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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내 소원의 확신이 아닙니다

LNCK 2012. 1. 12. 19:19

 

◈믿음은 내 소원의 확신이 아닙니다                      마21:22              설교 편집

 

 

◑믿음은.. ‘내 소원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21:22

이런 구절은.. 내 소원을 믿고 구하면 이루어진다.. 그게 믿음이다.. 라는 인상을 줍니다만..

 

믿음에 ‘확신’을 너무 강조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끝없는 오해를 만들어내고, 기독교의 진리를 가리고,

구원의 길을 막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내 소원이 성취될 것의) 확신이 아닙니다.

믿음을 확신(꿈은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믿음에 대한 오해입니다,

즉 그건 성경적 믿음을.. 곡해하고, 완전히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럼 '믿음'은 과연 무엇입니까?

(여러 방면의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아래에서  3가지 방면으로만, 믿음을 한 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1.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시다가, 풍랑을 만난 상황 속으로

한번 들어가서 살펴보기로 합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하고 나무라십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내가 풍랑 속에 빠져서 죽지 않고, 구원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던 것

믿음이 없다고 핀잔 받은 이유다,

그러므로 이 풍랑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곧 믿음이다’


이런 이해가.. 기독교의 믿음을 곡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던져지기 전에 한 말이 뭡니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이다.

그러나 구원해주시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  단3:18


그렇다면 구원해 줄 것이라는 확신(믿음)이 없는 것 아닙니까?

‘구원해 줄 것이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단서를 왜 뒤에 갖다 붙입니까?


그러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가졌던 믿음

풀무불에 들어갔을 때 구해주느냐/안 구해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꼭 풀무풀에서 구원해 주소서!’ .. 그걸 확신한 것이.. 그들의 믿음이 아니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 이것이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입니다.

 

믿음은.. (문제해결의) 확신이 아닙니다.

            내 꿈은.. 모두 이루어진다.. 도 아닙니다.

믿음은.. 어떤 문제를 만나더라도.. 마음이 평안한 것입니다.

주님의 주권/섭리/다스리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절대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풍랑치는 바다에서, 제자들이 믿음이 없다고, 예수님께 꾸중 들은 것은..

믿음이 없어서.. 풍랑을 보고, 마음이 요동쳤기 때문이죠.

즉,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지 못한 것이죠!


그런데..  내 삶의 문제해결의 확신을 믿음이라고 한다면 (다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 

초대교회 때 순교당한 모든 사람은.. 어떻게 설명이 되겠어요?


그들은 ‘확신하는 믿음’이 없어서.. 순교당한 것입니까?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예수님이 안 계시고 제자들만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이 일었을 때,

(오순절 뒤의 일이라면)

그 풍랑 속에서 빠져죽어도.. 제자들은 믿음이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만약 그들이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때, 차분히 찬송가를 연주했던 합주단처럼

그 풍랑 속에서 빠져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나의 경제적 현실에 적용하면,

‘돈이 벌리든지/안 벌리든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상황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고,

섭리하고 계시니

‘돈이 벌리든지/안 벌리든지..’ 하나님이 나를 다스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주님이 내게 주신 섭리라고 믿고,

‘돈이 벌리든지/안 벌리든지..’ 하나님이 내 환경을 다스려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이 쪼들리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요, 뜻일 수 있습니다. ↙ 

 

잠언 15:16 /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6:8 /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9:1 /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28:6 /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사곡히 행하는 부자보다 나으니라.

 


◑2. '하나님의 믿음'이란 영역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믿음'이란,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믿음이며,
내가 자체적으로 생산한 '내 믿음'이 아니란 뜻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21:21~22

 

정말 남들은, 산이 바다로 옮겨질 것이라고.. 전혀 믿지 않는데.. (당연하죠)

내게는, 산이 바다로 옮겨질 것이.. 믿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하나님의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정말 남들은, 중국 내지 선교가 되어질 것이라고.. 전혀 믿지 않았는데,

허드슨 테일러에게는, 그것이 가능하리라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귀한 손목시계를 종로 길에서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을 다시 되찾는 것은 정말 '태평양 속에 빠진 금반지 찾기'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찾을 수 있다'는 신비한 믿음이, 위로부터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차근 차근 찾아다니면.. 기적적으로 찾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위로부터 주어지는 믿음', 소위 '하나님의 믿음'과

‘내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과는.. 구분해야 합니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믿습니다'하고 강물로 들어가면.. 빠져 죽습니다.

      그런데 위급한 상황에, 주님이 '강을 건너라. 물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는 믿음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수영을 못 하지만) 강을 건너도.. 물에 빠져 죽지 않습니다. 강을 믿음으로 건넙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역/소명/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하나님의 믿음' 즉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반드시 갖고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응답 받았다'고 표현하기도 하죠.

그러면 2%의 가능성만 갖고도, 98%의 장벽을 극복하고.. 그 일은 되어 집니다.

 

그러나 이게 없으면, 이 믿음이 없으면,

98%의 성공 가능성을 갖고도 (재정, 경력, 인맥 등 모든 게 다 준비되어 있어도)

2%의 장벽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그 일은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하나님의 믿음'을 갖는 길은..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응답 주실 때까지, 꼼짝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보통 아주 느리게 추진됩니다.)

그렇지 않고, 괜히 내가 서둘러서 추진하는 일은.. 대부분 결과가 안 좋습니다.

애당초 그건 주님의 뜻이 아니었거든요!

 


◑3. 믿음은.. 천국에 대한 현실감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믿음은 그게 아니라

천국을 현실감 있게 사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인도에 갠지스 강이 있다’ .. 사실이고 실재입니다.

그러나 인도에 갠지스 강이 있다는 것이.. 나의 현실이 되지는 않습니다. (나랑 무관합니다.)


알랑 들롱 씨가 TV에 나옵니다. 미남입니다.

그가 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실재입니다.

그러나 그 실재가.. 나의 삶의 현실은 아니에요. (나와는 무관합니다.)


믿음이.. 인도의 갠지즈 강의 실재처럼,

프랑스의 알랑 들롱 과같은 (나와는 무관한) 사실이 되어서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사실이고, 실재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반드시 내 현실이 되어야.. 그게 바로 참 믿음입니다.


그러면 풍랑 만난 배 위에서의 사건으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왜 예수님은 주무셨고, 왜 제자들은 난리를 치게 됩니까?


현실감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어떤 현실감을 말합니까?


예수님에게 있어서 제1현실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지만 하늘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입니다.

그 풍랑 만난 현장(제2현실)에.. 천국이 지금 임재해 있는 거예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겹쳐 있는 것이죠.


그런데 풍랑을 만난 제자들은,

천국을 (제1)현실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제1)현실은 ‘풍랑을 만나서 빠져 죽게 된 현실’이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설교문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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