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8kxAGhxcXJ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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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지 말라 갈1:10, 사2:22, 고전4:5 영어
This World's Opinion of Us is All Fit for the Trash Can
Zac Poonen 7 of 16
7번째로, 제가 제 인생여정에 큰 도움을 받았던 내용은
‘이 세상 사람들의 평가는, 휴지통에 들어가기에 적합하다.’입니다.
이렇게 확신하고 나서, 저는 스스로 많은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나에 대한, 어떤 사람의 평가나 견해에 의해, 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 것에 신경이 쓰이고, 내가 흔들린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을 잘 따를 수 없습니다.
과연 나에 대한 그의 평가가, 정확할까요? 그가 나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을까요?
아마 다른 이유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이유로, 나에게 화가 났다든지,
아니면 나에게 어떤 분야에서 질투심이 있기 때문에, 나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 비난과 평가가 결코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 사람들의 비난과 혹독한 평가는, 쓰레기통에 들어가기에 적합한 것들입니다.
반대로 나에 대한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정의롭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뭔가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에게 이롭기 때문에, 호평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평가가 아니라면, 제게 대한 사람들의 모든 평가에 대해서는
그것이 긍정적인 평가든, 부정적인 평가든..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겠습니다.
백배 양보해서, 혹시 사도바울 같은 분의 평가라면.. 제가 좀 유념하겠습니다.
그러나 미성숙한 사람의 평가라면.. 제가 거기에 마구 흔들리는 것은, 제가 미숙한 반응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십시다.
만약 1만 명의 사람들이 ‘당신은 천사입니다!’라고 말했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정말 당신이 천사가 되는 건가요? 아니요, 당신은 사람입니다.
만약 1만 명의 신자들이 ‘당신은 거룩한 사람입니다!’ 라고 평가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보통 신자인 당신이, 정말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당신의 본 모습 reality는, 사람들의 평가에 의해서, 결코 달라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1만 명의 사람들이 ‘당신은 마귀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정말 당신이 마귀가 되는 것인가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그렇게 다른 사람의 평가 때문에, 마구 흔들리는 것일까요?
왜 신자들은, 다른 사람의 혹평에 대해, 평정심을 잃어버리고 안절부절 하는 것일까요?
진짜 성숙한 성도는 이렇게 반응한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은 이러 이러한 나쁜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는 ‘감사합니다. 실제로 저는 그 보다 더 나쁜 사람인데, 저를 좋게 봐 주셨네요!’ 하하하
▲사람들은 무릎 꿇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저는 정말 비참한 죄인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사람들이 자기를 겨냥해서
‘저 사람은 비참한 죄인이야!’ 라고 수군거리면, 그는 참지 못합니다.
뭐가 잘못된 것입니까?
자기가 기도할 때, ‘주여, 저는 비참한 죄인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그저 방송용 멘트와 같은 것입니다. 그냥 기도할 때 말하는 경건한 미사여구였지요.
자기가 실제로 기도할 때, 비참한 죄인인줄 절실히 느꼈다면, 예. 우리는 그렇게 느껴야 합니다.
실제 삶에서 남이 자기에게 ‘당신은 비참한 죄인이야!’라고 비난해도, 분노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남들의 나에 대한 의견은, 쓰레기통에 들어가기에나 적합하다’
다른 용도로는 쓸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언뜻 들으면, 여러분이 동의하기 힘드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들의 나에 대한 평가가, 가끔은 정확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제가 이런 명제를 만들어서, 설교하는가 하면, 그것이 성경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최후의 심판대 앞을 상상해 보십시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나가서, 심판을 받습니다.
그때는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아무 짝에도 소용없습니다. 정말 쓰레기통에 들어가기에나 적합합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서, 나를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로 사람들은, 우리의 외모나 외적 행동을 보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외적 행위를 보시기 이전에,
우리 마음 속 중심을 보고 평가하십니다. 최후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 주님의 심판과 평가가 정확하지,
우리의 외적 행위를 보고 평가하는 사람들의 평가는.. 정확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쓰레기통에 들어가기에 적합합니다.
지금부터 현실에서 우리는,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리허설을 해야.. 실제 공연을 잘 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렇게 합니다. 지금부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제가 서는 리허설을 합니다.
그때 제가, ‘예수님, 제게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이러합니다’라고 들고 나올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나의 중심과 내면과 동기를 꿰뚫어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의 평가를, 그것이 호평이든지 혹평이든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립니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리허설을 해 보면, 그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여러분, 우리가 선한 동기로 일을 행해도, 오해되어지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마 그 반대로, 어떤 나쁜 동기로 일을 행해도, 선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오해할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결코 그런 실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했는데, 그 말의 뜻은, 언제나 우리 행동의 근거에 있는
그 근본 동기, 의도, 양심을 보신다는 뜻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판단과 심판은, 언제나 인내하시고, 우리를 기다려주십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영원히 기다려주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늘 두려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는 이사야2장22절을 읽고서, ‘사람의 평가’ 문제를 나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Stop regarding man, whose breath of life is in his nostrils;
For why should he be esteemed? NASB
저는 약 23살 때부터, 설교를 시작했는데,
그 나이 때 다 그렇듯이, 설교를 하고 나면, 덜덜 떨리는 것입니다.
제 설교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 무척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물론 설교자로서 제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남의 평가에 대해 무척 신경을 쓰는 제 삶’이,
저를 자유하지 못하게 했고, 저를 속박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루는, 이사야2장22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 대해 너무 크게 신경쓰지 말라.
그들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사람은, 코로 숨을 쉬는 동안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코의 숨을 거두어가 버리시면, 그는 흙먼지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사람이 숨이 멈추면, 결국은 흙먼지로 돌아가잖아요.
그러므로 그때 제가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내가 설교하고 있는 동안, 지금 내 앞에 결국은 먼지로 변할 사람들이 앉아 있다.’ 하하하
그들을 비하할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은 원래 흙으로부터 왔고, 결국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을 너무 대단한 존재로 여겨서, 내가 주눅들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오직 내가 신경을 쓸 분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이 청중석에 앉으셔서, 제 설교를 듣고 계시며,
저는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예수님 앞에서 설교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제 설교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거의 자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설교에 대해, 평가하실 분은, 오직 주님이시고,
주님의 평가가 또한 정확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칭찬이든지 혹평이든지, 그것은 정확하지도 않고,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 자체가, 흙먼지에 불과합니다. 너무 깊이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제가 그런 자세로 수년 동안 지내다 보니,
즉, 사람의 평가에 대해서 일절 신경을 끄고, 오직 주님의 평가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그것이 이제 제 삶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정말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합니다.
저는 주님을 감동시키고 싶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처음에는, 설교 분야에 대해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제 삶의 모든 분야에 대해서, 이런 신앙습관이 들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뭐라든, 사람의 평가에 대해서는, 제가 좌지우지 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저를 평가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니,
저는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후한 평가를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뿐만 아니라, 기도를 드릴 때도, 저는 점점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대표로 기도할 때도 있고,
또한 5명, 10명이 모여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기도할 때, 자연히 남의 기도를 듣게 됩니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데 저는 그게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겁니다.
제 기도를 남들이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제가 부자연스러워 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꾸 남들이 감동을 받을만한 기도를 하려고, 제가 오버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제 순서가 돌아와서 제가 기도할 때,
사람들이 ‘아멘, 할렐루야’로 추임새를 넣어주면, 제가 막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개인기도하며 생각해 봅니다.
‘주님, 제가 기도회에 참석하고 왔는데, 제가 주님께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사람들이 듣도록, 외식적으로 기도드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는, 당시에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기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기도회는, 아예 응답이 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고 난 후에, 내가 뭘 기도했는지 생각이 나지도 않습니다.
너무 듣는 사람에게 신경을 쓰느라, 제 정신이 혼미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회개 기도하면서, 또한 스스로 훈련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돌아가면서 기도할 때도,
마치 제가 집에서 무릎 꿇고 혼자 기도하는 것처럼,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주위 사람을 신경 끄고, 오직 하나님과 나만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만 주목하며 기도하는 ‘훈련’과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훈련과 영적 전투는, 제게 수년이나 걸렸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중기도를 할 때도,
사람들이 내 기도에 감동을 받든지, 안 받든지.. 그런 반응에서 완전히 자유하여
온전히 하나님과 저만 독대하는 기도를 드리는 수준으로 올라가기까지,
그렇게 되는데, 수년이나 걸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디 설교나 기도뿐이겠습니까?
교회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신경을 씁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행합니다.
그러니까 자유하지 못하고, 하나님께도 영광이 안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되니까, 사람들에게도 은혜가 안 됩니다. 그걸 외식 hypocrisy 이라고 합니다.
그 외식은, 마치 우리 자신을 얽어매는 무거운 쇠사슬과 같습니다.
우리 자신을 부자연스럽게 합니다.
우리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늘 그 자리에 맴돌도록 합니다.
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것’, ‘사람의 평가를 의식하는 것’을
우리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사람에게 신경을 씁니까?
하나님께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교, 기도, 봉사 무엇을 하든지, 진정으로 하나님께 신경을 쓰는 사람은,
사람의 평가에 자유하고, 사람의 평가에 관계없이,
그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깁니다.
제가 ‘사람의 평가를 쓰레기통에 던지라’는 뜻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우리에게 마치 얽어매는 쇠사슬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 대해 완전한 계획을 갖고 계시는데,
신자들이 거기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라는 쇠사슬에 칭칭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이사야2장22절을 암송해 보십시오.
그들을 흙먼지로 여기십시오. 수에 칠 가치가 없습니다.
가치가 없는 것인데, 내가 너무 가치 있게 받아들이고 있으면, 나만 손해인 것입니다.
▲또한 저는,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수세를 받으실 때,
하나님이 예수님을 평가하셨던 부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아니, 예수님이 30년을 사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하고,
하나님이 ‘내 기뻐하는 자라’고 칭찬하실 만큼, 무슨 거창한 일을 많이 하셨다는 것입니까?
귀신을 쫓아내거나, 병을 고치시거나, 설교를 했다거나.. 그런 행적이 없으셨습니다.
그저 목수 요셉의 아들로서, 만약 일을 했다면, 목수 일에나 충실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이 기쁘시게 여기시는 것만 행하노라’
요8장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처럼,
내가 철저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행하리라’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사람을 의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되기까지 올라가도록, 기도하는데 10년이나 걸린다면,
우리는 10년을 계속 기도해서라도, 그 수준에 도달해야 합니다.
저는 실제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10년이 걸려서라도, 저는 그 수준에 도달하기 원합니다..’
내가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행하는 수준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신경을 쓰지 않는 수준.. 말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며 발버둥 치던 중 어느 날 보니,
제가,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10년이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건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중도에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남이 나를 칭송하더라도.. 거기에 도취되지 않고,
남이 나를 비난하더라도..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 상태.. 여러분도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비난보다 더 상대하기 어려운 것이 찬사입니다.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면 있습니다.
그런데 칭찬과 찬사와 아부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은,
정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수들은 비난에 넘어지지만,
고수들은 칭송에 넘어집니다. 그만 꽈당 하고 넘어져서, 교만하게 행하다가, 주님께 괄시를 받습니다.
저는 갈1장10절을 읽을 때마다, 잠시 쉬면서, 다짐하고 지나갑니다.
저는 참으로 하나님의 진실한 종이 되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장10
이게 불편한 진실일수도 있습니다만,
제가 인도에서 살면서, 젊어서부터 가만히 살펴보니
정말 진실하고, 주님의 성령의 권세가 그와 함께 머무르며,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참되게 행하는 주의 종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갈등을 개인적으로 하는 중에,
‘나는 정말 진실하고, 권세와 능력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참된 주님의 종이 되리라’ 라고 결심하고,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의 종들이,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입니다.
칭찬이든지, 비난이든지..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유롭게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각고의 경건의 훈련 끝에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진리라고 봅니다.
저보다 젊은 여러분들은, 정말 하나님의 참 종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에 좌지우지 되거나, 그것에 흔들리는 동안,
당신은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처럼, 결코 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젊어서부터, 저 자신을, 그 분야에서 훈련해 왔습니다...
갈1장10절을 암송하면서요...
저는 이 구절을, 나무판에 써서, 우리 집 현관 입구에 걸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집을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기도하며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그 나무판을 쳐다보았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10
그래서 제가 설교 할 때도,
마치 예수님이 제 앞에 앉으셔서 듣고 계신 것처럼 설교하지,
결코 듣는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설교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인생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신다면,
정말 자유로운 사역자요, 신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에 합당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결국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터인데,
‘남들의 평가, 남들의 시선, 남들의 칭찬, 남들의 비난’
우리가 이런 것들에 의해서, 평가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심판대에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
사람들의 추천서, 사람들의 평가서를.. 일절 고려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의 근본 중심, 마음 동기를 뚫어보시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이며 정확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평가,
또한 마지막 심판 때에도, 전혀 채택되지도 않을 사람들의 평가에..
우리가 신경을 쓰고 산다면.. 그거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을 쓰고 살면서,
하나님의 평가를 무시하면서 살았다면,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엄중하게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너 외식하는 자여!’
여러분, 그렇게 외형적으로 율법을 잘 지켰던 바리새인들을
예수님이 극도로 싫어하시고, 저주까지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들의 <외식>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을 쓰면서 사는 것이, 그만큼 무서운 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각자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연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연습하는 사람이, 나중에 실제로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제 이름을 부르십니다. ‘잭 푸닌’
그러면 제가 나가서, 그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심판은 단체로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 받습니다.)
주님은 제 일생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 저는 철저히 깨달을 것입니다.
‘제게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정말 완전히 헛거무, 물거품이었구나!’
그게 칭찬과 찬사이든지,
그게 비난과 화살이든지,
주님은 그 평가에 의해서, 저를 판단하지 않으시고,
제 양심까지 꿰뚫어 보시는, 주님의 불꽃같은 눈으로써, 저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가, 사람들의 평가에, 그렇게 신경을 써야할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 사람들의 평가들은, 쓰레기통에 들어가기에나 합당한 것들입니다.
그것은 정확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저를 혼동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들의 평가는,
저를 낙심하고 좌절하게 하거나, 저를 교만하여 넘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외식하게 만듭니다. 그건 큰 악입니다.
여러분도 입사시험 치기 전에, 면접시험 인터뷰 하는 것을 연습하지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을, 리허설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사람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네, 그가 만약 사도바울 같은, 아주 수준 높은 하나님의 종이라면,
우리가 그의 평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니까요.
그렇게 예수님을 친밀하게 닮은 사람이, 여러분의 주변에 있거든, 그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나 그런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면,
사람의 평가에 연련하지 마시고, 그런 모든 외식을 다 버리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아주 오랜 시간의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모두 다 복음으로 자유롭게 살면서, 주님을 섬기시게 되시고,
마지막 심판대에서, 주님께 귀하게 칭찬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아래는 영한 자막 원고 (보관용) ................
◈나에 대한 세상의 의견은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들이다
This world’s opinion of us is all fit for the trash can
잭 푸닌 7 of 16
제가 (사역 50년 후에) 배운 7번째 진리는
이 진리 역시 저를 자유하게 했는데, 그것은
"나에 대한 세상의 의견은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들이다" 입니다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의 당신에 대한 의견은
쓰레기통에 들어가기에 적당한 것들입니다
만약 당신에 대한 누구의 평가가 당신을 갈등하게 한다면
당신은 결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그 사람이 당신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까요? (모르죠)
그런데도 그가 당신을 비난하는 것은
아마 그가 화나 났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가 (당신을) 질투하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이유들이 있겠죠
그러나 그들의 의견들은 모두 쓰레기통에 들어가기에 적당한 것들입니다
같은 원리로 누가 당신을 칭송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쓰레기통에 버리기에 적합하죠) 예를 들면, 만약 1만 명이 당신을 천사로 부른다면
당신이 진짜 천사입니까? 아닙니다 만약 1만 명이 당신을 '거룩한 자'라고 말했다면
당신은 거룩한 자가 되는 겁니까? 아니죠
우리는 그걸 압니다
만약 1만 명이 당신을 마귀라고 부른다면
당신이 정말 마귀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의견들이 우리를
그렇게 많이 흔들리게 합니까?
우리가 누가 내게 대해 나쁘게 말했다는 것을 들을 때 괴로워합니다 저는 어떤 성자가 한 말을 기억합니다
‘그들이 나에 대해 정말 진실을 안다면
그들이 내게 대해 말한 것보다 더 나쁘게 말했을 것입니다’
맞는 말이지요? 많은 경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서 기도하기를
‘하나님, 저는 정말 비참한 죄인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그가 ‘누가 자기를 비참한 죄인’이라 말한 것을 들으면
그는 정말 괴로워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경건한 단어를 쓰면서 기도할지라도
정말 자기가 비참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거죠 우리는 누가 우리를 그와 같이 언급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들은 쓰레기통에 버리기에 적당합니다
왜냐면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
우리 속 내면을 보시고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내 속을 모르죠)
왜냐면 성경 고전4:5절은 말씀하기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오시면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시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우리 모두는, 우리가 선한 동기로 무슨 일을 했는데
오해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당신은 선한 동기로 말했는데
남편에게, 아내에게, 이웃에게, 형제 자매에게, 또는 누구에게
오해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런, 왜 그들은 나를 의심하는 거지?
나는 결코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 라고 하죠
하나님은 사람이 당신을 판단하는 것처럼 판단하지 않으시죠
그분은 말씀하시길 ‘나는 사람의 의도를 보느니라’
그리고 하나님의 판단은 언제나 매우 친절하십니다
이사야서 2장에서 제가 도움 받았던 구절을 말씀드릴게요
저는 23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기 시작했는데요
제가 다른 젊은이들처럼 당시 저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무척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에게 (설교로) 인상을 심어주기 원했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저는 대중적인 연설가가 아니었어요
저는 학교 다닐 때나 대학에서도 그런 경쟁에 참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사람들 앞에 설 때 불편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다른 젊은 설교자들처럼 강한 열망이 제게 있었는데
사람들 앞에 설교를 잘 하는 것이었죠
그것이 제 속에 있었고, 저를 자유롭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이사야 2:22절을 보게 되었는데
이 구절이 여러분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저를 자유케 하는 구절이 되었습니다 이사야2:22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길
'너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라.
그들의 생명은 코의 숨에 있나니 크게 고려할 가치가 있겠느냐?' 이 구절이 얼마나 저를 자유하게 했는지요
이 구절을 통해 주님은 제게 말씀하셨어요
‘모든 사람은 코로 숨쉬는 동안만 사는 것이니라’ '내가 그 숨을 거두는 순간에는
그는 흙먼지가 될 것이다 그는 흙먼지 이니라!' 우리도 그 사실을 압니다
사람의 숨이 거두어지면, 얼마의 시간만 지나면
그는 흙먼지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이 제게 말씀하신 것은
‘네가 사람들 앞에서 설교할 때
네 앞에 흙먼지 더미들이 있다고 상상해라’
그들이 숨이 코에 붙어있을 동안에는
움직이고 말도 하고 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흙에 불과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도 여러 색깔의 흙더미들이 앉아 있는 겁니다
제가 말씀드리는데 그 말씀이 저를 자유하게 했습니다
제가 말했죠 ‘주님, 그들의 전부는 그것(흙) 뿐입니다’
제가 정말 두려워해야 될까요?
그들은 코에 짧은 숨이 붙어있는 자들인데요
그리고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리자로 여기 서서
그들에게 설교하고 있는데...
제게 대한 하나님의 의견만 문제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 사실이 저를 아주 자유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수년이 지나서 제가 발견한 건데
이것은 다른 것과 같지 않고 수영을 배우는 것과 같아요
이것은 배우는데 시간이 걸리고, 어느 정도 지나야 습관이 됩니다 제가 기도했죠
'주님 저는 정말 당신을 기쁘시게 하기 원합니다
주님께 깊은 인상을 끼치기 원합니다 사람이 아니라요 이것은 다른 영역에서도 적용됩니다
‘주님, 제 삶에서 제가 정말 주님만 신경쓰기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삶에 감동을 받든/ 말든
저는 주님 앞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제 기억에 제가 대표기도 할 때였어요
대표기도할 기회가 많지요
5~10명 모인 기도모임이나 교회 예배 때죠 제가 기도하는데
제 기도를 듣는 사람들이 너무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제가 사람들에게 인상을 심어주려고 기도하는 거예요
기도중에 사람들이 아멘, 할렐루야로 반응하면
제가 기분이 좋아지는 거예요 우리 모두는 비슷하리라 봅니다 제가 집에 와서 기도했어요
‘주님 저는 당신께 전혀 기도하지 않았어요
그 기도는 외식적이었어요
제가 모든 사람에게 인상을 심어주려 했거든요’ 이것이 기도모임 때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했지만 응답이 안 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죠
나도 기도응답을 기대하지 않고 기도하죠
심지어는 내가 뭘 기도했는지도 곧 잊어버립니다
나보고 대표로 기도 하라고 하니까 그저 기도한 것 뿐입니다 우리가 모두 그렇게 대표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집에 돌아가서 스스로 판단해 보면
이것 (사람 의식 기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대표기도를 50년 넘게 했을 수도 있어요
저는 종종 집으로 돌아가서 기도했죠
‘주님, 제가 이런 잘못을 깨고 벗어나 자유하기 원합니다’ 제가 대표기도 할 때
제가 집에서 혼자 침대 곁에서 무릎꿇고 기도할 때나
다른 곳에서 혼자 기도하는 것과 똑같이.. 그렇게 기도하기 원합니다 그때는 아무 사람도 내 기도를 듣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나 뿐이죠
제가 공중 앞에서 기도할 때도 그런 식으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그러나 그건 수년 동안 제게 전쟁, 전쟁, 전쟁이었어요
제가 공중 앞에서 기도할 때
그들이 내 기도를 듣든지/안 듣든지 신경쓰지 않고
누가 내 기도를 듣는지/누가 안듣는지도 신경쓰지 않고
사람들이 내 기도에 감동되든지/안 되든지 신경쓰지 않게 되기까지요
왜냐면 저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잖아요
제가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게 아니었거든요
대표기도는 사실 작은 영역입니다
여러분이 정직하다면, 여러분의 거룩한 활동에 (주님이 아니라)
얼마나 사람들에게 인상을 심어주려고 하는 일들이 많은지요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 할 때
그것은 당신을 잡아매는 쇠사슬과 같아요
여러분이 거기서 벗어나려고 해도 아무런 진전(영적 성장)이 없어요
똑같은 지점을 맴돌게 되지요
왜냐면 그 쇠사슬이 당신을 잡아당기기 때문이죠
우리는 그걸 끊어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의 의견은 쓰레기통에나 들어가기에 적당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 사람이 내 기도에 감동을 받지 않는게 뭐가 문제가 되겠어요?
나는 어쨌거나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거잖아요
내가 사람에게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그저 한 분야죠 다른 분야도 있어요
저는 늘 설교를 합니다 제가 설교를 해왔는데 45년 이상 늘 그렇게 돌와봤죠
제가 집으로 돌아가서 스스로 물어봅니다
‘주님 제가 설교한 말들 중에 사람들을 (말씀으로) 도우지 못하고
그저 그들에게 감동만 주려고 했는 것이 있었는지요?
(있었다면) 제가 스스로 정결케 되기 원합니다’
내가 사람들의 의견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길은
내가 정직하게 하나님께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 상황에서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했다고요
당신이 그것을 사람들에게 감명주기 위해서 했다고 고백하십시오
‘주님, 이제 저는 당신만 신경쓰기 원합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이런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자유케 될 때
이제 더 이상 그게 나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쇠사슬과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데 그 쇠사슬은 대부분 신자들을 뒷걸음질 치도록
끌고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그들이 이루지 못하게 하죠
여러분은 아마도 깨닫지 못합니다
당신의 크리스천의 삶이 얼마나 많이 방해받고 있는지요
왜냐면 ‘당신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말하나,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에 너무 많이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성경이 말씀한 것을 이해하셔야 됩니다
‘사람들에게 신경쓰지 마라, 그의 숨은 코에 있을 뿐이다
왜 너는 그의 평가에 괴로워하느냐?’ 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것(사람의 평가)을,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비교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제가 그를 기뻐하노라’ 그럼 예수님이 (수세 받기 전) 30년 동안
아버지를 기쁘시게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지도 않았어요
귀신을 쫓아내지도 않으셨어요 예수님은 설교를 하지도 않으셨어요
병든 사람을 고치지도 않으셨어요 (그 30년 동안)
예수님은 우리가 사역이라고 부르는 일을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분이 하신 일은 그저 마리아와 요셉에게 집에서 순종하신 일이었죠
예수님의 4명의 형제자매들에게 친절하셨고
아마도 목공소에서 의자나 탁자나 벤치를 잘 만드는 일에
헌신하셨을 거예요 아버지는 그분을 기뻐하셨는데 무슨 이유로요?
우리는 생각하기를, 예수님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으로서
여기 저기 다니시며 설교하시고,
그런 주님을 아버지는 기뻐하셨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증명하셨죠
왜냐면 (공생애 전) 30년을 보면,
예수님은 세계를 여행하지 않으셨고 그저 나사렛에서만 늘 사셨어요
그 기간동안 예수님은 그저 보통의 간단한 목수 일을 하셨고
결코 설교를 하신다거나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어요
그게 어떻게 아버지를 기쁘시게 했을까요?
예수님이 그 30년 동안 행하신 모든 일은
오직 아버지의 인정만 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죠
‘저는 오직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려 합니다’ 요8:29
이 예수님을 여러분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세요
‘주님 그 일을 하는데 10년이 걸리더라도..’
저도 그렇게 기도합니다 ‘주님이 그 일이 10년이 걸리더라도
제가 가겠습니다’ (*남의 평가에 신경 안 쓰는 일)
여러분이 이 설교를 듣고, ‘그래 내일부터 쭈욱 나는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 신경쓰지 않겠다’고 하겠지만
이게 하루 만에 없어지는게 아닙니다
거기에 도달하려면 10년이 걸릴수도 있지만
제 말은 포기하지 말라는 겁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누군가의 평가에 의해 흔들리는 존재임을
스스로 발견했다면
즉 누가 말한 것에 대해 여러분이 시험에 들거나,
누군가의 칭찬에 의해 여러분이 우쭐해 진다면
제 기억에 주님이 제게 말씀하시길
‘나는, 사람들이 너를 비난해도, 네 가슴에 퍼득거림 (새의 날개짓)
조차 생기지 않는 곳으로 너를 데려가고 싶다
네 마음에 깃털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 곳으로!’ '그리고 이건 좀 더 어려운 건데
사람들의 칭송이 네 마음에 깃털 하나 움직이지 못하기를...' '그러면 너는 정말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갈1:10절 때문입니다 저는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 종이 되고자하는
강력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제가 세상의 교회들을 둘러보니까
제가 젊었을 때입니다 제가 보니까 거의 없었어요.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우러러볼만한 사람이 거의 아무도 없었어요
‘여기 참 그리스도의 종이 있다, 참으로 겸손하고 경건한 사람이야
기름부음 받았고 성령의 능력이 있어’ 라고 할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제 생각에 지금도 대부분 지역에서 그럴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 스스로 그리스도의 종이 되고자 하는
강력한 소원이 있었어요 제가 청년으로서요
그때 제가 갈1:10절을 읽었는데 그 후반절에 이렇게 씌여있어요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한다면 나는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래서 제가 작은 나무 판에다 그 구절을 썼죠
그 나무판을 우리 집 입구에 수년 동안 걸어놓고
그 구절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했죠
‘만약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한다면, 나는 절대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다’
그 구절이 제 마음을 반복 훈련시켰어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 원하십니까?
결코 사람을 기쁘게 하기를 구하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만 기쁘시게 하기를 구하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늘 의식하십시오
저는 종종 생각하기를 제가 설교할 때 예수님이
맨 앞 자리에 앉아 계셔서 듣고 계신다고 여깁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저기 앉아계시는 것처럼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면 저는 여러분들이 제 설교에 대해 생각(평가)하는 것에
신경쓰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에 예수님이 저를 쳐다보시는 것에 신경쓸 것입니다 제가 설교할 때!
제가 전에도 말했죠 우리는 말하기를 ‘주님, 맞습니다
주님이 여기 계십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도
내가 너희 가운데 있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함께 계심을 진짜 인식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사람을 신경쓰는 것을 깨뜨리고 자유해야 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이것(최후 심판대)이
사람의 평가는 하나님께 아무 것도 아님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중요한 한 분야라고 생각되는데요 제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
‘너는 잭푸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묻지 않으실 겁니다 No!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평가를 필요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제 평가에 대해) 다른 사람의 의견이 필요 없습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종종 (미래 심판대의) 제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에 모든 추한 일들을 상상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그 상상력을 이제 선하게 사용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가끔씩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그분의 심판대가 세워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곤 했습니다 그 심판의 보좌 앞에
사람들이 한 사람씩 불려나가서 서게 되는데
제 이름도 불려지고 제가 그 분 앞에 섭니다 그 분이 제 일생을 심판하실 것을 제가 상상해 봅니다
그때 좋고 나쁜 사람들의 제게 대한 모든 평가는
아무 가치가 없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면 그분은 제 일생을 깊이 꿰뚫어 보시거든요 그럼 제가 이것을 지금 연습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지금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도 리허설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그런 것들을 (연습) 하잖아요
이것은 제일 중요한 것이며 우리가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설 때 반드시 일어날 일입니다
그래서 연습하는 것이
특히 사람의 평가로부터 내가 자유롭게 되는 일에 도움을 줍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사실을 모른다면, 이제 여러분은 알게 되었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나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평가는
그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쓰레기통에 넣기에 적합하다는 거죠 제가 이렇게는 말할 수 있는데,
정말 경건한 사람이 나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면
그의 평가는 내가 조금 심각하게 받아들일 거예요
왜냐면 그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마도 대변한다고 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만약 사도바울 같은 분이 지금 여기 어디엔가 살고 있어서
그분이 제게 뭔가 평가를 하신다면, 제가 신중하게 받아들이겠어요
왜냐면 그분은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하기 때문이죠 그 분은 그저 나를 비방하거나 칭송하는 것이 아닌,
정말 내가 자신을 잘 볼 수 있도록 도움되는 어떤 말을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럼 저는 그분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겠어요
(이제 8번째로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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