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눅11:1 동영상 출처 1'~14'
Pray and be alone with God - Paul Washer P1(현재페이지) P2 P3 P4
“예수께서 한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눅11:1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것을 보면, 진심으로 무서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경외스러운 것이며, 그가 하신 어떤 것보다 고귀한 일입니다.
“예수께서 한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그때 한 제자가 말합니다.
“주여 기도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이것이 가장 놀라운 진술이지만, 사람들에게 간과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어느 제자도 예수님께
“설교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물위를 걷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죽은 자를 살리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귀신을 내쫒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라는 말을 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어떻게 농구를 잘 하는지 알고 싶다면, 아마 저에게 오진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나는 농구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내 전문분야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물어볼 것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전문분야에 대해 물어봅니다.
당신은 그 사람에게.. 그의 생애에 있어서, 당신이 느꼈던바,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물어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제자가,
“주여 기도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예수님께 질문한 것은, 그냥 평범한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전문분야가 “기도”였다는 반증입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예수님의 거룩한 권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는 것도 아닌,
-물위를 걷는 것이 아닌
--주님이 기도하신 때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평소에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것을, 가까이 지켜보았을 때
그들은 정말 ‘예수님의 기도에 반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 man of prayer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각자에게 스스로 질문해봅시다.
사람들이 나의 기도를 들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친밀히 아는 사람’의 기도소리를 듣겠습니까,
아니면 그저 종교적인 수사학과 운율을 듣겠습니까?
사람들이 나의 기도를 들을 때,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말을 듣습니까, 지성을 듣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임재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기도라고 느끼겠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한 것은,
그들이 ‘기도를 할 줄 몰라서, 기도가 뭔지 몰라서’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뭔가 다른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친밀히 아는 사람’의 기도
‘주님의 임재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기도
-예수님께.. 그것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누군가가 와서
“당신이 설교하는 것처럼 설교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의 설교가.. 많은 사람의 인기를 끄는 어떤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기를 끄는 것이, 꼭 ‘하나님’의 인기를 끌지는 않습니다. 물론 끌 수도 있지만요)
“당신이 목회를 하는 것처럼 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그것은 그의 목회가.. 많은 사람의 인기를 끄는 어떤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영적지도자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까?
오늘날 설교 기술에 대해, 목회 기술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고, 가르쳐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에 대해서는>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없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예수님처럼 기도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나 Paul Washer는 뛰어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 삶에서 만약 내세울만한 게 있다면,
저는, 저의 성장과정이나, 훈련과정에서
‘하나님이 쓰시는 많은 사람들’과, 제가 함께 했었던 특권을 얻었습니다.
제가 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예수님을 지켜본 제자들처럼) 한 가지 알아챈 것은
그들은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가지는 공통적이었다는 뜻입니다.
그 한 가지란..
그들이 무릎을 꿇었을 때..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또 한 가지를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기도는.. 무슨 공부를 배우듯이, 무슨 연기력을 배우듯이
그렇게 가르치고.. 배워서 되는게 아닙니다. 물론 이게 필요하겠지만요
무슨 뜻인고 하니, 기도의 대가로부터, 기도를 배우는 길은
내가 직접 기도의 무릎을 꿇는 일입니다.
이렇듯 기도는.. 내가 직접 체험하며, 더듬으며 배우는 것이지
뭐 무슨 이론이나, 형식을 배운다고 해서
그게 배워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기도의 삶을 사신 예수님’에 관한..
성경의 설명 구절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아래 구절들을 보시면,
예수님이 정말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잘 보게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리고 성육신하신 살아계신 하나님께도 (기도를 안 해도 되실 법한 분인데도)
기도는.. 예수님의 삶에 아주 중요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미약한 인간인, 우리 각자에겐 기도가 얼마나 더 중요할까요.
얼마나 더 우리가 기도에 의지해야 할까요.
아래 구절들을 보면,
예수님은 정말 기도의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약한 인간’인 우리, 더 기도해야 하는 우리는
과연 기도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예수는 물러가사(slip away 사라지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5:16
가끔 우리는 우리가 가장 즐기고 싶은 것을 위해, 그쪽으로 사라집니다.
남자아이들이 가끔 사라질 때는, 구기 스포츠놀이를 하러 사라집니다.
사냥 애호가는, 직장에서 일찍 돌아오는 날이면, 사냥하러 사라집니다.
부인들은 종종 쇼핑몰로 사라집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장 즐기는 일을 하기 위해..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사라지셨습니다. slipped away, 물러가셨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그만큼 기도를 즐기셨다는 뜻입니다.
한 설교자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비행기에서 내리자, 마중 나온 목사님들은 즉시 그를 골프장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들이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을 때, 그 설교자가 갑자기 언급했습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십니다. 지난 어느 날에...”
그러자 그분을 영접했던 목사님 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일터 얘긴 여기서 하지 맙시다. 여긴 우리가 쉬러 온 곳입니다.”
물론 이해가 되는 말입니다만,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는 건전한 취미활동과 스포츠가 필요하지만,
그 취미생활을 즐기는 만큼, 기도생활을 즐겨보십시다.
그 취미생활을 엄청나게 즐기면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생활을.. 만약 즐기지 못한다면,
뭔가 잘못된/미성숙한 신앙상태인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곳입니다.
당신이 그에게 ‘사라졌을 때 slipped away’ 그와 동행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만,
우리는 종종 ‘그저 잠시 주님께 사라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이 내가 도피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분만이.. 내가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기도하러 사라지는) 쉼’을 종종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가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는 것을 봅시다.
세상은, 또한 교회도 마찬가지로.. 소음들로 꽉 차있습니다.
특히 당신들 같은 목회자들은.. ‘누구도 당신을 찾을 수 없는’ 한적한 곳으로 가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아서 독대해야 합니다.
그때 많은 책들을 갖고 가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물론 ‘경건서적’을 읽어야 하지만,
때로는 머리 아픈 ‘신학서적’들이.. 당신의 교제시간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공부만 하는 사람’이 되지는 마십시오.
▲마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혹자는 말합니다. “왜 예수님이.. 그렇게 많이 기도해야 합니까?
그는 성육신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기도 많이 안 하셔도 될 것 같은 분인데..
그러나 일단 그 질문의 어리석음에 대해 살펴봅시다.
주님이,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라지는 것이
그게 그렇게 어리석은 일입니까?
단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거기서 혼자 계시면서’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신 것이.. 불필요한 시간이었겠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시간을.. 낭비라고 여기지 마십시다.
바쁜 일상에서 빠져나와,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다.
▲눅6:12~13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당신에게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매우 힘든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을 내리기 위해, 밤 새 기도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만약 없다면, 보십시오.
‘우리는 다 예수님보다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밤 새워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어법)
예수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선택되어져야 하는 사람들을 선택하기 위해
밤새 기도의 자리로 가셨다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린 예수님 보다 더 우위에 있습니다. (반어법)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더 이상 아주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게 되어졌습니다. (반어법)
▲마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누가 겟세마네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겟세마네에서 치러졌던 전쟁을 누가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가 땅에서 무릎을 떼었을 때, 전쟁은 이미 끝이 났습니다.
전쟁이 거기서 (십자가에 앞서, 기도시간에) 이미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가 대면해야 할 문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싸워야 할 적(마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영역에 침범해 들어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문제들을 우리 힘으로 직접 상대하고, 기도는 등한시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서, 승리가 주어질 때까지 씨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기도로서 분투하며 이겨내셨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몸으로 처리하시기 전에)
겟세마네 기도를 간절히 드리신 것을 (기도로 처리하신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저 몸으로 부딪혀서 이기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기도로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는 너무도 많은 산(난관)들과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많은 일들이 당신을 낚을 기회를 엿보고, 당신을 좌절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들은, 떠나지 않고, 거기에 머물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상담으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것들 중 어떤 것들은, 상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당신이 하나님 앞에 얼굴을 숙이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해결해 주실 때.. 비로소 해결이 됩니다.
....................
▲눅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만약 기도에 관한 말씀을, 모두 모아서 요약해서 말한다면
‘우리는 항상 우리 삶의 모든 시간에 기도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습니다.
“나는 특별히 구별해서 기도를 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대신에 나는 좀 더 하나님의 임재를, 내 삶에서 체험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제가 하나님과 늘 동행하고, 임재를 의식한다면, 특별히 개인기도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기도할만한 혼자만의 공간도 없습니다.”
젊은이들이여, 당신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하나님과 1:1로 기도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배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힘, 기도의 삶을 살아내는 힘,
항상 하나님과 대화하는 삶... 즉 이 모든 중요한 것들은
하나님과 내가 1:1로 보내는 시간,
주님과 함께 하는 시크릿 타임,
기도를 위해 내가 따로 떼 놓은 시간으로 부터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따로 정한 개인기도시간이 없다면, 여러분이 느낀다는 주님과 동행, 임재는..
그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 임재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해야 하며, 낙심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아야.. 눅18:1
▲기도를 시작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지속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들은 많은 기도제목들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내려놓습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신은 그 기도제목들로, 뒹굴며 씨름wrestle한 적이 있습니까?
그 기도제목을 붙잡고, 지속적으로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아마 어떤 분은, 자기 마음의 기도제목들은 종이에 써져있기는 한데,
그 종이는 아마 15년 전 쯤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기도로 “나는 당신을 내게서 떠나보내지 않겠습니다.” 합니다.
이런 식의 간단한 기도는 잘 합니다.
그러나 진짜 기도는, 기도시간에 참고, 견디고, 오래 버티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다가 쉽게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낙심이란..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얼마 안가, 기도를 중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아야.. 눅18:1
아래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슬픈 말씀중 하나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18:8
이 말씀이 왜 그렇게 슬픈가요?
말세가 되면 될수록, 기도하는 사람이 희귀할 것을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눅18:1절부터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 가르치고 계십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내 아버지는 신실하시고 내 말은 진리이다.
그는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들어주실 것이다.
내가 말한다. ‘구하라 그럼 받을 것이다. 구하라 찾을 것이다.’”
그러시다가 잠시 멈추시고,
“그러나 내가 돌아올 때에, 내가 이것을 믿는 사람을 한 명도 찾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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