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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2

따뜻한 사람, 다니엘 / 정원

LNCK 2012. 2. 14. 21:18

◈따뜻한 사람, 다니엘         단6:10~28           출처



◑1. 다니엘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맨 하단)


◑2. 다니엘은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맨 하단)


◑3. 다니엘은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단락에서, 그의 인품 중 가장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부분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그가 아주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주 정이 많은 사람이며,

흔히 지혜자가 가질 수 있는 차갑고 냉랭한 이미지가 아닌,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따뜻한 분위기를 그는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측면은..  <사자굴 사건>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당연히 대적자의 각본에 있는 대로 기도하다가 붙잡히게 되고

결국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하여 볼 것은 왕의 태도입니다.


왕이 최초로 다니엘의 범법사실을 보고 받았을 때,

그는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고 괴로워합니다. 단6:12-14


 

결국 왕은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도록 허락합니다.

그리고는 궁에 돌아가서.. 그날 밤에.. 음식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고,

모든 파티, 노래 소리를 다 물리칩니다.


그는 다니엘에 대한 고통과 염려로 밤을 꼬박 새웁니다.

그 다음날 새벽 일찍, 그는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슬프게 말합니다.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단6:20


물론 왕은 다니엘이 살아있으리라는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치 사랑하는 옛 친구를 잃은 사람과도 같이

그는 고통스러운 '자기 넋두리'를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자 굴속에서, 다니엘의 목소리를 듣자, 그의 슬픔은 기쁨으로 급격히 바뀝니다.

"임금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살아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셨지요.

제가 결코 왕에게 나쁜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2


기쁨이 가득한 왕은 다니엘을 굴에서 꺼내게 하고

그를 모함했던 사람들을, 그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합니다.


여기서 이 신하들을 사자 굴에 던져 넣을 때

왕은, 다니엘의 경우와는 달리, 전혀 측근 신하를 벌하는 갈등을 하지 않습니다.


과연 다니엘에 대한.. 이런 왕의 태도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문제 제기


모든 권력을 갖고 있는 왕이 무엇이 아쉬워서

다니엘의 문제로 그토록 밤새 괴로워했을까요?


명령만 하면 모든 신하들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그가,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충성했을 터인데,

유독 그가 다니엘을 편애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갖고 있는 그가,

한 신하의 죽음 때문에.. 금식하고, 밤을 꼬박 새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무엇 때문에 그는 밤을 꼬박 새운 후, 새벽 일찍 일어나서 

제 발로 사자 굴에 찾아가서 가슴아파하면서.. 다니엘의 이름을 슬프게 불렀을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따뜻한 정을 준 사람만이 따뜻한 정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따뜻한 애정과 부드러운 친절을 상대로부터 받은 사람은 그것을 잊기가 어렵습니다.  ←주제


오늘날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진정한 따뜻함을 잘 줄줄 모릅니다.

그저 돈이나 주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그것이 사랑인줄 압니다.


아이들을 조용히 안아주면서

너는 얼마나 귀한 존재이며 엄마가,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잘 표현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물질의 공급이나 행위에.. 진정한 따뜻함(사랑)이 흐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대방에게 깊은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노년이 되었을 때 무정한 자식들을 원망하며

고독하게 늙어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그놈을 어떻게 키웠는데...’ 하면서 눈물짓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영혼의 교류, 내적인 친밀감이 없을 때

그 관계는 형식과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는 의무감에 의해서 외형적으로 간신히 지탱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생명과 풍성함이 흐르지 않는 피상적인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왕에게 있어서 다니엘은, 단순한 신하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유능한 참모, 충실한 부하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의 옆에서 왕은 어떤 편안함을 느꼈었습니다.


다니엘의 지혜로운 조언과 충실함은

다리오 왕에게 있어서, 단순한 업무능력의 탁월함 이상이었습니다.

왕은 그것을 아마 우정이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눈동자에서.. 왕은 그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설교제목

때로는 왕과 신하의 위치에서 벗어나.. 그들은 많은 친밀감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니엘은 이제 왕에게 하나의 분신과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는 제국의 황제에게,

그에게 있어서 유능한 신하는 하나 잃어버릴 수도 있고,

똑똑한 참모는 또다시 대체할 수 있는 것이겠으나,


그와 우정을 나누고 그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사랑하는 친구..

마음껏, 가슴에 담긴 모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다니엘의 죽음 앞에서 그토록 슬퍼했고,

다니엘이 되 살아났을 때 그토록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다니엘의 죽음이 아닌, 곧 자신의 죽음이었고,

또한 자신의 부활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해 봅니다.

과연 우리는 다니엘과 같이 따뜻한가요?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있을 때.. 따뜻함을 느끼고 있을까요?


믿음이 좋은 사람..

성령이 충만한 성도..

영성이 깊은 크리스천..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어서.. 심지가 굳고 흔들림이 없는 사람..


-이 모든 사람들을 한 마디로 다르게 표현하면 ‘따뜻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따뜻하지 못하면.. 그의 모든 신앙은.. 아직 미숙한 것입니다.


옳다, 그르다, 이것이 맞고, 틀리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따뜻함(사랑)’입니다.

이것을 떠나서, 논의의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늘 상황에서, 심지어 술자리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진정 사랑하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는지요.


우리가 직장을 떠났을 때,

과연 직장 동료들은.. 그 왕과 같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슬퍼할까요?


그들이 어떤 말을 해도..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들의 편이 되어줄 수 있다는 확신을.. 우리는 그들에게 주고 있는지요?


진정 따뜻한 기독교를 위하여

따뜻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그분의 긍휼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은총이 없이는

그분과의 실제적인 관계를 갖지 않고는


우리는 결코 따뜻한 사람,

아름다운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없을 때문입니다.


오, 부디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우리 모두가 그러한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아멘.       <영성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중에서


※오래 전에 어떤 분이,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서 장기려 장로님의 (생전에) 진찰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분께 진찰을 받았는데.. 지금까지도 그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게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장기려 장로님의 따뜻함/온화함/온기.. 라는 것입니다. (참 신앙의 표출이었지요)


환자가 빈부귀천 누구든지 간에.. 그들을 존중하고.. 어린아이도 결코 무시하거나 막 대하지 않으셨답니다. 

그것은 연기演技가 아니었고, 그 분의 삶 자체였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 전략된 부분 ...........................


▲도입

다니엘은 그의 조국 이스라엘에서 귀족 가문 출신의 영리하고 똑똑한 소년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소년들에게 있어서, 그의 자라난 환경이 끼치는 영향은 매우 엄청난 것입니다.


다니엘도 그의 유복한 환경덕분에 의식주 걱정 없이 훌륭한 교육,

특히 경건한 신앙의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으며, 그의 삶은 만족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다니엘은 이 모든 행복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의 조국 이스라엘이 대적 바벨론에 패배하여 멸망했고, 그는 적국의 포로가 되었으며

고향에서 쫓겨나 머나먼 원수의 나라에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행복했던 나날들, 추억 어린 모든 것들을 빼앗겨 버린 이 젊은이의 아픔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이 서려있는 낯익은 거리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드리는 경건하고 아름다운 예배,

정다웠던 친구들과의 우정..

이제 그 모든 것들은 한낱 꿈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외적인 고통이외에도 신실한 믿음의 청년 다니엘에게는

다음과 같은 신앙적 의문들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을 것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민족이 아닌가?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하신 백성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가 지금 당하고 있는 현실은 무엇일까?’


우상을 섬기고 불경건과 죄악을 밥 먹듯이 자행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굴복됨은 어쩐 일인가?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계신가? 모세의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그 많은 기적과 역사는 다 어디로 갔는가? 진정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셨는가?

아니면 우리의 신앙은 헛것인가? 우리는 환상을 믿고 있는가?'


성경은 소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할 뿐

당사자의 마음상태, 갈등, 정서적인 흐름, 움직임들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 보면서

이러한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분위기를 잘 살펴보아도

청년 다니엘의 고뇌하고 갈등하는 모습은 별로 엿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포로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고요하고 잔잔하며 지혜롭고 사려 깊으며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전쟁의 와중에서 가족들을 잃었을 지도 모릅니다. 또한 나라를 잃었습니다.

모든 안락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에게서는 불타오르는 복수심이나 하나님께 대한 원망 등을

엿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는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하나님의 섭리로 생각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양하며 기도의 삶을 삽니다.

그리고 그의 신앙으로 인하여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의 훌륭한 인품, 성실함, 지혜로움, 등으로 인정을 받아 최고의 관직으로까지 수직 상승합니다.


당시 바벨론의 대제국은 정치상황이 몹시 불안했으며

그 와중에 여러 번의 쿠데타가 일어났으며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여전히 최고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는 어떻게 이방의 악한 문화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의 정절을 지키며,

또 그런 가운데서도  만인의 추앙 받는 위치까지 올라설 수 있었을까요?         


그의 몇 가지 사람됨의 특성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다니엘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몇 가지 점에서 요셉과 매우 흡사합니다.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 점,

이방나라에 끌려간 점, 왕이 아닌 일반 백성으로서는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간 점,

그리고 두 사람 다 탁월한 영성의 소유자였으며,

꿈의 해석과 이상 현상에 일가견이 있었다는 점.. 등입니다.


특히 다니엘은 탁월한 영성으로 인한 초자연적인 계시의 깊은 곳까지 도달하였으며

그것이 다니엘의 가장 일반적인 이미지요, 특성이겠으나,

우리가 다루는 주제는 아니므로 제외해 놓기로 합니다.


다니엘의 이와 같은 영성, 계시능력을 제외하고

가장 이상적인 것은 그의 지혜로움인 것입니다.

그것은 융통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본질적이 아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을 사수하려고 목숨을 겁니다.

그러나 융통성이 있는 사람은, 본질적인 것이 아닌 한 타협의 지혜를 열어놓습니다.


그에게 처음으로 신앙의 위기가 닥친 것은 음식과 술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그의 탁월한 총명과 지혜덕분에 바벨론 왕궁에서 교육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셔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보통의 사람에게 있어서 왕이 먹는 진미와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에 속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에 대한 왕의 배려요, 호의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니엘에게는 우상에게 드려진 음식, 자기를 더럽히는 시험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그의 신앙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눈앞의 화려함에, 결코 굴복되지 않았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제 그의 선택은 두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무조건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선택의 결과는 너무도 자명할 것입니다.

환관장이 ‘너희 까닭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하게 되리라’고 고백하듯이 단1:10

다니엘도, 그들의 건강과 교육을 책임지는 환관장도.. 목숨이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둘째의 선택은 그냥 타협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해하시겠지... 살려면 어쩔 수가 없잖아...

하지만 주님께서는 내 속마음, 중심을 이해 하실거야.’ 하고 타협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환란은 없을지 모르지만 세상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결코 평안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두 가지의 선택 모두 다 완전한 해답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외의 제3의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나는 이와 비슷한 상황의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신실한 그리스도인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직업은 사장을 보필하는 비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녀의 직업과 관련되어, 심각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장님을 찾는 전화를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중 많은 경우에

‘사장님요? 지금 안 계시는데요’ 라고 대답해야 했었던 것입니다.


물론 사장님이 멀쩡하게 계시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어쩌면 그녀의 문제는 사소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신앙인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첫 번째의 선택은 ‘나는 하나님을 믿으니 이렇게 죄를 짓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하고 사표를 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을 지키는 것에는 확실한 길일지 모르지만,

매사에 이렇게 살려면 지구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타협하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다보면 거짓말을 좀 할 수도 있지. 주님도 이해하실 거야.’ 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삶과 신앙의 이중적인 괴리를 형성할 것입니다.


그녀는 이 두 가지의 방법이 아닌 세 번째의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녀는 기도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여쭈었습니다.

그녀는 기도 중에 '사장님께 너의 입장을 솔직하게 말해보아라'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주님의 음성으로 생각하고 사장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사장님께 면담을 요청한 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사장님, 저는 사장님을 모시고 있는 것을 무척 영광으로 생각하며

제가 맡은 일에도 무척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말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고 있는 일 중에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신앙과 위배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서 사장님의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겸손하고도 차분한 자세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주의 깊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장은 오히려 그녀의 진실함에  감탄했습니다.

그는 신앙이 없었지만 그녀의 신앙과 정직함에 대하여 칭찬을 해주고

그녀를 다른 부서로 옮겨 주었습니다.


그녀는 비서 일에 비해서 약간 고된 일을 하게 되었지만

나중에 보니 월급은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올라있었고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감사하고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극단적인 두 가지의 방법이 아닌 세 번째의 지혜, 세 번째의 길을 구하였고,

하나님은 그녀에게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니엘은 두 가지의 극단적인 방법을 버리고 세 번째의 지혜를 찾았습니다.

그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기는 했지만

무작정 거절하지 않고 하나의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십일 간의 시험기간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좋은 음식을 거절하여 몸이 초췌해지면

환관장의 목숨이 위험한 것을 알고

자기도 신앙을 지키고 환관장의 목숨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의 지혜로운 선택과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셔서

그들의 몸은 좋은 음식을 먹지 않고도 아름답고 윤택하여졌으며

그들은 신앙을 지켰고, 환관장도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되었으며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간증거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니엘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입장만을 고집하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할 줄 알았습니다.


그는 위기가 왔을 때 거기에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모든 문제에 있어서 항상 융통성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다니엘의 중요한 특성이었습니다. ↙



◑2. 다니엘은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그가 경험했던 여러 인생의 위기 상황에서

항상 융통성 있고 유연한 방법을 선택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정반대로,

아주 우직한, 타협의 여지가 없는 정면 돌파의 방식으로 대처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니엘서 6장에, 다니엘의 삶 속에서 가장 위험했던 도전의 순간이 나옵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고

그 가운데서도 살아나는 유명한 사건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의 충성심과 지혜로 인하여, 왕 밑의 가장 높은 지위에까지 승격하자

다른 경쟁자들은 그를 제거하기 위하여 함정을 만듭니다.


신앙 외의 다른 문제에서 다니엘의 흠을 찾을 수 없던 그들은

왕을 설득해서 30일간 기도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던 것입니다.  단6:1-9

어찌 보면 이는 아주 쉬운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주님께 기도하는 것을 30일만 그만두면 되는 것이요,

또한 주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니

기도하더라고 공개적으로 기도하지 않고, 은밀하게 기도하면

이 위기는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것일 것입니다.


하물며 사고의 패턴이 유연하고 자유로운

지혜자 다니엘의 경우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겠지요.

 

 

그러나 다니엘이 보여준 행동은 우리의 예상과 정반대입니다.

그는 이 법이 제정되고, 이 땅의 모든 권력을 가진 왕이 도장을 찍은 것을 알고도

그는 여전히 평소대로 기도합니다.

더구나 그 기도의 내용은 감사와 찬양입니다!  단6:10~11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르는 것일까요?

그러한 융통성 없는 행동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가 기도하다가 적발되면 그가 이제껏 쌓아왔던 명성과 지위가 물거품이 될 뿐 아니라

자기를 총애하던 왕에 대한 배신행위로 간주되며,

심지어 그의 목숨까지도 위태롭다는 사실을 그는 간과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다니엘은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기도하다가 잡히면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자기가 사자 굴에 들어갈 수 밖 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궤계가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대적자들의 술수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드리고 있는 이 기도가

그의 마지막 기도일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매우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타협할 때와, 타협하지 않을 때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할 줄 알았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은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고,

그 가장 근본적인 원칙에 대해서는, 그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타협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기꺼이 그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기도하는 모습 속에서는

자기의 운명에 대한 한탄도,

자기의 대적자들에 대한 분노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는 다만 고요하고 단정하게

자기의 삶과 죽음을 주님께 의탁하고 감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는 최고의 위치에 있었으나, 거기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에 대해서 자유로웠고,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주님, 그분 한 분만이 소중했고,

그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선 그는 어떠한 타협도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람처럼 자유롭고 부드러운 성품의 다니엘,

그는 또한 바위처럼 굳건하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