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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인성을 본받아.. Paul Washer

LNCK 2012. 2. 29. 18:09

 

 

◈예수님의 인성을 본받아..           요5:19                동영상 출처 15'~29'

 

Pray and be alone with God - Paul Washer             P1    P2(현재페이지)    P3    P4

 

예수님이 100% 인성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서 사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본받아 살게 하려는’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뭐든지 ‘그건 예수님이라서 그렇게 하셨고.. 나는 죄 많은 인간이잖아!’ 하면서

발뺌하고, 회피합니다...

 

설교자 Paul Washer 목사님은 ‘예수님을 본받게 해 달라’는 기도가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기도 중에, 가장 dangerous, 위험한 기도라고 하십니다...

 

 

◑인성으로서, 우리의 모델을 살아내신 예수님

 

행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이단들이 기독교를 공격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신성deity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2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걸쳐, 우리는 <예수님의 신성>을 지켜야 했고, 변증해야 했습니다.

우리에겐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선언해야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신성과 똑같이 중요하게 부각되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인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이단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듯이)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는 듯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했냐고요?

왜냐면 그는 하나님이셨으니까요!” (인간인 우리로서는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아닙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대부분의 삶과 사역은.. 인간으로서 행하신 것들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르친 모든 것, 일으킨 모든 기적들은

그가 사람으로서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완전히 성령에 의지하여 행한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큰 형님이시며, 또한 우리의 삶의 모델이 되기도 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사람으로서의) 모델이 되십니다.

 

그분의 성육신으로..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완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으로서 그는 완전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완전을 지향해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힘에 완전히 복종하였습니다.

인성을 가지신, 완전한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힘에 완전히 복종하는 사람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요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기도할 때, 가장 괴로운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내가 이 모임에 대해, 아주 관심을 갖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우리는 태생적으로 ‘나와 관련된 것들을’ 기도합니다.

이번 집회와 관련해서 예를 들면,

 

-여러분들이 우리 단체 HeartCry를 좋아할까? 여러분들이 우리를 후원하길 원할까?

-또한 여러분들도 내 음식을 걱정합니다. 제게 대해 많은 신경을 써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말씀하십니다.

‘내 음식은, 내 생계는, 내가 사는 이유는..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다.’

 

여러분, 우리가 다 주님의 사역을 한다고 하지만,

그 기도의 내용부터 보면, 대부분 내 사역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 우리 성도, 우리 프로젝트, 우리 OOO ...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점점 성숙되어져 갈수록

-우리 교회, 우리 성도가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부터가, 내 관심에서 → 아버지의 관심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그러하셨으므로,  요4:34↑

우리도 얼마든지 그렇게 <그리스도를 본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큰 문제 중 하나는,

“맞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라고 발뺌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율법에 의해 심판받는 다는 말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람은 율법에 의해 심판받습니다.

그러나 저는, 율법에 의해 심판받는 것은 작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폴 워셔가 율법의 척도에 의해 심판받는다면... 저도 물론 통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어려운 척도가 있다는 것 아십니까?

 

완벽한 사람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비교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처럼 되는 것’ ..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기도입니다.

      *위험한 dangerous라는 말에는, 긍정적/부정적 의미가 둘 다 포함되어 있는 듯 합니다./편.


“주님 저를 그리스도와 같아지게 해 주십시오.

저를 내동댕이치시거나, 제 사역을 위협하거나

만약 당신이 저를 해치셔야 한다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같이.. 저를 만들어주십시오!” 이것이 제 Paul Washer 기도입니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우리 삶에 대한 맹렬한 공격을 부릅니다. 위험한 기도입니다. 

그러나 위험부담이 큰 만큼, 우리 삶에 많은 열매를 가져올 것입니다.

 

인성을 가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요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하나님과 떨어져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주님과 동행, 임재, 교제를 체험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체험하지 못하는 신자들의 특징은.. ‘사람의 일/자기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일을 안 하는 것 같지만.. 일이 되어집니다.

‘사람의 일’은.. 일을 요란스럽게 하는 것 같지만.. 정작 되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보통 젊은 사람의 사역은 활동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그가 바닥에 쓰러지기까지.. 단지 활동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활동이 적어집니다.

심지어 열정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비쳐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많은 것들이 되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오직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는 것을 찾아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요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우리가 얼마나 우리 스스로 결단해서 일을 합니까? 이것은 아주 큰 잘못입니다.

문제들을 우리 스스로 결단하는 것.

우리는 심지어 우리 문화에서 그렇게 스스로 하도록,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만약 차가 필요한데 돈이 없다면? 그가 어떡할까요?

은행에 갑니다. 차를 구입하는데 필요한 모든 절차들을

자기 스스로의 생각대로 다 결정하고, 처리합니다.

그는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고, 그 일을 끝마칩니다. 그리고 은행에 종속bondage됩니다.

 

차가 없을 때, 그래서 차가 필요할 때.. 그 결정을 먼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저는 차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은 부족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러면 하나님은

-적당한 차를 주시든지, 그에 맞는 금액을 응답해 주시든지..

-지금은 때가 아니니, 기다려라.. 하시든지

-네게는 좋은 차가 필요 없다.. 적당한 차를 구해라 하시든지 

 

이런 저런 구체적인 인도와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매사에 우리는 조목 조목, 기도하고, 구체적인 인도를 받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저는 집이 필요합니다. 돈이 없습니다. 아버지...”

이런 문제를 놓고도, 오랜 기도가 필요합니다.

뭐든지, 내가 인간적인 수단을 강구해서, 스스로 결정/처리해 버리는 것을

피하는 훈련을 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합니다.

 

“저는 사역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것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시작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여주세요. 저를 이끌어주세요.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완전하게 주님께 이 사역의 주권을 넘겨드립니다.”

 

이렇게 절대적인 항복을 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은.. 오늘날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으신 이유 중 한 가지는,

우리에게 이런 삶의 모델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완전하지 않지만, 우리는 지향합니다.

 

만약 누가 이런 질문들을 한다면 우린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왜 그곳에 가서 그 일을 하셨습니까?”

“왜냐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오 그것은 당신에게 놀라운 기회가 열려진 것 같네요!”

“아닙니다. 나에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말고는.. 제게 아무 기회(유익)가 없습니다.”

 

 

◑인성으로서, 완벽하게 성령의 인도를 받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심은

그가 완벽하게 성령에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사람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그가 행한 모든 일을, 성령의 힘으로 해냈습니다.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하여, 성령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맏형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우린 그처럼 될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는 하나님이시니까요” 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일면 맞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우리들은 이것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맏형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 완벽하게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한 삶을 산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에 완전히 의지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의 신성을 위해 싸우지 않습니다. 이단 논쟁을 안 벌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를 닮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성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해서, 그리고 성령의 힘에 완전히 의지하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