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11.08.21.설교일부녹취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시제가 현재
우리 성경에 ‘확증하셨느니라’는 시제는 ‘과거형’이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에 보면, ‘확증하신다’로 ‘현재형’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과거형으로 번역하면, ‘과거에 한 번 하나님이 그 사랑을 확증하셨는데..’
현재형으로 번역할 경우 ‘지금 현재도 계속 그 사랑을 확증하고 계신다’가 된다.
확증하다는 말은.. demonstrate.. (공개적으로) 나타내 보여준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우리 죄인들을
과거에도 용서하셨고,
지금 현재에도 용서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계속 용서하실 것이다.
오늘 현재라는 말은, 사실은 과거, 현재, 미래를 다 포함한다.
왜냐하면 ‘현재’는 어제도 그 날의 현재였고, 오늘도 현재이며, 내일 또 현재가 될 것이니까!
어쨌든 본문은,
2011년 12월 오늘 현재도, 예수님은, 그 사랑을, 그 용서를
계속 나타내 보여주고 계신다는 뜻이다.
인간의 연약함으로 또 넘어지고, 쓰러질 때가 있어도,
어쨌거나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신다.
여러분,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을..
2천년 과거 사건으로만 국한하지 마시라.
본문을 기록한 사도바울이 ‘확증하셨느니라’에서 ‘현재 시제’를 사용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이.. 매 순간마다 현재적으로 계속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복음은 항상 현재적이다.
우리는 은연중에, 복음은 ‘2천년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
즉 과거적인 사건으로 여긴다.
물론 그 말은 맞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복음은 항상 현재적이다.
우리는 2천년 과거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그 용서와 사랑은,
오늘도 -2천 년 전과 똑같이 그대로- 역사하고 있음을 믿는다.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용서하신 그 예수님이
오늘도 똑같이
2011년에도 똑같은 사랑으로,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항상 현재적인 용서/사랑/능력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현재적 복음’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똑같은 능력으로 계속될 것이다.
▲직장 생활을 버티게 하는.. 하나님의 (현재적) 사랑
제가 지난 32년 동안 한 도시에서 계속 목회해 온 것은,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계속적으로 내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여러분, 직장 생활이 얼마나 힘드신가?
셀러리맨은 셀러리맨이라서 힘들고,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라서 힘들다.
날마다 직장 생활의 짐이.. 내 머리를 무겁게 지끈거리게 한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현재, 오늘에도 똑같이 계속됨을 믿으시기 바란다.
내가 주님의 그 사랑을 못 느껴서 그렇지,
날마다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오래도록 묵상할 때
주님의 사랑이.. 강물처럼 나를 감싼다.
그 사랑을 오늘 현재 느끼는 사람만이..
직장생활의 무거운 짐을 이겨내는.. 힘을 얻게 된다.
그 사랑을 오늘 현재 느끼지 못하면..
저는 지난 32년의 목회를 감당해 오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분, 저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다. 지난 32년 동안 수많은 어려움과 말 못할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제가 크게 (여러분 앞에서) 불평 안 하고,
제 어려움을 겉으로 내색 안 하고,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끊임없이 나를 이끌어 주셨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괴롭고/어렵고/수 십 번 포기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강권하시는 사람은.. 또 그 파도를 타고 넘는 힘이 생긴다.
여러분도, 저처럼 32년을, 한결같이 소명(직업)에 종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고, 나에게 나타내 주실 때.. 반드시 그렇다!
그러므로 날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오래 묵상해 보시라. ☞ 날마다 십자가를 보라
본문 롬5:8을 암송하면서 묵상하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다.
‘확증하신다’ .. 오늘 현재도.. 하나님의 사랑은 demonstrate(확증) 되어지고 있다!
▲세상을 이기면서 삽시다!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여러분, 요즘 사람들은 보통은 ‘세상에 짓눌려’ 살아간다.
과학과 문명의 이기利器는 점점 더 발달해 간다고 하는데,
어째서인지 오늘날 현대인들은,
대부분 ‘세상에 눌려서’ 살아가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잘 쓰는 말이 ‘제 코가 석 자’라는 말이다.
자기 한 몸 유지하기도, 자기 한 인생 지탱하기도.. 쉽지 않다는 말이다.
아무리 일류대학을 나오고, 아무리 훌륭한 직장을 갖고 있어도,
가족 형제를 돌아보고, 이웃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질 만큼.. 여유가 눈꼽만큼도 없는 것이다.
모두 다 그렇게 살아가니까, 그게 정상인 것 같지만.. 여러분 그렇지 않다.
그게 다 세상에 져서, 세파에 허덕이며 살아간다는.. 증거이다.
위 말씀에, 믿음으로, 성도는, 세상을 이긴다고 했다.
그 해석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유를 갖고 산다’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자기 삶에 여유가 있으니까,
-병든 친척도.. 돌아볼 마음이 생기고,
-안 믿는 친구도.. 찾아서 만나서 대화를 들어줄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교회 봉사도 할 여유가 생긴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즉,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그 증거가 나타나는데,
자기 삶에 여유가 생기니까.. 슬슬 자기 주위를 돌아보는 것이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가?
날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오래 묵상해 보시라. ☞ 날마다 십자가를 보라
▲모욕과 무시당함도 이기게 하신다.
사람이 참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모욕, 멸시, 무시당함이다.
그래서 잠을 못 자고 부들부들 떨기도 한다.
그런데 ‘주님이 자기를 사랑하심’을 믿는 사람은,
그 ‘모욕 받음’을 주님과 의논한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주님과 기도로 상의한다.
그러면 그런 일을 극복한 성도들은, 보통 자기 경험을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먼저는, ‘네 속에 내가 당한다’는 내적 음성이다.
'주님이 자기 속에서 지금 모욕을 당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 때.. 이상하게 위로가 온다.
그래서 그 모욕을 극복할 내공이 생긴다.
2) 다음으로, ‘주님은 내 인격을 성숙시키기 원하신다’는 깨달음이다.
주님이 나에게 뭔가 가르쳐 주시고, 나를 제자 양육 시켜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모욕이라는 것이다.
(그 원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 대적이 재수 없게 그 일/내 인격 훈련에 사용된 것이다.)
그 가운데 내가 고쳐야 할 점도, 즉 나의 잘못도 들어있다. 내 원인 제공도 일부 있다.
이래 저래, 주님을 믿는 사람은.. 모욕을 이겨내지만,
그러나 주님을 진실로 믿지 못하면.. 그 모욕 때문에.. 과도하게 대응하여
결국 자기 사명/직장을 그르치게 된다. 결과적으로 마귀가 승리하게 된다.
3) 성도는 부활의 능력을 믿는다.
아무리 내가 지금 억울하고, 모욕적인 일을 당해도,
예수님이 그보다 더한 일을 당하시고, 그것도 죄인인 나를 위하여 모욕을 당하셨다.
그리고 당당히 부활하셨듯이,
하나님의 공의가, 나를 반드시 부활시키실 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혹시 내가 잘못해서 내가 당하는, 모욕과 수치라면.. 그건 달게 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 모욕으로 인하여, 내가 회개하게 된다면, 나중에 최후심판을 면할 것이니
(먼저 매를 맞는 것이 좋듯이) 그것도 결국에는 다 좋은 것이요, 유익인 것이다.
▲내가 먼저 찾아가서 용서하는(또는 용서를 구하는) 능력
여러분 본문을 가만히 보시라.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내가 주님께 용서를 구하기도 전에,
예수님이 먼저 나를 찾아오셔서, 나를 용서하시고, 그 사랑을 확증하셨다.
예수님은, 죄인인 내가 아직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을 때에,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용서의 손을 내게 내밀어 주셨다.
그 높으신 하나님이요, 의인 되신 분이.. 이 낮고 낮은 땅에, 이 죄인에게 찾아와 주셨다.
그래서 용서받고, 사랑받고, 구원 받은 사람(나)은,
똑같은 일을 하게 되어 있다.
즉, 내가 먼저 찾아가서, 그에게 용서의 손을 내 민다.
‘지가 잘못했으니, 지가 내게 찾아와서 용서를 싹싹 빌면.. 내가 용서해 주겠다’
그것도 잘하는 것이지만,
정말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에 감동한 사람은,
내가 찾아가서, 그에게 화해하고, 내가 먼저 용서(혹은 화해)의 손을 내미는 사람이다.
내 실력으로는 그렇게 못한다 하더라도,
주님의 사랑이 나를 먼저 찾아오셔서 용서하신 것을 생각하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참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다.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이 나를.. 중간에 포기하셨더라면.. 나는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끊임없이 넘어지고, 배반해도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의 사랑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하셨다.
그렇다면 그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받은 내가,
어떤 사람을 보고 쉽게 포기해 버린다면..
그것은.. 내 인격이 이율배반적이거나,
아니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맙시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느냐 (어떻게 포기하지 않으셨느냐)를 생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란다.
▲사랑만이 변화시킨다.
많은 교육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진정한 변화는.. 억압, 훈육, 강요, 힘에 의해서가 아니요,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그의 인격이 근본적으로 변화된다.
노골적으로 딱 깨놓고 얘기해 보자.
나의 진정한 사랑에 의해.. 그의 인격이 감화를 받아, 변화된 사람이.. 지금껏 몇 명인가?
약간 바꾸어서, 다른 각도로 질문하면,
‘나의 제자가 몇 명인가?’
‘나를 진정한 스승으로, 자기 인생에 큰 감동을 준 은인으로 여기는 자가 몇 명인가?’
만약 한 명도 없다면.. 내가 오늘까지 내 인생을 헛 살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을.. 단 한 사람에게도 나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타내었다면, 그가 나를, 자기 스승과 은인으로 여길 것이다.)
아무리 내 사회적 직책이 높아도,
아무리 내 역량과 인지도가 광범위해도,
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평생에) 단 한 사람도 없다면..
오늘부터 우리는 인생을 다시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형식적으로 예수님을 믿어왔다는 증거이며 아무리 직분자라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단 한 명도 제대로 전도, 제자양육 못했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나아가, 나는 아직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사실 그렇게 인생을 허무하게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죽을 때.. 후회하며 죽는 것이다.
오늘도 내가 주님께 사랑을 받은 만큼..
내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면서 삽시다. 결코 포기하지 말고!
주님이 오늘 현재도, 나에게 그 사랑을 확증하고 계시니..
나도 그 받은 사랑을, 오늘 현재에, 내 주위 사람들에게 흘러 보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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