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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기문과 지옥문

LNCK 2012. 12. 15. 11:50
◈승강기문과 지옥문        눅21:5~38         출처보기

 

 

 

눅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지옥문의 입구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옥의 문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져야

그때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지옥의 문은 이 세상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진, 로댕의 조각물은

원래 제목은 ‘지옥의 문’이란 전체 작품의, 일부분입니다.


그 조각 작품에, 그 남자가 턱을 괴고 뭘 바라보면서 뭘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건 바로 지금 그가, 지옥문을 통해, 지옥으로 향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하고 있다.. 는 것이, 원래 그 작품의 컨셉입니다.


높이가 약 6미터 너비가 4미터 가까이 되는, 거대한 주조물입니다.

그런데 주조물이다 보니까 프랑스 정부에서 주조하는 틀을 갖고 있으면서,

여러 나라의 요청에 따라 찍어내서 (아마 팔았겠지요?)

지금 ‘지옥의 문’이 세계의 일곱 군데에 있습니다.


파리에 있고, 스위스 취리히에 있고, 그리고 미국의 필라델피아와 스탠포드 대학교에 있고,

또 일본의 도쿄와 시즈오카 현의 미술관 안에 있고,

또한 서울의 로댕갤러리에 ‘지옥의 문’이 원형 그대로 있습니다.


로뎅의 작품 ‘지옥의 문’이 이렇게 세계에 흩어져 있듯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에도, ‘지옥의 문’이 얼마든지 흩어져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옥의 문은 우리 도처에 있습니다!


그 ‘지옥의 문’을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면, 마치 <승강기문>과 같습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해서, 거기에 기대고 있다가는, 갑자기 저 아래로 떨어질 수 있으므로,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종종 뉴스에서 듣지요?

술 취한 사람이, 또는 부주의하게 아이들이,

승강기 문에 기대었다가,

그 승강기가 오르내리는 통로가, 사실은 아래 위로 뚫린 큰 구멍이잖아요?

그 깊은 구멍의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서, 애석하게도 사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대지 않고,

다른 대상에 멋도 모르고 기대는 것은,

그게 마치 승강기 문과 같습니다. 튼튼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영구히 기댈 데가 아닙니다. 오히려 거기 기대다가,

자기 인생이 저 아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 본문은 예수님이 종말론에 관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종말의 때가 언제냐고 물을 때마다 주님께서는 그 때를 이야기하시지 않고,

대신에, 종말에 대응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얘기하십니다.


본문에도 보면,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그러니까 종말이 어느 때 오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나는 그 종말이 어떻게 무섭고 두렵게 임하든지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것을 피하고, 인자 앞에 설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주님께서도 계속 그 말씀을 해주시는 겁니다.


종말이 언제 어떻게 무섭고 두렵게 오더라도 상관없게끔,

자기 마음가짐을 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을 해주시고,

그래서 이 종말의 모든 징조가 2천 년 동안 계속 오고 있는 겁니다.


사실 지난 2천 년 동안, 종말의 징조,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여 싸우고

기근과 지진, 이 모든 것이 없었던 적이 언제였습니까?


그리고 해와 달과 별에 징조가 나타나고, 이상 기후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지구온난화라든지 빙하가 녹는다든지 하는 이 모든 일들이

다 종말에 그 모든 것들을 다 피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언제나 계속해서 가지고 있으라고.. 그 징조가 보이고 있는 겁니다.


눅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내 마음이, 이 세상에서 그 누구든 무엇이든지간에, 기대고 있는 게 있습니까?

그게 바로 지옥의 문입니다.


따라서 종말론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뭐냐 하면 피하라는 얘기에요.

왜냐하면 그것은 이탈하게 되는 엘리베이터문과 같으니까

그것을 기대고 있지 말라는 얘깁니다.


이 지구도, 해와 달도, 영원히 붙박이로 견고하게

그곳에 있을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나중에 다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지구 위에 있는 그 무엇이라도 그 누구라도 기대어 있다가는

승강기문이 이탈하는 것처럼, 종말이 돼서 이탈해버릴 테니까

의지하고 기대고 있다가는 반드시 추락하게 될 것이고,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에요.


승강기문이 그렇잖습니까?

참고로, 해마다 ‘승강기문 이탈 사건’은, 크고 작은 사고를 포함해서

1백건 이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쉽게 이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냥 엘리베이터 문을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지옥의 문’ 말입니다!


너무 애석한 일이라서 애도를 표합니다만, 20층에 살던 어떤 할아버지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승강기를 타려고 움직이다가

아직 승강기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깥문을 들이받으면서

바깥문이 이탈해가지고 전동휠체어와 함께 떨어져서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우리 각자가 조심하지 않으면,

‘지옥의 문’으로 곤두박질 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옥문이 어디냐 하면

오늘날 내 마음이 기대고 있는 것, 그게 바로 지옥문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가족이라도.. 내가 기대고 있으면 지옥의 문이 되고,

사업에 내가 기대고 있으면.. 그것이 나의 지옥의 문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의지할 영원한 기업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사업과 직업에 종사합니다만,

그게 의지할 대상은 결코 아닙니다. 내가 만약 그걸 의지하면.. 내 우상이 됩니다.

 

여러분, 엘리베이터를 탈 때 자세히 보세요.

‘승강기문에 기대지 마세요!’라는 그림이나 경고문이 있습니다.

그걸 보실 때마다, ‘나는 지옥문에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종말이 오면, 내 개인적 종말이든지, 지구 종말이든지,

이 세상에서 내 마음이 기대고 있는 것, 그것은 다 없어질 것이니까,

기대고 있는 자는 반드시 추락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그게 바로 지옥의 문입니다.


그러면 <기댄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마음은 어차피 비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댄다는 것은

그것으로 채우고 싶다는 얘기고, 그것으로 기뻐하고 싶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에 기쁨의 이유, 슬픔의 이유가 되는 대상.. 이게 내가 기대고 있는 겁니다.

또, 내 마음이 자랑스러워하고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 이게 바로 내가 기대고 있는 겁니다.


얼굴이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아가씨가, 손이 무척이나 예뻐요.

‘손 모델’로 나와도 될 정도로 손이 예뻐요, 여기에 자부심을 갖습니다. 이게 기대는 겁니다.


나이가 50이 되고 60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피부가 팽팽해요, 늙지를 않았어요,

여기에 자부심을 갖습니다. 이게 바로 자기 피부에 기대는 겁니다.


사업이 잘돼서 기쁩니다, 이게 바로 사업에 기대는 겁니다.


그래서 이 손이 예쁜 아가씨가 70세까지 살면서

평생 자기 예쁜 손에 자부심을 갖고 살다가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그 예쁜 손이 없어집니다.

자기가 일평생 기댔던 손이 없습니다.

그때는 낭패를 당할 것입니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는,

내가 기대던 남편이 없습니다.

기대던 가족이 없고, 내가 기대던 사업이 없습니다.

그때는 아래로 추락하게 돼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만 기댔던 사람들만,

안전하게 천국에 들어갈 것이고,

그 이외의 것에 기댔던 자들은, 그것이 가족이고 자녀라 할지라도,

그 영원의 시간에서는, 기댈만한 반석/피난처/산성/구원의 보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야 비로소 깨달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찍 깨닫자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승강기문이 이탈하는 것처럼, 주님이 오실 때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버리고,

이 우주의 별들이 다 녹아 없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 안에 있던 모든 게 다 사라지니까…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는, 그것을 초월하는 차원의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이때 인자 앞에 설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마음으로 없어질 이 세상의 것들을 기대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 기대고 있던 것들이 없어짐과 동시에

그가 거기에 기댔으니까 그가 쓰러질 것이고, 떨어질 것이고,

떨어져 도달하는 곳은 지옥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의 문>은

오늘도 내가 살면서, 거기에 기댈 수 있습니다.

내가 기대고 있는 동안에, 그것은 내게 ‘지옥의 문’입니다.


이게 바로 종말론의 의미라는 것이에요.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기대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200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종말은 오지 않았는데,

종말의 징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전쟁과 기근,

해일, 전염병이라든지 이런 모든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고,

내 개인적으로 봐도, 실패가 있고, 병이 들고, 암에 걸리고,

집안에도 그런 일들이 계속 있는 거예요.


이 모든 역사적이고 국제적이고 국내적이고 개인적인 모든 환란과 모든 실패와

모든 불안한 요소들의 메시지는 단 하나입니다.

“기대지 마라!”

“이 세상에서 어느 것도 기대지 마라!”입니다.

기댈 대상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일본의 전자회사가 10년 전, 아니 5년 전까지만 해도

오늘날처럼 이렇게 추락할 줄은 아무도 몰랐고 아무도 예측 못 했습니다.


일본의 전자회사들이 다 난리가 났어요, bankrupt 그리고 적자에,

Sony가 지금 7분기 째 적자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온 세상을 다 Sony가 뒤덮고 있었는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나라의 대기업, 언제까지 호황이 계속 될까요?

악담을 하는 게, 아니라 진리를 말하는 겁니다, 진리를.


이 세상에 마음에 기쁨과 이유가 될 만큼 견고한 것,

내가 기대어서서 손대고 붙잡고 있어도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이 종말에 임할 모든 현상들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 어떤 것에도, 내가 기대지 말아야 되요.


자식도 기대지 말고, 아내도 남편도 기대지 말고,

돈도 사업도 기대지 말고, 학벌도 기대지 말고, 손이 예쁘다고 자랑하지 말고,

하여간 이 땅에 있는 건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36절,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어라!’

어떻게 피합니까?


돈 많이 벌어서 마음에 기쁨이 생길 때, 얼른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돈 때문에 기뻐하지 않는 겁니다.


돈이 안 벌렸다고 슬픔이 생길 때, 얼른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돈이 없다고 슬퍼하지도 않는 겁니다.


내 자식이 이번에 대학교에 멋지게 들어갔다고 기뻐하려고 할 때

십자가에서 죽는 겁니다.


자식의 성공에 기대지 않고, 자식의 실패에 기대지 않는 겁니다.


자식이 대학에 못 들어갔다고 슬퍼하려고 할 때, 얼른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슬퍼하지도 않는 겁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늘 기억되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 문에 기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술을 먹었기 때문에, 승강기문에 기대고 있다가 떨어집니다.


34절에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인해서 마음이 둔하여졌다고 해요.

술 취해서 마음이 둔해졌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문에 기대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자식 때문에 기뻐하고 슬퍼한다든지, 사업 때문에 기뻐하고 슬퍼한다든지

이 세상의 일 때문에 기뻐하고 슬퍼한다는 것은 마음이 둔하여 진 거예요,

그게 바로 죄고요.


마음이 둔해지지 않았다면

이 세상 것이 마음에 기쁨과 슬픔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러면, 목석처럼 살라는 말이냐?

누가 목석처럼 살래요?


십자가에서 이 세상 모든 기댈 만한 것에 내 마음에 기쁨과 슬픔의 이유가 되고,

자랑과 자부의 이유가 될 만한 모든 것들에 대해 죽습니다, 기대지 않습니다.


그러면 마음은 하늘 쪽을 향하게 되고 하늘을 기대게 됩니다.

하늘을 기대고 하나님을 기대게 될 때, 하늘에서 오는 기쁨과 하늘에서 오는

그 만족과 행복은, 이 땅에서 기대서 그 기댄 것으로부터 얻게 되는 어떤 기쁨과

행복과 만족과는 비교가 안 되는 기쁨과 행복이고 만족이라는 겁니다.


절대 기쁨과 행복을 반감시키려는 게 아니에요.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오늘 한번 해보게 해주시옵소서.

내 마음이 이 바깥쪽 세상에서 기대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십자가를 통하여 죽으며 떨어져 나오게 하시고,

오직 내 마음이 안쪽에 있는 천국 쪽으로 기울어져 기대어

내 삶을 통하여 천국에서 오는 기쁨으로

이 세상에서 기대지 않고 살아가는 복된 삶을 경험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