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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2

하나님은 즐겨 드리는 자를 사랑하신다 / 잭 푸닌

LNCK 2012. 12. 11. 14:23

www.youtube.com/watch?v=PZxzMtoubAo

www.youtube.com/watch?v=qp-p6pHPd5Y

www.youtube.com/watch?v=pKB09NmxdXc

◈하나님은 즐겨드리는 자를 (자원하는 섬김을) 사랑하신다  고후9:7, 히6:1      영어    출처

God delights in cheerful giver.

 

Zac Poonen 3 of 16  

 

 

제가 50년 사역 가운데 배운 세 번째 교훈입니다

고후9:7인데요

'하나님은 즐겨 (섬김봉사나눔드리는 자를 사랑하신다'

입니다

 

다른 말로하나님은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를 억지로 시켜서 어떤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섬김봉사나눔의드림에 대해 말씀하죠

 

성령께서는 사도바울을 감동하셔서 이 말씀을 쓰게 하셨는데

고후 9:7 후반절에아니 전체 구절이네요

각자 마음에 정한 대로 해야 하고,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서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저는 이 구절을 통해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자원해서기쁘게즐겁게 하기 원하시고

억지로 압력 받아 하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거죠

 

거기엔 이유가 있는데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실 때

'선택의 자유 freedom of choice'를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결코 그 선택의 자유를 거둬들이지 않으셨어요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지난 24시간 동안

수만 명의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하나님은 막지 않으십니다

그후 24시간인 오늘도 똑같이 그럴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막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그게 사람들에게 안 좋다는 걸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막지 않으십니다

(지옥이 아니더라도앞으로 24시간동안

신자들이 죄 지을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막아주시면 좋을 건데하나님은 막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남편이나 아내와 이혼하려고 할 때

막아주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누구도 막지 않으세요

왜냐면 그 순간 이혼이나 그 같은 걸 막아주신다면

그건 그들의 자유의지를 빼앗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 자유의지 free will를 빼앗으신다면

우리는 로봇처럼 되고 말지요

또는 행성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동적으로 순종해서 매년 계속 돌고 돌죠

 

그래서 아시다시피 행성들은 결코 죄를 안 짓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는 없는 거죠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반드시 자유의지를 가져야 하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모든 일에 선택의 자유를 주십니다

 

여러분이 거듭났을 때도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도

선택의 자유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길 성령의 열매는 절제 self-control 라 했죠

어떤 사람이 말하길 나는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도저히 나를 절제할 수 없었다

제가 보기에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확실합니다

 

제가 듣기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는데

내가 어디에선가 기도했는데

(깨고 보니그 방의 다른 쪽 끝에 쓰러져 있더라

그럼 제가 말합니다 그건 성령의 역사가 절대 아닙니다!’

(*자유의지를 깡그리 무시하므로)

 

왜냐면 성령의 열매는 더 절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절제력이 더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성령님은 당신을 조종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당신을 (강압적으로뭘 하도록 시키지 않으세요

 

성령님은 당신에게 능력을 주시고 그 다음에

당신이 그 일을 원해서 할지/안 할지 당신에게 맡기십니다

(*선택의 자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은사를 사용하도록 강압하시지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은사를 주시고

이제 그건 네게 달렸다 그걸 네가 사용하든지 말든지

 

(성령의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능력을 사용할지 말지는

당신 자신에게 달린 것이죠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탄은 사람을 점령(강압)합니다

제게 이 깨달음은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성령님은 결코 네버 결코 네버

저를 강압해서 뭘 시키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이 자원해서’ 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자원해서 순종하는 사람을 사랑하세요

뭘 드리는 것도 같은 원리죠

그런데 예를 들면 오늘날 너무 많은

(외부적/자기 내면의압력이 있습니다

 

특별히 외국의 TV 설교자들이

헌금을 강요하는 듯 하는데요

헌금을 하도록 부담을 갖게 하고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방영해서압력을 넣고

헌금을 안 하면 죄책감을 갖도록 유발하는데요

이런 것은 하나님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즐겁게 헌신하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가 즐겁게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걸 받기를 원치 않으세요

 

딸을 유년주일학교에 보내는 엄마로부터

제가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엄마가 딸에게 1달러를 헌금으로 줘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 사탕 사 먹을 돈은 따로 50센트를 주었습니다

 

딸이 돌아왔을 때 엄마가 물었죠 '1$을 헌금으로 드렸니?'

딸은 말하길 엄마제가 1$을 헌금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넣기 직전에 선생님이 말하길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50센트를 드리는 것이 제가 더 즐거울 것 같았어요

1$ 드리고 아까워하는 것 보다는요

그래서 선생님 말씀을 따라 제가 50센트만 드렸어요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1$로 사탕을 사먹었어요!’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하나님은 그 어린 딸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선생님이 그 아이를 사랑하든지/말든지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사랑하십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뭐든지 즐겁게 드리는 자들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으로부터 1센트라도

아니 여러분의 삶에서 그 어떤 봉사나 헌신이라도

만약 여러분이 즐겁게 드리지 않는다면... (받지 않으세요)

 

설교자들이 여러분을 미혹하지 않도록 하세요

여러분이 억지로라도 하나님께 드린다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라고 하죠)

 

하나님은 이와 같으시다고 우리가 이해할 때

제가 믿기로이것은 참 하나님의 사람의 표식인데

그것은 사람들이 뭔가를 하도록 강압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람들을 강압해서 억지로 뭔가를 하게 하려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처럼 행하지 않게 됩니다

마귀처럼 행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마귀가 사람들을 통제할 때

제가 귀신 들린 사람들을 봤는데요

그들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어요

자기가 원치 않는 말을 합니다 자기가 원치 않는 일을 합니다

왜냐면 마귀가 그를 통제하니까요

 

그래서 성경은 마귀 점령 possession’이란 말을 쓰고

그리고 성령 채움 filling’ 이란 말을 씁니다

차이를 보십시오

성령은 채움이라서 강압성이 없지만

마귀는 점령이라서 강압적입니다

 

성경에는 성령께서 사람을 점령했다는 말은 안 나오고

마귀가 그에게 채웠다는 말이 안 나옵니다

마귀는 사람에게게 채우는 게 아니라 점령합니다

그 말은그 사람을 소유해서 어떤 일을 하도록 조종한다는 거죠

 

그래서 누가 당신에게 압력을 넣어서

무슨 (봉사의일을 하도록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방식을 설교하고 게 아닙니다

그가 설교자든지 목회자든지

그는 성경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결코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율법 아래서는 어떨까요?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어린 자녀들처럼 대하심을요

성경은 말씀하길무론 우리가 집에 아이들이 있는데

어릴 때는 규칙(율법)으로 키웁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규칙(율법)을 주어야 합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강제해야 됩니다

그게 아이들에겐 좋습니다

 

그렇지만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길

지금은 새언약 아래서 *3:24~26

하나님은 우리를 장성한 어른으로 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즐겨 (헌신을드리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제발 기억하십시오 절대 부담감을 갖지 마세요

만약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일을 하지 마십시오

어디에 뭔가 드리기를 원치 않으시면 드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즐겨 드리는 자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고후9:7

 

여러분이 전심으로 그것을 드릴 때

그것이 순종입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깨닫고는

놀랍도록 복(은총)을 받았습니다

여러 분야에서특히 물질에서도

하나님께 다른 순종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제가 보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억지로 이 헌신을 하고억지로 저 봉사를 하는데,

그러다 시간이 지나 그들의 생애 마지막 시간에 이르러

그들은 너무 불쌍해지고 행복하지 못했는데

왜냐면 그들은 자기 인생을 강압에 내몰려 살았기 때문이죠

 

 

저는 여러분들이 그런 데서 자유하게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즐겨 헌신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제가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어요 *6:1

신약성경에 일work 중에 죽은 일 dead work’이 나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발견한 또 다른 어떤 진리인데요

죽은 일 dead work’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선한 일’ ‘악한 일은 제가 압니다

제 양심이 그걸 제게 분별해 주죠

그런데 죽은 일 dead work’ (성경엔 죽은 행실’)

제 양심이 그걸 분별해 주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죽은 일은 같은 것은 안 나옵니다

신약에만 나오는데 히6:1입니다

우리가 죽은 행실을 회개해야 한다고 하죠

그런데 제가 죽은 행실이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죽은 행실을 회개’ 하겠습니까

 

제가 성경을 연구한 결과 발견한 죽은 일이란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그 의미 중 하나는

제가 하기 원치 않는 어떤 일을 하도록 강요받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무슨 부담감 때문에 한다든지

내가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해 한다든지

혹은 누가 제게 압력을 넣어서 한다든지 그래서 한다면

그건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죽은 일이 되는 겁니다

왜냐면 그건 전적인 선택의 자유로 행한 일이 아니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므로 제가 보기에 죽은 일의 회개함이란 *6:1

제가 이렇게 결단하는 것입니다

제가 누구든지 저를 통제하도록 하지 않겠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나님을 위해 제가 뭔가 해야 된다고 할 때

저는 그런 데서 자유하겠습니다 (체면을 버리겠다는 뜻도 됨)

성령의 감동이 오면 제가 자유롭게 하겠습니다

 

몇 년 전에 저보다 더 연장자이고 경건한 신앙의 선배께서

제게 뭔가 제안을 하셨습니다

물론 그 일은 나쁜 일도 아니고죄짓는 일도 아니고,

어떤 사역에 관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선배님 당신은 저보다 신앙이 더 깊으십니다

그리고 아마도 당신의 제안은 옳습니다

제게 시키시는 일 말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지금은 제가 그 일에 대한

빛(인도)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당신이 시킨 일이라서 그 일을 한다면

그건 죽은 일dead work이 될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일은 안 하렵니다

 

제가 느끼기로 지금 하나님께서

제가 그 일을 하기 원하신다면

그때 제가 하겠습니다

이런 일은 (남들에겐 간단하지만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자유함이 있게하죠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어떤 섬김을부과하십니다

지금 우리 양심에 가진 light(의 인도)’으로!

다른 누구가 자기 양심에 가진 빛에 따라서가 아니라요

 

 

명백한 사실이지만누군가 저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 있고,

저보다 더 많은 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그분이 자기 양심에 따라 사는 에 의해서

제가 살 수는 없습니다

저는 제 양심의 빛에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만약 지금 제가 스스로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제가 정상이라면)

제가 그가 말한 대로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14장은 이런 사실을 가르치는 위대한 장입니다 *14:1~2

한 사람에게 죄가 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겐 죄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는 그 일에 대해 빛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놀라운 우리를 자유케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즐겨 드리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고후9:7

 

이 말씀에 따라 저는 결심했습니다

제 일생에 저는 모든 (봉사의일을 즐겁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도

제가 즐겁게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저는 누군가 제게 압력을 넣어도 하도록..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도 놀라운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런 분야에서 자유롭게 된다면요

 

*남이 나의 제안에 못 따라 올 때도

이해해야 되겠습니다억압하지 말고요

 

...................... 아래는 의미 위주로 재구성(녹음 안 함) .......................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봉사와 섬김을,

우리가 자원하는 심령으로, 자발적으로 하기를 원하시고,

그것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우리가 억지로나 강제적으로 하는 봉사와 섬김을

하나님은 기뻐하지도 않으시고, 받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명목으로, 어떤 이유로든지,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이끌고 가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헌금에 관한 내용이지만, 헌금뿐만 아니라,

전체 기독교 신앙의 원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즐겨 헌신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되,

자원하는 심정으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기를 원하시지,

어떤 강압에 의해서, 또는 억지로 마지못해 섬기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스스로가 억지로나 마지못해 헌신해서는 안 되며,

또한 다른 사람을, 신앙의 명목으로, 억지로나 강제적으로 헌신시켜도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해서, 자원하는 헌신이 아주 약하거나, 거의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그 범위 안에서, 사역을 작게 추진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역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알아서 이끌어 가십니다.

자원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하면 됩니다.

 

강압적으로, 죄책감이나 부담을 주어서, 헌신을 이끌어내는 것은..

성경의 전체적 원리와는 결코 맞지 않습니다.

만약 강압과 강제의 원리로, 신자들의 헌신을 이끌어내어서, 기독교공동체를 이끌어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상 단체로 전락시키는 큰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사람인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부터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즉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양심영혼과 함께) 자유의지는,

인간이 동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중요한 표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로부터, 자원하는 헌신과 사랑을 받기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원래 목적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어제 24시간 동안, 수만 명의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하나님은 막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원리가,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을 존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일 24시간 동안, 수만 명의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또한 막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하나님의 일하시는 원리가,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을 존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 같은 신자들이

오늘 24시간 동안 죄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짓는다고 칩시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경고 싸인을 보내시겠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을 막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최종 선택과 결정은, 언제나 ‘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로봇이 아니며, 자유의지를 가진 신적인 존재(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그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가정이 깨어지려고 할 때, 막아주시지 않으십니다.

그것을 막아야 할 주체는, 다름 아닌 여러분 자신입니다.

물론 성령의 내적 음성을 주시겠지요. 그러나 선택과 결정은, 자기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로봇도 아니고, 태양을 따라 규칙적으로 도는 행성들도 아닙니다.

행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만, 자유의지가 없으므로 죄도 짓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은, 행성/로봇/짐승이 되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그래서 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타락하고 범죄하게 만들었느냐고,

하나님께 따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오해입니다.

자유의지는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만 가질 수 있는 고귀한 특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들이 자유의지로 자원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헌신하기 원하시고,

또한 그것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물론 반대적 측면에서, 인간들이 자유의지로, 자원해서 타락하고 범죄할 위험성도 있는 것입니다.

 

이 설교의 주제는,

이렇게 하나님은, 원래 인간을 창조하신 원리가,

자원하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사랑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 남의 눈치를 보면서, 자기 체면을 고려해서

하나님께 헌신 봉사하는 것은.. 신앙적 원리가 아니며, 그것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외식입니다.

 

또한 공동체가, 어떤 사회단체에서 하듯이

강제나 강압의 원리, 또는 부담감을 주어서,

어떤 헌신과 봉사를 이끌어 내는 것도.. 기독교를 타락시키고, 세속화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 마지막 9번째가 ‘절제, self control’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에 너무 충만한 나머지, 자기 절제력을 잃어버리고

예배 중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self control을 잃어버리는 것은, 성령충만이 아니란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십시다.

성령이 충만해지면, ‘자기가 자기를 잘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컨트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봇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유의지를 주셔서, 성령충만한 사람일수록,

그 자유의지로, 자기를 더욱 잘 컨트롤해서, 하나님께 헌신, 봉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들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강제로 부리지 않으십니다.

은사를 줬으니까, 사용하라고 강압하지 않으십니다.

 

그 받은 은사를, 사용할 것인가, 또는 사용하지 않을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달린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셨다고, 하나님은 강압적으로 당신에게

무슨 일을 시키시지 않습니다.

 

그 일을 하도록, 마음의 감동을 주실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 일을 하고/ 안 하고는.. 오직 당신 자신에게 달린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탄이 사역하는 방식을 보면, 강압적입니다.

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possession이란 말을 쓰는데,

‘그 사람을 완전히 점령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마귀가 완전히 컨트롤하고,

강압적으로 자기 뜻대로 움직이도록, 그 귀신들린 사람을 몰아갑니다.

 

여러분, 성령의 사역과, 마귀의 사역을 분명히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결코 결코 결코 강압적이지 않지만,

귀신은 강압적으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큰 원리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주님을 믿는 것도.. 자원해서 합니다.

신자가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도.. 반드시 자원하는 원리에 의해서 되어져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어떤 원리에 의해서라도,

군대, 회사, 학교, 가정에서도.. 신앙과 헌신이 강요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덧납니다. 그런 식의 전도는, 빨리 가는 것 같지만, 도리어 느리게 갑니다.

(물론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는 말씀도 성경에 나오지만, 그것은 일반적 원리가 아닙니다.)

 

저는, 미국의 TV 같은 데서,

설교자들이 헌금을 강요하는 듯 하는 것은.. 결코 올바르지 않다고 봅니다.

헌금을 하도록 부담을 갖게 하고,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방영하면서 강요하고,

헌금을 안 하면 죄책감을 갖도록 유발하는 것도.. 올바르지 못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꺼이 자원해서 헌신하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 자신이

우리가 강요에 의한 헌신, 우리가 억지로 내는 헌신은,

받기를 절대로 원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강요된 헌신을, 받기를 원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엄마가 교회 가는 딸을 보고, 1달러를 헌금으로 쥐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탕 사 먹을 돈은, 따로 50센트를 더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딸은, 마침 그날 주일학교 성경공부 내용이

‘하나님은 즐겨 내시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는 고후9장7절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헌금으로 50센트를 드리고, 1달러로 사탕을 사 먹었습니다.

(원래는 1달러를 헌금으로 드려야 했는데, 사탕 사먹는데 1달러를 쓴 것입니다.)

 

교회에 다녀와서, 엄마가 딸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1달러 헌금을 드렸겠지?’

 

‘아뇨, 엄마, 50센트만 드렸어요.

성경에, 하나님은 즐겨 내시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잖아요.

저는 50센트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었어요!’ 하하하

 

저는,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딸이, 헌금을 1달러를 드리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1달러 50센트를 다 드리든지.. 그것은 최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50센트를 드리는 것이, 자기 마음에 즐겁다면,

제 판단으로는, 즐거운 마음으로 50센트를 드리는 것이,

억지로, 마지못해,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1달러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즐겨 받으실 것으로..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어쨌거나 많이 드리는 것을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즐겨 내시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헌금을 억지로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이 얼마 내는가.. 의식하면서.. 그렇게 드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헌금은, 하나님이 일절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의에 의해서, 또는 타의에 의해서 강요된, 억지성의 헌금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지 않고, 또 그렇게 억지로 드리는 것보다는,

소액이라도, 자기 믿음의 분량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훨씬 더 성경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자원에서 헌금이나 기타 봉사와 헌신을 드리려면,

성도들의 믿음이 좋아야 하고, 믿음이 뜨거워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또한 성도들만 탓할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뜨거운 신앙으로 인도하지 못한, 목자의 책임도 일부 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헌금을 포함해서, 모든 기독교의 헌신, 봉사는,

억지로, 남의 눈치를 보면서, 자기 체면을 위해서든지.. 강요에 의해서든지..

그렇게 되어져서는 안 되며,

그렇게 되어진 것은, 사람은 받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심지어, 그렇게 외식적인 헌금을 하고, 오히려 큰 책망을 듣는 것은,

아예 헌금을 하지 않고, 작은 책망을 듣는 것보다, 더 내게 무서운 일입니다.

 

이사야서 1장이나, 행5장에 보면,

헌금 하고, 오히려 더 큰 책망과 징계를 받았습니다.

차라리 아예 안했더라면, 작은 책망을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외식적인 헌금과 봉사를

정말 극도로 미워하시고, 싫어하신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 진정한 하나님의 종은,

절대로 사람들을 강요하거나, 등 떠밀어서 무엇을 시키지 않습니다.

 

오늘날 현대에, 꼭 모두가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물질적 사회에, 헌금이 풍성하고, 건물이 크고, 자원이 왕성해야

뭔가 잘 하고 있다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주기도 하고, 또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영적인 사역 말고도,

어떻게 해서든지 자원을 끌어 모아서, 어떤 세력을 과시해야 하는

큰 부담감과 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구성원들에게, 은근히 부담을 지울 수 있습니다. 실적에 신경 쓰는 것입니다.

 

그런 식의 사역은, 전체의 성경적 원리에 크게 위배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 원리입니다.

 

차라리 사역이 가난한 것이 낫고, 초라한 것이 더 낫습니다.

왜 강요와 푸시와 부담을 지워서, 헌신을 이끌어내어서, 사역을 외적으로 키우려 하십니까?

그건 타협하는 원리로써,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속된 인간들은 기뻐하고 환호할지 모르지만!

 

여러분, 사람들을 억지로 강요해서, 부담을 줘서 뭘 하려고 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결코 아니라,

사탄의 사역하는 방식임을 절대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서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 사탄에 의해 점령된, 즉 귀신들린 사람을 보십시오.

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기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사탄과 마귀가 시키는 대로, 그대로 따라서 합니다. 자유 의지가 없습니다.

자원하는 심령이 없습니다.

 

사람을 완전히 컨트롤하는 것은, 마귀적인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감동해서, 뭐든지, 그가 자원해서 봉사하게 하십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사람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자기를 통제 못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절제 self control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귀충만을 받은 사람은, 즉 귀신들린 사람은,

절대로 자기를 스스로 통제 못합니다. 그저 마귀가 시키는 대로, 다 따라서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단과 사이비의 특징은, 사람을 철저히 통제하려 드는 것입니다.

무슨 군대조직보다 더 일사불란하게, 전체 신도들을 통제합니다.

 

그것은 마귀의 역사이지, 성령의 역사는 결코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자원하는 심령을 줘서,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주님을 섬기고 봉사하게 합니다.

 

여러분, 지도자들이, 신자들에게 뭘 강요해서도 안 되지만,

신자들의 의식도 높아져야 합니다.

강요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닌 줄을, 스스로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 강요를 받을 때는, 그가 무안하지 않게, 조용히 협력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말씀드립니다만,

진실한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역합니다.

즉, 결코 신자들을 강요하거나, 부담을 줘서, 무슨 일을 추진하지 않습니다.

 

만약 자원이 모아지지 않으면, 그건 모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니까요.

 

그래도 끝까지 만약 자원이 모아지지 않으면, 그 사업을 추진하지 않으면 됩니다.

괜히 억지로 강요에 의해서, 자원을 모아서 추진된 사업은,

그건 인간은 받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기뻐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건, 이름은 기독교 간판을 내 걸었을 런지 모르나, 인간적 사업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갈라디아서에 보면,

구약의 율법시대에는, 우리가 율법선생(몽학선생) 아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는, 어린아이들이, 가정교사의 지시를 따르듯이,

우리가 계명을 억지로라도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약의 새언약 아래서는, 그 원리가,

우리가 자원해서,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어떤 강요나, 규정에 의해서 주님을 섬기는 것은, 원리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므로,

못 낸다고, 너무 죄책감을 가지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그 일을 하도록, 당신에게 감동을 주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신 감동을, 우리가 못 알아차릴 때도 있겠지만요.)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감동해서, 그 일을 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일에 동참하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나를 감동하셨나, 내게 그 일을 맡기셨나, 안 맡기셨나?’

거기에만 민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게 감동하시지 않은 일에 대해서, 내가 꼭 반드시 참여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 자원해서 주님을 섬기지 못하고,

강요에 의해서 뭘 시키거나, 거기에 따라서 억지로 뭘 하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그 삶이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경우를 종종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사람의 눈을 의식하거나, 외식하며 행했기 때문에

결국 결과가 안 좋아진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그 일이, 인간적으로 보기에, 도움이 꼭 필요한 일이라 하더라도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내 마음에 부담과 감동을 주시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걸 불순종하면.. 나는 하나님께 징계를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마음에 부담과 감동을 주시지 않는데도,

내가 여러 가지 인간적 상황을 고려해서, 그 일에 참여하는 것도.. 그것도 불순종이 됩니다.

뭐든지 불순종하는 일을 행하면.. 그 결과가 결국은 불쌍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괜히 물질과 자원을 드려서 내가 참여하고도.. 미저러블, 즉 불쌍한 결과를 갖게 됩니다.

 

신약에 보면 ‘죽은 일’이란 말이 나옵니다.

아니, ‘선한 일’, ‘악한 일’이란 말은 있는데, ‘죽은 일 dead work’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이 아리송했습니다.

 

히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위에서 ‘죽은 행실’을 회개해라고 했는데, 뭘 회개하라는 뜻입니까?

그걸 알아야 회개할 것 아닙니까.

 

제가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한 결과, ‘죽은 행실, 또는 죽은 일’이란,

그것은 자기가 하기 싫은 일, 자원하는 마음이 없는 일을,

억지로 행하는 것을 뜻한다고 봅니다. (또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요.)

 

어떤 사람이 내게 압력을 넣어서 하는 일,

또는 마음에도 없지만,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억지로 하는 일,

그것이 외형적으로는 나쁜 일이 아니고, 선한 일일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그 일이, 제가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쨌거나, 죽은 일, 즉 그게 선한 일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으로 기쁘게 자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적, 새언약의 신앙 원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게 아무리 필요하고 선한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기쁘게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시지,

억지로, 강요해서, 무슨 일을 받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죽은 일, 죽은 행실은..

신약, 새언약에 들어온 우리가, 회개해야하는 분야인 것입니다.

 

우리는 ‘죽은 일’ 즉 ‘죽은 행실’을 회개해야 합니다.

죽은 행실로 주님을 섬기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율법시대로 거꾸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신약의 복음은, 근본적으로 신자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물론 방종하는 자유, 죄짓는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는 자유’입니다. ‘하나님을 자원해서 섬기는 자유’입니다.

 

몇 년 전에, 저보다 더 연장자이고, 경건한 신앙의 선배께서

제게 뭔가 제안을 하셨습니다.

물론 그 일은, 나쁜 일도 아니고, 죄짓는 일도 아니고, 어떤 사역에 관한 제안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선배님, 당신은 저보다 신앙 연조도 깊으시고, 더 경건한 신앙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선배님이 제게 제안하신 그 일이, 아마 옳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제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하나님이 제게 그 일을 시키셨다는, 어떤 감동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 더 기도하며 분변한 후에, 제가 그 일에 가담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죽은 행실’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그 일의 연기, 사실상 거절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일이, 하나님이 제게 시키신 일이라면,

하나님이 제 마음에 기쁨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 일은, 꼭 필요한 일이고, 올바른 일이라도,

하나님이 내게 시키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일을 추진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주님의 모든 사역은,

자원하는 심령으로, 기쁜 마음으로 임하고, 행해야 하는 원리를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억지로, 아무런 기쁨도 없이 ‘죽은 일’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자유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성숙된 자유함이 있는 곳에, 성령의 유기적 활동이 더 활발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기독교 공동체가 무슨 군대처럼, 상명하복의 원리로만 운영되어질 때,

그렇게 최고지도자 1인체제가 되는 것은, 어쩌면 ‘성령의 역사’를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주로 지도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겠지만,

때로는 지도자가 잘 분별하지 못할 때는, 중간지도자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가 나보다 더 성숙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더 민감하게 잘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일을 행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이 그를 감동하실 뿐만 아니라, 저도 감동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제게 주시는 성령의 감동은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언제나 하나님이, 제 상위 지도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감동만

믿고 따라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도, 제게 주시는 성령의 감동을, 분별해서, 거기로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되, 억지로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자유함 가운데 주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약 복음이요, 새언약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놓으신 길입니다.

 

우리가 이 원리를 따를 때.. 결국은 결과가 좋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고, 우리 각자에게도 은혜와 혜택이 돌아옵니다.

 

그렇지 못하고, 어떤 강요나, 주변 눈치 때문에 마지못해서 주님을 섬기는 사역이 될 때,

당장은 어떤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지 모르나.. 결국은 모두가 불쌍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섬긴 것이 아니라, 인간의 뜻을 따라서 섬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