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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2

우리는 계속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 잭 푸닌 8 of 16

LNCK 2012. 12. 6. 10:51

https://www.youtube.com/watch?v=ObG6zEsAXfw 

 

https://www.youtube.com/watch?v=Edi0rU4kPf8 

◈우리는 계속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엡5:18, 요7:37~38        영어 

 We must be continually filled with the Holy Spirit

 

Zac Poonen 목사님 설교 8 of 16

 

성령충만을 일생에 단 한 번 받는 것으로 만족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큰 실수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옛날에 한 번 받은 성령충만을 강조하면서,

신자들은 그렇게 성령충만을 체험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물론 성령충만을, 자기 생애에 최초로 한 번 받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번 받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한 번 받은 이후로, 계속 그 충만함을 받아야 하며,

계속 그 받은 충만을 유지해 나가야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령‘세례’라는 말도 성경에 나옵니다.

참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처럼 들립니다.

 

그렇게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유가, 우리는 baptism(세례)라는 말을

영어로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성령을 세례받듯이 이해한다고 볼 때, ‘성령세례’라는 말이,

우리에게 어감이 쉽게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세례’라는 말은, 헬라어로 ‘밥티조’인데,

2천년 전에 이 말은, 물속에 담근다. immerse 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제 손을 물속에 집어넣는 것.. 이것이 바로 ‘벱티조’란 말의 뜻입니다.

오늘날의 말로 하면 immerse입니다. 물속에 집어넣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물세례’란 말은, 물속에 완전히 집어넣어지는 것을 뜻하며,

‘성령세례’라는 말은, 성령 속에 완전히 내가 집어넣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이 내 속에 들어오시는 것이기 보다는, 내가 성령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게 그거 일수도 있는데..

 

전자인 경우, 즉 성령이 내 속으로 들어오시는 경우로 이해할 때,

한 번 들어오시는 성령이 계속 머무신다는 뉘앙스를 줍니다.

성령이 들어왔다 나갔다.. 수시로 들락날락 하시겠습니까?

 

후자인 경우, 마치 에스겔의 생수의 강처럼, 내가 성령속으로 집어넣어지는 것은,

내가 계속적인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 뉘앙스를 줍니다. 성령충만은 바로 이런 개념입니다.

 

물론 예수를 믿을 때, 그때부터 우리는 성령의 ‘내주’內住 가운데 살게 됩니다.

성령이 내 안에 사십니다.

 

그런데 성령의 충만이란, 내가 성령의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가져서,

완전히 잠겨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내주하시면서도, 성령충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편.

 

성령충만은 나이아가라 폭포 물을 맞는 것과 같다고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세차게 내려오는 폭포 아래서, 그 물을 내가 맞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성령의 충만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생명의 강으로서, 하늘의 성전에서 흘러나와,

그것이 이 세상으로 떨어지는 폭포와 같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내가 그 폭포가운데 서서, 그 성령의 생명수를 맞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성령 속에 내가 잠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속에 계속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 폭포나 강물을 빠져나와버리면,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가 1985년에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네, 그것은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바꾸어 말하면 ‘내가 1985년에, 내 차에 연료를 가득 채웠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그 후로, 계속 연료를 채우지 않았다면,

27년 전에 한 번 가득 채운 것은.. 지금은 무용지물입니다.

차는 오래전에 멈춰서서 지금까지 오래 동안 움직이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은 계속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에베소서 5장18절의 의미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 말의 동사는 be being filled, 계속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요7장 37절~ 39절을 보십시다.

거기에 보면 성령충만을 받기 위한 2가지 조건이 나옵니다.

하나는, 내가 목말라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이 성령의 충만을 주시는 분이심을, 우리가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령충만에 대한 갈급함이 없으면,

당연히 성령충만을 받을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단히 목마른 사람이, 지금 당장 성령의 생명수를 마시지 못하면 자기가 죽을 것 같은,

그런 상태가 된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전구(다마)는 전기가 들어와야 쓸모가 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전구는 무용지물입니다.

그래서 전구(다마)가 자기 구실을 하기 위해서, 전기를 간절히 구하듯이,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갈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16가지의 진리를 말씀드리고 있는 중이고,

그 중에 이미 7가지 진리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 설교를 들으셨다고, 내일부터 당장 뭐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들은 말씀으로, 정말 풍성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려면,

그렇게 살아내게 하는 파워(힘, 전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여러분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지 않으면,

들은 말씀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내게 될 것입니다.

이 들은 말씀을, 내 삶에 실제로 살아내게 하는 파워(힘, 전기)는,

오직 성령의 충만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여러분, 산상수훈을 한 번 심각하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을 읽고 나서, 어떤 분이 이렇게 제게 말했습니다.

‘잭 형제님, 이 산상수훈은, 지키기에 매우 어려운 말씀입니다.’

 

제가 그 분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키기에 불가능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지키기가 어렵고,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우리가 도전하고, 시도해봐야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완벽하게 지키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30년 동안, 한 번도 여인을 보고 정욕을 품은 적이 없습니까?

이웃에게 화를 내면 살인한 것이라 했는데, 지난 30년 동안 화 한 번 내지 않고

산상수훈을 그대로 지키며 사신 분이, 이 자리에 계십니까?

 

물론 예수님은 그렇게 사셨지만,

우리 인간으로서는, 그렇게 완벽하게 지키며 살기는, 불가능 합니다.

 

어떻게 사람의 영광을 하나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늘 구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인간이잖아요.

 

여러분이 주의 깊게 보시면, 산상수훈에 한 가지 빠진 것이 발견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가르침대로 다 지키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까?

성령충만의 파워가 아니고서는, 그대로 지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게 빠져 있습니다.

사람의 결심만으로는 안 되는 줄, 여러분 다 경험으로 아시잖아요.

 

여러분, 산상수훈은, 구약의 10계명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 성도의 삶의 표준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100점짜리 답안이요,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다 만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렇다고 빵점을 받아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표준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고, 사람이 원래 그만큼 타락되었다는 뜻입니다.

 

십계명을 자세히 보십시오.

사람이 9계명까지는 어느 정도 지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외적 행위로 보여 지는 것이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서라도, 9계명까지는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10번째 계명은 ‘탐내지 말라’인데, 이 탐심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네 이웃의 집이나, 아내나, 그 종들을 탐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라서, 남들이 내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구약의 사람들은, 10번째 계명을 어길 가능성이 아주 높았습니다.

저는 ‘탐심마저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봅니다.

 

저는, 하나님이 이렇게 ‘지킬 수 없는 10번째 계명’을 십계명에 포함시키신 것은,

사람들을 정직하게 하고, 겸손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이라고 봅니다.

‘주님, 저는 이 계명들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저는 제 힘으로 저를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백이 듣고 싶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의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한 고백과 똑같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그렇다고 계명을 다 폐기하고, 안 지켜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거기서 인간은 절망하게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기준을 다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무능함과 죄를 인정하고, 성령님을 간절히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여, 저는 이 죄에서 자유할 수 없습니다. 주여, 저를 도와주소서!

저는 제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되어서, 제 스스로 저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저는 불쌍한 죄인입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십계명이요, 산상수훈의 근본목적입니다.

 

물론 이 계명들을 지켜서, 신자가, 세상사람들보다

보다 더 존귀하고 고귀하게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계명을 지키다가, 스스로 좌절에 빠지면서,

우리는, 내가 불쌍한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의 구원을 간절히 구하게 되는

겸손한 상태가 비로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도, 이런 맥락에서, 저는 이해합니다.

그 겸손한 상태, 그 목마른 상태에서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간절히 간구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철저히 좌절하게 됩니다.

그런 목마른 상태에서,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갈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자기가 간절한 상태에서, 좌절한 상태에서,

성령의 충만을 간구하게 되고.. 그래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상보훈을, 십계명을 지킬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론에 관해서 신학적으로 논의가 분분합니다.

그 속으로, 여러분이 빠져서, 여러 이론으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여러분 각자가 성령의 충만을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성령 속으로 여러분 각자가 빠져 들어가서 immersed 되어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논쟁에 휩싸이지는 마십시오.

 

저는 강가를 거닐 때, 성령의 충만을 간구합니다.

강가의 나무와 풀이, 그 강의 수원을 공급받아서,

푸른 잎사귀를 내고, 꽃을 피우고, 과실을 맺는 것을 보면서,

‘주여, 저도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거하여, 푸른 잎사귀와 열매를 내게 하옵소서!

결코 제가 메마르지 않게 하소서!’

 

산상수훈을 읽을 때도,

‘주여, 제가 제 힘과 능력으로는, 이 말씀을 도저히 지킬 수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주셔서, 제가 주의 계명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만약 제가 산상수훈에 순종했다면, 그것은 오직 성령충만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이렇게 계속적인 성령충만을 받은 사람은,

자기 삶에 일어나는 죄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기름 부으실 때,

우리는 자기 사역을 감당할 힘과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설교 사역을 감당해 올 수 있었던 것도,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아니었다면, 그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내가 계속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1. 제 양심이 항상 깨끗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매우 센스티브하십니다. 민감하십니다.

그래서 양심이 깨닫는 작은 죄라도, 우리는 버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가 성령충만을 계속 유지합니다.

 

2. 성령의 충만을 계속 유지하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겸손한 자리로, 낮은 자리로 이끄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로 순종해서 내려가야 합니다.

 

여러분, 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성령의 생수의 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나를 높은 곳으로만 이끄시는 것은 아닙니다.

낮은 곳으로, 심지어 모욕을 당하는 자리로 이끄실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제 경험입니다. 항상 양심적으로 성령에 민감하고,

또한 낮은 곳으로 기꺼이 내려가는 겸손을 유지할 때,

성령의 충만을, 제가 계속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탄은,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로 하여금, 성령충만에 대해 신학적 논쟁에 빠지게 만듭니다.

성령의 실재에 대해서는 제쳐두게 하고, 극단적 몇 가지 이론에 대해서

서로 공격하고 논쟁하게 합니다. 그것은 잘못이고, 마귀의 미혹입니다.

그러지 마시고, 그냥 성경말씀대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십시오.

그 받은 충만을 유지하십시오. 엡5:18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 사역의 비결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도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으셔야 했다면,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나 충만함이 없이

어떻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영한 자막 원고 (보관용)>

◈우리는 계속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We must be continually filled with the Holy Spirit 
잭푸닌 Some Truth I Have learnt In 50 Years  8 of 16  이제 제가 (사역 50년 후에 깨달은) 8번째 진리는
우리는 “계속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인데요, 이 구절은 제 일생에 깨달은 또 다른 진리인데
성령충만은 한 번 받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빠지는 큰 잘못입니다
그들은 자기 생애에 어떤 특별한 때에 한 번
자기가 성령세례를 받았든지, 성령충만을 받았다고 말하는데요 
제가 믿기로 우리는 성령충만을 (한 번 받은 후에도)
"계속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발견했어요
‘세례 baptism’라는 말은 신비로운 단어입니다 
제가 책을 읽으며 그 단어를 연구해보니
‘세례’라는 말은 오늘날 영어에서 쓰는 의미의 ‘세례’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가 ‘신비로운 단어’라고 말하는 겁니다
영어 의미랑 좀 달라요, 그건 헬라어인데요
 
만약 여러분이 2천 년 전에 그리스에 살고 있었다면
누가 자기 손을 ‘벱타이징(밥티조)’ 한다고 말했을 때
그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을 거예요 
‘세례(밥티조)’라는 말은, 원래
자기 손이나 다른 어떤 것을
‘물속에 깊이 담그다’라는 뜻이거든요 
오늘날의 영어로는 ‘immerse 푹 담그다’입니다
이 말이 당시 ‘밥티조’(영어로 Baptism)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물세례’란 물속에 완전히 담그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물에 푹 담궈라(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세례(밥티조)를 설명하는 다른 방법은
예를 들어 여러분이 나이아가라 폭포 속에 서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거기서 완전히 푹 잠기게 될 거예요 
이것이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은 성경에서 강으로 묘사되었는데
그 물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와 땅으로 흘러가죠 
그 얼마나 위력적인 폭포수 같은 것입니까! 
그 폭포수 아래 제가 가서 서 있을 때
제가 성령세례를 받았다, 즉 성령 속에 푹 담궈졌다고 말하는 거죠 
그렇다면 제가 거기에 계속 머물러야 합니다
내가 거기서 빠져나오면 그럼 나는 더 이상
성령에 잠궈진 것이 아니죠, 성령충만도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과거 1985년도에 내가 성령으로 세례 받았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때 그랬을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그 말은
‘내가 1985년도에 내 차에 연료를 가득 주입했다‘는 말과 같죠
 
그때 당신은 정말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차는 왜 오늘날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는 성령충만을 받고 또 계속 받아야 합니다
그게 엡5:18절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의 원래 의미입니다 *현재진행형 '계속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의미이죠 
그래서 제가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계속적으로 성령으로 충만되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충만을 (계속) 받으십시오! 
요한복음 7장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충만의 조건을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요7:37~39절에 주님은 단 두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는데 
1 너희는 성령을 목말라 해야 한다
2 내가 너희를 위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그게 전부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목마르지 않으면
성령으로 충민케 되겠다는 절박한 목마름이 없으면
제가 말씀드리는데, 여러분은 성령충만 하지 못할 겁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오게 하라’
아주 절박하게 목마른 사람은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성령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저는 성령의 능력 없이는 정말 크리스천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전구가 ‘당신이 전기를 주지 않으면 저는 불을 못 밝힙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죠
‘제게 전기를 공급해 주세요 그럼 제가 불을 켤게요
그러나 전기가 없으면 저는 불을 못 밝혀요!’ 
그것은 이와 같은 것인데요, 
‘주님 저는 성령이 없이는 이런 삶을 살 수 없어요’
제 말은, 우리가 이 모든 진리들을 듣습니다
‘거룩은 예수님을 바라봄을 통해서 온다’, ‘십자가의 길’ 등
 
‘빛 가운데의 삶’
‘사람의 평가는 쓰레기 통에 넣기에 적합하다’ 등
(이렇게 많이 듣는데)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삶을 실제로 살 것인가요?
우리는 능력이 필요한데,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산상수훈에서 유의해 보셨나요?
여러분이 산상수훈, 마5~7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시면
다 읽은 후에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까? 
누가 제게 말한 것을 제가 기억합니다
‘잭 형제님, 산상수훈을 그대로 지켜 살기가 너무 어려워요’
제가 말했어요 ‘그건 어려운게 아니라, 불가능한 겁니다’ 
여러분이 산상수훈 대로 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저는 말합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여러분은 30년 동안에 여인을 보고 한 번도 음욕을 품지 않는게,
30년 동안 화를 한 번도 내지 않는게 불가능하게 보이죠
그렇지만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 사셨습니다 사람들의 영광을 결코 구하지 않는 것,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선을 행한 것을 사람들이 모르게 하는
 것 등은 우리에게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을 깨달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그 길은 좁다’고 하셨죠
산상수훈의 마지막 부분에서요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산상수훈을 읽고 무시해버리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여러분, 산상수훈에서 한 가지 빠진 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셨나요?
뭐가 빠졌나요? (*성령입니다) 
그 모든 말씀을 하신 후에
주님은 우리가 그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를
(즉 성령충만을)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주님은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왜냐면... 산상수훈을 주신 목적은 십계명과 마찬가지인데
우리를 어떤 상황으로 데려가서
하나님이 우리의 정직성을 테스트 하시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는 정직성)
 
산상수훈에 10계명이 나오는 것을 아시죠?
예를 들면, 사람들은 1~9계명은 지킬 수 있어요
그러나 10번째 계명에 닥치면 아무도 그걸 지킬 수 없어요
왜냐면 모든 9가지 계명들은 외면적 행동이거든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우상숭배하지 말라, 법정에서 거짓증언 하지 말라
안식일을 지켜라 등 모두 외적 행위입니다 
그러나 10번째 계명은 다르죠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딸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어떤 것도 탐내지 말라’
누가 그것을 (마음으로, 내면적으로) 지킬 수 있겠어요? 아무도 없죠! 
그럼 왜 주님은 10번째 계명을 맨 끝에 두셨나요?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직하게 말하는 것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죠
‘주님, 저는 이것을 도저히 지킬 수 없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러면 (겸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계속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말씀한 것이에요 바울이 10번째 계명에 이르자 말하기를
‘나는 지킬 수 없다 내가 내 마음에 있는 온갖 종류의 탐심과
 갈등하며 싸워보았다’ (그래도 안 되더라)
그래서 그가 고백하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자유케 할까?’
 그때 주님은 그에게 길을 열어서 자유케 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건 성령의 법입니다)
 
산상수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산상수훈을 아무렇게나 읽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매 구절을 주의 깊게 지키려 하면, 
만약 그렇게 해 보지 않았다면, 꼭 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구절마다 여쭈어 보십시오
‘주님, 제가 이 구절을 지키고 있나요?
제가 이 구절을 지키고 있나요?’ 
산상수훈은 여러분이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니’
그런데 제가 지키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결국 그런 절박한 때를 만납니다 그때 여러분은 탄식할 거예요
‘주여, 제가 어떻게 해야 되죠? 저는 이것들을 아무것도 못 지키겠어요
제가 당신의 계명들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나요?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성령의) 결핍에 대한 제 목마름을 보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능력의 결핍이죠 이제 당신에게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입니다
당신이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악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늘 아버지께서 성령을 구하는 자에게 얼마나 더 잘 주실까요!
 저는 여기 앉으신 모든 분들에게 묻습니다
(성령에 대한) 신학적 토론에 너무 빠지지 마십시오 
침례교나 오순절파는 성령세례에 대한 너무 극단적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너무 몰 인정 – 너무 과 인정)
그런 토론에 너무 빠져들지 마십시오 대신에 여러분 스스로 질문해 보세요
생수의 강이 내 속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나요?
'내 속에서 안 흐르고 있네!'
'강물이 신선하지 않네!' (설교자가 회중의 마음 대변) 여러분 강둑을 보신 적이 있죠? 항상 초록색입니다 
제가 기도합니다 ‘주님 제 삶은 이와 같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저는 메말라 있습니다’ *회중의 말 대변
그때 우리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한 것을 보게 되는 것이죠 ‘제가 산상수훈을 읽습니다
그런데 제가 도저히 지킬 수가 없어요’
그때는 기도하게 되죠 ‘주님, 제 삶에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수년 동안 저는 주님께서 제게 성령의 능력을 주실 줄 믿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믿게 되는 날이 왔고,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죠
‘주님 당신께서 제게 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제가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한 후에 성령은, 
제가 삶에서 죄를 극복하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또한 우리를 기름부어 사역을 해나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무슨 사역으로 부르시든지
저는 제 설교사역이 성령충만함으로 고양되었다고 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에 의해서요 그리고 성령충만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제가 꼭 깨끗한 양심을 유지해야 함을 깨달았어요 하나님의 성령은 매우 민감하십니다
여러분이 양심에 찔림을 조금이라도 느끼면
그건 발에 작은 가시가 박힌 것과 같아요 (고통스럽죠) 그 양심의 찔림을 즉시 제거하십시오
그래야 성령충만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유지하려면) 두 번째로 스스로 겸손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디로 데려가시든지 그곳에서 겸손해지세요
낮은 자리로 가십시오 이것이 제가 수년을 지나오면서 깨달은 것입니다
만약 내가 양심의 청결을 유지하고
하나님이 어떤 경우에 나를 낮추실 때 (비난 받을 때 등)
내가 기꺼이 스스로 낮아지면, 제가 성령충만을 유지할 수 있음을 발견했죠 물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잖아요
만약 제가 스스로 낮추면, 성경이 말씀하기를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성령은 생수의 강과 같아서 우리가 낮아질 때 거기로 흐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가 살기 원하시는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성령으로 계속적으로 충만해지는 삶이죠
이것이 (크리스천 삶의) 답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성령충만은 못 받게 하고)
괜히 크리스천들을 성령론에 대해 양극단에 빠지게 하고
신학적으로 논쟁만 하도록 역사했습니다 답은 (성령론) 신학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답은 성령에 대해 목마름을 가지는 것과,
또한 내가 신약성경이 살라고 촉구하는 크리스천의 삶을
내가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는데 있죠 답은 (계명을 지키려고) 더 많이 갈등하는데 있지 않고,
더 많이 결심하고, 결단하는데도 있지 않고,
하나님께 성령의 능력을 구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성령충만)이 제 삶을 바꾼 것을 제가 압니다
예수님도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셨어요  *요단강 수세 때
그것이 예수님의 삶의 비결이었습니다
주님이 그것을 필요로 하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필요하겠습니까?  기도합시다 하나님 앞에 머리 숙여서 그분을 찾읍시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분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좋은 것(성령)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가 받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라’ 하셨죠 
주님께 성령님을 구합시다
주님, 저는 당신이 우리를 그렇게 살라고 하셨던
그런 크리스천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저를 도와주셔서 예수님을 더욱 명확히 보게 하소서 저를 도우사 당신은 제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을 갖게 하소서 저를 당신의 성령으로 채우소서
제가 주님을 신뢰합니다
제 모든 소원과 계획과 야망을 제단 앞에 내려놓고 항복합니다
제가 주님을 전적으로 기쁘시게 하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