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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나귀의 사춘기

LNCK 2011. 12. 23. 09:00

◈한 마리 나귀의 사춘기           민22:1~40        07.08.28.설교스크랩, 출처

 

 

발람이 가는 길을, 나귀가 방해하는 본문을 두고서

이 설교의 제목을 <한 마리 나귀의 사춘기>라고 말을 정했어요.

 

그 나귀가.. 사춘기를 지나는 우리 자녀에 비유된다는 것입니다.

 

그 나귀를, 우리 자녀로 해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로, 비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

 

▶1. 이제까지 말을 잘 듣던 나귀, 말썽을 한 번도 피우지 않던 나귀가

갑자기 길을 벗어납니다.

천사가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러자 발람은, 채찍으로 나귀를 때렸습니다.

그런데도 나귀가 또 말을 안 들어요.

 

나귀가 피해서 다른 길로 가려고 보니까,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또 천사(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들고 서 있습니다.

나귀가 멈추었겠지요.

 

발람은 또 한 번 채찍으로 막 때렸습니다. 

나중엔 어떻게 하느냐?

그 좁은 길 좌우에 담벼락이 있었는데

나귀가 발람의 발을 그 담벼락에 갖다대고 막 비벼댑니다.

그래서 발람이 나귀에서 내려서는, 화가 나서 지팡이로 휘둘러 패버립니다.

 

마치 꼭 여러분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정말 지지리도 말을 안 듣는

우리들의 자녀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그 동안 말을 잘 들었는데.. 사춘기가 되니까..

 

사춘기가 여러분 뭡니까?

가정과 부모의 지배로부터 '해방'을 선언하고 '자립'을 생각하면서

갈등하고 반항하고 대립하는 시기 아닙니까?

 

그리고 이 부모와 가정의 어떤 소속감을 벗어나서

친구의 소속감을 찾고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며

이성에게서 소속감을 찾으려고 하는

그래서 멋도 부리게 되고 하는 게 사춘기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아주 중요한 의미가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사춘기’라고 하는 것이

부모와 가정의 지배력으로부터 독립하고, 스스로 해방되려고 하는

그러한 마음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것이.. 가장 특징적인 시기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 이 발람과 나귀의 사건은

아주 우리 인생의 전반에 걸쳐서 너무나도 치명적이고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자, 이스라엘 선민을 저주하기 위해서 요청한 발락의 명을 받고 가는

이 발람의 길은 패역한 길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천사를 보내셔서, 하나님이 칼을 들고 막으시게 됩니다.

 

이때 이 발람은, 

천사가 자기 길이 악하므로 막고 있다는 사실을 못 보게 되고

나귀만 그 길을 보게 되는 거예요.

 

자, 이 장면을 생각하면서

이것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우리가 한 번 비유적으로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기른다 할 때, 자녀를 위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우리가 기른다고 하는 게,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기르고 있습니까?

 

자녀를 나귀처럼 타고 있는 것이에요.

결국 우리가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자녀를 양육한다고 하는 것이, 백이면 백 어떤 마음가짐이냐 하면

발람이 나귀를 이끌어가듯이

자기가 원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길로, 자녀를 몰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길을 정하고, 내가 원하는 길로.. 자녀를 몰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녀를 몰아갈 때에, 자녀에 사춘기가 임하면서

자녀가 내가 몰아가는 길로 가지를 않고, 그 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벗어날 뿐만 아니라, 본문에 발람이 나귀에 탔다가

나귀가 발람의 발을 담벼락에 비벼대면서 발에 통증을 느끼게 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계속 강제로 몰아가면)

그렇게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 입힐 정도까지

나귀인 자녀들이 그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이게 사춘기에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춘기에 중고등학교 다니는 자녀를 길러보지 않는 엄마는

자녀 양육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 자녀가 공부에는 관심 없고,

멋 내고, 부모에게 대항하고 대립하고 갈등하기 시작하면.. 속수무책 아닙니까?

 

근데 왜 괴롭습니까? 지금 발람의 마음과 똑같은 거예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요게 바른 길인데 그 길에서 지금 벗어나고 있는 겁니다.

 

근데 이 나귀를 타고 있는 발람과, 하나님의 관점을 한번 보시라는 거예요.

분명히 발람은 요 길이 맞는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나귀가 벗어나니까, 발람이 나귀를 두들겨 패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이 발람이 정해서 가는 이 길이

사악한 길이고 패역한 길입니다.

 

그래서 그 길을 막고 있는 거예요.

그 길을 막고 있는 것을 나귀가 보고 딴 길로 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막고 계신 길을 그것을 보면서, 나귀는 딴 길로 가고 있는데

이 발람은 계속해서 그 길로 안 간다고. 그 길로 가면 죽어요.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있습니다. 그 길로 가면 죽습니다.

근데 그 길로 계속 몰아가는 거예요.

(공동체도 마찬가지로, 누가 극렬하게 반대하면.. 한 번 재고해 보는 것이 현명합니다.)

 

여러분, 자녀의 사춘기를 어떻게 받아들이셔야 돼냐?

 

하나님이 막으시는 거예요.

내가 지금 자녀를 위해서 정해놓은 그 길이 사악한 길입니다. 패역한 길입니다.

그래서 막으시는 거예요.

 

사춘기라고 하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전혀 아니라는 거예요.

아이들이 부모에게 대항하고 반항하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더 부정적이고 더 못돼 먹고 패역한 게 뭐냐고요?

내가 내 자녀의 길을 정해놓고 나귀에 올라타듯이 올라타서

내 자녀를 내 뜻대로 몰아가는 것 이게 더 패역한 것이고, 이게 더 사악한 것이라는 겁니다.

 

왜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는 가운데

누구도 이런 식의 지배력을 발휘해서는 안 되는 것이에요. 이러면 큰 일 나는 겁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사춘기는 하나님의 섭리에요.

하나님의 섭리가 겉으로 드러난 실현되어지고 있는 상황인 겁니다.

 

무슨 섭리?

 

‘이제는 그만큼 했으면 너희 품 안의 자식으로

그만큼 내God가 시기를 정해서 너희 자식으로 양육하게 했으면 이제 됐다.

이제 내게로 돌려라. 이제 이 자식의 길은 내가 끌고 가는 것이지

네가 나귀에 올라타듯이 올라타서 걔를 몰고 가는 거

이제 그만 해라’ 라고 하는 섭리의 표현이 사춘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모가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겁니다. 그리고 자녀랑 싸우는 거예요.

발람이 나귀를 패듯이 말입니다.

 

‘이제 그만 하라 그럴 때 그만 해라. 더 오다가는 칼에 맞는다.’

이러고 길을 막고 기다리고 계셔서..

자녀들이 반항하며 공부를 안 하는 겁니다.

 

공부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맞물려서 공부를 해야지요.

 

여러분, 제가 그랬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공부를 하라고 그럴 때는

종교 경전들을 읽다가 완전히 포기하다가,

 

부모님이 공부 '공'字도 말씀 안 하실 때, 뒤늦게 공부에 불이 붙어서

그야말로 박사학위까지 공부를 한 겁니다. 끝까지 밀고 나간 거예요.

이러한 인생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에요.

 

▶2. 그럼 이 나귀의 사춘기, 아니 사춘기라는 말을 나귀에게도 붙였는데

인생살이에서 자녀에게만 사춘기라는 말을 붙이겠습니까? 아니에요.

모든 것에 다 불일 수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사업에도 사춘기가 있습니다. 잘 될 때가 있고, 못 될 때가 있어요.

근데 사업에, 내가 나귀처럼 올라타서, 이 길로 가야 된다,

내가 하는 일이 이 길로 가야 된다고 그러는데.. 사업이 그 길로 안 가요. 말을 안 들어요.

 

내가 아무리 지팡이로 때리고, 채찍으로 때리듯이 해서

내 사업을 내가 원하는 길로 끌고 가려고 하는데.. 안 갑니다.

사업이 나한테 반항합니다.

사업이 나와 갈등을 일으키고, 대립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왜 사업에 사춘기가 주어집니까?

내가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에요.

그 사업은, 하나님이 정하신 길이 있다는 겁니다.

 

나는 뭐하는 사람이냐? 그 ‘하나님의 길’을 실현해내는 사람이지

내가 사업을 올라타고, 내가 정한 길로 사업을 이끌어갈 수가 없다는 거예요.

사업을 하나님이 어떻게 이끌어 가실 것인가,

사업을 하나님이 어떻게 예비하고 계신 것인가.. 그것에 귀를 기울여야 된다는 겁니다.

 

▶3. 오늘 모압 왕이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면서

영적 세계의 질서에 영향력을 끼치려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건이 나귀 사건이에요.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영적인 세계를 지배하기는커녕

‘너는 이제까지 늘 타고 다니던 나귀조차 지배할 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발람에게 가르치고, 모압 왕 발락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고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랍니다.

 

▶4. 정리하면,

여러분! 인생살이가 모든 것에 사춘기가 숨어 있습니다.

인생살이 모든 일, 모든 과제, 모든 사업, 모든 인간관계, 자녀 문제 모든 것에

사춘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반항하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벗어나는 일들과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됩니다.

 

왜 사춘기가 생깁니까?

하나님이 지금 내가 가려고 하는 이 길을 막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길이 안 좋은 길이기 때문에, 패역한 길이기 때문에,

내가 마음대로 불신앙적으로 정한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칼을 들고 막고 계셔서 내가 하는 사업이 미리 알아보고

마치 발람의 노새가 하나님의 사자가 막고 있는 걸 보고 딴 길로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사업이 미리 알아보고 딴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칼에 죽습니다. 그래서 딴 길로 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인생살이에서 어떤 식으로든지 ‘사춘기’를 맞이하지 않습니까?

즉, 내가 관계하는 일, 내가 관계하는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자꾸 대립하려고 하고 갈등하려고 합니다. 이게 다 그들의 사춘기에요.

 

내가 관계하는 대상들의 사춘기라고 비유적으로 말할 수 있다면

이런 사춘기의 특징이 뭐냐? 해방과 자립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고,

나의 보호와 나의 어떤 관리로부터, 나의 통제로부터 자립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적 측면에서 이해하자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으로 찾아내시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내가 관계하는 일과 사람과 자녀들이 사춘기의 특징을 드러낼 때

반항하고 대립하고 갈등구조를 겪을 때.. 이때 불평할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서 자식이면 자식,

사업이면 사업에 대해서 당신의 권리 주장을 하시는 겁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내 뜻대로 안 가준다,

내가 몰아가는 방향으로 몰려가지를 않는다면.. 이건 감사할 일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리 주장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나보다 크신 분, 나보다 좋으신 분,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 그분이

‘당신 거’라고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는 기꺼이 하나님 앞에서, 내가 정한 길로 자녀나 사업들을 끌고 가려고 했던

나의 지배적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겁니다.

 

여러분, 니체가 정신이 돌아버렸어요.

초인(자기를 극복하고, 인간 능력을 극대화시킨 사람)의 권력과 의지를 부르짖다가...

그럴 수밖에 없어요.

인간 능력을 극대화해서 나아가면.. ‘칼에 맞아 죽습니다.’

 

의존하고 싶은 마음, 도움을 구하고 싶은 마음을 부인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생을 향해서 갖게 되는 모든 본능을 그대로 밀고 나가라는 거예요.

관철하라는 겁니다. 그러다 미쳐버렸어요.

그게 됩니까? 될 수가 없어요.

 

진짜 초인은, 어떤 게 초인이냐 하면

십자가에서 자기 자아를 죽이고,

자기 욕망과 자기 야망을 모두 죽이고,

마치 마리아처럼 ‘주의 말씀(뜻)이 내게 이루어지이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진짜 초인입니다.

 

이 민수기 22장 본문은,

권력의 의지, 내가 생각하려는 것을 관철하려고 하는 그 마음을 죽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들고 칠 것이다 라고 하는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일이 안 되잖아요? 기뻐하세요.

내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니까.. 그걸 인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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