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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공동체

LNCK 2012. 10. 3. 20:56

◈섬기는 공동체                      마20:25~28                     출처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성숙한 사회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원봉사자 비율이 1~2%정도도 안 되지만, 선진 국가들은 50%가 넘습니다.


어느 봉사단체의 글을 읽고 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원봉사는 21세기의 패션(fashion)이다. 자원봉사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음을 믿는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봉사에 참여하여, 성숙한 사회를 이루게 한다.”


즉 성숙한 사회와 자원봉사자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비성숙한 사회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정성과 몸과 물질을 주어서

그들을 더 빛나게 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성숙한 사회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봉사단체가 발표한 것인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문화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나라에 시민단체들이 많은데,

그 리더들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최근에 국제 구호활동도 많이 있지요?

기아대책기구라든지, 

무주택자에게 집을 지어주는 사랑의 집짓기 “해비타트” 운동이라든지...


어느 건설회사는 신입사원을 선발하고, 가장 먼저 자원봉사 교육을 시켰다고 합니다.

직원들이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고 시간 나는 대로 봉사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회사는 자원봉사 마일리지 시스템을 만들어서

자원봉사의 시간이 많으면, 거기에 상응하는 혜택을 준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글을 읽고 “우리나라가 참 좋아지는구나.

그리스도의 문화가 이제 사회에까지 번져가는구나”하고 흐뭇해졌습니다.


성남에 사시는 어떤 할머니에게 세 명의 자녀가 있는데 둘은 미국에,

한 명은 호주에 있답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전혀 돌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연락을 끊은 지가 10년이 넘었답니다.


그래서 성남의 자원봉사자들이, 할머니를 찾아가 목욕도 시켜드리고

청소도 해드리고, 먹을 것도 만들어 드렸답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봉사자들이 부랴부랴 가서 장례를 치러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독거노인 모닝콜>이라는 자원봉사가 생겼다고 합니다.

자기 동네에서 혼자 사시는 노인들에게

하루에 한 번 규칙적으로 전화를 드려 안부를 묻는 일입니다.

이런 봉사는 참 좋은 일이지요.


우리 교회도 성남의 복지관을 운영하지 않았습니까?

독거노인들이 점심을 제대로 잡수시지 못하니까, 하루에 한 끼 점심을 대접해드렸지요.

거동이 힘들어 복지관에 나오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반찬을 배달도 해드렸습니다.


자원봉사를 한 분들에게 기름값을 할인해 주는 주유소가 있다지요.

다 좋은 일들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나타나서

성숙한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섬김은 대가를 바라지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지 않습니다.

섬김은 그 자체에 의미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이웃과 사회를 위해 자신을 바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봉사입니다.


성남의 복지관에, 어느 어머니가 오셔서, 자기가 봉사를 하고

아들이 봉사했다고 써달라고 했답니다.

어떤 인정을 받기 위해서, 봉사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입니다.

봉사는 섬김의 자세로, 자원해서, 기쁘게 할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은, 대개 최고의 권력자가 되어서,

권세를 부리며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요한과 야곱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당시 18세~20세 정도로 예수님의 제자 중에 제일 나이가 어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전에는 안하던 짓을 합니다.


예수님께 넙죽 엎드려 절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니

그 어머니가 “예수님이 장차 왕이 되시면 우리 큰 아들은 왕의 오른 쪽에,

작은 아들은 왼쪽에 앉혀 주십시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 위대한 것은 세상이 말하는 것과 다르다.”


그런데 요한과 야고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열 제자가 듣고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왜 화가 났을까요?

“우리도 지금 그걸 보고 따라 다니는데

저 젊은 것들이 자기 어머니까지 동원해서 선수를 치네” 한 것입니다.


사실 야고보와 요한은, 많은 직원을 거느린 어업회사 사장의 아들로

야심이 대단했습니다. 요한은 상당히 앞서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그 당시에 벌써 세례 요한의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자기 선생인 세례 요한이 어느 날 예수님을 보고

“나는 저 사람의 신발 끈도 풀지 못한다. 저 사람은 흥하고 나는 쇠하리라” 하자

바로 그를 떠나 예수님에게로 간 사람입니다.

그는 명예와 권력을 적극적으로 원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열 명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큰 것을 좋아하지요.

조그만 잔으로 술을 마시고도 대포 한 잔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과시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잘 난 것을 보이고 싶어요.

이것이 모든 인간의 욕구입니다. 왜 그럴까요?


높은 자리와 권력을 가지면 두 가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문은 이야기합니다.


첫째로,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둘째는, “또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라고 합니다.


권력과 돈과 명예와 높은 지위가 있으면 자기 멋대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고

자신의 명령에 사람들이 죽고 살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사극을 볼 때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한지요.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권세를 부리고 마음대로 살고, 모든 사람이 내 앞에서 무릎 꿇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소원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모두 그랬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자리 하나 갖고 싶어서 애타하는 것이 우리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지 않아요?

이 세상은 권력자, 부자, 이름 있는 자들을 우러러 보고 그렇게 되기를 갈망합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은, 우리가 진정 위대하고 으뜸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어부 출신이 대다수인 평범한 제자들을 모아놓고

“너희들은 위대한 사람이 되어라. 으뜸가는 사람이 되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위대한 사람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으뜸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에 의하면, 잘 섬기는 사람이 최고의 인물입니다.

자리가 아니고, 타이틀이 아니고, 권력이 아닙니다.


어떤 위치에 이르렀든지, 섬김의 영향력, 사랑의 영향력, 따뜻한 미소의 나눔입니다.

마더 테레사, 한경직 목사님, 장기려 장로님.. 이런 분들이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들을 만났을 때.. 따뜻한 미소, 인간애, 예수님의 사랑이 우러나오기 때문입니다.

(무슨 큰 일을 성취하는 것보다, 이것이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세상의 눈으로는..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과시하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대하게 만들어 놓는 사람이 진정 위대한 사람입니다.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편안해지고,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건강해지고,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하고 존엄성을 느끼게 되고...

이런 것이 바로 진정 위대한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타이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26절) 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는 영어성경에 “No! Not so among you!”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정어를 두 번 사용함으로써, 이 세상과 기독교인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크리스천은,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위대함의 정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26절)고 하셨습니다.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를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잘 섬기는 사람이 진정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위인이 많지 않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 학벌 좋은 사람, 돈 많은 사람, 유명한 사람들이

세상이 보는 위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 에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위대한 인물들이 얼마든지 어디에나 있습니다.

신입사원 중에도, 중견사원 중에도, 높은 사람들 중에도 위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그 사상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요,

그 사람이 나라와 민족과 사회와 공동체에 큰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첫째가고 으뜸가고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섬김에 있는 것이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열흘 동안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인데,

예수님의 고난을 너무 생생하게, 의학적으로 너무 정확하게 표현해서

보는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기도 한답니다.


감독 멜 깁슨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자신의 영적인 삶이 많이 변화되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희생하셨습니다.

자기를 바쳐서, 자기를 가난하게 해서, 자기를 없애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면서, 자기를 죽이며 섬기셨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자기가 윗사람이라고 대접받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룻기에 보면 주인 보아스가 농사짓는 하인들에게 먼저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라고 축복하며 인사합니다.

한국적인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어떻게 주인이 먼저 하인들에게 인사를 합니까?


하인들이 먼저 인사를 하면, 점잖게 받거나 무시하는 것이 한국적 주인의 모습이지요.

그러나 예수를 믿는 주인들은, 먼저 하인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먼저 보아스가 인사하고 축복하니까 그 하인들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답례합니다.


제가 이 부분을 깊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기독교인의 문화는 윗사람이 먼저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축복을 빌어주는 데는 나이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먼저 축복을 빌어주는 것이.. 신자들의 문화입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제일 이상했던 것이,

누구나 모르는 사람을 보고 “Hi!”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지고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오래 지나고 보니까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문화였습니다.


어른이나 윗사람이 먼저 축복을 해주면

젊은 사람들이나 아랫사람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겠습니까?

여러분 중에 어른이라고 생각되시는 분은, 또는 교회의 어른이라고 생각되시는 분은

먼저 젊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보고 젊은 사람들이 “사회에서는 어른들이 인사를 받으려고만 하는데,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을 앞장서서 위해주는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문화가 우리 교회와 가정에 풍성하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서로서로 섬기라”고 합니다.

제가 “서로서로”라는 성경구절을 찾아보고 놀랐습니다. 무려 50여 가지가 있더군요.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 하고, 아내들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하고,

또 서로서로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자기의 위치에 상관없이, 먼저 섬기려는 기본적인 태도를 가질 때

여러분과 저는 이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으뜸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새로운 섬김의 문화가 여러분의 몸에 배이고,

우리 교회와 가정과 사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문화가 왕성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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