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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3가지 호소와 하나님의 응답

LNCK 2012. 2. 27. 18:05

 

◈모세의 3가지 호소와 하나님의 응답        출33:12~14           설교스크랩, 녹취, 정리 



<금송아지 숭배> 직후,

진노하신 하나님은, ‘내가 너희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나오시고,

그런 와중에 모세는,

하나님께 3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모세의 3가지 호소에 대해

하나님의 응답은 한 가지로 동일했다. 살펴보면... 



◑1. 모세의 첫 번째 호소: 외로움


출33: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2

위 모세의 기도 표현을 보면, 그는 몹시 외로워하고 있다.


‘하나님이 제게 출애굽 인도의 중대한 사명을 맡겨주셔 놓고도,

저와 함께 할 동역자가 없습니다!’ 라는 모세의 외로움의 하소연이다.


앞서 하나님은, 아론을 그의 대변자로 세워주셨지만,

지금 본문은 <금송아지 사건> 직후의 정황인데,

아론은.. 그 <금송아지 사건>의 주모자에 해당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대변자 아론은.. 모세 자기에게..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아론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될뿐더러, 차라리 방해나 안 되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모세의 외로움의 이유는, 사실 더 깊은데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가시지 않겠다는 데서.. 오는 외로움>이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셨다.

그들은 목이 곧은 백성인즉, 길에서 그들을 진멸하실까봐..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가시지 않겠다는.. 것이다.  주1)


출33:3, 나 여호와가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어쨌든 모세는.. 보통 사람과 다른..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지/안 하시는지.. 그걸 느끼지도 못할 터인데..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올라가시지 않겠다’는 음성을 듣고,

깊은 외로움/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님의 응답 : 내가 친히 가리라!


‘제가 외롭습니다’ 하는 모세의 호소기도에 대해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출33: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사람에게는 ‘존재론적인 외로움이 있다.’

쉽게 말하면 ‘사람이 존재하는 이상.. 그는 외롭다’는 것이다.


아무리 배우자/자녀/직업이 있어도.. 사람은 외롭다.

그리고 사역자도 당연히 외롭다.


이런 외로움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내가 함께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실 때, 사람에겐 쉼이 있게 된다.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14


▲내게 필요가 여러 가지 많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딱 하나!

여러분, 우리도, 분명히 해야 한다.

살다 보면,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 필요한 것이 많다.


-주여, 사람이 필요합니다.

-주여, 물질이 필요합니다.

-문제가 이렇게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피상적인 필요들이다.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시는 것이다.


모세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친히 가리라!’는 응답을 받는 것이다.


그 응답을 받으면,

여러 가지 문제는.. 저절로 다 해결된다.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알아서 처리해 주실 것이다.


▲결국 응답을 받아 낸 모세

출33:3절에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너희들끼리 올라가서, 너희들끼리 잘 해봐라’는.. 하나님의 진노였다.


그러나 모세는 끈질기게 하나님을 설득하고, 매달린다.

백성들도 장신구를 떼어내고, 단장품을 제거하면서.. 겸비한 모습을 보인다.  33:4~6


이때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신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33:14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멀리 하실 때는,

더 매달려야지..

‘그게 하나님의 뜻이려니..’ 하고,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그게 오히려 반역이다.



◑2. 모세의 두 번째 호소 : 주의 길을 보이소서!


모세의 두 번째 호소 기도는

‘주의 길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출33: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 .. 무슨 뜻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앞으로 미래를 좀 보여달라는 부탁이다.


과거에 하나님이

10가지 재앙과, 홍해의 갈라짐 등으로

백성들을 인도해주신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이다.

앞으로 과연 하나님이 이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실 런지..

모세가 보니까, 알 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모세가 호소한다. ‘주의 길을 (앞으로의 길을) 내게 보여주십시오!’

그것만 보면 좀 안심이 되겠는데..


우리도 똑같이 그런다.

내 모든 고민의 가장 깊은 뿌리는

내가 앞으로 벌어질 ‘주님의 길(미래 인도)을 모른다’는 것이다.


-내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

-내가 지금 수행하고 있는 이 사역이, 어떻게 끝이 날 것인지..

-내가 지금 난관에 부딪히고 있는데, 과연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그래서 나도, 모세처럼, 부르짖게 된다.

‘주의 길(뜻)을.. 제발 제게 좀 보여주십시오!’


▲이 질문에 대해.. 하나님의 대답은 똑같다. (세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한 가지로 똑같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14


‘주의 길 .. 너희가 몰라도 된다.

너의 구체적인 미래도.. 몰라도 된다.

내가 친히 너희와 함께 가기만 하면.. 다 된다.’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데

시공에 매여 사는 인생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믿고 따라가는데

어떻게 다 알고 따라갈 수 있겠는가! .. 도저히 다 알 수 없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다.


내가 앞으로를 다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이 친히 나와 함께 가시면.. 되는 것이다.


주의 길을 보여 달라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주의 길을 보여주시지 않았다.

대신에 ‘내가 친히 가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가시면.. 나와 동행하시면.. 내 미래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3. 세 번째 호소: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2)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3)


▲이스라엘은 목이 곧고 뻣뻣했다. 32:9, 33:3, 5

참 하나님 앞에 진노 받아 마땅한 백성이었다.


모세가 봐도, 이건 목이 뻣뻣한 백성이었다.

그렇게 불평하고 원망을 계속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이 백성에게 긍휼을 베풀어달라는 기도였다.

비록 금송아지 만들면서, 하나님을 배반했지만,

그러나 '하나님 이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여겨주세요!'.. 라고 모세가 기도했다.

 

      범죄한 사람, 목이 곧고 뻣뻣한 사람도..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하고, 모세처럼, 자비와 긍휼을 간절히 간구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지..

      '결국은 주님 뜻대로 되겠지'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이 호소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친히 가리라’  :14


‘이 백성을 내 백성으로 여겨주시겠다’는 뜻이다.

내가 그들과 동행하여서,

그 백성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가주시겠다’는 약속은.. 놀라운 은총과 축복이다.

출33:12~13절을 통한, 모세의 3가지 호소에,

하나님은 한 마디로 (똑같은) 응답을 주셨다. 

        ‘내가 친히 (너희와 함께) 가리라’  :14


 

▲마치는 말/ 적용

여러분, 외로우신가?

어찌해야 할 줄 모르고 있지 않으신가?

그런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리라!’


이 부분은,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

내가 듣고 싶어서,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성령의 역사로, 내게 그 음성과 확신을 들려 주셔야 한다.


다만, 내가 매달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사모할 때,

그렇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보다는.. 더 잘 듣게 될 것이다.

(물론 가만히 있어도, 강권적으로 들려올 때가 있지만.. 그건 희귀하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시면, 주님은 나를 떠나지 않으신다.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다. 마28:20


친히 가 주시는 하나님을

내가 동행하고, 의지할 때

-나는 외로움을 극복하게 되고

-나는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게 될 것이다.


▲여러분,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야/가셔야 한다.

해외여행, 성지순례.. 다 좋지만.. 하나님이 함께 가지 않으시면.. 허무하다.

차라리 하나님이 함께 가시는 ‘동네 뒷산’이 훨씬 더 낫다.


내가 맡은 직책, 사명.. 훌륭한 것이지만.. 주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백전백패한다.

내가 맡은 직책, 사명.. 미약한 것이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 나라(사랑, 능력, 권세)가 임한다.


오늘 나에게는 이런 <모세의 외로움>이 있는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데서 오는.. 외로움’ 말이다.


그런 외로움을 내가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혹시 내가 그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영적으로 둔감하기 때문은 아닌가!


내가 사역을 할 때

‘하나님이 오늘 나와 함께 하신다!’강한 확신이 있으신가?


▲내 인생의 궁극적 문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는 감옥에 있어도.. 천국을 누린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 그는 궁궐에 있어도.. 갑갑해서 죽으려고 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 그는 골리앗 앞에서 다윗처럼 용맹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떠나시면 .. 그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사울처럼 불안해 진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신앙고백 했다..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물론 중요하지만

‘신앙생활, 믿음 생활’은.. 한 번 고백으로, 한 번 영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 주님과 계속 친밀한 교제관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매 시간 느끼고, 의지하고,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성경말씀 들으며

또한 하나님의 계명대로 성결한 생활에 힘쓴다. 성령님이 그 길로 인도하신다.

그래야 하나님이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계속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본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시려는 것은,

그들의 ‘금송아지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


주1) 하나님이 나와 함께 가 주시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차라리 하나님이 멀리 떨어져 계시면, 징계도 없겠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자꾸 징계를 받게 되고, 진멸 당하게 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죄인들 곁으로 가까이 오시면, 죄인들이 다치게 된다.


그래서 예수를 제법 믿는다는 사람일수록.. 삶에 고난이 많아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 아예 뜨겁게, 진실하게 잘 믿어야 한다.

그때는 하나님이 내게 가까이 오시는 것이 진실로 복(사랑/능력/권세/안전/복)이 된다.


그럼 하나님과 멀찍이 떨어져 믿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인가?

그러다가는 천국에 못 들어갈 더 큰 위험성이 있다.


장기적 안목으로 볼 때,

‘하나님이 내게 가까이 오시는 징계’를 빨리 받고서, 내가 빨리 변화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게 오시더라도.. 내가 다치지 않을 정도로.. 성화되는 것이 복이다.


그는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서(하나님이 가까이 임재 하셨으니까)

하나님 나라를 잘 섬길 것이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도, 그렇게 <반역과 징계의 싸이클>의 반복을 거듭하면서,

하나님을 모시고,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훈련(성화)되는데.. 40년 걸렸다.


※위 설교의 설교자는, 교회 부임을 앞두고 간절히 하나님께 응답을 구하던 중

  위의 말씀을 통해 응답을 받고, 그 교회로 부임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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