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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2

하나님 중심적인 사역

LNCK 2012. 6. 5. 10:25

◈하나님 중심적인 사역        요5:17~20           12.05.13.설교일부녹취

 


▲서론

오늘날 우리 가운데 가장 왜곡되어진 부분 중 하나가 ‘사역’이다.

정말 우리 주위에 <자기중심적인 사역>이 가득하다.


<자기중심적 사역>이란,

사람이 계획해서,

사람의 방법대로,

사람의 자원으로,

소위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사역이, <자기중심적인 사역>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역한다고 하지만,

인간중심적인 사역인 것이다.


예를 들면, 자녀를 위해서, 자녀를 키운다고 하지만,

사실은 부모 체면을 위해서, 자녀를 키울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위해서, 사역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의 계획/방법/자원으로 행하면서도

명분은 ‘내가 주의 일을 한다’면서, 스스로 속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자기 중심적 사역>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도 없다.


▲<자기 중심적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 사역>을 했던 노아,

노아 시대에, 하나님의 계획은, 인류의 죄가 가득하여, 인류를 멸하고,

노아의 가족으로부터 인류를 새롭게 시작하려 하셨는데,

그래서 노아에게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리시고,

그것을 위해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시고, 방주의 식양을 알려주셨다.


그런데 노아가 그런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못 알아듣거나, 아니면 무시하고,

자기 임의대로, 그저 집집마다 다니면서 전도하고,

또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 돌아오라’고 호소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물론 집집마다 다니며 전도하는 것은, 귀하고 소중한 일이겠지만,

그러나 만일 그랬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자기중심적 사역>이 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 노아에겐, 묵묵히 방주를 짓는 것이.. <하나님 중심적 사역>이었다.


<자기중심적 사역>에는, 하나님의 운행하심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사역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우리 가운데 <하나님 중심적 사역>이 없거나.. 있어도 턱없이 부족해서 그렇다.


다시 말하면, 우리 가운데, 열심히 사역에 봉사하지만,

<자기중심적 사역>으로 일관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본문에, <하나님 중심적 사역>이 잘 요약되어 있다.


요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이 구절들을 보면, 예수님이 사역을 감당하신 방법을 잘 볼 수 있다.

요약하면,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역을, 감당하셨다는 것이다. ←요지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 방법은 예수님만 아니라,

신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이 방법으로 사역을 감당했다.

즉 <하나님 중심적인 사역>을 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란 책에 보면, 이 부분이 잘 정리되어 있다.

Experiencing God 헨리 블랙가비 & 클로드,     *요약보기- 클릭-


저희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반드시 알고, 배워야 할 중요한 가치를 담은 책 중의 하나로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추천해 드린다.


이 책은 한 두 번 읽고 은혜 받아야 될 책이 아니라,

저도 그 책을 가지고 있는데, 하도 많이 읽어서, 책이 너덜너덜할 정도다.


이러한 핵심적 신앙 가치관을 담은 책들은,

우리가 읽고 그 내용을 다 소화해서, 그대로 살아야 한다.

거기에 나와 있는 내용들은, 우리의 살이 되고, 뼈가 되어야할 내용들이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그 책에 보면, 이 <하나님 중심적 사역>의 내용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


◑사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사역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다.

사역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즉 사역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다.. 인간인 우리가 아니다.


▲‘주의 일’의 개념

사실 우리는 오늘날 성경에 나와 있는 용어를 그대로 쓰면서도,

그 이해가 매우 달라져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주의 일’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하는 봉사/수고/사역’을 뜻한다.

이때 우리가 ‘주의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의 일’을 하셨는데,

그것은 정말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행하신 것이다.


우리가 ‘주의 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위해 하는 일을 뜻한다.

그 사역의 주체가 ‘우리’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버지의 일’을 하신다고 할 때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서 하신 일’을 뜻하지 않는다.

즉 주체가 ‘예수님’이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하신 것이다.

즉 주체가 ‘하나님’이시다.


성경이 말하는 ‘주의 일’은,

우리가 주를 위해서 뭔가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주의 일’이요, 진정한 의미의 ‘사역’이다.


요5:17,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위 구절에, 아버지께서 일하신다고 하셨고,

예수님이 그 일을 따라서, 일하신다고 하셨다. 주체가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역’이다.


그 좋은 예가, 사울(바울)을 전도한 아나니아이다.

다메섹의 아나니아는, 사울 한 사람 전도한 것만 하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일평생 동안 한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을 생각해 보시라.

그 일은 21세기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약성경의 절반도 바울이 썼다.


아나니아가 사울을 전도할 때 보시라.

아나니아가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봉사하는 가운데, 그 일이 되어졌는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더 엄밀히 말하면,


아나니아가 한 것은, ‘주의 일’을 한 것인데,

그것이 철저히 하나님이 주체가 되신 일을.. 그가 도구로서 감당한 것이었다.

 

     아나니아가 자기가 주체가 되어, 주님을 섬겼다면,

     그는 결코 사울을 찾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며, 주님을 기다리는 중에

주님이 그에게 찾아오셔서

‘직가라는 거리에 가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아가라’고 지시하셨다.


‘사울이 지금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에게 안수해서 다시 보게 하는 것을

환상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 가서 기도해 주어라.)’ 행9:12


지금 아나니아는, 사울이 누군지 알고 있다.

자기 같은 기독교인을 잡으러 온 사람이다.


그래서 주님께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아니다. 그는 내가 택한 그릇이다.’

그래서 환상중에 하나님의 지시를 듣고, 아나니아는, 눈이 먼 채로 있는 사울을 찾아가서,

기도해줬더니,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서, 곧바로 보게 되고,

사울은 거기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는다.


이것은 아나니아가 한 사역이 아니었다.

아나니아가 주를 위해서 열심히 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 것이다.


이처럼 사역은, 하나님이 (주체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적 사역은, 우리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요5:17에, ‘아버지가 오늘까지 일하신다’고 하셨다.

이 말씀 속에 지금 여태까지 말씀드린 내용이 다 포함되어 있다.


아버지가 일하신다. 오늘까지!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일하신다는 것을 알고,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이.. 진정한 사역이다.

‘그래서 나도 일한다’


요5:19에,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요15:5에서, 예수님은,

우리도 우리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과 똑같이!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you can do nothing by yourself apart from me


예수님은, 자신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우리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즉, 오직 하나님이 시키신 그 일, 진정한 의미의 사역을 하라고 하신다!


이 삶이, 이것이 신앙의 본질이요, 우리 신앙생활이며,

교회는, 이런 삶을 사는 성도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이,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스스로 행하는 사역들이, 너무너무 많은 것 같다.

미국의 토저 목사님이

‘오늘날 교회에서 성령님이 떠나셔도, 전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90%이상의 일들이, 예전처럼 그대로 진행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초대교회 때는, 성령님이 운행하지 않으면, 개점휴업,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성령님이 운행하지 않으셔도,

아무 이상 없이 90%이상 아무 차질없이, 그대로 진행될 것이다...

이 말은, 오늘날의 교회가, ‘주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미국교회를 두고 한 말이지만, 한국교회도 비슷한 상황이리라.

그만큼 우리 가운데는, 우리 스스로 하는 일들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주의 일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요5:19

우리도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을 말씀하셨다. 요15:5


하나님 중심적인 사역은, 결코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하셔야 한다.

아까 아나니아 예를 들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사실 아나니아가 스스로 열심히 봉사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제 열방으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만세전에 사울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잔멸하기 위해서, 그 살기가 가득한 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친히, 영광중에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 영광의 빛 앞에 눈이 멀어서, 다메섹에 가 있는 그에게,

예수님이 아나니아에게 찾아오셔서, 저를 찾아가 기도해 주라고 하셨고,

그를 위해 기도할 때, 눈에 비늘이 떨어지면서, 그가 거듭나게 된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하나님만 하셔야 될 일이었다.

하나님이 안 하시면, 되어질 수 없는 일들이었다. 절대로!


이런 일은 교회에 성도 수가 많다고/적다고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 교회가 10만명이 되었다고 할 때,

그래서 세계적으로 큰 교회가 되었다고 해도,

주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은, 오직 하나님만 하시는 일이다.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도록,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꾸준히 가지는 일이다.


▲A성도님이 이런 간증을 하신 적이 있다.

그분은 외국에서 공부하시고, 한국에서 좋은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어서,

직장생활을 잘 하고 계셨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러울 것 없는 훌륭한 분이었지만,

문제는 알코올중독자였다.


그는 술을 계속 마셔야만 살 수 있었다.

술을 마셔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마신다.

그래서 아침에 깨보면, 어떤 날은 식당에 혼자 누워있었다.

직장 동료들과 같이 회식하다가, 거기서 잠들어서, 거기에 자기를 놓고 간 것이다.


그러니 가정에도, 자녀들에게 많은 피해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 술을 끊어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약물치료도 받아보고, 정신과치료도 받아보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면 될 줄 알고, 열심히 교회봉사도 해 보고..

그런데도 거기서 도저히 빠져 나올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술중독은, 죽어야만 빠져나온다’고 한다. 사실이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그 분이 자유케 되었는가 하면, 지금부터 약 10년 전의 일이다.

우리 교회가, 그 분이 살던 지역에서 ‘십자가 성령 컨퍼런스’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당시까지 그 분이 거기 사는지도 몰랐다.

다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그 지역에서 컨퍼런스를 열게 되었다.


그 분의 아내가,

그 지역에서 집회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남편을 거기에 모시고 왔다.


아내는 기도로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부터 집회가 시작되면, 남편을 데려가려고 했는데,

그 전날에도, 남편은 술 마시고, 여관에서 쓰러져 자다가, 아침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아내가 우선 일단 집에서 잠을 재우고,

자고 깨어난 다음에, 저녁에 남편을 모시고 왔다.


집회 첫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A성도님은, 자기 신앙이 완전히 껍데기뿐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기는, 하나님과 개인적 교제는 전혀 없이,

종교적/형식적 몇 가지 의식에 참석하는 것에 불과하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지식도 없이, 교리적 지식만 몇 가지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동참하는 것에는.. 아예 개념도 없었고,

그저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이,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인 줄로..

자기 신앙이 완전히 껍데기뿐인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비로소 보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에게 적나라하게 보이신 것이다.


그날 집회 가운데, 우리 팀들이, 여러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그 분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그 분은,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술 한 모금 안 마셨다고 한다.


그 후에 그 분은, 자기 자녀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고,

그 가정도 너무나 놀랍게 회복되었다.  

이런 일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사람만 많이 모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이 하셔야만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 중심적 사역>은, 우리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사역은, 우리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반드시 하나님이 하셔야만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자기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고, 요5:19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요15:5

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그래서 이러한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

우리 가운데 더 나타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정리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구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우리에게 보이신다.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 중심적 사역>이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깊이 구하지 않으면,

열심히 사역을 하지만, 그것은 <나 중심적 사역>, 이기적 사역이 되고 만다.

이때는 차라리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더 낫다. 사역 하는 것이 도리어 해로움이 된다.

 

<하나님 중심적 사역>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아버지가 오늘까지 일하신다.

2. 나도 일한다.

3.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4. 나는 아버지가 행하시는 것을 본다.

5. 그것을 나도 행한다.

 

 

6.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신다.

7.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버지의 행하시는 것을 보이신다.

 

............................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에 링컨이 있습니다.

그는 특히 흑인들이 존경하는 몇 안되는 백인 중의 하나입니다.

링컨과 함께 흑인 노예해방의 기수로 활약했던 또 한 사람의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라는 소설을 쓴 스토우 부인입니다.


그녀는 당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이 소설을 통하여

흑인들의 처지를 대변했습니다.

노예 해방이 실현된 다음, 이 두 사람은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스토우 부인을 처음 본 링컨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부인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책을 쓴 사람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비는

헤라클레스 같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조용하시고 편안한 분이시군요.”


스토우 부인은 대답했습니다.

이 소설은 제가 쓴 것이 아닙니다.

노예 제도를 보고 노여워하신 하나님께서 쓰신 것이고,

저는 단지 도구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스토우 부인이 링컨을 본 소감을 말했습니다.

“지금껏 저는 대통령께서 굉장히 무서운 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뵙고 보니 그게 아니군요.”


링컨이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저는 노예 해방을 위한 거룩한 전쟁을 제가 치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정의와 사랑의 역사였지요.

저 역시 하나님이 쓰시는 작은 도구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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