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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음을 이식하기

LNCK 2012. 4. 19. 09:51

◈예수님의 마음을 이식하기            빌2:5~11            11.12.18.설교스크랩



◑서론/ 예수님의 마음을 이식하기       *이식 : 移植 옮겨심기, 임플란트


현대의학과 의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인체의 웬만한 부분은 이식수술이 가능합니다.

의학에서 장기이식과 조직이식으로 구분하는데,

5대 장기 이식수술은 심장, 간장, 췌장, 신장, 폐(허파)를 이식합니다.

최근에는 인공심장을 만들어 앞으로 사람의 몸에 심장이 필요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또 조직이식 수술에는 각막이식, 조혈세포 이식이라는 골수이식을 비롯해서

힘줄, 피부, 근육, 인대, 뼈, 판막, 혈관이식 등이 있습니다.

미래사회는 체세포나 줄기세포 이식을 통해 인간의 노화방지 정도가 아니라,

무병장수 체질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성형외과는 피부이식 수술에 탁월합니다.

성형수술 수준이 리모델링 정도가 아니라, 재건축 수준입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성형수술을 받고 가면

공항에서 신분증 사진 대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의 마음도 이식할 수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으로 변화 받으면

새 사람, 새 성품, 새 마음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을 이식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이식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이식 받았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의 이식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본문 말씀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빌2:5


우리의 인격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이식시키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변화 받은 후, 자기 가슴에 예수님의 마음을 이식시켰습니다.


고전2:16절에서 자기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식시켰다고 간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전2:16

 

예수님의 성품을 이식시켰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이식시켰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이식시켰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이런 새 사람의 본질을 이식시키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이식시키십시오.』

                              *품으라는 그저 ‘가지라, 있게 하라’는 뜻입니다.


저는 지난 주일에는「바라봄의 영성으로 살아가자」고 설교했습니다.

믿음의 모델들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보자고 호소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가슴에 예수님의 마음을 이식하며 살아보자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 심장에 이식해야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1.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마음을 이식하기      빌2:6


성경은 예수님의 근본이 하나님의 본체이시라고 강조합니다.

즉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셨다’고 강조합니다. :6


여기서「취하지 않으셨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 단어는 ‘움켜잡는다. 놓치지 않으려고 꽉 붙잡는다. 강요한다.’는 뜻입니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고집부릴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자기권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자기주장이 강합니다.

자존심이 셉니다. 자아가 아주 강합니다. 고집이 셉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Empire state building, 시카고의 Sears Tower,

캐나다 토론토의 CN Tower, 최근에 우리나라 삼성건설이 공사한 두바이의 마천루

부르즈 할라파는 얼마나 높은지 160층입니다. 지상에서 최고 높은 건물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높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의 고집입니다. 자기주장입니다.

현대인들은 여간해서 자기권리를 결코 양보하지 않습니다. 자존심을 움켜잡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동한 자기권리를 내려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읽어보면, 단 한 번도 자기주장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자기권리나 자기주장을 움켜잡는 사람이 되지 말고,

양도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최근에 빌립보서 2장을 읽다가 전율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 특히 종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7


저는 이것을「동등에서 강등으로」라고 표현해보았습니다. 엄청난 사건입니다.


▲교만은.. 마귀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가 좀 더 선하다, 좀 더 낫다, 좀 더 남보다 거룩하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는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고, 마귀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자기를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자기를 양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기주장을 철회할 줄 알아야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 이식’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열심히 헌신하는데, 혹시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지는 않습니까?

고집이 세지는 않습니까? 일은 잘 하면서도 자존심이 세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자기를 주장하지 말라고 부탁하십니다.

교회 지도자일수록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벧전5:3


부부사이에도 서로 자기주장을 하지 말라고 성경은 가르쳐줍니다. 고전7:4

우리의 인격 속에 이식해야할 예수님의 마음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2. 자기를 비우는 마음을 이식하기         2:7


사람이 자기주장을 철회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기를 비우는데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를 철저히 비우셨습니다.

그래서 마구간에 태어나셨고, 일평생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셨습니다.


성경에서 사용하는「비운다」는 단어는 ‘통을 쏟아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비우셨다.』고 설명합니다.


신학적으로 예수님의 비움(kenosis)을 네 가지로 해석합니다.


첫째, 자신의 영광을 비우셨습니다.

둘째, 신적인 존엄을 비우셨습니다.

셋째, 신적인 특권을 비우셨습니다.

넷째, 하나님과 동등됨을 비우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심지어 종의 신분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욕심에 눈이 어두워, 비우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채워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얼마나 반대적입니까!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낮아지시고,

인간은 자기 욕심을 채워 높아지려고 한 것입니다.


비운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비움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특히 비운다는 것은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집착’이라는 말은 쓰레기라는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은 대부분 쓰레기와 같은 것들입니다. 하찮은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비우고 살수록 편합니다. 여유가 생깁니다.

자유롭습니다. 초연해집니다. 마음을 비울수록 오히려 부요해집니다.

마음이 커집니다. 행복지수가 높아집니다.


비움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낮출수록 평강이 임합니다.

반대로 위로 올라갈수록 불안해집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공격의 대상이 되고, 비판을 많이 받게 됩니다.


높은 산 정상에는 산소가 희박합니다. 이처럼 올라갈수록 위험해지는 것입니다.


최근 어느 책에서 재벌들의 두려움을 언급했습니다.

거대 재벌들일수록 부자서열에서 순위가 바뀔까봐, 긴장하고 걱정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살아야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식으로 살아야합니다.


자기를 대단한 존재로 여길수록 오히려 불행해집니다.


마음을 비울수록 낮은 자리에 익숙해집니다.

예수님처럼 어느 자리에도 연연하지 않습니다.

말석에 앉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갑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이란 자기를 비천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정의합니다.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 것, selflessness, 이것이 곧 빈 마음의 본질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이 품으신

빈 마음과 낮은 자리 마음을 이식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자기를 과시하다가 벌 받은 히스기야 (왕하20:12~18)

 

히스기야가 병들었다함을 듣고,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은 편지와 예물을 보내왔습니다.

병문안을 통하여 외교적 관계를 돈독하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2


히스기야는 바벨론 왕이 보낸 외교관들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뻐서

그들에게 자기 보물 창고에 있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은, 금, 향료, 값진 향유를 보여주고, 자기의 칼과 방패들도 보여 주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자기가 가진 귀한 것들과 왕궁과 나라 안에 있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한 것입니까?


우선은 바벨론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바벨론과 유다는 강대국 앗수르와 대항하기 위해 전략적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우호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데는,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임을 보여주는 게 필요했습니다.


이에 히스기야는 유다의 군사력, 경제력 등 모든 것을 소상하게 다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는 어떤 점에서 외교요, 정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이런 히스기야를 책망하시고,

심지어 진노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국의 환관이 되리 하셨나이다." :17


욕심을 버리면 길이 보인다


◑3. 자기를 희생하는 마음 이식하기           2:8


예수님의 강등의 마지막 단계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희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강등은 잠시 동안 신분이 내려간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8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의 극치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희생을 통해 사랑의 절정을 이루셨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 중에서 가장 고상한 요소는 희생정신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옛날 버마, 지금의 미얀마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한 아도니람 저드슨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희생과 순교에 대하여 이렇게 감동적으로 평가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희생한 것 없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것은 그에 앞서 희생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만일 어떤 사람이 성공은 하지 못하고 희생만 했다면

그것은 그 후에 올 누군가가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닦아놓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누군가의 희생 덕택에 성공하게 되든지,

아니면 우리의 희생이 어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희생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놀라운 열매를 맺습니다.


혹시 우리는 자녀들에게 성공을 위해서, 이기적인 야심만을 부추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결코 손해 보지마라. 약아야 한다. 실속이 있어야 한다. 바보처럼 희생양이 되지 마라 등등.


이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히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가르쳐주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죄사함 받았음을 주지시켜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부활의 승리와 영광을 가져온 발판이 되었음을

마음에 이식시켜주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희생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희생봉사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복음 전도자 C. T. 스터드 Studd는

이런 가슴 뭉클한 감동적 도전을 줍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나에게 있어서 그를 위한 어떤 희생도 과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내면에 예수님의 마음을 이식하는 새로운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마음, 자기를 비우는 마음, 자기를 희생하는 마음을 이식하며 살아가십시다.


우리의 인격에 거룩한 유전인자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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