하고 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율법을 붙잡으면 죽는 겁니다.

마귀는 율법으로 정죄해서.. 사망으로 끌고 가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선 두 법이 있습니다.

        선악의 법(율법)생명의 법(복음)입니다.


선악의 법 아래선 죽고, 생명의 법 아래선 영생을 합니다.

선악의 법에서 떠나면 어디로 갑니까?

생명의 법으로 가지요.


그럼 선악의 법 즉 율법은

우리가 떠나야할 본토친척 아비 집이 되는 것이지요.


신약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옛 언약에서 나와 새 언약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서 나와서, 은혜(의 법)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떠남은.. 십자가에 죽는 것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유대교의 율법 신앙에서 빼낸 것은

12제자들은 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12제자들 속엔, 우리 성도들도 포함이 되어 있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교회를 부흥시키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복음으로 믿어지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야 하는 아픔을 당합니다.


십자가도 전하고,

세상에서 영광 받고 살겠다는 것을 용인 하지 않아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을, 감상주의로 생각하지 마세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 달랑 믿고 떠나는 것이란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한 걸음 한 걸음이 눈물이고 한숨이었어요.

아쉬움과 미련을 다 버리고 떠나는 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자 하지 않으면.. 십자가는 전하지 못해요.

성령이 그렇게 몰고 가십니다.


우리가 싫다고 하여도 그렇게 몰아갑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말이.. 헛소리가 아니에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니까요.


하나님이 일으켜요.

고난 속으로 밀어 넣어요.


오직 십자가만 증거해 보세요.

원수가 누구인지 금방 드러나요.


아내 일수도 있고, 자식일수도 있고, 부모 형제일수도 있어요.

가장 친한 친구일수도 있어요.


전 십자가를 증거하고 난후, 모든 친구들을 잃었어요.

과거 율법 아래서 알고 지내던 동역자들과도, 다 헤어졌어요.


그런데 십자가 안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해 주었어요.

그러니 십자가를 전하면 기존에 알던 사람들과 헤어진다고 각오하셔야 해요.


옛 언약과 새 언약은 접점이 없어요.

서로가 밀어내요.

그러니 자연히 원수가 되는 겁니다.

 

.........................

 

 

주1) 노아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남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하자 죄인과의 단절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범죄한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좇아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인간들 앞에서 숨어 버리신 겁니다.


그러던 하나님이 노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찾아 온 것을 일컬어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노아가 아는 하나님과,

일반 사람들이 아는 하나님은 다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심판이란? 끝내겠다는 말입니다.

두 쪽으로 갈라내고 구분하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심판 속에서 구원해 주시고자 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짓도록 합니다.


이렇게 되면 방주와 세상은 다른 영역이 되고 맙니다.

방주 안은 생명의 영역이고, 방주 밖은 죽음이 영역입니다.


노아에게 있어 방주는 새로운 땅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는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죽음의 땅에서

죽음이 없는 곳으로 거처를 옮겨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노아는

자기가 태어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셈입니다.


노아는 죽음의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자기가 태어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도록 하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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