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비전 형성과정 행9:15~16 12.06.10.설교일부녹취
태평양에서 부지런히 노를 저어가면서,
태풍이 불면, 그야말로 사투를 벌여서 태풍과 싸워 극복하고
또 온갖 장비들을 다 동원해서 암초에 걸리지 않도록.. 애써 수고하지만..
문제는 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방향성도 없이..
죽도록 수고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앞서 ☞성경적 비전이란? 에서,
우리가 가질 비전은, 내 스스로의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보이시는 계시, 그것이 바로 나의 비전이 되어야 함을 살펴보았다.
즉, 스스로 입을 크게 벌여서 만든 자기 야망을,
자기 비전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시간에는, 실제로 사도바울의 예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이시는 계시를, 어떻게 자기 비전으로 삼을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도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라는 사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주1)
그것을 단 한 번 만에, 단회적으로 받았다기 보다는
‘영적 랜드마크를 통해서 받았다.’
즉, 바울은 비전을.. 주요한 사건들을 통해서, 계속 확증해 가면서 받았다.
※영적 랜드마크란,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려면,
천안, 대전, 대구를 (즉, 랜드마크, 주요 지점을) 거쳐 부산으로 간다.
이와 같이, 성도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는데 있어서도,
어떤 주요한 사건/과정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사건들을 주욱 연결해서 보면.. 어떤 일관된 방향이 나오는데,
우리는 그 예를, 이 시간에 사도바울의 경우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 설교문의 주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소명, 비전, 사명을 받을 때,
한 순간의 어떤 단회적 사건에만 의존하지 말고, 이건 불확실 할 수도 있다.
자기 소명, 비전, 사명을 받되,
자기 사명이 double check 되어 지고,
그것이 사역 중에, 계속 재확인 되어져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께 받은 분명한 <소명, 비전, 사명>이 된다.
바울이 자기 소명/비전을 확실히 이해하기 까지
하나님은 여러 영적 랜드마크를 통해, 그를 인도해 가셨다. ←주제
그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바울의 영적 랜드마크1.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께 받은 사명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
바울이 주님께 사명을 받은 내용은 행9장보다, 행26장에 자세히 나와 있다.
행26: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내)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며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주님이 나타나셔서 지금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그에게 임하셔서, 장차 하시 일을 그에게 보이셨다.
전반적인 것, 구체적인 것은 아직 모른다.
그러나 윤곽은 알 수 있다.
주님이 바울을, 종으로 택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자기를 보내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사건 하나만 단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차츰 <영적인 랜드마크>들을 통해, 하나님의 비전을, 계속 그에게 보여 가신다.
◑영적 랜드마크2. 아나니아에게 안수 받음을 통해서
바울(당시 사울)이 눈이 멀어서, 다메섹의 직가 거리의 어느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명하셨다.
행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본문
(아나니아는, 여기서 자기가 받은 계시를, 사울에게 전달해 주었을 것이다.
안수해서 그의 눈만 뜨게 하고는, 입 다물고 있지 않고, 다 전달해 주었을 것이다.)
며칠 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과
며칠 후 예수님이 아나니아에게 하신 말씀을 비교해 보시라.
그 내용이 근본적으로 같다.
이렇게 아나니아의 예언을 통해,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받은 환상과 비전이
확실한 것임이 컨펌confirm, double check 되었다.
오늘날 우리 각자도, 내가 하나님께 받은 환상과 비전이
이렇게 double check 되어 지고, confirm 되어 지면.. 더 확실하고 견고해진다.
다만 추가된 내용은 이렇다.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많이) 받아야 할 것 등이었다.
내용이 추가되었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비전과 계시가 좀 더 발전되었다’는 뜻이다.
‘영적 랜드마크’들을 통해, 하나님은 계속 발전적으로 나에게 계시하신다.
마치 과거에 수동 카메라로, 피사체인 비전에 대한
초점focus을 점점 더 선명하게 맞추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3. 이사야서 묵상을 통해, ‘이방인에게로 가라’는 사명을 받다.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에,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고 하셨다.
그래서 바울은 1차선교여행으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는데,
거기서 유대인들에게 한 설교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행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우리가 이방으로 향하는 이유는)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 말씀은 이사야42:6절과, 49:6절('이방의 빛')의 인용이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바울의 설교를 들어보면, 그가 과거의 어느 시점에,
사42:6절과, 49:6절을 통해서 (행13:46~47 ↑)
하나님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이방인에게로 가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이다.
즉, 그의 소명이 이방인에게 있다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47 ↑
..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에게 이방인에게 가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이다.
물론 그래서, 그들은 1차선교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바울이 자기 비전을 받게 된 주요 사건 (영적 랜드마크, 주요 통과지점)
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그 랜드마크들은 다음과 같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과의 만남과 그 음성
-다메섹 직가에서, 아나니아의 대언의 말씀
-(아마 안디옥 교회에서) ‘이사야서를 통해 이방인에게로 가라’는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바울에게,
주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점점 더 구체적으로 확실히 보여 가셨다.
바울은, 자기 스스로 비전을 만들거나, 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님이 자기에게 점점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시는 비전을 붙들었다.
나중에 바울은, 더 구체적이고, 더 발전적으로
로마를 거쳐, 스페인(서바나, 로마제국의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려는 비전을 갖게 된다. 주2)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래서 실제로 1차, 2차, 3차 선교여행을 하는 중에
바울은, 계속적으로 ‘이방인에게로 가는 사명, 로마로 가는 사명’을 받게 된다.
(여기서 행16장의 마게도냐인의 환상은 생략하기로 하고.. 각자 살펴보시고)
◑4. 예루살렘에서 받은 사명
바울이 3차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즉시로 잡힌다.
그래서 천부장에 의해, 로마군대 영내에 임시로 잡혀있었는데,
거기서 환상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행23: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바울은, 자기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려는 소원이 있었는데,
주님께서 그날 밤에, 그 바울의 ‘로마 행 소원’을 확증해 주셨다.
이것은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다는 사명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로마 행 사명’은, 약 2년 후 광풍 속 선상에서, 다시 재확인 된다. ↓
◑5.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 받은 사명
행27: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마치는 말
바울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서 살았다.
하나님의 의중과 목적을 토대로, 그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엄청난 비전은, 자기가 세운 크고 원대한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세워진 비전이다.
즉 ‘하나님의 비전’이다.
바울에게는 그게 있었다.
오늘날 우리 각자 개인적으로, 바로 이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것은, 우리 공동체에도 필요한 것이다.
그냥 두루뭉술하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지 마시고,
오늘날 주님은 한국 교회에 어떤 방향성과 목적성을 가지고 운행하고 계시나? 를 깨닫고
그 가운데서 우리 공동체가 감당해야할 몫, 작은 방향성과 목적성은 무엇인가? 를 분명히 깨달아서..
우리가 주님을 섬기자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그 나라에서 선교할 때,
‘하나님이 지금 이 나라에서 역사하시는 방향성과 목적성’을 깨닫고,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사역하는 것은,
그게 ‘주님의 방향성과 목적성’에 일치될 수도 있지만,
엉뚱하게 열심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예수님이 지상에서 사역하실 동안에는,
유대 지역을 벗어나신 적이 거의 없으셨다. 가까운 두로 지역에 한 번 가신 적은 있다.
제자들을 전도자로 내보내실 때에도
‘이스라엘의 잃은 양에게로만 가라’고 하시면서,
이방인의 땅에게는 거의 안 들어가셨다.
어떻게 보면 장소적으로는 매우 제한된 사역이었다.
부활, 승천하실 때가 되어서,
비로소 예수님은 ‘모든 족속에게 가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는
팔레스틴 땅을 벗어나지 않으실 만큼, 매우 제한적인 사역이었지만,
예수님이, 아버지가 보이신 일, 그 일을 다 마치니까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를 품는다.
즉, 무조건 넓은 지역에서, 양적으로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그때,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 일(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방향성과 목적성은
‘성숙’ mature 과 ‘온전함’ complete이라고 본다. 약1:4
물론 ‘성장’도 필요하고, 소중하지만
2007년에 평양대부흥 백주년을 기념하여, 우리는 ‘성장’을 꿈꾸었지만,
주님은 ‘성숙’의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가고 계시고,
실제로 점점 더 ‘성숙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세계 교회 가운데, 지도자적 역량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 내가 곧 기도 응답이다 中 ◑2. 하나님이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따라 하라
.................................
주1) 이처럼 바울은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았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는 사실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위한 사도’라는 사실을 알았다. 롬1:5, 11:13,15:16, 18, 갈2:8~9, 엡3:8, 딤전2:7 등
바울은, 자기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일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위한 사도 중에서도,
교회의 터를 닦는 사도,
다시 말하면 교회가 전혀 없는 곳에 복음을 전해서
교회의 기초를 놓는 사도인 것을 알았다.
고전3장에 보면,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나니..
여기서 씨뿌리는 것을 비유로 들었는데, 자기 소명을 ‘뿌리는 것’에 비유했다.
아직 싹도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씨를 뿌리는 것,
(아볼로는, 뿌려진 씨가 자라도록 돌보는 사명이었다.)
10절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여기서 보면, (건물 건축에 비유하면) 사도바울은 ‘터를 닦아두는’
즉, 기초를 놓는 사명이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그 위에 세워가는 사명이었다.
물론 사도바울은 자기가 사도요, 사도 중에서도 이방인을 위한 사도요
그 중에서도 터를 닦는 사도임을 분명히 알았다.
분명한 것은, 그가 그의 소명을 이렇게 명백하게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다른 사람이 이미 교회를 세운 곳에는,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기 소명은, 교회가 없는 이방인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이렇게 자기 소명을 말했다.
롬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바울은 이미 세워진 유대인의 교회에 가서, 그들을 양육하는 일을 감당해서도
나름대로 잘 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일을 했어도, 바울이 남들만큼 꽤 했을 것이다.
거기서 가르쳤어도, 나름대로 잘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리를, 바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기가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율법의 교훈을 받았고,
바리새인에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했으니.. 유대인과 동질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만약에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와 같은 유대인의 교회,
이미 세워진 교회에 가서, 그들을 양육하는 일을 했더라면, 나름대로 잘했을지는 모르지만,
사도행전에 나오는 그 엄청난 전도와 교회개척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가 개인이건, 공동체이건,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 부르심 가운데 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하나님의 근본적인 뒷받침을 경험할 수 있다.
주2) 바울은 <서바나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큰 비전>을 자체 생산하지 않았다.
바울은 자기가 받은 엄청난 비전을 이렇게 설명한다.
롬15:19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 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 줌을 바람이라
이 엄청난 비전은, 바울이 자기 스스로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하고
자체적으로 생산해 낸 비전이 아니었다.
이 비전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다.
주님이 보이신 목적과 의중을 따라서 세워진 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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