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2

일 보다는 관계가 먼저다 / 잭 푸닌

LNCK 2012. 12. 3. 10:52

◈일보다는 관계가 먼저다                       요6:28~29,  요17:3,  빌3:10~12        영어


Zac Poonen 목사님 설교 11 of 16.  서두 부분은 다른 내용을 끌어다 첨가했습니다.

 



예수님이 30세 즈음에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요단강에서 물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때 하늘이 열리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구절을 읽으면서,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직 공생애도 시작하기 전입니다.


그 30년 동안, 예수님이 무슨 일을 많이 하셨는지 모르지만,

성경에 하나도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예수님이 뚜렷하게 사역을 하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 30년 동안, 예수님은 그저 성장하셨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서 사신 것뿐입니다.


요지는, 하나님이 물세례 받으시고 올라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떤 ‘일, 성과, 업적’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은 아직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란 인정을 받으려면,

무슨 일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하기 이전에, 하나님과 관계가 친밀해야 합니다.


물론 올바른 관계 속에서 친밀함이 나옵니다.

내가 올바르지도 않은데, 친밀한 관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보통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성과와 업적’을 대단히 중요시 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성과와 업적’으로 평가합니다.


심지어는 가정에서도, 미성숙한 부모를 두면

‘성과와 업적’에 따라서, 자녀를 사랑하거나, 자녀를 멀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관계’를 더 중시합니다. 성경을 전반적으로 볼 때 그렇습니다.


물론 ‘성과와 업적’도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더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없는

성과와 업적들은.. 무용지물이기 쉽습니다.


더욱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자기 개인적 야망을 위하고,

또는 자기 공동체적 이름을 내는데 관계된 ‘성과와 업적’이라면,

아무 쓸모없는 ‘성과와 업적’입니다.


그래서 이 설교문의 요지는,

신앙이 미숙할수록,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없이

꼭 세상에서 하는 것처럼, 성과와 업적에 목을 매며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이 성숙한 성도일수록,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가운데,

성과와 업적에서 자유한,

성과와 업적으로부터 free한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일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 치중합니다.  주1)


제가 보기에, 많은 신자들이 ‘영생 eternal life’가 무엇인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요17장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영생이라고 하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이해합니다.

여러분, 지옥에서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삽니다. 그것은 영생이 아닙니다.

물론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이지만,

‘하나님을 친밀히 아는 가운데’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또한 제자들이 한 번은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리이까?’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요6장:28, 29절.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일은, 어떤 업적이나 성과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했는데,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친밀하게 아는 것,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 일에 먼저 헌신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3절에 보면, ‘주님의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다’고 했습니다.

복음 성가에도 나오죠?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그의 자비는 무궁하니

아침마다 새롭고, 또 새로우니..


그래서 저는 ‘주님의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다’는 사실을 깊이 압니다.

여기서 ‘안다’는 사실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그 주님의 자비를 아침마다 깊이 묵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마다 새롭게,

주님께서 내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매일 새롭게 깨닫고 감사를 드립니다.


히브리서 8장12절에,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는 내 과거 죄가, 완전히 용서된 것을 믿습니다.


혹시 오늘 또 제가 죄를 짓게 되더라도,

하나님이 그것은 ‘제가 죄를 처음 지은 사람’처럼 대해 주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죄 용서의 자비요, 그것이 아침마다 새롭다는 것을,

저는 더욱 깊이 알아갑니다. 


주의 자비가 아침마다 새로우니,

나도 아침마다 새롭게 그 자비의 은혜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눈으로 제 아내를 봅니다.

주님의 죄 용서의 자비가, 매일 아침 새롭게 그에게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아침에 아내를 바라볼 때에도, 죄를 하나도 안 지은

완전히 새롭게 된 의인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가 오늘 아침에, 주의 죄용서의 자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와 제 아내만, 그렇게 완전히 새롭게 된 사람으로 보지 않고,

다른 형제와 자매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자비가 아침마다 새로우므로, 아침마다 새로워진 그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물론 저와 제 아내가, 또는 형제 자매들이 오늘 또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히8장12절에,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제게 적용된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겠습니까!

‘제 죄만 주님이 기억하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의 죄는 모조리 기억하고 계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제가, 제 모든 죄를 주님이 기억하지 않으신다면,

다른 형제 자매의 모든 죄도, 주님이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기 때문입니다.


그 자비로, 제가 아침마다 새롭게 되었다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새롭게 된 모습으로 쳐다보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어찌하여 자기만 새롭게 용서 받은 사람으로 보고,

다른 사람은 여전히 죄인으로 쳐다보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주님을 깊이 알 때, 즉 주님과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가질 때.. 나오는 능력입니다.


이런 능력과 내면의 힘을 가진 크리스천이 먼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과 업적과 성과도 중요하지만, 그게 우선은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내면적 힘이 생깁니다. 신앙의 내공이 생깁니다.


그리고 자기가 나서서, 일을 막 하려고 설치지 않습니다.

대신에, 주님께 맡기는 신앙이 되고,

일에 열중하기 보다는, 그 시간에 주님께 기도하는데 더 열중하는 성도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지만,

그 일이.. 잘 성공하지 못하는 때도 많고,

중간에 흐지부지 되어 시간낭비에 그치는 수도 많은데..


대신에 ‘기도로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는 실제로 일을 많이 하지 않지만, 되어지는 결과를 보면,

자기 팔을 걷어 부치고 열심히 일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결과를 낳습니다.

그는 기도로 일했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 3세계에 가면, 전기가 들어와도 아주 약하게 들어옵니다.

그래서 기계가 돌아가기는 하는데, 비실비실하게 돌아갑니다.

전압이 약하니까요.

그런데 전기를 꽂으면, 정상적인 경우는, 기계가 힘차게 돌아갑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만,

비실비실하게 일을 할 수도 있고,

힘차게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고,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은,

일을 하되, 힘차게 성령의 능력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그가 일하는 시간은 많지 않더라도 그의 일의 능률은 100퍼센트입니다.

그는 기도와 묵상에 시간을 먼저 할애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지만, 비실비실하게 일을 하기도 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엉뚱한 일을 하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하고, 말씀도 깊이 모르고,

그저 자기 인간적인 생각으로, 옳은 줄 알고 행하지만,

그것이 영적인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분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일은, 남들에게 도리어 짐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을 하되, 성숙하게 일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작은 몇 가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꼭 필요한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자와, 미숙한 신자를.. 그렇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숙한 신자와 미숙한 신자의 차이가 또 이런데서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일을 보고 ‘아, 저건 안 돼, 저건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지레 포기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자는, 하나님이 믿음을 주실 때는,

그 일이 아무리 불가능하게 보여도, 도전합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힘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함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인도 가정에는 어느 집이나 개미가 많습니다.

하루는 제가 보니까, 한 개미가, 밥알 한 톨을 힘들게 끙끙대며 나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용을 쓰다가, 마침 저를 보고, 개미가 이렇게 말합니다.

‘잭 형제님, 안 바쁘면 여기 밥알 한 톨을, 저기 우리 집 입구까지 좀 옮겨주세요.’

‘예, 그러지요.’


‘그런데 거리가 꽤 먼데 괜찮겠습니까? 3미터나 더 됩니다.’ 개미에게는 장거리입니다.

‘네,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무게도 꽤 무겁거든요. 밥 한 톨이, 제 몸무게의 거의 10배나 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제게는 No Problem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개미가 되어서, 자기 힘으로 일을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의지하며, 하나님과 동역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자기 힘으로만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주의 전체 크기로 놓고 보면,

지구는, 우주에서 차지하는 크기가, 모래 한 알에 불과할 정도로 작습니다.


그 모래 알갱이 하나와 같은 지구 안에서,

저와 여러분의 크기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거의 안 보이는 먼지 한 개가 될 것입니다.


그런 ‘먼지 한 개’에 불과한 우리들이

‘형제님, 제가 가진 문제가 얼마나 큰지, 형제님은 상상을 못하실 것입니다’

라고 해봐야.. 그게 얼마나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건 우주 전체로 보면, 즉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있으나마나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지 못하실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건 개미가, 밥알 한 톨 운반해 가면서,

나를 보고 ‘옮기기에 무거울걸요? 거리가 먼데요?’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내 시각에서 문제와 사역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의 시각에서 문제와 사역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아는 성숙한 신자일수록,

문제(즉, 사역)보다는, 하나님을 더 오래, 깊이 바라봅니다.


여러분, 많은 신자들이, 사실은 불신자입니다.

신자 believer라는 말은.. ‘믿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불신자와 같이 말하고 행동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눅10장에 보면,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서 가르치실 때,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고,

마르다는 부엌에서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 50년간,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냈습니다.

눅10:42,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의 생각은.. ‘예수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방에서 요리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자기를 돕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있다고,

마리아를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마르다의 생각은, 당장 식사대접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생각은, 말씀을 듣고 신앙이 성숙해져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헌신하는 일꾼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실 나중에,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던 여인이,

바로 이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마리아는, 주방에서 밥을 지은 마르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고전4장2에,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는,

주인이 시키신 바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충성, 봉사를 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 일이나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분변한 다음에, 충성하세요!’


여러분, 예수님의 삶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너무 비능률적으로 사역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30세까지, 뚜렷한 업적이나 성과가, 성경에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3년 반 동안 공생애를 보면,

그때에도 주로 저 시골 갈릴리 지역 중심으로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대부분, 그곳에서 보내셨습니다.


만약 우리 같았으면, 이집트로 가서 전도도 하시고,

저기 로마는 물론이요, 멀리는 중국에까지 가셔서 전도하셨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물론 큰 건축을 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고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그 뜻을 ‘다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미성숙한 신자나 지도자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레스트리스 restless'입니다.


쉴 새 없이 뭔가를 하는 것입니다.

뭔가 부지런히, 정말 자기 몸이 부서지도록 열심히 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그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는 것이요,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시키신 아주 중요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너무 바쁜 나머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사실은 자기 업적과 성과에 바쁜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엉뚱한 일에 바쁘게 됩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깊이 하지 않으면, 결코 여러분의 내면이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을 하지만, 자기 본성으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본성으로 하는 일은, 대부분 하나님의 뜻을 오히려 거스립니다. ☞관련글 하나님을 일 시키는 사람



◑신앙인의 힘은, 하나님을 깊이 아는 데서 나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빌3장10절부터,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이 구절에서 ‘알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 때,

자기 마음속에 불타는 열정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 불타는 열정은, 이어지는 구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그리스도를 깊이 알 때, 불타는 열정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다니엘11장32절에 보면,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부드러운 말로,

세상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분위기로 몰아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궤휼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단11:32


그러나 누가, 그런 미혹을 이기는가 하면,

하나님을 친밀하게 아는 그의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 신앙의 비결은,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크리스천 사역의 원천입니다. 내 능력의 비결입니다.

크리스천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날마다 새 힘을 얻고,

힘차게 주님이 주신 자기 사명을 감당해 나갑니다.


..........


주1) 이 단락은, 다른 회차에 나오는 부분인데,

내용상 이번 11 of 16회에 합당해서, 여기에 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