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안에서 기도하라 엡6:18~20 인터넷설교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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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 한 가지가 바로 기도이지요.
기도생활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우리는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는 이 <지속적인 기도생활>이라는 도전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 고민을, 극복하는 한 가지 길은, 좋은 기도의 습관을 갖는 겁니다.
사람은 습관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좋은 기도의 습관이 형성되면, 그만큼 기도하기가 쉬워집니다.
기도의 좋은 습관을 가지려면 3가지가 필요한데
정해진 기도의 시간, 정해진 기도의 장소, 정해진 기도의 제목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기도생활에 정해진 기도시간이 있습니까?
정해진 기도의 장소를 가지고 계세요?
어떤 때는 무엇을 놓고 기도를 해야 될지 모르다가도
‘정해진 기도의 제목’이 있어서, 그 제목을 따라 기도하는 가운데
기도할 힘을 얻게 되는 그러한 경험을 해 보셨습니까?
지금까지 서론이었고, 이제부터가 본론입니다.
▶기도생활을 위해서 ‘좋은 기도의 습관’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의 영을 갖는 겁니다.
우리가 새벽기도를 생각해볼 때
우리가 항상 새벽에 그 시간에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배당 안에서만 살고 있지는 않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세상에서 살아갈 때
우리 앞에 다양하게 펼쳐지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런 도전과 문제,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의 기도가, 정해진 기도의 제목만으로는.. 우리 삶을 다 감당하지 못해요.
그래서 좋은 기도의 습관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기도의 영을 가져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 그것은 더 중요합니다.
마치 내 영이, 기도의 영이신 성령 안에 푹 잠겨 있는 것처럼,
내가하루 24시간,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통가운데서 내 삶이 진행되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의 영을 가지는 것인데,
바로 기도생활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성령으로 기도하라’ 라는 말씀을 여러 번 당부하십니다...
▶그 중 한 곳인 본문, 에베소서 6장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과거 개역에는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했는데,
‘무시로’란 항상 이란 뜻입니다. 영어로 always 또는 all times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일까요?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의미는,
성령의 영성과, 성령의 지성과, 성령의 감성을 따라서 기도하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성경에 보면,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령의 생각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합치된 상태에서
우리 안에 와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계속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8:26~27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엡6장 18절의 말씀을
실행 할 수 있는 그 약속이, 이 로마서 말씀에 주어져 있습니다.
▶로마서8장26~27절 속에는, 성령의 영성/ 지성/ 감성이 나타나 있어요.
성령의 영성은 무엇과 같은가요?
어머니의 영성과 같지요. 어머니는 자녀들을 한없는 사랑으로 용납해주고 품어줍니다.
그러한 것처럼 성령은 포근한 영성, 온유하신 영성, 인자하신 영성으로서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기도하듯이,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는지도 모르고,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마땅히 무엇을 위해서 기도할지 모르지만,
우리를 위하여 앞서 기도’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성령의 영성이 그러하단 겁니다.
또 성령의 영성은, 성령은 지성을 가진 인격체이셔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 할 바를 명확하게 인지하시고
그리고 그 생각을 갖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롬8장 27절 말씀에 성령이 지성을 지니신 분이시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 표현이 있습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성령의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생각하신다. 즉, 지성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그 성령의 생각이 얼마나 많은지, 시편 40편 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여러분,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까?
자녀에 대한 모든 사정을 헤아리고 살펴서 자녀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지만, 자녀는 부모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 인생이 바쁘기 때문에 내리 사랑을 해서,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그렇게 안타깝게 간절히 기도하지만
자녀들은 그 부모에 대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저도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이 아이들이, 부모인 제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자기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알고 지내기나 하나?’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별로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해변에 모래보다 더 많으신 그 생각,
그 사랑의 생각을 가지시고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또한 성령은 감성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26절 말씀에 성령의 감성을 보여주는 한 어구 한 표현이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성령님’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감성을 가지고 계세요
우리는 성령을 근심하게 할 수도 있고, 우리는 성령을 기쁘시게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인격적으로 우리를 대해주십니다.
이 말씀이 보여주는 바대로 성령님은
어머니와 같은 그런 넓으신 자애로우신 사랑의 영성을 지니셨고,
성령은 또한 생각을 가지신 지성을 지니신 인격체이시고
성령은 우리를 위하여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시는 감성을 지니신 분이신데
▶정리하면,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그토록 기도하시는 그 성령의 영성과 지성과 감성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 1대지
우리에게 그 기도는 필요하죠.
내 생각대로, 내 욕심대로, 내 마음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이 성령 안에 잠긴 것처럼,
성령이 그 영성과 지성과 감성을 따라서 기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기도입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 드립니다. 이미 세월이 지나서 다 잊어버리셨겠지만
여러분이 어린 자녀들을 키울 때, 자녀들이 막 글자를 깨우쳐 갈 나이일 때
글씨 쓰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그때 어떻게 가르쳐 주셨어요?
아이가 글자를 삐뚤삐둘 쓰니까,
엄마나 아빠가 아이를 품안에 안고 아이의 작은 손을 내가 손으로 쥐고
연필을 쥔 아이의 손을, 내가 붙잡아서 글자를 써갑니다.
마찬가지로 기도할 줄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을
성령께서 안으시고 품으시고, 나의 작은 손을 그 권능의 손으로 붙드셔서
내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는 거예요.
부모가 어린자녀든 장성한 자녀든 자녀를 위해서 밤낮 기도하듯이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나는 의식도 하지 못하는데, 나는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그 많으신 성령의 사랑의 생각을 갖고서,
하나님이 뜻에서 합치된 방향으로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는데
내가 그것을 깨닫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기도하는 것이.. 바로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성령안에서 기도하게 되면, 우리가 중언부언 하는 기도는 하지 못하죠.
여전히 우리는 내 짧은 욕심이 들러붙은 그런 마음의 손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데,
우리가 점차로 성령안에서 변화를 받게 되면,
우리가 마음속에 품게 되는 소원과, 우리가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의 제목들이,
하나님이 뜻에 합치되는 방향으로 내 그 기도가 바뀐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 기도가 성령 안에서 드려지게 되면
우리가 간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되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 기도가 성령안에서 드려지는 기도,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합치되는 방향으로 변화 받게 되면,
우리가 기도하는 바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둘러싼 삶의 환경을 하나님께서 절대주관 가운데 품으시고, 붙드시고,
변경하시고, 조정하셔서
여러분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28절, ‘성도의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구절은,
문맥상 26절과 연결해서 해석할 때,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성도에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즉 28절의 ‘성도의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은총은,
26절의 성령안에서 기도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여러분!
시편 31편 4절 말씀에도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기도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점차로 바뀌어서,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며 살아가게 될 때,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속 안에 있는 모든 소원들을 아시고 헤아리시고 살피셔서,
하나님께 기도드려서, 그 소원들을 다 이루게 주시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합니다.
▶그런데 혹자는,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방언기도 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기도와 방언기도를 동일시합니다.
저는 부분적으로는 맞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다 맞는 것은 아니고, 부분적으로 맞습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시면,
그 사람은 그 방언기도를 하는 가운데.. 성령안에서 기도하게 됩니다.
성령의 영성과 지성과 감성에 내가 편입되어서,
내가 그 의미를 다 모르고 기도하는 사이에도
내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나의 기도가 바뀌어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방언기도는 귀중한 은사입니다.
그런데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을 <방언기도>로 한정해 놓으면,
진정 하나님 안에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들 가운데서도
아직 방언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요.
방언이라는 것은 은사입니다. 은사는 다양하게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한 은사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은, 은사가 아니에요.
내가 비록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했지만,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은사가, 나에게 주어집니다.
섬김의 은사, 구제의 은사, 가르침의 은사, 예언의 은사, 병 고침의 은사 등
방언의 은사 말고도, 더 많은 은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을 방언기도로만 한정해놓으면,
그러면 방언기도를 하지 않는 다른 그리스도인은,
성령 안에서 기도할 수 없는 것으로 되니까.. 그럴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방언은사를 받지 않은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성령 안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은, 말씀을 통해 기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2대지
왜냐하면 성령충만은, 말씀충만도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이 에베소서에 나오는데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하면서 피차 복종하라.’ 엡5:18~21
위 말씀은, 에베소서에 나오는 <성령충만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위 말씀이, 골로새서 3장 16절에 <말씀충만의 결과>와 똑같습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며,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것은 의미심장한 관찰인데, 여러분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말씀충만입니다. 또한 은혜충만, 감사충만, 찬송충만, 전도충만, 사랑충만입니다.
이렇게 엡5:18절과 골3:16절, 두 구절을 비교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한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안에서 기도하려면.. 말씀을 따라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성령 안에서의 기도로 초청하시고 인도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다는 겁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이사야45장22
어떨 때는 내가 기도할 힘조차 없어서, 소리를 내어서 기도할 기력조차 없을 때,
또는 나를 둘러싼 주위 여건과 환경이 너무 어려워져서 기도할 의욕도 갖지 못할 때,
그때 한 가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심령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임하는 겁니다. 다시 내가 새 힘을 얻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시130장7~8
그래서 기도하실 때 그냥 내 생각이 앞서서, 내 다급한 소원만을 아뢰어 기도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내고, 그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에 따라서 기도하다보면..
나의 기도가 성령안에서의 기도로 변화하게 되고,
그렇게 그 성령안에서 기도는, 즉 말씀 안에서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놀랍게 응답을 해주신다는 겁니다.
요15장 10절 말씀에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 주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여러분,
기도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기도하시고,
말씀을 기억하시고, 말씀을 붙드시고, 말씀을 의지하시고, 말씀 따라 기도하는 가운데,
풍성한 응답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치는 말
건강한 기도생활을 하기위해서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 정해진 기도의 제목 등
이렇게 기도의 좋은 습관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내 영이, 기도의 영이신 성령 안에 푹 잠겨서,
내가 성령안에서 기도할 때
성령이 나를 위하여 보내신 말씀, 그 말씀을 기억해내고,
그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따라서 기도할 때,
여러분의 기도가 성령안에서 드려지는 기도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위하여, 여러분의 기도에 놀랍게 응답해주시고,
여러분이 처한 모든 어려움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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