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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26장 한 마디도 감하지 말고 모두 전하라

LNCK 2012. 6. 18. 20:33

◈한 마디도 감하지 말고 모두 전하라         렘26장           출처보기

 

 

칼빈은 성경이 가는데 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데서 멈추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도 말하기를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해서 전해서도 안 되지만

전해야 할 말씀을 전하지 않아서도 안 됩니다.

말씀을 더하고 빼는 것이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전할 때

자신에게 찾아오는 아픔과 어려움이 어떤 것일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보다는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 것이 사명자의 본분임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진실로 하나님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전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귀만 즐겁게 하고, 사람의 영혼은 깨우지 못하고

마음만 감동시키는 설교가 흔한 이 시대의 설교를 어떻게 보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전해야 하고,

그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순종하는 자들이 이 땅에 많아질 때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가 강같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1. 성전에서 설교하는 예레미야   렘26:1-9


너는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집에 와서 경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고하되 한 말도 감하지 말라  :2


예레미야 선지자의 성전 설교는, 앞서 렘7장에서 있었습니다.

그때는 성전 문 입구에서 예언했었는데,   7:2  ☞ 무너진 성전위에 세워진 신앙

본문 26장은, 성전 뜰에 들어가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성전 설교를 할 때가 여호야김 초기였던 B.C. 608년으로 볼 때 :1

남유다가 멸망 받기 전 약 22년 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남유다가 진실로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할 수 기간이

얼마든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성전에 모인 자들에게만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남유다 백성 전체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남유다의 장래와 예루살렘 운명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은

단 한마디도 더하거나 빼지 말고 그대로 선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26:2,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집에 와서 경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고하되 한 말도 감하지 말라


'감하지 말라'는 말씀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3-6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법을 행치 아니하며


내가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낸 나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이미 듣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내가 이 집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고,

선지자들을 보내 순종케 하려고 했지만 선지자들을 배척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악함을 보였지만,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너희에게 내리려 하던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남유다가 멸망당하기 22년 전에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들은 22년 동안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했습니다.


만약에 돌아오지 아니하면 실로처럼 세계 민족의 놀림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했습니다.


6절,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실로처럼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실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법궤를 모셔둔 곳이며

가나안 입성 초기에 예배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주전 1050년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에 법궤를 빼앗기고

실로는 파괴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실로는 예레미야 당시에도 폐허로 변해 있었습니다.


남유다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할 때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이

자신들이 눈앞에 폐허로 변한 실로처럼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7절,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들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그들의 반응은

회개하는 모습이 아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8절,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를 붙잡고 말하기를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하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이었습니다.  신18:20 주1)


다시 말해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고, 그들은 판단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시는 성전과, 그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성읍은

어떤 경우에도 파괴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던 그들에게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성전 파괴를 예언하는 예레미야가, 거짓 선지자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성전이,

이방 군대에 의해 파괴될 것이라는 그런 예언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9절,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모든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로 죽이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영적 귀가 먹으면, 아무리 하늘의 소리를 들려주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날도 예레미야 시대와 다를 바 없는 시대입니다.


아무리 마지막 때라 해도..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 종말이 가까이 오고 있고,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라고 하여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창세 이래로 찾아볼 수 없는 무서운 환난이 온다고 해도,

전혀 두려워하지도 않고, 준비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가감하는 이단들의 종말론에는 미혹되어도

바르게 가르치는 종말론은 믿지 아니하고, 외면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바른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은,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날들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록에서, 일곱 교회에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셨습니다.

영적 귀 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영적 귀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길 뿐이 없습니다.

죄가 나의 영적 귀를 막고,

죄가 나의 영적 눈을 소경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남유다에게 3절에서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라” 고 하신 것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사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여러분! 날마다 회개하는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무서운 것은, 날마다 더 강퍅해져 가는 인간의 심령입니다.

자신들의 죄 앞에서도 너무나도 뻔뻔해져 가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명백한 죄악을 보면서도, 그것이 마치 죄가 아닌 것처럼.. 자행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주일날 왜 들으려 오십니까?

복 받으려고 들으러 오신다면 잘못 온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축복의 말씀이나 전하는 주의 종들이 있다면

하나님 말씀 가감하고 있는 자라는 사실을 뼈 속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죄가 만연한 시대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죄악된 세상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입니다.

죄악이 바벨탑처럼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복만 외칩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죄를 회개하고 거룩한 자들을 원하십니다.

(벧전1: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 받고 거룩해지지 않는다면

어떤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남유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선지자를 죽이려는 악한 자들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 말씀 앞에 내 자신을 내려놓고, ‘나’라는 존재를 유심히 들여다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코 ‘나’라는 존재가 보일 것입니다.


끝까지 자신을 보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말씀의 거울 앞에 날마다 나 자신을 비추어보는

지혜롭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법정에 선 예레미야, 그의 변호    렘26:10-15


성전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남유다의 높은 지도자들이

성전에서 와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정식으로 심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10절에 “성전 새 대문의 입구에 앉으매”

이것은 공식적인 재판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예레미야의 죄를 고소했습니다.


▶11절, 고소 내용입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고관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은 죽는 것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 같이,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하였음이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고소는, 이미 판결까지 자신들이 내리고 고소했습니다.

즉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리라’고 했기 때문에, 사형에 해당된다고 하였습니다.


12-15절까지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을 변호하는 말을 합니다. 3가지로 변호 합니다.


▶12절, 첫째, 자신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은 받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모든 방백과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의 들은바 모든 말로 이 집과 이 성을 쳐서 예언하게 하셨느니라.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파괴되리라는 것은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직접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곧 자신은 참 선지자이며,

자신을 고소하는 너희는 거짓 선지자들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23:16절에 보면,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마음에서 나온 것을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을 미혹하였습니다.


주목하십시오. 예레미야 선지자 같은 분명한 말을 우리들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까?

‘그렇습니다!’ 라고, 진실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입니까?

‘그렇습니다!’ 라고, 진실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족한 저 곽목사도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하여 사명을 받은 자이고

마지막 때를 알리기 위해 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지난 22년 동안 줄기차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이 종말의 복음만을 오늘날까지 외쳐오고 있습니다.


저는 22년에 저에게 나타나셔서

마지막 때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고 보여주셨던 그 날을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고,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택하심 받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각자에게는 아무리 작더라도 사명이 있습니다.

확고하고 분명히 보일 수 있는, 색깔 있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계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예수 믿는 것도 같고, 안 믿는 것도 같고,

교회에 오면 예수 믿는 것 같고,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다면 분명코 미지근한 신앙입니다.


(왕상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여러분! 진실로 하나님께 택하심 받은 자라면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진실로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 눈치 보고 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약간 감동이나 시키려는 설교는 이제 그만 하고,

그들의 영혼을 애통하게 하는 주의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3절, 둘째로, 악한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고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시 한 번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가운데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유다가 지금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재앙을 돌이키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의 분수령

 

그러나 남유다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도 하지 아니했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것은

교회를 건축하고 교회를 부흥시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필요하겠지만


오늘날 이 시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모든 자들이 하나님께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질적으로 성장한 그리스도인을 원하시는 것이지

양적으로 비대해졌으나,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 같은 신앙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내 죄를 회개하고 나의 심령을 깨끗이 할 때

하나님 말씀이 우리 영혼에 씨를 뿌리게 되고

그 말씀의 씨가 30배 60배 100배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 땅을 파헤치지 않고 씨를 뿌리는 농부는 없을 것입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고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들은 남유다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육으로 듣는 하나님 말씀은 아무런 역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악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날마다 회개하는 영혼 속에 하나님 말씀을 받는

귀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4~15절, 셋째로, 하나님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소견에 선한대로, 옳은대로 하려니와

너희는 분명히 알라. 너희가 나를 죽이면 정녕히 무죄한 피로

너희 몸과 이 성과 이 성 거민에게로 돌아가게 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진실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이르게 하셨음이니라.


자신이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 두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자신을 죽인다면

무죄한 피를 흘린 대가를.. 그들이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곧 예레미야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고,

너희에게 한 말이 곧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유다 백성들은 이러한 경고를 가볍게 여겼고 무시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경고를 두렵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신28장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무서운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 때에 세상이 타락하고, 배도하고, 거짓 영들이 나타나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고,

세상 끝 날에 무서운 환난이 있을 것도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노아 시대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겠다는 경고를

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 식구 8명 외에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 불로 심판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롯은 사위들에게 알려주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경고를 가볍게 생각하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3. 보호받는 예레미야    렘26:16-19


▶16절, 방백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음이 부당하니라


아무리 타락한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자들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도

엘리야는 악한 시대에 자신 혼자만이 바알들과 싸우고 있는 줄로 알았지만

하나님은 그 악한 시대에도 바알에게 무릎을 끓지 아니한

7천 명을 감추어 두고 계셨습니다.


타락한 남유다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감하지 않고 전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깨닫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참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인정하였습니다.


▶17~19절

그리고 그들은 약 100년 전에 히스기야 시대에 있었던 말씀을 기억하면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도왔습니다.

그들이 기억한 말씀은 미가서 3장 12절 말씀이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미가3:12)


미가 선지자도 예레미야처럼 예루살렘과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였는데

당시에 왕이었던 히스기야는 미가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여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4. 예레미야의 우군, 우리야와 아히감    렘26:20~24


▶20~23절,

예레미야처럼, 심판의 말씀을 쳐서 예언한 선지자로 ‘우리야’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혼자 만이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고 있지 아니했다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들이 함께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성령의 역사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받은 말씀이나

우리야 선지자가 받은 말씀이 하나로 통일되었던 것처럼

성령의 역사는 하나로 통일되어 마지막 때의 예언을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두려워하지 말고 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21절)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는 가감해서도 안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며 전하는 말씀에 성령의 역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야 선지자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모습과는 상반된 모습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을 죽이려는 무리들 앞에서 담대하게 회개를 외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고 외쳤지만

우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예언을 전하기까지는 잘했는데

여호야김 왕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서 애굽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도망 간 우리야를 애굽까지 사람을 보내 붙잡아서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평소에 개들이 무서워서 도망가면 개들은 계속 쫓아옵니다.

어린 아이들 세계에서도 어떤 아이를 계속 놀릴 때

그 아이가 울면, 더 재미있어서 자꾸만 놀려대곤 합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귀신을 존재를 너무 의식하고 살고 무서워하면, 귀신들이 더 좋아합니다.

귀신의 세력을, 내가 알게 모르게 인정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사탄의 세력, 귀신들의 세력은 2천 년 전에

이미 십자가에서 무장 해제된 이빨 빠진 호랑이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로 죄사함 받고

오직 예수 안에 있는 한 사탄은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입니다.


사명을 받았으면 뭐합니까? 말씀을 많이 알면 뭐합니까?

사명보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환경을 두려워하고, 고난을 두려워한다면

온전히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이 올 때, 고난이 찾아올 때 이 말씀 붙잡고

끝까지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명자의 수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지만

특히 하나님의 사명자의 생명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내가 죽고자 해도 죽을 수 없는 것이 사명자의 목숨입니다.


우리야 선지자가 비록 도망가서 붙잡힘 받아 죽임을 당했지만

그것이 우리야의 사명이 거기까지였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종들만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에는 평신도도 사명자입니다.

아무리 작은 사명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보시기에 최선을 다하는 자가 될 때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더 오래 감당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24절, 사반의 아들 아히감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보호하여 예레미야를 백성의 손에 내어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예레미야 선지자의 편에 서서

불의한 세력들을 말씀으로 물리친 남유다 고관 중에는

당시에 권세가 있던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아히감의 부친인 사반은 요시야의 종교 개혁 때 서기관의 직무를 담당하면서

성경에 능한 자였고, 종교 개혁 때 예레미야가 그 정책을 적극 지지하면서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반의 또 다른 아들 그마랴는

여호야김 왕이 예레미야의 두루마리 책을 불태우고자 했을 때

그것을 만류한 인물이었습니다. (렘36:25)


사반의 또 다른 아들 엘라사는, 예레미야의 편지를

바벨론에 억류된 포로들에게 가져간 인물입니다. (렘29:1-3)


이처럼 예레미야는, 사반의 집안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사반의 아들 아히감은, 본문에서 예레미야를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깊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비밀을 서로 깨닫고 아는 자들만이

서로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오늘날 오직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만이

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고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오직 예수의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요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주1)

신18:20,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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