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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가치관은 하나님의 가치관과 반대 / 잭 푸닌

LNCK 2012. 12. 5. 22:38

◈이 세상의 가치관은 하나님의 가치관과 반대     눅16:15, 빌3:3         영어

 This World's Values are the opposite of the God's

 

Zac Poonen 목사님 설교 9 of 16      -전체 보기 클릭-

 

 

안 믿는 사람들은, 제게 ‘당신은 성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인줄 확신합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있을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에 대해, 보통 신자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팔레스틴의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 조사해 보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이,

그 고고학 발굴을 통해 발견된 수 천 년 전의 성경 내용과 똑같습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은, 옛날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물론 그런 설명도 맞지만, 그러나 저는 다르게 대답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은지 지난 50년 동안, 이 말씀이 저를 놀랍게 변화시켰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줄 확신합니다.’ 그냥 서론으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지금은, 제가 예수 믿은 후에 발견한 16가지 중요한 진리를 나누는 중인데,

9번째로, ‘이 세상 가치관은, 하나님의 가치관과는 반대된다’ 입니다.

  

여러분, 어떤 아버지가 유산을 남겨주었는데,

자녀가 그 유산의 일부만 자기가 쓰고,

나머지는 아버지의 유산인줄도 모르고 사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우리가 그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모든 영적인 유산을 남겨주셨는데,

우리가 그 일부만 생명으로 누리고, 나머지는 덮어두고 산다면,

그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개인적인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의 모든 진리를, 모두 한 번 내 삶에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남김없이 모조리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모든 진리를 순종해서,

내가 직접 그 진리대로 살아내고,

그 진리가 정말 삶에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참 진리임을

우리 스스로 누리고 증명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데, 한 번 욕심을 내십시다.

그 약속의 혜택들을, 우리가 남김없이 풍성히 누리게 되시기 바랍니다.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눅16장15절에 보면,

‘사람에게 높이 찬사를 받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눅16:15.

 What is highly valued among men is detestable in God's sight.

 

사람들이 그를 높이 칭송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반대로 그를 또는 그것을 아주 낮게 무시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즉 사람들에게 높이 칭송을 받는 것을

아주 극도로 미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세상에서는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라. 자기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믿어라’고 말합니다.

그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스스로 자기 확신을 갖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자신감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니,

가지가 나무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는, 절대 무능함, 절대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 신뢰하면서, 자신은 결코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여러분 아시다시피 구약에는 ‘할례법’이 있었습니다.

남자의 표피 일부를 베어내는 규례였습니다.

 

이 할례는 바로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

자기 자신을 베어 버리는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빌3: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곧 할례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 have no confidence in the flesh.

그들이 곧 할례당이라는 것입니다.

 

할례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 살을 베어버리는 것인데, 자기 육신에 대한 신뢰감을 베어버리는 것입니다.

즉 자신감, 자아충만, 자기 신뢰를 베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구약에서 보면, 할례를 받지 않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그는 언약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신약교회인 우리들에게 적용하면,

우리가 자기 신뢰감, 자기 자아와, 자기 자신감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교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포함되고,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뜻은,

자아가 죽고, 자기 신뢰감이 버려진 사람들입니다. 그게 신자의 기본입니다.

 

‘자기를 신뢰하라’는 세상의 가치관과는 정반대인 셈이지요!

여러분, 어느 쪽이 맞을까요?

길게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성경적 가치관이 진리임이 증명될 것입니다.

 

세상적 가치관으로 볼 때, 우리의 모든 판단은

우리 눈으로 보는 모든 정보, 우리 귀로 듣는 모든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우리는 최종 결정이나 최종 판단을 내립니다.

 

그러나 성경적 가치관은 그와 반대적입니다.

이사야서 11장에 보면, 예수님은 결코 눈으로 보는 것으로, 귀로 듣는 것으로

판단을 내리지 않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사11:3

 

그래서 성경적 진리를 토대로, 저는 제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제가 결정을 내리고, 판단을 내리는 방식을,

보통 육신적인 방식에서, 성경적 방식으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그저 자기 눈으로 보는 정보를 통해서,

자기 귀로 듣는 정보를 통해서, 자기가 읽는 책의 정보를 통해서,

그것들을 종합해서 최종 판단을 내립니다.

 

그런데 그것은, 결국 <자기 자아의 판단>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 <자기 자아를 신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보는 것이, 듣는 것이 모두 정확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일례로, 우리 눈으로 보면,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집니다.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태양이 하늘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실제로는 태양이 움직이지 않고 있으며,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 및 자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는 것이 다 정확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발로 딛고 있는 땅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정지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지구가 공전하거나 자전하는 속도는, 엄청납니다.

시속 수천 킬로나 되는 엄청난 속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은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 지구가 회전하며 날아가는 굉음도, 전혀 우리 귀로 듣지 못합니다.

 

시각, 청각을 비롯해서, 우리의 감각으로 느끼는 모든 것이

다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신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치관과, 우리의 가치관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왜 하필이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을까요?

마구간은 세상의 가치로 볼 때, 가장 낮은 곳이요, 가장 비천한 곳입니다.

 

그것은 이런 뜻도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그 낮고 비천한 곳이, 낮고 비천한 곳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영원 전부터 예비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전부터 예비하시고, 준비하신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에 작고 깨끗한 숙소 하나를 준비하실 수 없었던 것일까요?

충분히 준비하실 수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면,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가치관과, 사람의 가치관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구간이 사람의 가치로 보면, 낮고 비천한 곳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사람과 보는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굳이 그것을 성경구절을 통해 말씀드리자면, 눅16:15절입니다.

사람에게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극도로 싫어하십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죽으셨는데, 왜 하필이면 그렇게 치욕스럽게 죽으신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모욕과 조롱을 당하시면서 말입니다.

 

예수님이 꼭 십자가를 지시기로 되어있으셨다면,

좀 사람들이 안 보는 후미진 곳에서,

조용히 십자가에 죽으셨으면, 그 명예가 좀 더 지켜지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꼭 그렇게 공중 앞에서, 벌거벗기시고

만인 앞에서, 수치와 모욕을 당하시고 죽으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서 읽었던 말씀처럼

‘사람에게 높임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 가증히 여김을 받으리라’ 말씀처럼

 

‘사람에게 수욕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보면, 다르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수욕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수치와 모욕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처럼, 복음으로 인한 수치와 모욕이라면,

성도가 모욕을 받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 보시기에는 존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가치관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쳐다보고, 또한 남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11:3 참조.

 

여러분, 사람들은 자기가 죽으면,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기 원합니다.

그래서 죽기 전부터, 자기의 성대한 장례식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의 장례식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찾아와서 애도해 주는 조문객도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분, 장례식 때 사람이 성대하게 많이 와서 조문해 주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아주 싫어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좋다는 것은 사람의 가치관이고, 하나님의 가치관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자기 장례식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한 번 예수님의 장례식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성대하게 모이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장례식이었다면,

아마 예수님의 장례식에도,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모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이 평가하시는 가치관은, 겸손 humility입니다.

또한 물질에서 자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물질을 많이 갖는 것을 가치 있게 여깁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지 못하고,

그저 세상 가치관을 따라서 산다면,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그런 성숙한 크리스천이 절대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의 가치관이, 세상의 가치관과는 정반대가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시기 위함이라고 봅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은, 자신이 ‘만물의 찌끼같이 여김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고전4:13

 

여러분, 바울은 하나님의 사도요, 그것도 가장 충성한 사도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큰 사도인 그를, 만물의 찌끼같이 대우받도록

가만히 팔짱 끼고 보고만 계신 것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가치관과, 사람의 가치관이 다른 것입니다.

사람들의 가치관으로는 ‘만물의 찌끼’로 대우받는 것은, 정말 수치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치관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칭송을 듣고, 높임을 받는 것을.. 하나님은 멸시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실제로 예수님을 보십시오.

5병2어의 기적 이후에,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는 군중들을 피하여,

예수님은 어디 한적한 곳으로 사라져 버리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일생을 통해 가지신 직책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겸손한 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치관이 달랐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이 겸손하신 분으시므로,

예수님은 겸손하고 통회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57:15

그런 예수님을, 하나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영원히 높이셨습니다.

 

여러분, 특별히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한 사람씩 다 씻기셨습니다.

 

여러분, 오늘날의 지도자들과 얼마나 다른 모습이십니까?

 

그래서 여러분, 제가 다시 한 번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사람에게 높임을 받고, 칭송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 미움과 극도로 싫어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과 제가 명심하면서, 남은 생애를 살게 되시기 바랍니다.

 

///////////// 영한 자막 원고 (보관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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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가치관은 하나님의 가치관과 반대
This World's Values are the opposite of the God's
잭 푸닌 9 of 16

눅16:15절을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은 성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인줄 확신합니까?’
라고 제게 질문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제가 믿음이 어렸을 시절에 그렇게 물었죠 제가 젊었을 때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어요
사람들도 보통 이렇게 대답하죠
누가 이스라엘에서 사본을 발견했는데 (보니까 현재 성경과 똑같더라)
제가 요즘은 그렇게 대답 안 합니다
요즘 대답은, ‘왜냐면 이 책은 제 삶을 50년 동안 변화시켰어요
이 책속에 나온 말은 단 하나라도 진리가 아닌 게 없어요’ 이 성경에는 상반된 모순도 없어요
제가 이 성경을 50년 동안 아주 주의깊게 읽어보았어요
(진리가 맞습니다) 성경에 명백한 상반된 모순이 있다고 말하는 자는
아직 성경을 깊이 연구하지 않아서 그래요
여러분이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 성경엔 상반된 모순이 없어요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약속은 진실입니다
그 중에 많은 약속들을 제가 이뤄달라고 요구했고
아직 요구하지 않는 약속들은, 제 사명을 마치기 전에 요구할 것입니다 이 책의 모든 계명들을
제가 지키고 제 삶을 마치기 원합니다 그래서 제 기도 중 한 가지는
‘주님 제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당신의 모든 계명들을 다 지키기 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책의 모든 약속들의 성취를
요구하기 원합니다
제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요 그건 이런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큰 유산을 여러분에게 남겼어요
그럼 여러분은 그 재산을 다 가질 겁니다
왜 그 중에 작은 일부만 갖겠어요?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렇게 합니다
유산을 다 가져야죠 그래서 성경을 연구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이 세상 가치는 하나님의 가치와 반대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눅16:15절 후반부에 보면, ‘사람에게 높이 찬사를 받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 가운데 높이 인정을 받는 것은..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신다고요?
그것은 혐오스럽고 가증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견해와 ‘조금’ 다른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정반대지요
사람들 가운데 아주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혐오하신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높입니다,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는 (유능한) 사람들을요!
뭐 세속 사회, 경제 영역에서는 그렇게 하겠죠 그러나 기독교인의 삶에 있어서는,
성경은 말씀하기를 ‘우리는 자기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만 온전히 신뢰한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나무에 가지가 되는 것과 같아요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예수 믿는 것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는 전적 무능력과 무기력함을 인식하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사
자신을 철저히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하냐면, 구약시대에는
한 율법이 있었는데, 이스라엘 가운데 할례를 받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 백성들로부터 쫓겨나야 했습니다 구약의 모든 것은 (신약의) 그림입니다.
인간의 할례는 하나님께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나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이 상징입니다
그럼 할례가 상징하는게 뭔가요? 할례가 상징하는 것은, 빌3:3절에 보면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참 할례당이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이것이 할례의 의미입니다
할례는 육신을 (대표로 일부분만) 잘라서 버리는 것입니다
그 영적인 의미는 '내가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죠 이제 구약 율법을 신약에 적용해보죠
만약 한 사람이 할례 받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쫓겨나듯이
만약 그가 크리스천이 되려면,
자기 능력을 신뢰함을 잘라내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이 되기 원하시는 사람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가치는 하나님과 반대됩니다
다른 영역을 생각해 보죠 우리의 모든 정보, 우리가 내리는 모든 판단은
우리가 보고, 읽고, 듣는 것에 근거해서 내립니다 그런데 성경 이사야11:3절에 보면
예수님은 결코 자신이 보고 듣는 것에 의해 판단치 않는다고 했어요 주님이 제게 가르치신 것 중의 하나는
제가 생각하는 방식, 제가 결정하고 판단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죠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모든 결정을
자기가 보고 읽은 것에 근거해서 내립니다
자기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오는 모든 정보에 근거해서 내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참 제자는
자기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에 의해 판단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태양이 떠오르게 해서 하늘로 움직이게 하신 이유는,
사람의 감각이 정확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봐요 매일 우리는 태양이 떠올라서 지는 것을 봅니다
사실 태양은 움직이지 않잖아요
그러나 태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내 감각을 믿으면 안 됩니다 또 우리 발 아래의 지구는 공전하고 있습니다
시속 수 천 마일의 속도로요 그러나 우리는 느끼지 못하죠
우리는 우리 감각기관을 믿을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달으면,
이것은 영적으로는 더 중요한데
나는 이 세상의 가치에 의해서 살지 않을 것입니다
내 눈에 가치 있게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눈에는 아무 가치가 없어요

예를 들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은 왜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걸까요? 저는 모르겠어요
저는 제 생애에 마굿간에서 태어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그분은 누구보다도 낮게 이 세상에 태어나셨어요
그 탄생 이후로 계속 한 가지를 우리에게 가르치셨는데
사람의 눈에 가치 있고 위대한 것은 하나님 앞에 아무 가치가 없다는 거죠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의 탄생은 여러분과 저의 탄생과는 달리
영원 전부터 계획된 것이었죠
여러분은 생각하기를 전능하신 하나님이
베들레헴에 태어나실 방을 준비 못하셨으리라 생각합니까? No 하나님은 쉽게 준비하실 수 있으셨죠
그러나 고의적으로 방을 허락하지 않으셨죠
그래서 그분의 아들이 마굿간에서 태어나게 하신 거죠
소들과 당나귀들 가운데서요 이것은 세상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죠
사람들이 매우 가치있게 여기는 것(인간의 부 등)은
하나님의 눈에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을요! 우리는 압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셔야만 했다고요
그렇지만 왜 그런 수치스런 죽음을 죽으셔야만 했나요?
십자가에 달리셔서 옷도 벗기우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조롱과 모욕을 받으셔야 했는지요?
제 말은, 그 분이 죽으셔야 했다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좀 더 근사한 방식으로 죽으실 수 없었나요?
아무도 안 보는 어디 구석에서요
아닙니다 그분은 공개적으로 수치를 당하셔야만 했어요
이것 역시 세상에 가르치시는 겁니다
사람이 매우 가치 있게 여기는 것(명예 등)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요!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죽고 난 다음에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기 원하죠
그래서 그것을 생전에 준비합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떤 장례를 계획하셨나요?
거의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심지어 크리스천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매우 높이 가치를 두는 것들은
하나님은 가치를 두지 않으신다는 거죠
하나님의 가치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 출생 때)

세상에 그 분을 위한 방이 없었다는 것은 겸손이었어요
돈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였어요
세상은 이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죠
그래서 세상의 가치는 하나님의 가치와 정반대라는
이 진리를 우리가 명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는 마땅히 되어야 할 크리스천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말씀을 주신 이유 중 한 가지는
모든 세상의 가치는 천국 가치와 정반대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사도바울은 한 때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사도들이 이 세상에서 찌꺼기처럼 대우받았다고요’ 고전4:13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종들이 (그런 대우 받은 것을) 상상해 보세요

우리가 성경에 읽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했죠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후에요 그때 예수님은 사라지셨어요
이 세상에 왕이 되려고 오신 게 아니거든요
성경은, 그분은 자신을 낮추어 종이 되셨다고 했죠 빌2:7
그분은 종이 되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보내지셨습니다
그분은 생애 내내 겸손한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는 자리 대신에
어떤 다른 자리를 거절하셨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알 듯이, 그분은 지상 생애의 마지막 날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어요 오늘날 기독교지도자들과 얼마나 다릅니까
또한 우리 크리스천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예수님은 얼마나 다릅니까 그것은 왜냐면 우리는 이해하지 못해요
사람들이 매우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좋은 게 아니에요
그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것이에요

이게 (제가 사역 50년 중에 깨달은 진리) 아홉 번째 였고요
이제 열 번째로 넘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