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보기 막8:22-26 출처 오늘 본문은 벳새다에서 예수님이 시각장애인을 고쳐주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시각장애인을 고쳐주시는데 참 특이합니다. 우선 그 시각장애인의 손을 붙잡으십니다, 그리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눈에 침을 뱉으십니다. 그런 다음에 안수하십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눈을 뜨고 시력이 회복됩니다. ①무엇이 보이느냐 물었더니, 이 사람이 ‘사람이 보입니다’ 그렇게 말해놓고 뭔가 확실하지를 않아요. ‘나무 같은 것이 걸어 다닙니다’, 나무 같은 것이 왔다 갔다 한다고 합니다. 이게 첫 번째 보기에요. :24 ②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안수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이번에는 ‘주목하여 본다, 주의 집중하여 본다’ 이게 두 번째 보기입니다. :25a ③그러고 눈이 나아서 온전하게 되어서 ‘밝히 본다’ 이게 세 번째 보는 거예요. :25b ①처음에는 그냥 봤습니다, 사람을 봐도 나무 같은 게 걸어 다니는 것으로 보는 그런 봄이 있고, ②두 번째 주목하여 보는 게 있고, ③세 번째 밝히 본다는 얘기가 있어요. *②와③을 한 데 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을 헬라어 성전 원본을 보면 어떻게 돼 있느냐? ①‘본다’라는 말을 ‘블레포’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 나무를 보듯이 ‘본다’라고 할 때 ‘블레포’ 단어를 씁니다. 그저 쳐다본다는 뜻이죠. ‘내가 사람을 봅니다, 그런데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을 봅니다’, 여기서 ‘블레포’를 씁니다. ②그런데 ‘블레포 see’라는 단어가 어떻게 변형이 되는가 하면, <주목하여 본다>는 말에서는 ‘아나’라는 전치사를 붙여서 ‘아나-블레포’라고 씁니다. *아나: midst, among, between ‘아나’라는 말은 영어로 ‘중앙에, 가운데, 사이에’라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블레포’, 그냥 봤습니다. 두 번째 ‘아나-블레포’, 더 자세히 주목해서 봅니다. ③세 번째 <밝히 본다>는 얘기는 ‘엔-블레포’입니다. ‘엔’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영어의 in 입니다, 속으로 들여다봅니다. 자, 이렇게 보기가 세 겹으로 겹쳐 있어요. ①처음에 '블레포', 그냥 봅니다. ②다음에 ‘아나-블레포’, …을 주목해서 봅니다. ③세 번째 ‘엔-블레포’, … 안으로 들여다봅니다. 자, 여러분,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 세 개의 보기가 겹쳐서야만 온전하게 본다고 하는 하나의 행위가 완성이 된다는 거예요. 우리도 지금 그렇게 보고 있어요. ‘블레포’ 그냥 보기가 있고, ‘아나 블레포’ 주목해 보기가 있고, ‘엔 블레포’ 들여다보기, 이 세 겹이 이루어지면서 우리도 보고 있고 살고 있는 겁니다, 제대로 보면서 산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알기 위해 예를 한 번 들어봅니다. ①할머니가,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 할머니가 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영어로 된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영어를 전혀 모르시는 분인데, 이 할머니가 영어로 된 편지를 펼쳐놓고 봅니다. 이게 바로 ‘블레포’입니다. 영어를 열심히 봅니다, 영어를 잘 봅니다, 자세하게 봅니다, 꾸준하게 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정열적으로 꾸준하게 보아도, 돋보기를 쓰고 보고 돋보기를 벗고 봐도 그냥 보는 것뿐이에요. ‘본다’(블레포)는 게 뭔지 느낌이 오시지요?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고 자연을 볼 때도 TV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고… 이렇게 보는 과정이 우선 있어요. ②그런데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자가 들어와서 할머니의 영어편지를 봅니다. 이제 손자는 할머니가 보고 있는 그 단계를 넘어서, 편지를 영어로 한 문장씩 읽어가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왜 끄덕일까요? 통과시키고 있는 거예요. 무엇을 통과시키고 있습니까? 자기의 머리와 마음속에 기억되어 있는 자기 속에 있는 영어를 통과시키고 있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영어에 편지에 쓰여 있는 영어를 통과시키면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②이게 바로 ‘아나 블레포’에요, 통과시키는 것, ③그리고 나서야 ‘엔 블레포’ 들여다봅니다. 그 편지 안에 있는 내용을 밝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 편지 안에 있는 내용을 끄집어내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본다는 게 완성된다는 거예요. ▲자, 예수님께서 왜 이 시각장애인의 손을 손수 붙잡으셨을까요? 왜 이 사람을 붙잡고 마을 바깥으로 끌고 나가셨을까요? 왜 침을 뱉으셨을까요? 왜 안수를 두 번 하셨을까요? 무엇을 의미하는 거겠습니까? 시각장애인일 경우에 특별히 청각과 촉각과 후각이 남달리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시각장애인들의 후각과 미각이 훨씬 정확한 거예요. 이렇게 시각이 죽음으로써 모든 감각이 더 예민하게 살아있는 사람의 손을 붙잡고 안수를 두 번 하시고, 침을 뱉고, 마을 밖으로 데려가십니다. 마을 밖으로 끌고나갈 때 그랬을 거예요, ‘어디로 끌고 가십니까?’ 이 사람이 아마 바짝 긴장했을 겁니다. 자, 이 과정을 왜 겪게 하셨을까요? 적어도 지금 그 사람이 눈을 뜨게 될 때, 이 사람 마음속에는 온통 예수님이 첫 번째 관심사로 들어가 박힙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이 사람에게 지금 현재라도 유일한 관심이 예수님이 되게끔 하십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보라는 얘깁니다. ※마치 오리가 부화되면, 가장 처음 보는 물체를 자기 엄마로 여긴다 그러잖아요. 그래서 부화시킨 농부를, 어미인줄 알고 따르는 오리새끼도 있다고 합니다. ‘눈을 뜬 후 제일 처음 보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소경을 마을 바깥으로 끌고나간 이유는 뭡니까? 다른 사람 없는 곳에서, 삶의 문제가 없는 곳에서 오직 관심이 예수님인 상태로 만들어버린 다음에 눈을 뜨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담은 다음에 눈을 뜨게 해서 보게 하신다는 거예요. 자기 눈에 통과시키는 내용을 예수님으로 만들어버리십니다. ▲이게 바로 신앙이라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을 볼 때, 돈을 통과시켜서 봅니다. ‘이 사람과 사귀어서 내게 돈이 되겠느냐, 안 되겠느냐’ 하는 것을 판단합니다. 이게 바로 (잘못된) ‘엔 블레포’라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삶속에 순간순간 일어나는 거예요. 참 신앙은 뭡니까? 애인을 보든, 돈을 보든, 사업을 보든, 무엇을 보든지 간에 마음이 하나님 한 분과 천국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모든 ‘봄’을 하나님을 통과시키고 천국을 통과시켜서 보는 거예요. *마치 ‘하나님 안경, 천국 안경’을 썼다고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천국을 ‘아나 블레포’ ‘through-see’ 해서 보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나, 통과시켜서 보는 것, 이게 바로 신앙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인생이 다 결정되는 거예요. ▲내 눈이 포착한 내용들을 통과시키는 순간에 내 마음이 다 결정되어 버리는 겁니다. 어떻게 결정돼버립니까? 자, 보세요! 꿀벌이 설탕을 먹습니다, 제가 설탕을 먹습니다. 설탕이 꿀벌의 몸을 통과하고 제 몸을 통과하게 됩니다. 그러면 제 몸을 통과한 설탕은 배설물로 나옵니다. 꿀벌의 몸을 통과한 설탕은 꿀이 되어 나옵니다. 내가 나물(풀)을 먹습니다, 내 몸을 통과해서 배설물로 나옵니다. 젖소가 풀을 먹습니다, 젖소의 몸을 통과해서 그 풀이 우유로 나옵니다. 이와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무엇을 보든지 간에 어디를 통과시키느냐 하는 거예요. 내 마음에 돈이 가득 차있습니다, 내 마음에 자식(우상)이 가득 차있습니다. 내 마음에 여자를 볼 때 어떤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을 통과시켜서 여자를 보면, 이 여자는 이렇다 저렇다 ‘아나블레포, 엔블레포’ 해버립니다. 이게 모든 거짓과 모든 사기와 모든 불행의 근거가 돼버린다는 거예요. 오직 내 마음에는 하나님만으로 가득차서 이 시각장애인이 지금 현재만이라도 오직 그의 관심이 마음 안에 예수님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비로소 예수님이 그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만지고 침 뱉고 또 안수하시고 하시면서 오직 예수님만을 긴장하며 담고 있는 상태에서 눈을 뜨게 하셔서 세상을 보게 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 세상을 보는 거예요. ▲주님의 십자가를 통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자, 눈앞에 자식이 보이고 눈앞에 사업이 보입니다. 그것보다 주님의 십자가를 먼저 봅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 하나님이 찹니다, 약속이니까요. 십자가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그래서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모든 것보다도 먼저 내가 십자가를 바라봄을 통해서 이 세상 것에 대해서 내 마음이 죽을 때, 내 마음 안에 하나님이 가득 차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찬 다음에 나를 세상으로 내보내실 때 이제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을 통과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통과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뜻과 계획에 의해서 주물러지고 만들어지고 변형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내 인생이 완전히 죽쒀버렸습니까? 이제 십자가를 통해서 그것에 대해서 일단 죽으세요. 왜냐하면 그 죽쒀버렸다는 것도 지금 내 마음에서 세상의 기준을 통과시키면서 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통해서 완전히 세상에 대해서 죽어버려야 됩니다. 죽어버리면 하나님이 마음속에 찹니다. 이 시각장애인이 마을 밖으로 나가서 예수님으로 만져짐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안수 받으면서 예수님으로 가득 찼던 것처럼, 마을 밖으로 나가세요, 삶의 현장 밖으로 나가서 십자가 붙잡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삶으로 나갑니다. 이제 모든 게 다 하나님을 통과하게 되면서 아무리 세상 기준으로 볼 때 거지같이 망했던 삶이라도 벌을 통과한 설탕이 꿀로 나오듯이 젖소를 통과한 풀이 우유로 나오듯이 완전히 변화되어서 나타나고 보이고 이해되고 바뀌어버린다는 거예요. 삼겹보기, 이거 아주 중요합니다. 십자가 붙잡고 마을 밖으로 나가서 완전히 하나님 한분으로 마음이 다 채워질 때, 모든 보는 것들이 하나님을 통과하게 되고, 하나님을 통과하게 되면서 무질서는 질서로, 어두움은 빛으로, 허무함은 열매로 바뀌어 지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십자가 붙잡고 마을 밖으로 나갑니다. 삶의 현장을 떠나고 삶의 현장에 대해 죽습니다. 그리고 오직 마음에는 하나님으로 천국으로 가득 차게 해주시고 그리고 마을로 들어가 삶을 살게 될 때, 보는 것마다 하나님을 통과하는 ‘아나 블레포’가 있게 하시며, 그래서 보는 것마다 하나님의 계획을 그 안에서 보고 하나님의 뜻을 그 안에서 보는 ‘엔 블레포’ 하면서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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