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쓰시는 교회 행4:23~31 12.01.01.설교스크랩
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첫 설교 준비는 목사를 평소보다 더 긴장하게 만듭니다.
메시지의 전달 뿐 아니라, 새해의 사역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금년에 저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1.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영혼 구원입니다
확장도, 현상유지도, 좋은 평판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연히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훈련을 받고 교제를 나누는 것도
결국 우리의 눈을 교회 밖으로 돌려서,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방황하는 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다가 낙심하여 신앙생활을 중단하거나 방황하는 분들도 적지 않기에
그분들을 찾아내 위로하고 권면하여 함께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교회가 새 가족으로 새 신자들로 계속 채워지지 않으면
신앙생활의 활기를 떨어지기 쉽습니다.
자칫하면 교회가 구원의 방주요 세상의 빛과 소금을 역할을 감당하기보다
social club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행2장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베드로가 담대하게 말씀을 증거하니,
3천 명이 회개를 했습니다. 이것이 예루살렘교회의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영혼 구원으로부터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화 받은 사람들이 나가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그 수가 더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핍박받던 성도들이 안디옥에 모여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안디옥 교회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세워서 복음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영혼을 구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입니다.
행3:6절을 보니까, 사도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향하여 이렇게 외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이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려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앉은뱅이 같은 모습, 전혀 능력이 없는 모습을 만났을 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2. 영혼 구원 사역은, 지속적으로 방해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형편이나 사정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세상은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 대하여 그렇게 우호적이지 못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무심코 던진 박사들의 이 한 마디로 인하여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 성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헤롯왕은 자기의 왕위를 지키려고 예수와 비슷한 때에
베들레헴과 주변 지역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반면에 성경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아가 났다는 것에 대하여 별다른 감동 없이 무관심한 태도를 가졌습니다.
이러한 험악한 분위기에서 예수님은 태어나시고 자라셨습니다.
그 분이 사역을 하시는 동안에도,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계속하여 그를 따라 다니며, 계속 방해를 하고 죽이려고 모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성령의 능력으로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 생겨난 초대교회의 상황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앞에 앉아 있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소경을
성령의 능력으로 고쳐주었습니다.
일어난 표적을 인하여 성전 주변에 있던 많은 유대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기회를 놓칠세라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바로 그 메시아요
예수의 죽으심, 부활과 승천을 말하며
회개하고 돌이켜서 예수를 믿을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을 가르치는 것과 예수의 부활 전함을 싫어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공회에 끌고 와 심문을 합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는 질문에
사도들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라 대답합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처치할 궁리를 했지만, 마땅한 죄목을 찾지 못해 할 수 없이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위협을 하며 놓아주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떠합니까?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예수님 시대나, 사도들이 사역하던 시대나, 오늘날이나,
복음에 냉담한 세대라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대적하는 무리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아랍권 여러 나라에서는 기독교인들을 공격하고 교회당에 불을 지릅니다.
지난 주 나이지리아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폭탄을 터뜨려
예배를 마치고 나오던 많은 기독교인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현대를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라 하는데, 절대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천하에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이 예수 외에도 여럿 있다고 주장합니다.
동성연애자들의 결혼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곳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에 있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이 흐려지는 시대,
비정상적이 더 정상적인 것처럼 행세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노출되어 살고 있습니다.
◑3. 박해를 당하는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하여 주님이 기뻐 쓰시는 교회가 되었습니까?
▲1. 함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교회의 별명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집’입니다.
교회는 기도 소리가 그치지 않고 기도로 가득 차게 만들어야만 교회다워집니다.
교회가 기도를 시작하면,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더 이상 전도하지 말도록 위협합니다.
박해가 날로 심해지는 상황에서, 세상적으로 볼 때 약자였던 교회가 택한 것은
열심당처럼 칼을 품고 다니며 대항하거나
사두개인들처럼 로마 정부와 적당히 타협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신 이시여!’ 하며 :24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들이 우리를 위협하는 것을 살펴 주시옵소서..’ :29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진 특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주한 일정 가운데서도 아침 일찍이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가 주시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에도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실 능력을 받았습니다.
기도는 때로 약한 것 같고 어리석은 것처럼 여겨집니다.
때로 기도해도 응답이 빨리빨리 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믿는다 하는 사람들 중에도, 문제가 생기면
나름대로 이것저것 다 해보다가 안 되면 마지막으로 기도나 해보자고 합니다.
기도는 최후의 방법이 아니라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강력한 도움을 얻는 수단이요, 승리의 비결입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초대교인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편 2:1~2절을 인용하며 다윗의 입을 빌어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고 세상의 군왕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메시아를 대적한다는 예언이
이제 나사렛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 졌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행4:25~26
분봉왕인 헤롯, 로마 총독인 빌라도, 이방인들인 로마 군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통속이 되어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종 즉 메시아가 되시는 나사렛 예수를 대적하였습니다.
대적자들이 비록 사단의 도구가 되어 행동을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는데 이용되었음을..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초대교회 주변의 상황은 복음 전파에 점점 불리해져 갔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낍니다. 두려워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리들은 어떠한 기도를 드립니까?
그들은 자기들을 둘러싼 핍박이 사라지기를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간구합니다.
온갖 조소와 핍박 앞에서도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담대함이란 단어에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정적인 사람, 소극적인 사람, 현재의 상황을 이유로 핑계만 대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현재의 상황이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자꾸 뒤로 처지지 마세요.
다니엘과 같이 뜻을 세우며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초대교인들과 같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내게도 담대함을 주옵소서,’
‘내게도 힘을 주시고 기쁨을 회복하게 하소서,’
‘주님을 잘 섬길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기도 응답의 결과로 성령 충만해지고, 신앙생활에 힘이 있고
사업에 활기가 있고, 가정에 웃음이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서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이웃을 또한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행20:28에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이 교회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엡5: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과 같이 하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첫 번째 길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1:24
바울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십자가 고난을 그의 몸에 채운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교회를 향한 사랑은 얼마나 되는지,
교회를 위한 섬김을 얼마나 되는지를 돌아보기 원합니다.
사랑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나 힘들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수고, 희생, 인내는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식들을 향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퍼주어도 아깝지 않고,
사랑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잘못을 해도 인내하고,
사랑이 있기에 기쁨으로 희생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향한 이런 사랑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봉사가 쉽고, 섬겨도 기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사랑하면.. 교회의 허물을 내 것으로 끌어안게 됩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자녀들의 허물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습니다.
자녀가 잘못한 것을 동네방네 불고 다니는 부모는 없습니다.
내 잘못, 내 부족으로 생각하고 기도합니다. 그것이 참 사랑입니다.
교회를 대하는 자세도 같습니다. 교회에는 허물이 많습니다.
교회는 아직 미완성의 존재입니다. 완성을 향해 나가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아직 죄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는 길은, 서로의 희생과 은사를 통해서
교회를 좀 더 주님을 닮은 곳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엡4:11~12절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하심이라."
목사를 세우는 목적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아직 완전치 못한 성도들이 봉사에 참여함으로 점점 완전케 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리니" 무슨 뜻입니다. 엡4:13
아직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그 길을 향해서 서로가 협력하고 수고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완성을 위해서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교회의 허물이 보이고, 교회의 부족함이 보일 때에,
그것은 비판이나 가십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내가 끌어안고
기도하고 수고해야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3. 지속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4:31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간절하게 기도하니, 하나님이 응답하시는데,
모인 장소가 진동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무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무리들을 다 성령으로 채워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성령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사도를 포함한 120명의 무리들은
이미 오순절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였습니다.
본문에는 새롭게 예수를 믿게 된 자들과 더불어
다시 한 번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하여
성령의 충만함이 계속적으로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니 그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돌아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으로부터 멀게 하는 요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애굽 왕 바로가 강퍅한 것같이 세상은 점점 더 복음에 대하여 마음이 굳어집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그럴듯한 논리와 궤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전도를 방해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요, 공중 권세 잡은 마귀와의 영적인 싸움입니다.
2천년이라는 시간은 흘렀어도, 성경과 초대교회는
여전히 우리에게 승리의 비결을 제시합니다.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환경을 초월하여 역사 하시는 하나님께
성도들이 함께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섬겨야 합니다.
그가 주시는 힘에 의지할 때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고
영적인 능력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4. 교회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전파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교회를 향해서 거침없는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향해서 심한 비판, 욕설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러할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변명할까요? 아니면 같이 욕을 할까요?
그것은 주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주님의 방법은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벧전2:23절입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주님의 방법은 같이 욕하는 게 아닙니다. 위협하는 게 아닙니다.
공의로 심판하는 분께 부탁하는 것입니다.
벧전2: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하심이라"
우리를 교회로 불러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펀 글) 지난 주 금요일 대만의 원주민 마을을 방문하였습니다.
해발 800미터에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되어 있고, 아직도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마을 중앙에는 교회가 잘 지어져 있었습니다.
약 9억을 들여, 온 대만교인들이 힘을 합하여,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건축했다고 합니다.
모두 돌로 되어 있고 강대상은 큰 나무 뿌리로 되어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산에서 잘라온 나무 모양을 그대로 살려 만들었습니다.
교회 앞에 낯익은 글자가 있었습니다. 한글로 기념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오셔서 23년 동안 선교한 한 선교사님을 기리는 기념패였습니다.
그분은 영어 교사를 하시다가, 선교에 부름을 받고,
대만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그 원주민은 글이 없어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를 만들어 주고 그 언어로 신약 성경 전부를 번역하고 완성한 것입니다.
무려 23년 동안 그곳에서 선교하면서
그들의 글을 만들어 주고, 신약성경을 완전히 그들의 말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글을 보면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한국 선교사 한 분의 밀알이 떨어져 참으로 많은 열매를 맺히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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