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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복음 David Pawson

LNCK 2012. 10. 27. 11:15

의로운 복음 / 데이빗 파슨 - YouTube

◈의로운 복음                    롬1:17                    David Pawson 목사님 설교 녹취, 정리

 God of Love? Gospel of Love?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나쁜 소식이 되기도 합니다.

 

먼저 그것이 나쁜 소식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나쁜 소식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은, <의로움을 사람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십니다.

God loves righteousness more than people.

 

노아의 방주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당시 불법한 사람들 전체를, 홍수로 멸망시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은 ‘의를, 사람보다 더 사랑하신다’는 속성을 잘 나타냅니다.

 

오늘날에도 그 하나님의 속성은 변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 중간에는 그런 심판을 내리지 않으시겠지만,

역사의 종말에는, 반드시 이번에는 물로 아니라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를, 사람보다 더 사랑하신다’는 속성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 사실(그 하나님의 속성)을 받아들이거나, 믿기 힘들어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우리의 존재의 구원자이시기도 하지만,

또는 모든 인류의 심판자이시기도 합니다.

세상 종말이 오지 않더라도, 우리 각자는, 자기 최후의 순간에, 심판을 받습니다.

 

그때 내가 당황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은 ‘의를, 사람보다 더 사랑하신다’는 속성을 

즉,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사실을

지금부터 내가 철저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메시지가 범람하는 가운데서,

‘의로우신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성경적 진리가, 점점 퇴색되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걸 제가 우려해서, 지금 설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지옥으로 보내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이란 사실fact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것(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사실)이 좋은 소식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날엔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모든 악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악이 영원히 지속되도록 허용하신다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세상은, 불법의 천지가 될 것입니다.

불의를 행하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 되는, 생지옥 같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운 최후 심판을 행하실 것이지만,

역사의 중간 중간에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정의로운 심판을 행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됩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며, 공의로우시며,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명심해야할 사항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므로,

악과 죄와 범죄는, 우리에게 절대 유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니, 손해가 막심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실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악과 죄는, 이 땅에서 단기적인 유익을 줄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만약에 이 땅에서, 요행스럽게 심판받지 않더라도,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건 더 큰 재앙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보기에, 성경의 가장 큰 메시지를 찾으라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가 아니라,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입니다.

(물론 두 사실은 항상 함께 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 진리를 깨달아야,

가급적 최선을 다해서, 악과 죄를 멀리하고,

또한 늘 회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이 진리를 무시하고 살다가,

이 땅에서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나중에 천국 문이 닫히고 나서,

내가 거기에 못 들어가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 얼마나 비극적인 재앙입니까!

 

하나님은 ‘그분의 의로우신 속성’으로 인해

악은 반드시 징계하시며, 죄는 반드시 제거하십니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과, 미래 완성될 천국은

악과 죄가 완전히 제거된 곳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것을 이미 계획,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워지며,

그곳에는 의롭게 된 의인들만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법적으로 구원을 받은 상태이지만,

그 성품을, 천국에 살기에 합당하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성화시켜 나가십니다.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이 세상에 사는 이유는,

우리의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즉, 내가 죄가 없는 천국에 살기에 합당한 인격으로, 다듬어 가시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거기 가서도,

다투고, 싸우고, 거짓을 행하고, 이웃을 홀린다면,

그곳이 천국이 되겠습니까?

아니, 그런 사람은 아예 천국에 들여보내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주님이 우리를 래디컬하게 변화시키실 것이지만,

(성경에 더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그것은 우리의 육신을,

영원한 부활체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과, 인격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 살 동안에, 끊임없이 성화되어져 나가야 합니다.

 

지금 아직 준비가 안 되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모습 이대로, 천국에 간다면, 그곳을 망쳐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는, 현실에 준비할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성령이 그 일을, 내 속에서 지금 계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편에서 하시는 일

 

물론 우리의 의와 공로로, 구원받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신학(이신칭의)을 극단적으로 해석해서,

나는 무조건 믿기만 하고, 손가락 하나 까딱도 안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이신칭의로 구원 받은 사람은,

그에게,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성화의 과정이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의로우신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의 의’에 자신의 생각과 삶의 기준을 맞추려고, 자발적으로 애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화, 성화를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잠시 살펴봅시다.

 

▲바울이 전한 의의 복음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의’를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사랑’으로 화두를 열지 않았습니다.

 

롬1:17절을 보십시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위에서 보듯이, 바울의 복음에는 ‘의’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말이 없습니다.

 

복음은, 의에 관한 것입니다.

‘의의 기준’이 선포되어야, 그에 미치지 못하는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주시는 의’를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은 의와 심판으로 시작 

 

‘의’라는 말은, 쉽게 이해되는 말은 아닙니다.                  *디카이오수네 

그래서 저는, 뉴기니 어판, 영어 성경의 정의를 더 좋아합니다.

그들은 아주 단순한 영어를 사용하는데,

‘의’를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너는 괜찮다!’

 

저는 그 말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괜찮다. You are all right!’

 

우리가 의로워서 의인이라는 게 아니라,

여전히 죄인의 속성이 남아있지만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그저 ‘예수 피로 죄가 용서 받는다’라고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즉, 의롭게 된 의인이,

이제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속에서,

점점 성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화란, 하나님과 관계에서 나오는, 내 인격의 변화과정입니다.

 

이것을 예로 들어 설명해 봅니다.

영국 북부의 한 분은, 그곳 청소년 보호시절의 교장이었는데,

참으로 귀한 이 분은, 보호 청소년들을 아가페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도 변화되지 않았던 한 소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이 소년을 엄하게 벌도 주었다가,

부드럽게 선물도 주어봤지만.. 소년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아는 모든 교정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분노가 가득하고,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이 소년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마침내 소년을 교장실로 불러서 말했습니다.

‘내가 아는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해서, 네가 새 삶을 살아가도록 도우려고 했지만,

너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아는 마지막 한 가지 방법을 해 보려고 한다.

그렇게 하려면, 너의 동의가 필요하다.

 

나는 너를 내 아들로 입양할 것이다.

우리 집에 와서, 나와 함께 살며, 내 성을 따르게 될 것이다.

이제 네가 문제를 일으키며, 내가 곤란하게 될 것이다.’

 

소년은 놀랐지만, 동의했습니다.

소년이 그의 집에 들어간 순간부터,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닐 것입니다.

 

여전히 그는 옛 습성이 남아 있었지만,

점차적으로 점점 더 많이 변화되어져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방식이 이와 같다고 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인으로 인정해 주시고,

자녀로 입양해 주시며,         ☞양자 관련글 

우리가 죄를 지으면, 아버지가 비난을 당하십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가 점점 변화되어져 갑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의의 복음’입니다. gospel of righteousness

 

저는 교도소에 가서 설교할 때,

그들에게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교하지 않고,

의롭게 될 것이라고 설교합니다.

 

저는, 제가 대화를 나눠본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당신의 나이에 되고 싶었던 그런 선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까?’

그러면 모든 사람은 안타까워하며, 더 좋은 사람이 되어있기를 원합니다.

 

복음이란,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인정해 주시는 ‘의로운 사람’입니다.

‘당신은 그런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라고, 저는 복음을 전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당신을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 주시고,

또한 그 후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계속적으로 당신을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그런 구원 역사를 계속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변해가고 있으며, 완전하게 (성숙하게) 된 분들도 있습니다.

‘의로운 복음’ gospel of righteousness 때문입니다. ‘사랑의 복음’이 아닙니다.

 

오늘날 ‘성화’와 관련해서, 여러 입장에서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You must be holy

-You need not be holy

-You can be holy

저는 세 번째 입장입니다. You can be holy입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우리를 그저 구원해 주실 뿐 아니라, 거룩함을 입혀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저 죄의 용서만 해주신 것이 아니라,

거룩함을 주시며, 의로움을 주십니다.

우리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불의’입니다.  un-righteousness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불의를 결코 참아보지 못하십니다. (위에서 이제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자기 의’입니다. self-righteousness

 하나님이 ‘불의’보다 더 진노하시는 것은, ‘자기 의’입니다.

 이것은 불의보다 더 큰 문제입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가 불의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의’를 가진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완고한 사람들로서

 자기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의롭기 때문에, 자신이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저는 교도소에 가서, 설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곳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악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설교하기 힘든 곳은 ‘자기 의’가 가득한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악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의’는 종교적인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의’에 사로잡힌 자들을 증오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는 잘 지냈지만,

바리새인들과는 잘 지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자기 의’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