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이 저주일 수 있다 마24:1~14 출처
*원제목 : 새해인사에 담긴 저주
▲서론/ 본문 마24장은, 세상 종말에 대한 예언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종말의 특징이 뭐냐 하면, 전쟁과 지진과 기근,
이것이 종말이 시작하는 싸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열심히 모으고, 쌓고, 이루기 원하는 그 모든 <세상 업적>들은
결국은 전쟁/기근/재난으로.. 다 무너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 그게 종말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특징이 있는데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출현한다는 것이에요.
이들의 특징은
‘땅을 기어다니면서, 흙을 먹는 것입니다.’
함께 살펴보실까요?
▲탤런트 김혜자 씨가 쓴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월드비전(국제구호단체)의 홍보대사로 임명받아 일하시면서
아프리카의 어느 지역에 가서, 체험한 가슴 아픈 이야기를, 이렇게 전합니다.
어린아이들이 너무 배가 고파서 어떤 풀을 뜯어먹습니다.
그런데 그 풀을 먹게 되면, 입술부터 해서 온몸에 푸른빛이 돌게 되고,
이 생 풀을 계속 먹게 되면 심장과 위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실명까지도 할 수 있지만.. 배가 고프니까 이 풀을 아이들이 뜯어먹습니다.
또한 배가 고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허기진 배 위에다 무게가 꽤 나가는 돌을 구해 얹고 잡니다.
배를 눌러주어야.. 허기를 덜 느끼고 잠이 온다고 해서 그렇답니다.
이건 뭐 완전히 굶주림과의 싸움이지요.
▲그런데 우리도.. 영적으로 허기지면.. 그럴 수 있습니다.
몸에 나쁜 것인 줄 알면서도.. 허기지니까, 허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몸에 안 좋은 것이라도.. 마구 움켜쥐고 먹습니다.. 우리도...
무슨 뜻입니까?
‘부자 되세요! 성공하세요! 자기계발의 비결은 이렇습니다!’ 하면서
인간의 배고픔이.. 하나님을 떠나서 생긴 것인 줄 모르고..
그 배고픔은.. 오직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금 당장 배고프니까.. 그 허기를 면해 보려고..
-돈을 모아보기도 하고..
-높은 자리를 목표로 해서, 일평생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 보기도 하고..
-또한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는 ‘덕담’을 서로 나눕니다. ‘부자 되세요! 성공하세요!’
그런데 그게, 아프리카 아이들이, 야생풀을 마구 뜯어먹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뱀에게 내린 저주
창3장에 ‘뱀’에게 내려진 저주는
‘너희가 살아있는 동안에 배로 기어 다닐 것이요, 살아있는 동안에 흙을 먹으리라’ 입니다.
핵심은 배로 기어 다니는 겁니다, 그리고 흙을 먹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신령한 영생의 세계에 눈뜨지 못하고,
-오직 땅에 것만 관심 가지고, (배로 땅을 기어 다니고)
-땅에 것으로 배 부르려고 하는 것이 (흙을 먹는 것)
바로 사탄이요, 사탄의 영향력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의 본능적 욕구입니다.
이게 사탄이 저주 받은 내용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 세상에서 네 배를 채울 기쁨을 찾아라’.. 이게 저주라는 거예요.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하십니다.
바로 이 세상 위를 두루 기어 다니면서 (하늘과 영원을 보지 못하고)
오직 땅의 것으로 배불리려고 하는 자들은 (생명의 말씀과 생명수가 아니라)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창3장에 나오는 ‘뱀의 후손’이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해대신 것은
그들의 경건하다는 신앙생활이.. 결국은 ‘부자 되세요! 성공하세요!’ 였으며
더 나아가 ‘부자 되고 성공한 우리를 보세요! 하나님 잘 믿으면, 우리처럼 이렇게 됩니다!’
즉, 이 세상 안에서 내 마음의 배를 채울 수 있는 기쁨의 대상들을 찾아내는 것,
그래서 이 세상에서 그 기쁨거리들을 먹고 채우려고 하는 것,
이게 바로.. 창세기 때나, 신약 때나.. 주님의 저주라는 겁니다.
마치 굶주린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자기를 죽이는 독초를 먹어서 배를 채우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 만족해서 기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사탄에게 내린 저주인데
이 저주가 유전으로 내려와서
예수님 당시에는 물론이요,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 기뻐하려고 합니다.
이게 바로 저주라는 거예요, 저주!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특징
말세에 나타날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은
바로 이 저주를.. 축복으로 미화하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 배를 채워라, 독초를 먹어서 허기진 배를 달래라,
이 독초가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저주를 미화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인도하는 자들,
‘예수 잘 믿으면 이 세상에서 형통할 것이다’ 이 한 마디가
그를 거짓 그리스도요, 거짓 선지자로 만드는 내용입니다.
아니, 거짓 선지자이기 때문에
뱀에게 내린 저주를 그대로 반복하고 활성화시키면서..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겁니다.
▲그러면 (저주가 아닌) 참 복은 무엇입니까? - 일례로 변화산 체험입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가 경험한 것을 우리가 상상해 보면
복이 무엇인지,
왜 세상에 있는 것들로 배를 채워서 기뻐하려 하는 것이 저주인가를 알 수가 있어요.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영원한 천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빛의 덩어리이신 예수님을 봅니다.
그때 그 예수님을 보면서 베드로의 기쁨이 터져나갑니다.
그 빈 마음의 뱃속이 예수그리스도의 영화로운 모습으로 채워지면서
‘여기가 좋다’고 말하고 세상과 모든 걸 다 잊어버리고
그 예수님이 보이시는 거기서 영원히 살자고 소원을 발동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되신 그 모습을 볼 때 채워지는 배,
이것이 바로 축복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그 복을 누릴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맛보기, 예고편으로.. 변화산에서 잠시 그 복이 보여졌습니다.
▲이 세상 것들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물론 그 저주가 되는 ‘부자/성공/명예’ 이런 것도.. 갖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혹시 거머쥐게 되는 사람도 있는데.. 부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이 세상의 끝은 전쟁/기근/지진으로 마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일생동안 겪는 (작은) 전쟁/기근/지진으로
그렇게 애서 쌓은 ‘부자/성공/명예’ 이런 것은.. 결국 날아가 버리고,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참 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들이 받는 ‘작은 최후의 심판인- 임종 때’를 보십시오.
‘부자/성공/명예’ 이런 것.. 천국에 가지고 갈 수 있습니까?
지금 혼수상태에 있는 노인이.. 자기 재산이 얼마이면.. 그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오직 천국에 갖고 갈 수 있는 것만,
영원히 우리의 자산이 될 수 있는 것만.. 참 복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말씀하신 ‘8복과 산상수훈’은, 그 외 모든 주님의 말씀은,
그거 비현실적인 것 같고, 너무나 어리석고 한심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천국에 갖고 갈 수 있는
‘영원한 참 복’입니다. 영원히 나의 자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세적 복을 강조하는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에 속지 말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 세상이 전쟁/ 기근/ 지진과 같은 재난을 통해서
언젠가는 반드시 심판으로 끝이 나고, 이 세상의 종말이 있을 것이다’
라는 말씀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독사에게 내린 저주를 유전자로 물려받아서
이 세상 것으로 배불리려 하며 살고 있는데,
- 그것은 바로 끝이 있고, 허무하게 끝장나는 날이 온다’는 겁니다.
전쟁과 지진과 기근으로 표현되어지는 종말은
그게 개인적 종말이든, 인류의 최후 종말이든,
이 세상의 것으로 배불리려 했던 모든 ‘뱀의 후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반드시 닥친다는 것입니다. 모래성처럼 다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렇게 갖고 싶어 하는 이 세상의 것들이..
내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싶어 하는 이 세상의 것들의 속성이.. 다 거품입니다.
그런데 마귀/거짓 선지자에게 미혹을 받으면
그 거품/모래성/신기루/심판 받을 것을 향해서.. 열심히 달려가면서
자기의 소중한 인생의 날들을 다 허비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인생을 헛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업가가 사업이 잘되는 것으로 기뻐하고 있습니까?
그게 저주받은 거예요.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본 그 하나님으로, 그 천국으로 배불러야 될 마음이
이 세상에서 돈 잘 벌었다고 기뻐하게 되는 것은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굶주림을 못 이겨서 위와 심장의 질병,
그리고 실명의 위험까지 가져다 줄 수 있는 독초를 먹으며 배를 채우는 것과 같다 이겁니다.
세상에서 일류대학에 들어가서 기뻐하려고 하는 것은 저주받은 인생의 특징이고
마귀에게 내린 저주가 내게서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먼저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는 변화산을 체험한 후에,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덕담을 하시려면 ‘하나님으로 배부르세요!’ 이렇게 인사를 하세요.
‘변화산에서 베드로가 만났던 그 주님을 반드시 만나세요!’ 이렇게 인사를 하자는 겁니다.
▲세상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성도는 ‘세상에 대해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마귀에게 내린 저주로부터 우리가 해방되는 겁니다.
마귀에게 내린 저주가, 우리에게 유전자처럼 내려와 있는데,
그래서 내 육신은, 본능적으로 부유함과 성공의 세상 것을 추구하게 되는데..
그런 내 육신의 죽음을 통해서
그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세상에 대해 죽는다는 것은
자식이라고 하는 풀을 내게 독이 됨에도 불구하고 뜯어먹으려고 하고,
물질이라고 하는 독풀을 뜯어먹으려 하고,
이러한 저주받은 유전형질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체험한 나는..
-큰 경제 공황이 닥쳐도.. 덤덤한 것입니다.
-큰 지진과 쓰나미가 몰려와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대학에 떨어지고, 공부를 못 해도.. 안달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경제호황이 닥쳐도.. 덤덤합니다.
-큰 집을 장만하고, 큰 재물을 쌓아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일류대학에 붙고, 무슨 교수가 되어도.. 본둥 만둥 합니다.
내가 세상에 대해서 ‘죽었기’때문입니다.
(죽은 것으로 여기고 살게 되고, 실제로 무덤덤하게 됩니다.)
▲마치는 말
이 세상에서 잘되려 하고, 이 세상에서 기뻐하려 하고,
이 세상에서 행복하려 하세요?
이게 바로 ‘저주받은 인생’의 특징이라는 거예요.
주님의 십자가는 이 저주로부터 우리를 풀려나게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사업하는 것,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
이건 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요?
하나님으로 기뻐하게 된 자들이 가정에서, 사업장에서, 직장에서 살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내 성공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입니다.)
창3장에 뱀에게 저주하셨습니다. ‘너는 평생 배로 땅을 기어 다닐 것이다’,
허기진 배를 이 땅에 붙이고, 땅의 것을 먹으면서 배를 채우려 하는 것,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기쁨을 얻으려 하는 것, 이게 사탄에게 내린 저주인데,
그 사탄에게 지배받는 사람의 특징은,
이 땅에 있는 무엇으로 기쁨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이라는 것은 종말이 있고,
전쟁과 기근과 지진으로.. 결국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인생을 허비하면서, 헛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아버지, 뱀에게 내린 저주를 미화하는 자들이 거짓 그리스도요 거짓 선지자이며
또한 거짓 교인임을 우리가 명심하게 하여 주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뱀에게 내린 저주로부터 온전히 풀려나올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오직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만났던 그 예수님,
그런 하나님아버지로만 내 배가 채워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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