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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2

조화로운 삶으로 인도하신다 / 정원

LNCK 2012. 1. 12. 10:13

 

◈조화로운 삶으로 인도하신다                   정원 목사님 글, 스크랩, 출처


 

1. 종류대로의 법칙 - 비슷한 것들은 서로 끌어당깁니다.

악한 이들은 악한 이들끼리 모이며 선한 이들은 선한 이들끼리 모입니다.

혈기가 많은 이들은 비슷하게 혈기가 많은 이들끼리 모이며

온유한 이들은 온유한 이들끼리 함께 모입니다.


세상의 헛된 욕망을 사랑하는 이들은 역시 비슷한 이들끼리 같이 모이며

주를 사모하는 이들은 비슷하게 주를 추구하는 이들끼리 모이고

서로 보고싶어 하고,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현재 내 심령 안에는 사람들을, 상황들을,

우리의 어떤 미래를 끌어당기는 어떤 요소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일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그것들을 발견해 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심령이 바뀌어져서

우리의 미래에 아름답고 풍성한 일만을 끌어당길 수 있게 될까요?


▲2. 우리는 날마다 무엇인가를 심으면서 살아갑니다.

그것은 오늘의 삶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건설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뿌리는 씨앗을.. 우리는 평생 동안 거두게 될 테니까요.


사랑을 심으면 사랑으로, 원망을 심으면 그대로

우리의 미래와 영원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심은 종류대로 거두게 되는 법칙,

이것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며

영원한 미래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법칙입니다.


그리고  이 법칙을 이해하고 악한 씨앗을 버리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씨앗을 심은 이들은

날마다 더 깊고 아름다운 풍성함을 경험하며

주님의 빛 가운데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3. 문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무조건 그것이 사라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그 어려움이 가르치는 것이 무엇이냐고,

우리가 무엇을 해결해야 하느냐고 주님께 물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고 거기에 순종하게 되면

우리는 그 문제가 곧 바로 사라지는 것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문제가 주님의 메시지이며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4. 조화로운 삶 -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은 아주 평화롭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 뜻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되어 움직입니다.


아무도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주님의 뜻에 자신을 드려 복종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에는 리듬이 있고 질서가 있으며 평화가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평화를 잃어버리고

쫓기고 불안하며 근심과 염려와 고통 중에서 사는 것은

주님의 질서를 벗어나 제멋대로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곧 타락이며 자아적이고, 육적인 삶입니다.


이상하게 일이 잘 될 것 같고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도

이상한 곳에서 일이 꼬이고 막히게 되는 일이 자꾸 생기는 것은

바로 조화가 깨어진 상태입니다.


‘고통’이란 삶의 모든 문제들은

그처럼 조화와 질서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평화와 질서와 조화 속에 다시 들어오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이며 가르치심입니다.


5. 형통과 곤고함의 리듬

환경은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고통은 주님의 가르치심입니다.

형통할 때에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곤고할 때에는 겸손히 낮아져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삶은 조화이며 인생은 리듬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배후에는 주님이 계시며

거기에는 리듬과 조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성장을 위하여 이것들을 우리의 삶 속에 계속 허용하십니다.

우리는 모든 삶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환경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영혼은 눈을 뜨며 좀더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빛과 영광의 세계를 향하여 한없이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6. 근원을 향하는 삶

영성발달의 초기 단계에서는 은사와 권능의 역사가 많이 나타납니다.

이 단계에서는 모든 것들이 대결의 구도입니다.

능력 대결, 권능 대결... 주로 이런 차원입니다.

그래서 마귀의 진을 부수고 저주를 끊고... 이런 것에 몰두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영이 성장하고 영혼의 실체에 대하여 가까워지면

더 이상 그러한 것들이 악이나 재앙이나 저주라기 보다는

우리의 성장을 위하여 조화롭게 존재하는 부분인 것을

우리는 인식하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어려운 환경과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별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발전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사람들에게 배반을 당하기도 하고, 믿었다가 속기도 하며

여러 아픔들을 겪게 되는 것이 시험의 과정입니다.


그 때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시험을 통하여

더 높은 학년에 진급하기도 하고

시험에 낙제하여 다시 동일한 시험을 치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일로 계속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7.심은 대로 거둠

우리의 영혼이 어려서 아직 잘 경험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영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결단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의 겉 사람이 모를 뿐이지 그의 속에서는 영혼이 고통하고 괴로워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지으신 이 우주는

자신이 심은 것의 일점일획도 어김없이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하기 때문에


자신이 심었던 불친절과 무례함과, 미움과 판단과 함부로 했던 말들은

때가 되면 그대로 자신이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 열매를 거두는 이들은 그래도 행복합니다.

그들은 반성하고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영혼이 그 짐에서 벗어나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영원한 곳에서 그 열매를 거두는 이들은

너무나 비참하며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8. 불편한 인간관계의 의미

왜 우리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도저히 우리의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을.. 계속 우리의 삶에서 접하게 될까요?


그것은 주님의 인도이며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을 계속 만나게 되는 이유는,

그리고 주님께서 그것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을 통해서 배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변화 받아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배우기 전까지는

아무리 그들을 피하여 도망을 쳐도 그들은 따라오게 되며

그들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니 더 심한 사람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문제는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안에 있는 것을 가르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우리의 시선에 문제가 있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9. 살아가면서 주님께 무엇인가를 배워나갈 수 있다는 사실만큼

행복하고 기쁜 것이 없습니다.


하나의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고통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무지하고 어리석고 또 고집이 세기 때문에, 시간과 마음을 많이 낭비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그러한 고집과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인도와 가르치심은 결코 중단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러한 주님의 가르치심을, 더 깊이 추구하며 사모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한 가지씩 깨닫고 적용이 될수록 우리는 천국과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예전에 알지 못했던 평화와 사랑,

통찰력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은 학교입니다.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기 위해서, 날마다 새롭게 배워 가는 학교입니다.


10. 영혼의 평화

오랫동안 나는 은사체험과 영혼의 체험이 다른 것이라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많이 설명하고 이야기해도,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두 가지를 다 경험하지 않고는

그 차이점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은사적인 경험은 대체로 뜨겁고 강하고 열정적입니다.

반면에 영혼의 경험은 부드럽고 깊고 자연스러우며 아름답습니다.

 

은사의 경험이 강력한 것이라면 영혼의 경험은 평화로움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태산 같은 폭풍우가 몰아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이며, 우주적인 평화입니다.


그런 상태이기 때문에 스데반과 같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이 나고 기쁨 가운데 승천하는 것입니다.


11. 만물에는 듣는 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비난이나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만물이 그것을 들으며 아름답지 않은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를 해야 하며 누구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항상 마음의 평화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할 때 주님은 우리의 환경(만물)에도 평강과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


12.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섬김과 나눔을 싫어하고, 영적으로만 하나님만을 깊이 사랑하는 것은

고상한 신앙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너희는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않았다.

너희는 내가 병들었을 때 돌아보지 않았다. 너희는 나의 고통을 모른 척 했느니라..’


물론 그들은 당연히 반박했습니다.

‘주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끔찍하게 하세요? 제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데요..

제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드리는데요.. 제가 얼마나 성경을 많이 아는데요..

저는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살기를 원하는데요..’


주님은 대답하셨지요.

‘그래? 그런데 왜 너희 주변에 있는 연약한 이들의 고통과 필요에 대하여

모른 척 하느냐? 그들이 곧 나이며 내가 보낸 이들인데 말이다.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인데 말이다...’ 마25:34-46


13. 주님이 말씀하시는 방법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교제를 원하시고 영혼을 성장시키기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단순히 이 땅에서 고통 없이 편안하게 사는 삶으로 인도하기보다는

바른 삶을 위하여,

그분께 가까워지도록 더 깊고 아름다운 영혼과 삶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은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고, 영적 성숙의 문제입니다.

즉, 누구나 영이 자라갈수록 좀 더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그분의 음성을 잘 듣게 되며, 주님은 자신의 마음을 모여주시는 것입니다.


40살 먹은 아버지가 5살 된 딸에게

자신의 마음의 깊은 고민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14. 주님이 말씀하시는 방법

주님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양심의 소리를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마음의 소원과 감동을 통해서 다양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주님의 음성과 감동은, 2방면으로 옵니다.


환경과 같이 보이는 것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경우와

성경에 대한 묵상이나 깨달음, 또는 내면의 소원과 감동,

양심의 소리나 직관적인 인식 등의 내면적인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경우입니다.


사람은 보이는 육체와 보이지 않는 영혼을 가지고 있기에

결국 주님은 육체가 보고 들을 수 있게 말씀하시는 경우와

영혼이 들을 수 있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5. 사소한 것은 그의 미래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미래에 대한 예언이며

미래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지금 젊은 청년들에게서도 미래의 모습을

우리는 사소한 것들 것들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청년은 아주 유능하고 재능이 많으며 자신만만합니다.

그래서 남을 비판하기를 서슴지 않으며, 강력한 확신과 열정 속에서 움직입니다.

모두가 그를 인정하며 성공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기적이며 겸손하지 않고

사소한데서 연약한 이들을 무시하며 잘 섬기지 못한다면

그의 미래는 결코 밝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성공같이 보이지만.. 끝까지 그것이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어떤 이는 바보 같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는 느리면서도 정이 많고, 여리고 약한 이들을 잘 대접하고 섬기기를 좋아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우습게 여김을 당하며 아무도 그를 인정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소한 것들의 결과가, 미래에는 의외의 풍성함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어떤 이의 아주 사소한 부분은

그 사람의 미래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6. 주님은 어떤 이도 특별하게 사랑하시지 않으며

모든 이들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분의 가까이로 이끌려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문을 닫은 것이지

결코 주님이 스스로 닫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언제나 그분의 사랑의 빛을 우리에게 항상 비추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그 음성을 듣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이 있고

수많은 주님의 인도와 감동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17. 주님은 빛이십니다.

어두움은 그분이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둡고 미숙한 기운이 그러한 재앙을 끌어당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날마다 빛을 향하여 나아간다면 

점점 더 빛과 은혜와 영광과 풍성함의 모든 것들을 끌어당기는

그러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점점 더 자라고 성숙해져

주님의 능력과 빛과 지혜와 사랑의 향취를 보여주는 사람이 될 것이며


이 피곤하고 지치고 절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진정한 위로와 사랑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그러한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18.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아주 섬세하게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삶에는 우연이 없으며, 그것들은 다 우리의 성장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이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본능적으로 반응한다면.. 문제가 더 커지고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환경이나 문제를 통한 주님의 음성을 잘 듣고 깨닫는다면

우리는 문제가 쉽게 풀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문제들이 역사 하는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이며,

<종류대로(유유상종)의 법칙>으로서 끼리끼리 모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훈련은 결국 우리의 영혼을 성숙시키기 위함이며

주님께로 가까이 이끌기 위한 것입니다.


19.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바쁘고 쫓기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 환경의 문제가 아니고

영혼의 문제입니다.


주님의 나라, 영의 세계에서는 서두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육신적인 본능일 뿐입니다.


대자연에는 오직 평화스럽고 자연스러운 흐름만이 존재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치고 피곤할 때, 사람들은 자연에서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대자연이 주님께 복종하고 조화를 이루므로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듯이

오늘 주님께 순복하며 조화를 이루는 이들은

역시 다른 이들에게 자유함과 휴식을 나누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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