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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의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

LNCK 2011. 12. 7. 12:01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 - YouTube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     마25:42~46     11.11.06.설교녹취

 

◑주님의 동일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설교는 (마태복음에 의하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벌어질 일을 가르치셨다.

 

그때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때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 마25:31~33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과 염소의 두 그룹으로 나누는 ‘기준’이다.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여러분, 주님의 마태복음에서 마지막 육성 설교는 이 말씀 후에 체포되어 십자가 지셨다.

예수님은, 자기 목회 성공을 좌우할 만한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킹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만약 오늘날 내가, 마지막 설교를 하고,

내 자녀들과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남긴다면

‘너희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해라’고 할 것 같은데..

예수님은 그 반대의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라고 하셨다.

 

즉 예수님은, 사람들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만한, 거의 무관심하고 소홀한

‘여기 너희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시면서 :40

그들과 네트워킹 할 것을 부탁하셨다. - 이것이 주님의 마지막 설교/부탁이었다.

 

       ▲주님의 동일시 Identification

주님은 이 땅을 떠나시면서, 왕위를 가지고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이 땅에서 권세자, 부자들과의 네트워킹을 만들고,

이 땅의 유명인사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신 것이 아니라,

 

(보통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지체 높은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원하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그런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다.  ←하이라이트

 

즉 예수님은, 그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 되신 분이,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벗은 자, 병든 자, 갇힌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 하셨다.

 

동일시 했다는 것은.. 내가 그런 낮은 자이니까..

그런 낮은 자에게 베푼 것이.. 곧 내게 베푼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사람들 속에 가장 작은 자들과 동일시 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게 잘 대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과 동일시하기 원한다. 하다못해 사진이라도 옆에서 같이 찍기 원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주님은 ‘가장 낮은 사람들’ 옆에서, 같이 사진 찍기 원하셨던 것이다.

주님은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시고,

‘그들에게 대우한 것이, 곧 나에게 대우한 것이다’고 가르치셨다.

 

▲의인들이, 예수님을 대접한 것을, 기억하지 못한 이유

그런데 의인들은 ‘자기들이 주님께 먹을 것을 드리고,

주님이 병들었을 때 돌아본 것을.. 전혀 기억해 내지 못했다.’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즉, 의인들은, 자기들이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베풀었기 때문이다.

그 ‘지극히 작은 자들’이

예수님과 동일시 된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죄인들이, 자기들이 예수님을 대접했다고 항변한 이유

이건 ‘염소들’로 분류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이 목마르신 것을 보고, 주리신 것을 보고

분명히 예수님을 대접했다고 항변했다.

 

마25: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자기들은 ‘분명히 했다’고 항변하는데,

예수님은 ‘분명히 안 했다’고 심판하신다.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종합하면 이렇다.

‘염소’로 분류된 사람들이 ‘예수님께 했다’는 것은..

<구제와 봉사를 하기는 했지만,

여러 유명 인사들이나, 자기 이름 내는데 했다>는 것이고,

그런데 이건 결국 자기를 위해, 자기 명예와 이름을 내기위한, 봉사와 헌신이었다.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너희들은 안 했다’고 판결하신 것은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안 했다>는 것이다.

이건 봉사와 헌신과 구제를 해도.. 티가 안 난다. 자기 이름 낼 일도 별로 없다.

 

 

◑‘내 구원’과 관련되는 심각한 문제

 

▲마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본문이 심각한 것은.. 내 구원에 연관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현대 교회의 구원받았다는 사람들의 확신이 흔들릴 수 있다.

 

단순히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런 구절을 읽으면, 흔들리는 것이다.

 

여러분, 너무 신학적 전제를 갖고서 성경을 읽지 마시고,

그냥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겸허하게 수용하시면 된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영광중에 다시 오실 때, 우리를 심판하시는데,

너희는 롬1:17~18을 믿느냐?

너희가 요3:16과 요5:24을 믿느냐?

그런 신앙고백을 물어보지 않으시고..

 

주님은 시험문제를 미리 다 가르쳐 주셨다.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아니, 시험문제를 미리 다 가르쳐 주셨는데도

틀리는 사람은.. 그건 할 수 없다. 빼도 박도 못한다.

 

우리들은 이 마지막 말씀에 주의해야 한다.

이것으로 내 구원이 갈리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 병든 자, 감옥에 갇힌 자들에게

그 예수님께 행한 나의 행동에 따라.. 내 구원이 갈린다.

양과 염소로.. 각각 분류되는 것이다.

 

▲질문/ 그럼 우편 강도가 십자가 위에서 믿고 구원 받은 것은 뭔가요?

우편 강도는 평생 나쁜 짓을 하며 살다가, 어떤 분은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그는 십자가 위에서 ‘인스턴트로’ 주님을 영접함으로.. 입술의 고백으로만 구원 받지 않았는가!

 

그래서 누구든지 인스턴트로 주님을 영접해도 구원 받는데..

왜 당신은 마25장 본문을 거론하면서

‘쉬운 구원’을 ‘어려운 구원’으로.. 괜히 사람들 겁주는 것 아니냐?

라고 따질 수 있다.

 

여러분, 성경에 ‘십자가에서 우편 강도 구원’ 사건이 기록된 목적은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인스턴트로 구원 받을 수 있다’가 그 기록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기 까지, 그 최후의 순간까지

죄인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인스턴트로 입술로만 고백해도 구원 받는다” - 이것이 그 사건의 포인트가 아니다.

 

▲마25장의 본문은,

예수님은 죽으시기 전에, 구원에 대한 교리를 설명하신 것이 아니라,

그 구원 받은 자의 삶의 증거를 가르치셨다.

그것은 가난하고, 병든 자를.. 평소에 돌아보는 것이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내가 뭐 성공하고, 크게 출세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라.

‘하나님의 시키시는 일’을 감당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자녀는 부모님이 시키시는 일을 순종하는 자니까!

 

‘하나님의 시키시는 일’이란.. 본문에 의하면,

병든 자, 갇힌 자, 굶주린 자들을 돌아보는 일이다.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사람만이.. ‘영접한 자’라는 증거요,

그들만이.. 영생에 들어간다.

 

▲구원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지 마시라.

현대교회의 거짓 교리는.. 남이 어떻게 되든 말든.. 나는 아무 관심도 없고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 얻고, 세상 축복도 받고.. 이렇게 이기적이다.

 

사람이 ‘자기중심적’이 안 될 수는 없지만

구원과 복음의 영역에 있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중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믿는 것은

그것은 ‘잘못된 복음’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중심적’ 복음을 믿는 미혹된 사람들은

복음이나 말씀가운데 ‘타인중심적’인 내용이 나오면.. 건너뛰어 버린다.

 

여러분과 제가 진정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셨다면,

그것은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 증명되어진다.

 

▲아울러, 교도소 선교, 병원 선교, 구제사역을.. 특수사역으로 분류하지 마시라.

보통 교회에서는 ‘교도소 선교, 병원 선교’를 특수사역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서 보는 바

교도소 선교, 병원 선교는.. 일반사역이다.

즉 교회가 누구나 일상적으로 늘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길을 잃은 소’를 돌볼 책임은.. 그 목격자

 

▲출23:4~5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만약에 내 원수의 소, 나귀가 웅덩이에 빠진 것을 보거든, 또는 길을 잃은 것을 보면,

우리는 ‘그것 참 고소하다. 잘 되었다.’고 속이 시원해 할 것이다.

‘그게 아주 내게 해코지 하더니만, 네 나귀 때문에 고생 좀 하겠다’며 기뻐할 것이다.

 

원수의 길 잃어버린 소, 나귀는

그 나귀 주인인 원수에게 - 그 책임을 묻지 않으시고,

‘네가 보거든’ - ‘그 장면을 본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물으신다.

 

탈북자들의 삶을, 그들을 방치한 북한 당국에 묻지 않으시고,

주님은 그들을 보고도 돕지 않는 우리에게 물으신다는 것이다.

 

세상에 먹을 게 없어서, 일각에서 휴먼을 먹는다는 ‘소문’이 도는 북한 사람들,

 

그들이 남한에 내려와서 가장 듣기 힘든 말은

‘얘야, 살찔까봐 염려되니, 밥을 그만 먹어라!’는 말이라고 한다.

 

북한에는 엄마가 주고 싶어도, 먹일 밥이 없는데,

남한에는 ‘살찔까봐 그만 먹으라’는 그 말이.. 듣기가 쉽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질적인 남한과 북한이

어떻게 쉽게 통일이 일어나겠는가?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바라신다.

 

잠언 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과도하게’라는 단어는, ‘필요 이상으로’라는 말이다.

우리가 검소하게 살아야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아껴도.. 가난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11:1~2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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