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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22장 땅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

LNCK 2012. 6. 19. 11:02

◈땅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        렘22장         출처보기


 

속담에 “소 귀에 경 읽기” 라는 말이 있습니다.

짐승한테 아무리 글을 읽어주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인데

이 속담이,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도 수 없이 자신들의 모습을 깨닫도록 말해주었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본문의 직전인 렘21장에서

남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 시대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였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결론적으로 의미하고 있습니다.


본문 렘22장은, 시드기야 왕 이전의 세 왕들 시대에 대해서  *살룸, 여호야김, 여호야긴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살았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지 130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수 없이 선포하고 있고 그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살아가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선포되고 있는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 이 시대를 향해 선포되고 있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1. 말씀에 순종하라.           렘22:1-9


하나님은, 남유다 왕들과 백성들에게, 어떤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십니까?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22:1-9


시드기야 왕 시대에도, 21:12에 보면, 정의롭게 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떠나게 될 때,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

정의와 공의를 버리고, 불쌍한 자에게 횡포를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남유다 왕들과 백성들은 오래전부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으며 살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유다 사회 속에는 불의와 불법이

판을 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3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당시 남유다 사회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힘없는 백성들이, 힘 있는 자들에게 탈취와 압박을 당하였고, 학대를 당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은 찾아볼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불의와 불법이 사회 전반에 판을 치고 있었다는 것은

곧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대로 살지 아니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4-5절,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예루살렘 왕궁)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


그러나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폐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말씀에 순종하면 예루살렘 성을 지켜주실 것이지만 불순종하면

예루살렘 성이 황폐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남유다는 불순종의 길을 택하였기 때문에 멸망 받고 말았습니다.


    아래 6~9절에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자의 모습이, 어떻게 될 것인지

    재차 반복해서 3가지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6절,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머리이나,

내가 반드시 너로 광야와 주민이 없는 성읍을 만들 것이라.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광야 같은 황폐한 땅으로 만들 것’이라고 하십니다.


‘길르앗’은.. 요단 강 동편의 북쪽에 있는, 아름다운 푸른 초원이 있는 곳입니다.

‘레바논’은.. 키가 크고 우람한 백향목이 가득하며, 아주 살기 좋은 땅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유다가 하나님에게 이처럼 소중하고 귀하다 할지라도

말씀에 순종하지 하면 버리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히 나를 천하보다도 귀한 한 사람으로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귀함도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귀한 것이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산다면

하나님은 그 영혼 절대로 귀하게 보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진실로 깨닫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무엇으로 평가하십니까?

말씀에 내가 얼마나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를 보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약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받는 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인간을 구원 시키지 못하지만, 율법을 통해 나의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에게 나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계명)의 최종 목적이 예수를 위해 살아가게 하는 것처럼

남유다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을 위해 살아갔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자들이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자신들을 위해 신앙생활하고 있다면 잘못된 신앙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고 있는 예수를 믿고 있는 자들의 신앙이 어떻습니까?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가 마치 나의 문제만 해결해주는 해결사처럼

때로는 택배 기사처럼 사용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인이십니다.

절대로 예수를 나의 종처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산다는 것은 나를 위함이 아니고

오직 예수를 위해서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자의 참 모습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7절, 내가 너를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무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파멸할 자를 준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아름다운 백향목이라 할지라도

파멸자를 보내 찍어 불에 던지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대로, 파멸자인 바벨론을 보내, 남유다를 심판하셨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말씀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유다는 변화되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파멸자에게 무참하게 짓밟히는 자들이 되지 아니하려면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파멸자가 어느 나라 국가도 될 수도 있고, 사람일수도 있고,

자연 재앙도 될 수 있고, 개인적인 재앙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요15:5-6)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예수님 손에 붙잡혀 있지 아니하면 그 어떤 장사도 권력자도 부자도

한 순간에 비참한 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주1)


여러분! 하나님이 보내신 파멸자를 맞이하는 자가 되지 마시고

보혜사 성령님이 항상 함께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8절, 여러 민족들이 이 성읍으로 지나가며 서로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읍에 이같이 행함은 어찌 됨인고 하겠고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자신들의 자랑거리가 비웃음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남유다에게는 화려하고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이 그들의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들은 그 성전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성전에서, 이미 하나님의 영은 떠난지 오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존재하지 아니한 성전은 성전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9절, 그들이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 하셨다 할지니라.


이방인들도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우상에게 절하고 섬긴 것 때문에

남유다가 멸망 받을 것을 알고 있었는데

남유다 백성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다를 바 없습니다.

오늘날도 교회 건물이 나를 구원시켜 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물론 큰 교회를 다니는 자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큰 교회를 택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다 육적인 생각으로 큰 교회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성전에 대해서 밝히시기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곳을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행20:28)


우리 또한 예수의 피로 죄사함 받고 거듭났다면

내 안에 거룩한 성전이 임한 것입니다. (고전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었듯이,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성전(나)을 더럽히면,

여지없이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징계 후에, 새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거룩함이 사람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보이고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칠 때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한 자들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엡5:26)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딤전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우리 영혼 속에 두 날 가진 검으로 역사할 때

우리는 거룩한 자로 변화되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나의 추한 모습이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죄사함 받을 때

우리는 점점 거룩한 자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진실로 마지막 때에 교회와 성도들은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은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져버리는 것처럼,

남유다 백성들을 버린 것처럼 우리 또한 버림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거룩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살룸 왕은 들으라.        렘22:10-12


※요시야 왕의 전사로, 쇠락의 길을 시작한 남 유다

어떤 의미에서, (개혁을 일으켰던) 요시야 왕의 (전장에서 별안간 일찍) 죽음은,

남유다 멸망의 전주곡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4왕이 나오는데,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그 중 3명이 요시야의 아들이고,

1명 여호야긴만, 여호야김의 아들입니다.


지금 ‘요시야가 죽고, 그의 아들 대에 이르러,

남유다의 운명이 이미 끝났다는 것입니다.


구한말에 영친왕이 있었지만,

이미 고종으로, 대한제국은 끝이 났고,

영친왕은 있으나마나 한 왕이었습니다... 그것과 똑같습니다.


요시야의 아들들이 왕으로 있었지만,

그들은 있으나마나 한 왕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이나 바벨론이, 남유다의 내정을 너무 심하게 간섭했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이 죽고          ☞ 요시야의 전사

남유다는 약22년을 더 버팁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전사까지 약 20년, 그 후 약 20년.. 도합 40년을 예언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제 남유다 말기의 세 왕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먼저 살룸 왕에 대하여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10절,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라


‘죽은 자’는.. 요시야 왕입니다.

요시야 왕의 죽음에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누구보다도 요시야 왕의 죽음을 애가까지 지으며

애통해 했습니다. (대하35:25)


그러므로 요시야 왕을 위해 울지 말라는 의미는

죽은 자를 슬퍼할 수도 없을 만큼 남유다의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잡혀 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고 하였습니다.

잡혀간 자는 살룸 왕을 의미합니다. (여호아하스와 동일인물)


살룸 왕은 요시야의 넷째 아들입니다.

후에 “여호아하스” 라고 왕명이 주어집니다.


남유다의 선왕이었던 요시야는 종교 개혁을 일으키며

30년 동안 남유다를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지만

자식들 교육에는 성공하지 못한 왕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대상3:15)

“요시야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하난과 둘째 여호야김과 셋째 시드기야와 넷째 살룸이요”

맏아들 요하난은 일찍 죽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 아들들은 한결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들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이 죽고 넷째 아들 살룸이 23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는데

그는 왕권을 3개월 밖에 누리지 못하고

애굽 왕 바로느고에 의해 강제 폐위 당하고   *그의 친바벨론 정책 때문인듯

애굽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는데, 이 왕을 위해 슬퍼하라는 것입니다.


당시까지는 남유다가 애굽의 지배를 받고 있었음을 볼 수 있는데

살룸 왕은 유다 땅에 돌아오지 못하고

애굽에서 죽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아스가 불쌍해서 슬피 울라는 것입니까?

슬피 울어야 할 것은 요시야 왕의 죽음인데

요시야 왕에 대해서는 울지 말라고 하고

패역한 여호아하스의 죽음에는 슬퍼하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왕의 죽음을 위해 슬퍼하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남유다 백성들의 자신을 돌아보고 슬퍼하라는 것입니다.


(왕하23:31) “여호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23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32)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이 말씀을 볼 때 여호아하스가 형들을 제치고 23세에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하무달의 힘이 컸던 것 같습니다.


여호아하스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며 나라를 다스리게 된 것도

어머니 하무달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요시야 같은 선한 왕에게, 이런 여자가 아내로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슬퍼하라’ 하신 것은

여호아하스 왕이나 남유다 백성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슬퍼하라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여 너희들에게 돌아오는 그 죄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깨닫고 슬퍼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죄에 대한 것을 반드시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물론 내 죄를 진실로 애통해 하며 회개하고 예수의 피로 사함 받으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죄에 대한 것을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출34: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3. 여호야김 왕은 들어라        렘22:13-19


여호야김 왕은 요시야 왕의 둘째 아들이었고, 여호아하스 왕의 형이었습니다.

애굽 왕 바로느고는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애굽으로 사로잡아 가면서

그의 형인 여호야김을 남유다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본명이 엘리야김인 여호야김 왕은 25세에 왕위에 올라

애굽의 속국이 되어 친애굽 정책을 시행하면서

애굽에 바칠 공물을 거두기 위해 백성들을 괴롭혔고

개인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았습니다.


여호야김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과는 정반대의 길을 갔으므로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선지자를 핍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예레미야의 예언서를 칼로 잘라, 불에 태워 없앴던 왕)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먼저 여호야김 왕의 불의와 사치에 대해 강하게 지적하였습니다.


11년 동안 왕위에 오른 여호야김은 왕궁을 크게 지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하였고 품삯도 주지 아니했습니다.


▶14절,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위 구절을 보면 “내가 나를 위하여” “자기를 위하여”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야김 왕으로서 백성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살아간 자였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위하여 살고 있으십니까?


▶15절,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15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호야김에게, 그의 아버지 요시야 왕이 나라를 통치하였을 때 모습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너희 아버지 요시야 왕이 선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너처럼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백성들을 착취해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먹지 아니하고 마시지 아니하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왕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다시 말해서 너희 아버지(요시야)는 나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너는 나를 알지 못하고 있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해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아십니까?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에 대해서 모르면 우리도 여호야김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에 대해서 모르면

17절에서 언급한 자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17절,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네 두 눈과 마음에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면 예수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무죄한 피를 흘리고 포악함이 있다면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고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를 모르는 자들은

모두 다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짐승 같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 왜 사람들이 탐욕으로 가득 차 있고 포악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위해 아성을 짓고, 온갖 탐욕과 불의로 악행을 일삼으며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양심에 조금도 가책도 없이 살아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모르는 저들이 가야 할 곳은 여호야김 왕이 갔던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18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18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야김 왕의 죽음을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19절,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그의 죽음이 짐승처럼 취급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짐승과 같습니까?

그런데 그 인생의 끝이 짐승처럼 취급당한다면 얼마나 비참합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이 땅에 교인들은 많은데 성도들은 보기 힘든 시대인 것 같습니다.

성도는 거룩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부르는 호칭입니다.

타락된 세상 속에서 짐승처럼 사는 자들과 똑같이 탐욕을 가지지 말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탐심은 곧 우상 숭배라고 (골3:5)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탐심은 곧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하나님 말씀도 버리고

신앙도 버리고 살아가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들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까?

짐승처럼 살다가 짐승처럼 비참한 생을 마감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거룩하게 살다가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서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예루살렘이여 들으라.          렘22:20-29


하나님은 남유다 왕들의 죄악을 지적을 하시다가

예루살렘 백성들의 죄악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3가지로 지적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한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20절에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

이것은 소리를 높여 애통해 하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너희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였으므로 애통해 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를 사랑하는 자” 는 남유다가 의지했던 애굽, 에돔, 모압 같은 나라들입니다.


바벨론이 쳐들어 왔을 때 남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세상 세력을 더 의지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려움이 올 때 누구를 의지하십니까? 사람입니까? 예수님이십니까?


그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오직 예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귀한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 말씀에 청종하지 아니한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21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남유다는 어려서부터 즉 애굽에서 나오던 그 시절부터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던 것이 습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인간의 습관은 고치기 힘든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났다 할지라도 매일 매일 성령 충만하지 아니하면

인간의 습관은 고치기 쉽지 않습니다. 이 습관이 좋은 것이라면 괜찮겠지만

죄로 연결되는 습관이라면 이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악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육의 아비가 원수 마귀이기 때문입니다.(요8:44)


이 관계를 끓어버리지 아니한 이상 우리에게는 계속해서

이 악한 습관이 독버섯처럼 살아있습니다. 나의 힘으로는 이 습관을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나서 매일 매일 성령 충만 받아

나를 죽이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1) 하였듯이

우리도 매일 매일 예수 안에서 죽어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로 거짓 목자들의 가르침을 받은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22절,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켜질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네 목자들은” 이라는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목자들이 아닙니다.

너희의 목자들입니다. 즉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남유다의 백성들은 하늘의 소리를 전하는 선지자의 말보다는

그들의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소리에 더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남유다의 비극이었습니다.


(렘5: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오늘날 이 시대도 가장 가슴 아픈 것은

하늘의 소리에 귀를 막고 달콤하고 즐거운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며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이 비극입니다.


▶23절, 레바논에 살면서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보다는 거짓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여인의 해산하는 고통이 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살전5: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남유다처럼 세상이 끝나는 날에도 해산의 고통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남유다에게 예언했던 해산하는 고통이 임했던 것처럼

세상 끝 날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질 것입니다.


거짓 것들의 가르침에 미혹당하지 말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5. 고니야 왕은 들어라        렘22:24-30


고니야 왕은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입니다.

18세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여호야긴 역시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한 채

아버지를 좇아 반바벨론 정책을 취하였습니다.


그 결과 바벨론의 2차 침공이 이루어졌고

전쟁에 패한 여호야긴은 왕위에 오른 지 3개월 만에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오랜 옥살이를 하다가.. 나중에 석방되었습니다.


여호야긴의 왕에 대해 3가지로 선포하였습니다.


첫째로 왕권을 빼앗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4~25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하나님의 오른 손에 인장 반지라 할지라도, 그 반지를 빼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오른 손의 인장 반지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서명을 하거나 서류를 봉인 할 때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중요한 하나님의 인장 반지라 할지라도 손에서 빼어

그의 대적에게 넘겨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대적이 누구입니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이름까지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확고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호야긴 왕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면 아무리 귀한 것이라 할지라도

빼앗아 버린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바벨론 땅에서 어머니와 같이 죽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6절,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으리라


18세에 왕이 된 여호야긴 왕 역시 어머니 영향을 받았습니다.

(왕하24:8-9)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9)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26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야긴과 그의 어머니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가 악한 왕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야긴 왕은 바벨론에게 끌려가서 감옥에서 37년 동안 갇혀 있다가

나중에 석방되어 왕의 상에서 함께 먹다가 (이것은 남유다의 회복의 서곡입니다.)

결국 바벨론 땅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보기에는 천하고 약하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로 여호야긴 왕은 깨진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28절) 이 사람 고니야는 천하고 깨진 그릇이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의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


렘18장 19장에서 하나님은 토기장이시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귀한 그릇도 깨뜨릴 수 있는 자이시고,

깨뜨린 그릇을 다시 새롭게 할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여호야긴 왕은 인간이 토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엘로힘” 의 하나님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시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리 작은 그릇이라 할지라도 귀한 그릇으로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29절,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3번이나 반복하면서 (3번 반복은 최상급 강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외침입니다.


30절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30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여호야긴 왕에게는 자식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7명의 자식이 있었습니다.

자식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은 그의 자손들이 두 번 다시 왕위를 이을 자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남유다의 왕위는 그의 삼촌인 남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시드기야를 끝으로 다윗 가문의 왕위는 끓어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신명기 28장에서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주실 것이지만

순종치 아니하면 저주를 내리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손에 하나님 말씀이 있고, 우리의 눈에 말씀이 보이고,

우리의 귀에 하나님 말씀이 들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 얼마나 예수를 믿고 있는 자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까지도 아낌없이 주시고

십자가에서 나의 죄 때문에 온 몸의 물과 피를 흘리시고 죽게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진실로 믿는 다면, 우리들이 지켜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하는 길 뿐입니다.


(신30:11)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는 하나님의 외침이 들린다면

이제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약속을 이 땅에서도 받으며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주1)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말씀에 순종한 자는 그 어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실 것이지만,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는 그 인생이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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