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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2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길 / 잭 푸닌

LNCK 2012. 12. 8. 19:03

www.youtube.com/watch?v=-fZ-94QLUow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길       롬6:11,      딤후2:11~12               영어

Zac Poonen 목사님 설교, 6 of 16

 

◑1. ‘매일’ 십자가를 지시라

 

예수님이 먼저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 각자도 그 길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

 

눅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님은, “매일” 성경을 읽으라고 하신 적은.. 성경에 안 나옵니다.

(물론 성경을 매일 읽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일입니다만)

 

다른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매일” 하라고 당부하신 적이 없는데,

오직 ‘자기 십자가’ 지는 것에 대해서는 “매일”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사도바울은, 자기 십자가를 매일 순종해서 졌습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복음서에 가장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위의 눅9:23 외에도

마10:38, 마16:24, 막8:34, 눅14:27 등 총 5회 나옵니다. 주1)

 

아마 신약성경에, 같은 표현이 반복해서 5번이나 나온 말씀은,

이 말씀 말고는, 없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어린 신자였을 때,

‘매일 기도를 드려라’, ‘매일 성경을 읽어라’,

‘매일 믿음의 형제와 교제하라’, ‘매일 전도를 하라’.. 이런 권면은 종종 들었습니다.

그것들은 매우 귀한 신앙인의 습관이요, 훌륭한 실천들입니다.

 

그러나 제게 ‘매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권면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가르치셨는데, ↑

우리들은 진정 ‘매일’ 해야 할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매일 하라’는 명령이 없는 것들만 물론 그것들은 좋은 것들이지만

잔뜩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설교 제목이

‘십자가를 지는 삶이, 생명의 길이다’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으면.. 부활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제부터 미리 말씀드리면,

오늘날 우리 신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찾아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크리스천이라 그러고, 교회라고 그러는데, 그 속에 ‘생명 역사’가 아주 희귀합니다.

그 이유는, ‘매일 십자가에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매일 십자가에 죽지 않는 이유는,

그 삶이 쉽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아예 우리 삶 가운데 ‘십자가를 지고 죽는다’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버려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신자들이 성경, 기도, 교제 등 다른 것들은 많이 강조하면서도,

‘십자가에서 죽는 것, 그것도 매일!’은 ..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생명의 역사’가 희귀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오늘날 현대의 크리스천들은,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개념에는

아예 기역(ㄱ)자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예, 개념 자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신자의 삶 가운데, 만족이 없고, 불만족만 가득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생명을 약속하셨고,

그 생명은, 자기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생명을 통해서 오는데,

 

신자들은, 그런 원리에 대해서, 아예 개념 자체가 없으니까,

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메마르고 답답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생명의 역사는, 십자가 후에 반드시 나타납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들은, 이 개념이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는,

듣는 제자들이나 청중들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길거리에서, 가끔씩

로마 군병들의 감시아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죄수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가면, 그들은 결국 죽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그 사람은, 가족과, 세상과, 모든 것과 완전히 결별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뜻에는

‘네 야망, 네 미래 계획, 네 가족, 네 모든 것에 죽음을 선언하라’입니다.

그는, 이전에 자기가 관계했던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결별되어 집니다.

 

물론 이것은 좀비나, 어떤 실패자처럼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는 삶에는.. 반드시 열매가 나타납니다.

 

내가 십자가를 지고 죽으면.. 반드시 나로 인해 살아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 능력/영광/생명/권세로.. 내 속에서 살아나십니다.

 

내 미래 계획이든지, 내 상처 입은 감정이든지, 내 명성이든지,

이런 모든 것에 대해 죽으면, 내 속에서든지, 또는 내 주변사람에게서든지

반드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아닌지

그것을 알아보는 시금석이 있습니다.

 

내 속에서, 또한 내 주위에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그건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내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십자가를 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제가 20살에 거듭나서, 23살쯤 되어서, 저는 한창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권능 가운데, 주님을 섬기며 따르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지금, 기독교인의 삶 가운데,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며 살고 있구나!’

 

그때 저는 거듭났고, 물세례도 받았고, 교회도 지속적으로 출석하고 있었고,

그 당시에 제가 생각하기에 죄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주로 외적인 것들이었음)

끊었고, 회개했습니다.

 

그래도 뭔가 중요한 것을, 한 가지 놓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

 

성경에 보니까, 예수님이 물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셨을 때에는,

성령이 비둘기같이 주님께 임하셨습니다.

 

여러분 물세례의 장면을 연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육신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그의 육신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몸을 물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일으키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즉, 예수님의 수세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앞으로 걸어가실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미리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여러분, 물세례를 줄 때 보면,

수세자가 물에 잠길 때, 스스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반드시 집례자가 그를 손으로 잡아 물에 빠진 그를 일으켜 줍니다.

 

이것은, 그가 스스로 부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부활은, 반드시 누가 부활시켜 준다는 뜻이지, 스스로 부활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 실제로, 여러분 각자가, 정말 죽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이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다시 살아난다고 가정해 볼 때,

 

오늘 누가 여러분을 공격한다고 칩시다. 아니면 ‘바보 멍청이’라고 욕을 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은 여러분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롬6:11절을 보십시오.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여기라’고 하십니다.

 

내가 공격을 받을 때, 우리는 육신적으로 반응하기 십상입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그런데 ‘죄에 대해서 죽은 자’는, 그렇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아니 못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자기가 완전히 죽은 사람은,

아무리 공격을 받아도, 아무리 비난과 욕을 들어도,

자기가 반응을 나타내 보이지 않습니다.

 

억지로 자기의 반응을 참는 사람은 초보이고,

고수는.. 아예 무덤덤합니다. 그러니까 아예 반응이 자기 속에서 나오지 않지요.

 

자기가 고수이니까, 단련된(성숙된) 사람은,

누구에게 공격을 받아도, 비난을 들어도, 조건반사와 같은 즉각 반응이 아예 나타나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을 막대기로 찌르거나, 그 앞에서 욕을 해대어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 십자가에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이유.. 부활을 믿기 때문

 

제가 이런 설교를 하면, 신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식으로 살면 좋겠지만, 완전히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꼴이 될걸요?’

 

신자들은, 자기가 스스로 낮추고 겸손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를 깔보고, 무시한다고 말합니다. 현실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실제 삶에서, 십자가에서 자기를 죽이는 삶을 살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바보가 되거나, 무시를 당하거나, 사람들에게 이용거리로 전락되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들은 ‘사람들이 나를 이용해 먹을 뿐이다’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은 없다. 다 감당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이용을 당하는 식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기꺼이 자발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향해 나아가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으면, 영광스럽게 다시 부활할 줄을,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활을 진실로 믿으십니까?

그러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수세 장면>을 통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세례를 받으면, 그 물속에서 수장(水葬)되는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반드시 물에서 일으켜져서, 다시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나만 바보 된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례 받을 때, 자기가 수장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러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례를 받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누군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세례를 받을 때, 다른 사람(집례자)이 자기를 물에서 일으켜 줍니다.

자기는 가만히 죽어 있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기꺼이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죽는 삶을 살아갈 때,

나를 부활시키시고, 나를 다시 살게 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안 살아나도, 나는 가만히 있어도,

나는 반드시 다시 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십자가에서 자기를 죽이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내가 기꺼이 죽기만 하면,

누군가(주님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 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자진해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갈2:20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요,

그러면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속에 그리스도가 사시게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내 속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태생적으로 육신을 타고 나서,

또는 우리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약해져서 미미할 때,

십자가에서 나를 죽이는 길로 나아갈 때, 자꾸 주저하고 버벅거리게 됩니다.

 

내가 죽기보다는, 오히려 살려고 발버둥 치게 됩니다.

그렇게 할 때는, 바울이 말한 바, <부활의 능력>은 내내 체험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날마다” 죽고, 하나님이 죽은 나를 부활로 일으키시는 체험을

“날마다” 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억지로 버벅대며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원해서 그 십자가의 길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풍성히 주시고,

그는 자기만 살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살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부활의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롬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1963년도에, 저는 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의 입입니다. 이 설교는 2009년 경 설교

 

저는 이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나서, 제 삶에 많은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내적 음성을 들었습니다.

 

‘남은 생애에, 네가 이 길을 계속 선택하는 동안에,

내 능력이 너와 함께 머물 것이다.

 

그러나 네가 이 십자가의 길에서 벗어나는 동안에는,

내 능력도, 네게서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저는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능력도 없고, 생명도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지었던 죄에서 자유함을 얻지 못하고,

죄의 종으로서, 똑같은 죄를 계속 반복해서 지으며 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그들이 예수를 머리로 믿기는 하지만,

주님의 가장 반복된 명령인 ‘십자가를 지지 않고’ 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죽지 않으니까, 부활의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단순합니다.

 

이 설교 내용은, 아래 구절이 함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딤후2: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그런데 이어지는 구절도 명심하십시오.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

 

주1)

마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막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래서 실제로 바울은, 그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갈2:20 각자 암송.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영어-한글 자막 원고>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길 
The way of the cross is the way of life
잭 푸닌 6 of 16 십자가의 메시지인데요
오늘날 기독교 세계의 모든 곳에서 선포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메시지를
제가 지금 말하려는 게 아니고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인데,
우리가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매일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9:23  여러분 아세요?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매일 하라"고 하신 유일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매일” 성경을 읽으라고 하신 적은 없습니다
 성경을 매일 읽는 것은 매우 좋은 습관입니다만
그건 우리에게 대단히 도움되는 일입니다만 
여러분이 컨코던스(성구사전)를 가지고
“매일”이란 단어를 신약의 복음서에서 찾아보시면 
예수님이 너희 삶에서 ‘매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를 지는 일’뿐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크리스천 청년이었을 때, 
기도를 매일 해라, 성경을 매일 읽어라는 소리를 들었죠
모두 좋은 습관들입니다 
누구와 매일 교제해라, 매일 누구를 전도해라
이 네가지 모두가 훌륭한 일들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무도 제게 말해 주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건 '내 십자가를 매일 지라' 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우리가 "매일" 해야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당시 제가 생명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였어요 제가 이렇게 말해도 맞는 말일 거예요
‘그래서 대부분 크리스천들이 매일 십자가를 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의 힌트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에 문제가 많았던 것입니다
그럼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실 때
누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당시 흔히 볼 수 있었어요
로마 군병들이 죄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데려갔지요 사람들이 길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을 보면
그가 어디로 가는지 압니다
그는 이제 곧 죽으러 가기 때문이죠 그는 곧 죽게 되고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작별하는 것을 의미했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너희가 진정 나를 따르기 원한다면
너희는 이 세상의 많은 것들과 작별을 고해야 하며
이제 곧 (세상을 향해서) 죽게 될 것을 의미했습니다 '너희는 네 야망에 대해서도 죽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세요 그가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장래에 대한 계획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아마 그가 장래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그게 다 사라져 버렸죠
그는 지금 죽으러 가지, 소풍을 가는 게 아니거든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나를 따르려거든
너희는 너희가 자기를 위해 계획한 모든 것에 죽어야 한다 이것은 아무 계획 없이
마치 좀비처럼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런데 누가 내 속에 사시는데
그리스도가 내 속에 사신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교환의 삶’입니다
나는 ‘내 계획’들을 포기하고
주님 ‘당신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교환하죠) 내가 매일 져야하는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내 계획에 대해서 죽는 것이고, 
내가 받은 상처의 감정에 대해 죽는 것이고, 내 명성, 
누가 내게 대해 말로, 무시함으로 상처받은 내 감정에 대해 죽는 것이죠 여기 은혜스런 구절이 있습니다 로마서 6장인데요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제 기억에 성령의 능력을 달라고 
제가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23살 때였죠 
그러면서도 당시 제가 크리스천의 삶에 있어서
어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시 저는 거듭났어요 물세례도 받았어요
교회도 정기적으로 다녔어요 
당시 저는 죄라고 생각되는 일들은 행하지 않았어요
대부분 외적인 것이었지만요 그러면서도 제 삶에 뭔가 놓친게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주님, 제 삶에 성령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알기 원합니다’ 주님은 제게 보여주셨어요
예수님이 어떻게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으셨는지
그분이 물세례 받으실 때요 물세례는 자기 죽음을 상징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자기를 물속으로 밀어넣기를 허락하셨어요
누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을 허락하시는 그림이었죠 그리고 세례요한이 그분을 물속에서 들어올릴 때는
하나님이 그분을 죽음으로부터 들어올리심의 상징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물세례에서 이미 받아들이셨죠
물세례은 30세에 이미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상징했어요 바로 자아의 죽음이었죠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께
그분이 가야할 길을 갈 수 있는 능력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 길은 제가 가야하는 길이기도 하죠 제가 말씀드리려는 구절은 롬6:11절입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 자로 여길 지어다’  
그런데 제가 약간 시험에 들거나 따지고 싶을 때가 있어요
제가 이 구절을 대할 때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주님, 당신은 제가 이 상황에서 저를 죽은 자로 여기라고 하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죽은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누가 당신을 모욕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말하실래요? 
그러면 롬6:11절을 떠올립니다
‘주님은 제게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일 십자가를 지는 충분한 기회를 얻게 되는 겁니다 제가 말씀드릴게요
'당신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십시오' 누가 ‘그는 어리석거나 바보다’라고 말했다면
그가 죽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는 표정의 변화조차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완전히 영향받지 않는 삶을 살 것이라고 그려보세요
왜냐면 당신은 십자가의 길, 생명의 길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자신을 스스로 죽은 자로 여기기로 선택했어요
 그것은 이와 같은 것이죠
만약 우리가 그와 같이 산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이용해 먹으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신자들이 (십자가 지기를) 두려워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어야 하는 거죠
하나님은 고전10:13절에 약속하시길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고전10:13절같은 약속이 만약 없다면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될 겁니다
사람들이 항상 당신을 이용해 먹으려고 할 테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십니다 그분은 약속하기를, 
‘네가 감당하지 못할 상황은 만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가 그 일(십자가 지기)을 하도록 길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약속은 '만약 내가 주님과 함께 죽으면
주님과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약속입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기꺼이 죽는 길을 가셨습니다
왜냐면 그분은 부활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을 우리가 믿지 않는다면.. 제 말은, 여러분이 물세례를 받으러 갔을 때
당신을 세례주는 사람이, 당신을 물에서 꺼내주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면, 당신은 물세례를 받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대적이 우리를 물세례 주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는 우리를 물 속에 잠궈 둘 것이기 때문이죠
 
그럼 왜 여러분은 누가 여러분을 세례주는 것을 받습니까?
왜 여러분은 누가 당신을 물속에 밀어넣게 하십니까?
그가 당신을 들어올릴 것을 알기 때문이죠 이것이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
내가 기꺼이 죽으려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부활시키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활을 경험할 것입니다
내가 기꺼이 십자가를 지면요
십자가의 길로 가면요 만약 그런 믿음이 없다면
십자가의 길을 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으면, 성경은 말씀하기를
우리가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하셨죠  *딤후2:11
이제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가 사십니다 *갈2:20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신 것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십자가 죽음으로 가는 것을 주저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내 권리를 빼앗고 나를 모욕합니다
나는 기꺼이 죽으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린아이나 아담처럼 반응하기 원합니다
그 결과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나는 바울이 말한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으키시는 (부활의) 능력을
매일 체험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그분의 부활의 능력으로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십시오! 제게 있어서, 제가 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저는 엄청난 자유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제게 말씀하셨죠
아주 오래전 1963년도에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이네요  *2009년 경 설교  저는 예수님이 그 세례(죽음)의 길을 선택하신 예를 배웠어요
제가 성령의 (외적) 능력을 추구했을 때 주님은 제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살동안 이 (십자가 죽음) 길을 선택하는 동안에
내 능력이 네게 머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십자가의 길에서 떠나면
너는 내 능력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저는 발견했어요, 왜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들의 삶이나 사역 가운데서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지요 그들은 수년이 지나도 과거의 죄로 계속 영속적으로 패배하는데
왜냐면 그들은, 자기가 죽으면
하나님이 자기를 다시 일으키신다(부활을 뜻함)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이죠
 저는 여러분이 이 말씀을 믿도록 촉구합니다
'네가 그분과 함께 죽으면..' 딤후2:11절에 말씀하기를
'만약 우리가 그와 함께 죽으면 그와 함께 살리라' 이것은 약속입니다 딤후2:11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와 함께 죽지 않으면 또한 함께 살지 못할 것이요'
(이제 7번째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