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버린 강물 계16:12~16 출처보기
◑12절
여러분,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때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여섯째 천사가, 여섯째 대접을 쏟아 붓는 장면입니다.
여섯 번째 대접이 쏟아지는 곳이 어디입니까? 큰 강 유브라데 라고 나와 있습니다.
유브라데 강은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강을 사이에 두고 바벨론과 접해있습니다.
동방을 대표하는 나라 바벨론은 어떤 나라입니까?
성경 역사 속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침공하는 그런 나라로 등장합니다.
특히 계시록에서는 적그리스도의 나라와 지경을 상징합니다.
여섯 번째 천사가 그 대접을 그 강에 쏟을 때, 그 강이 말랐다고 기록합니다.
그 엄청난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부터 오는 왕들의 길이 준비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2
▶강물이 말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이 유브라데 강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상에 주목합니다.
현대적인 댐 공사로 말미암아, 유브라데 강이 마르면 마지막 종말이 온다고 주장합니다.
‘유브라데 강물이 말랐다’는 것은 그걸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강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연적인 경계가 되곤 했습니다.
우리나라 보십시오. 중국하고 압록강, 두만강으로 경계하고 있지 않습니까?
강은 자연적인 경계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주실 때도, 유브라데 강을 경계로 주셨습니다. 창15:18
전쟁을 할 때도, 많은 군대가 이동하려면, 강물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강물이 말라버리게 되면 육지처럼 건너가니까
더 이상 막아주는 역할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본문 계16:12의 ‘유브라데 강물이 말라버리는’ 예언은
실제로 있는 유브라데 강물이 마르건/마르지 않건, 그걸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더 깊은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교회의 상징인 이스라엘과, 세상의 상징인 바벨론 사이에,
구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여섯 번째 대접이 쏟아진 결과입니다. ←주제
이스라엘과 바벨론 사이에 있는 큰 강이 말랐다고 하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들하고 세상 사람들 하고 구별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교회가, 세상과 구별이 되지 않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적그리스도의 사이에 구별이 없어지는 무서운 시대,
교회가 세상과 어깨동무를 하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6번째 대접.. 즉, 세상 종말인 셈이지요!
창6장에 보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고 그렇게 하니까
그 다음 오는 것이 홍수였습니다. 세상 종말이 왔습니다.
여러분이 신자답게 존재하는 것이, 이 세상을 버티게 하는 마지막 버팀목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세상 사람들하고 차이가 없어져버리면
하나님은 이제는 손써야 한다, 이제는 마지막 심판을 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시게 됩니다.
▶세상과 교회 사이에 구별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교회와 교회 사이에도, 교회 안에도 이런 두 흐름들이 있습니다.
예배를 함께 드리는 곳에도 아벨의 제단, 가인의 제단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하나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종말이 되면,
그 구분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대다수가 ‘가인의 제단’처럼 되어버린다는 것이지요.
말세에 큰 강 유브라데가 말라서 경계가 철폐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은, 옳고 그른 것 사이에, 더 이상 근본적인 구별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마치 교통사고가 나면, 네가 몇% 잘못했느냐, 몇% 대 몇% 이렇게 나누는 것처럼
모든 생각들이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착한 사람도 없고, 아무도 나쁜 사람도 없고.. 다 비슷비슷합니다.
세상에 그렇게 절대적인 진리가 없어지고 나면, 절대 기준이 없어지고 나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갑니까?
더 이상 하나님의 심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돈만 된다고 하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세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돈만 벌면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도대체 신앙인과 비 신앙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가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왜 신앙인이 불신자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까?
우리 국민의 1/4 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런 시대에
민족사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이 교회에 넘쳐 들어와서 더 이상 구별이 어려운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도인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의 친구들의 삶과 그 목표가 달라야 됩니다.
그리고 그 목표로 나아가는 방법이 달라야 됩니다.
결혼하고, 자녀 낳고 키우고 대학 보내고, 비슷한 것 같지만
목표가 다르고, 방법이 다르고, 성도는 구별되어야 됩니다.
취직해야 되고, 돈 벌어야 되고 하지만, 목적이 달라야 됩니다.
그리고 사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과정과 방법도 반드시 달라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혹시 세상과 아무 차이도 발견할 수 없다고 하면
여섯 번째 천사의 대접은 이미 우리의 삶 가운데 쏟아졌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여러분 성도와 불신자는 엄청나게 차이 나야 됩니다.
왜냐하면 처음 인생이 타락할 때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창3:15
거기는 화해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전략적 제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시대는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엄연한 구별을 철폐하려고 합니다.
소위 뉴에이지 운동의 메시지가 그런 것입니다.
사람도, 영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신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모든 종교가 똑같다’는 것입니다.
결국 종교적인 다원주의, 혼합주의로 몰고 가서
순수한 말씀에 기초한 기독교를 반대하려고 획책합니다.
이것들이 모두 다 ‘유브라데 강물이 마르는 현상’이요, 종말의 징조라는 것입니다.
경계선 역할을 했던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준비 되었다는 것입니다.
◑13절,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계16:13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이 어디서 나오고 있습니까?
하나는 용의 입에서, 하나는 짐승의 입에서, 하나는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옵니다.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은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의 입에서만 나오는 것 아닙니다.
그들의 하수인들의 입에서도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을 합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입니까?
형제를 세우는 말입니까? 형제를 헐뜯는 말입니까? 비난하는 말입니까?
속이는 말입니까? .. 이게 다 ‘더러운 영’이, 그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먼저 용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용은 여기서 마귀를 뜻합니다(계12:9).
온 세상을 거짓으로 유혹하는 괴수입니다.
하늘로부터 쫓겨난 사단은 세상에서 지금 활동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신앙대로 바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
점점 어려워지는 때가 올 것을, 계시록은 말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무리들만이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에 따르지 아니하고
‘남은 자’가 될 것을 말합니다.
마치 바벨론 포로에서 남은 자들이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재건했듯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남은 자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생명을 걸 자들이 있을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세상은 우상을 숭배하게 될 것입니다.
또 참 신앙에, 자기 생명을 걸 자들이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세상은 우상을 숭배할 것입니다.
번영의 우상, 쾌락의 우상, 안일의 우상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악한 영이, 짐승의 입에서 나오는데, 짐승beast(야수)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계13:1에서 짐승은, 바다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바다는, 보통 온 세상을 뜻합니다.
그런데 짐승의 족보를 캐보면 다니엘서에 있습니다.
단7장에, 사자/곰/표범/무서운 짐승.. 이렇게 짐승(야수)들이 등장합니다.
그건 바벨론/바사/헬라/로마제국을 뜻합니다.
그건 다니엘서에 이미 다 나왔던 이야기들입니다.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은 세상 권력을 가리켜서 ‘짐승’이라고 말합니다.
왜요? 하는 게 짐승(힘센 야수)처럼, 힘으로 밀어부치니까, ‘짐승’이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가 선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추구해야만 합니다.
요셉, 다윗, 다니엘, 에스더, 느헤미야 등도, 정계에서 하나님 나라를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권력은, 그 태생적 본질상, 야수적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 중에서, 물론 성도들이, 일부 활동은 하지만, 전체 칼라는 '짐승'이라는 것입니다.
짐승은 그 주인이 용입니다.
용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예요. 마귀가 시키는 대로.
사탄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게 권력의 속성입니다.
그 권력이 유지되는 궁극적인 힘은, 정의가 아니라,
거기에는 어떤 합리성이 아니라
거기에는 비합리적이고 거기에는 폭력적인 힘만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권력을 다니엘서와 계시록은 ‘짐승’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어야만 할 기대 이상을 세상정치나, 교계정치에 두면
여러분은 계속 실망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악한 영은, 개구리처럼 생긴 악한 영은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부터도 튀어 나오고 있습니다.
사탄은 영적 존재이고, 그것이 세상에 화신으로(실체로) 나타나는 게
짐승과 거짓 선지자입니다.
전자는 ‘세상 권력’이고, 후자는 ‘종교 체계’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는, 짐승(적그리스도)의 대변인입니다.
종말에 거짓 선지자(종교 체계)는, 항상 짐승의 대변인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계시록의 예언입니다.
그런데 왜 이 세 더러운 영들이 개구리 같다고 표현했을까요? 계16:13
왜 하필 개구리가 표적이 되고 있습니까? 몰골이 흉악해서 입니까?
개구리 하면 생긴 것도 징그럽게 생겼지만
그 울어대는 것을 여러분은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여름에 울어대는 매미소리 만큼이나
오뉴월 못자리에서 들리는 개구리 울음소리도 대단합니다.
매미는 낮에 울어 대지만, 개구리는 주로 밤에 울어 댑니다.
개구리가 울기 시작하면 엄청납니다.
여러분 처음에는 ‘그럴 리 만무하지’ 그래요.
그러나 계속해서 개구리처럼 울어대면, 진짜 뭐가 잘못 되었나보다 그런다고요.
계속 반복해서 울어대면.. 다 세뇌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비진리도.. 계속 반복해서 얘기하면.. 결국은 그게 진리인줄 압니다.
그래서 말세에, (시끄러운) 개구리의 영이
거짓선지자의 입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활자정보, 방송매체, 영상매체를 통해서 끊임없이 메시지가 나오고 있습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거기에 귀를 기울이기가 너무 쉽습니다.
눈을 뜨면 신문이요, 심심하면 켜면 텔레비전을 통해서 영상을 통해서 나오지요.
혼을 빼앗으려 듭니다.
개골개골 떠들어 대니까, 사람들이 참과 거짓사이의 분별을 상실하고 맙니다.
◑14절
지금 사단은 동방으로부터 오는 왕들을 유인해서 끌어 들이고 있습니다.
그 영향이 온 세상에 확대되고 있습니다.
전에는 이 유브라데 건너편 저쪽에서 악한 짓들 했지,
강 이쪽으로는, 강물에 막혀서, 건너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강물이 마르니까, 다 넘어와서,
이제는 안전하게 남아있는 곳이 없습니다.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 25시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계시록이 말하는 이야기의 전부가 아닙니다.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의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계16:14
온 천하 임금들을 미혹해서 모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결판을 내려고 덤벼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아 갈 때도 “십자가에 저를 못 박으소서 못 박으소서” 소리쳤습니다.
“그 날에는 헤롯과 빌라도가 친구가 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 잡아 죽이는 일에, 하나님의 사역 망치게 하는 일에는 동조를 잘 합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소리치고 합창하던 음모가
이제는 노골화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는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이 될 것입니다.
‘전능하신 이의 큰 날’, 계16:14
이런 표현은 성경에 자주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주로 ‘주의 날’, ‘여호와의 날’이라고 말합니다. 심판의 날을 뜻합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은, 어마어마한 큰 심판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수시로 분출되던 하나님과 그 백성을 향한 미움과 핍박이
이제 그 극치에 달할 그 날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자들이 그 졸개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달려들 날입니다.
그러나 이날은 동시에 ‘여호와의 날’이고 ‘전능하신 이의 큰 날’입니다. 즉, 심판의 날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서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15절).
갑자기 지금 온 세상 왕들을 몰아서 강을 건너서 쳐들어오는 전쟁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보라” 그럽니다.
이제는 어떤 싸움이라고요?
온 세상과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도들 간에 마지막 결전이 벌어지는데,
마지막 싸움인만큼, 양쪽 다 치열한 싸움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이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라고 자기 편을 격려하기 위해서
여기 음성을 들려주고 계십니다. “도적같이 오리니, 오리니!”
이것이 계시록의 대주제 입니다. “내가 오리니, 내가 오리니”
계시록은 그것을 전해주고
우리에게 그 오는 일이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로 겹겹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종말이 옵니다. 반드시 종말이 옵니다.
강물이 점점 마르는 것을 보면서..
저와 여러분은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아파트라는 말은 재미있는 어원을 가진 단어입니다.
a는 영어로 말하면 no라는 뜻입니다.
part는 떼놓는다, 떨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apartment(아파트)는, ‘떼놓지 않는 집’이란 뜻이 됩니다.
사실 벽이 서로 닿아있고,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파트에 사람들이 사는 모습 보면
정말 서로 십리나 백리나 천리나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총총히 사람들 살고 있지만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한 집도 벨 눌러서 찾아갈 집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파트에서 뛰어내려서, 자살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잖아요.
여러분 이게 종말적인 상황이라니까요.
사람이 도움 받을 사람을 찾지 못해서, 자살하고 있습니다.
▶예기치 않는 순간에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아니, 가장 적절한 상황 가운데서 주님이 찾아오실 것입니다.
임박한 최후결전 앞에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리니” 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은 그 날이 가까워 왔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책입니다.
사단과 그 하수인의 선전을 간파하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영적인 역사의 황혼을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을 바라보는 역사의 파수꾼으로서, 여러분과 제가 서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십시다. 유혹이 노골화 되는 이 시대를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가십시다. 항상 깨어있으라, 깨어있으라, 깨어있으라 그러십니다.
“누구든지 깨어서 자기 옷을 지켜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계16:15
▶주님이 처음 오실 때부터 이 역사를 가리켜서 말세라고 불렀어요.
마지막 시대에 테이프가, 2천년 전에 이미 끊어진 것입니다.
언제 주님이 오실지 모릅니다. 초읽기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참 편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말세는 참 신앙생활 하기 쉬운 때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서 신앙생활 하기 어렵다고 말들 합니다.
“목사님 저는 주일도 출근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 말 들으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생활에 여유가 생겨도, 신앙생활이 어렵습니다.
좋은 승용차 있지요, 가는 곳 마다 콘도 준비되어있지요,
토요일에 예배당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린 필드가 눈에 오락가락 하는 겁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역사의 어두움이 짙어가고 파고가 높아질 때 가까이 오시는 주님을 만나보십시오.
사탄은 온 세상을 삼킬 듯이 그 가냘픈 배를 풍랑에 삼킬 듯이 설치고 있지만
최후 승리는 주님께 있습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주님께 있습니다.
그것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우리 성도들 아닙니까! 최후의 승자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16절,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아마겟돈전쟁, 그래서 이 전쟁이 언제 일어날 것인지 궁금해 합니다.
성경을 살펴봅니다.
오히려 본문의 강조점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아마겟돈이 어떤 곳이 되었던 상관이 없습니다.
언어적으로, 지리적으로 추적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성경에 단 한 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계시록의 특성상 틀림없이 이것도 상징적 의미를 가진 지명일 것입니다.
아마겟돈, 그것은 특정한 장소를 지칭하는 대신, 영적으로 해석하자면,
온 세상의 최후 반란을 가리키는 의미일 것입니다.
악의 최후 대결, 그 최후의 파멸의 장소를 상징합니다.
그날은 악의 최후파멸의 날입니다.
본문은 그 날을 위해 모여드는 왕들을 보여주고, 끝을 맺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이미 강물이 마른 시대, 경계가 철폐된 상황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깨어있으라 옷을 지키라. 성도의 옷은 뭡니까? 흰옷, 정결함, 거룩함입니다.
말은 성도라고 하고 예배는 주일날 드리면서
사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하고 똑같이 살면 그건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유브라데 강물이 마르고 왕들이 모여서 시작하는 아마겟돈,
그것은 더 이상 적과 아군의 경계가 없어져서, 마귀가 넘어오는 전쟁입니다.
정치적으로도 이미 9.11사태 후에 우리는 ‘전선 없는 새로운 전쟁시대’에 돌입했습니다.
영적인 전선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저는 지난 한 주간(총회)동안 너무나 실감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저의 앞날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 피로 정결케 하신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책임은 어린 양의 피로 씻은 그 세마포 옷을 정결케 유지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인내하십시오. 찬양하면서 주를 맞이하십시오. 그가 속히 오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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