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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 철야보다 중요한 십자가 / 허운석

LNCK 2013. 1. 28. 13:35

금식 철야 보다 중요한 십자가(의 삶)       롬10:6~8, 아5:2~7      2012.11.09.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zmo2ZqTjLVk&list=PLqj2NNjP3q8gkj0PeeP46WGiRdnDLqlyY&index=20

◑가족을 통해 내 영적 상태를 보여주신다.

 

제 아들이, 십대 후반에 그렇게 제 속을 썩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 10년 전 쯤 과거에, 제가 아들에게 “오늘 청소기 메고, 청소 좀 하셨어?

헌금도 못 하는 주제에, 그거라도 하셔야 되지 않겠어?” 제 말투가 문제였지요.

 

그러면 아들은, 말로는 “네, 어머니”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아마존의 우리 집 (나무+흙) 벽은, 구멍이 뻥뻥 뚫어져 있습니다.

 

아들이 엄마인 나에 대해 너무 화가 나니까, 자기 주먹으로 벽을 쳐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차마 엄마를 치지는 못하고, 대신에 집의 벽을 친 것입니다.

 

(그러던 아들이 이제는 철이 들어서, 미국 IHOP 국제기도센터에 가서 신학을 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제가 더 변화되고, 더 성숙되니까, 아들도 덩달아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서도, 저를 많이 깨뜨리셨습니다. 제가 연단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저를 다듬고 연단하시기 위해서, 우리 아들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 아들에게는, 자기를 다듬기 위해서, 엄마를 사용하신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과거의 제 인생이

남편에게 당하고, 아들에게 당하고.. 괴로움과 고생으로 얼룩진 인생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제가, 그때 어리석고 미숙한 인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편과 아들을 통해서, 어리석은 제 모습을 계속 보여주셨습니다.

아들이 막 엄마인 나를 힘들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 저게 바로 과거의 내 모습이었고, 또한 지금 바로 내 모습이야.

하나님이 나를 회개하라고, 아들을 통해서 완악한 내 모습을 보여주시는 거야!’

그래서 아들과 싸울 필요 없이, 내 부족한 모습을 가지고, 제 스스로 주님께 회개기도를 드렸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주님께서,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와 자녀를 통하여, 또는 나를 공격하는 이웃을 통하여,

내 현실을, 내 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십니다.

 

그것을 보시면, 여러분은 열심히 회개하시면 됩니다.

그들과 싸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내 실상’을 보여주시는 도구인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 안 가서, 여러분도 새로운 피조물이 되실 것입니다.

 

저는 말기암에, 재발병까지 걸려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제 간증을 섣불리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금식, 철야보다 중요한 것

 

롬10: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우리는 금식기도, 철야기도 해서,

뭔가 신비한 은사를 얻어서, 하늘에도 올라가고, 땅 아래로도 내려가려고 합니다.

 

그런 신비주의로 하늘에 올라가거나, 땅 아래에 내려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 하시는가 하면, 그것보다는 말씀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말씀이 네게 가깝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계십니다.

 

그런데 저는, 과거에, 매일같이 철야, 금식하면서, 주님께 뭘 보여 달라고 그랬습니다.

신비적인 은사만 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십자가-회개’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하늘에 올라가거나, 땅 아래로 내려가는 신비한 것만 원했던 것입니다.

 

▶금식, 철야가 아니라, 남편과 자녀를 통해서.. 내 죄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게 얼마나 많이 보여주시는가 하면,

남편, 자녀, 이웃을 통해서, 계속 제 연약한 점을 보여주셨지만,

 

처음에 그 당시에는, 내 눈이 감겨져서, 그게 주님의 간섭인 줄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그저 금식, 철야만 밥 먹듯이 하면서, 세월만 낭비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와 회개로, 제 성품이 전혀 변화되지 못한 채,

그저 금식, 철야만 하면서, 뭘 달라고만 했던 것입니다. '주시옵소서'만 하고 있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후회됩니다.

그 당시에 내 신앙에, 열심은 가득했는데, 그 방향이 틀렸던 것입니다.

(변명이라면, 그 당시에는, 그렇게 잘 가르쳐 주시는 분도 많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 대문 밖에 기다려 섰으나, 단단히 잠가 두니, 한 없는 내 죄라♬

저는 당시에, 날마다 주님을 문밖에 세워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가서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자여, 내 머리털이 밤 이슬에 젖었으니, 여자여, 문을 열어다오.’ 아5:2

 

그 여인이 하는 말,

‘나는 이미 다 씻고 잠잘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고 거절합니다. :3

 

그때 신랑(주님)이 어떻게 하시는가요?

그 잠긴 문을 여시려고 하다가, 손을 다쳐서,

‘그 몰약(주님의 고통, 피를 상징)을 문틈에 묻히고는 떠나십니다.’ 5:4~5

 

여자가 피를 보고 기겁해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신랑은 떠나고 없었습니다. :6

우리가 십자가를 거절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을, 아가서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성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가서, ‘내 님이 어디에 계시는가?’ 물어봅니다. :7

율법주의자들에게 가서 물어본 것입니다.

그때 오히려 그들 율법주의자들에게 호되게 야단만 맞습니다. 위로가 없었습니다.

 

그 여인이 ‘나는 씻었고, 이제는 잠자려고 합니다.’ :3

이 구절의 의미는,

나는 이제 주님으로부터 죄사함의 구원('씻었고')을 받았으니까,

이제 나에게 더 이상 ‘뭐 자신을 부인하라. 그리스도를 본 받아라’ 등의

이런 요구를 하지 말라며, 주님을 거절하는.. 우리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나는 이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삽입 단락) 저는 예수 믿고 축복 받으신 분들에게 반드시 이 얘기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부자가 되셨으면, 그 물질을 하나님께 쓰셔야 합니다.

 

내가 축복받아서 내것이라고 생각하시면, 그 물질이 자손에게 넘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냥 다 주님을 위해서 쓰세요. 그러면 그 돈이 자손에게 까지 계속 내려갑니다.

주님이 자녀 세대까지 귀하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내 것이라 생각해서 아까워하면, 내 세대에서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냥 제 오랜 ‘관찰’에서 나온 생각이니까, 여러분을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이니까,

시험에 들지 마시고,

‘정답’은, 모든 일에 성령님의 인도를, 우리 각자가 민감하게 따르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여러분이 자손 대대로, 복을 받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다시 원래 흐름으로 돌아가서)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얘기를 많이 하셨는지 모릅니다.

내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제발 깨달아 알아라고..

금식, 철야가 아니라,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보내어.. 내게 연단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혹을 받아서, 축복을 받고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충만해서,

주님의 계속적인 간섭, 역사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아가서의 여인이, 그 한 예입니다.

‘여자여, 문을 열어다오’ 아무리 주님이 문을 두드려도,

‘주님 저를 건드리지 마세요, 제가 할만큼 다 했잖아요.’ 그렇게 나오게 되는 거죠

위 찬송가 가사 처럼 말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지금 나에게 닥쳐진 이런 힘든 상황들은..

나를 회개로 인도하시는, 십자가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바로 탕자의 비유입니다.

탕자가 일찍 제 정신을 차려서,

그 시련을 겪지 않고,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았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겠는가요..

 

◑‘혼의 능력’도 있습니다.

 

※아래 단락은, 독자 여러분이 모두 다 동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런 세계도 있을 수 있다.. 는 정도로 아시고 넘어가시면 됩니다.

 

제가 회개한 것 중에 한 가지가, 저는 무지무지 훔친 사람입니다.

얼마나 헌금을 많이 훔쳤는지 모릅니다. 제 혼이 발달해서 그러했던 것입니다.

 

제 혼이 발달해서, 저는 (투시처럼) 다 내다보입니다.

무슨 사건이 일어날 것인지, 그 사람의 반응이 어떻게 될 것인지

다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 혼의 세계입니다. 은사로, 저처럼 혼이 발달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영안靈眼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물론 영안으로 투시하는 분도 있겠지만요, 영안이 아니고도, 투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제게 그 권세를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나도 이 땅에 있을 때, 나를 위해서 내 권세를 써 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나보고 ‘너 선교비 도적질 좀 그만 해라’ 하셨습니다.

무슨 뜻인고 하면, 제가 기도할 때 누구를 계속 골똘히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서, 선교비가 도착하는 것을, 저는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제가 회개를 하고, 영이 맑아지니까,

주님은 ‘이제 그런 도적질 좀 그만해라’는 내적 음성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주님, 저를 도와주시지는 못 할망정, 저를 말리지는 마세요.

그냥 저를 내버려 두세요.’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계속해서 (염력 집중 같은 기도를) 그만 해라’고 하셨고,

저는 계속해서 ‘주님, 참견 말고, 가만히 계세요’ 하면서, 그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제가 주님께 말기암으로 심하게 얻어맞은 이유가,

아마 그런 계속된 제 불순종 때문이었을 것이라 봅니다.

 

제가 막 학교를 세우고 싶은 마음에,

그 아마존 정글 속에 17개의 학교건물을 지었습니다.

제 혼권(혼의 권세)이 그렇게 강한 사람입니다.

 

제가 누구를 딱 집중적으로 생각해서 기도하면, *세상 표현으론 염력을 집중하면

그가 헌금을 안 부치면.. 막 불안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제가 전파를 보냈으니까요. 하하하

 

그 사람이 헌금을 안 부치면, 도저히 일을 못 할 정도로 불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그 방법을 터득한 이후로, 효과가 있으니까, 계속 써 먹었던 것입니다.

 

물론 제 생각에는, 주님을 위한다고, 제가 그런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가만히 계세요. 제가 일 해 드릴 테니까요.’ 저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주님을 섬기면서도, 제 속에 마귀가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기 컵이 있는데, 이게 나입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해서 봉사하고, 열심히 충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사탄이 여기에 잉크 방울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이 물 전체가, 순간에 검은색으로 변해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아마존에서 학교 건물을 여러 개 짓는 등, 몇몇 가시적인 성과로 인해,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이 저를 암으로 징계하게 되시는, 근거가 되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를 자랑하고, 내 능력을 과시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 마치 총알받이 처럼 된 것입니다. (총알을 많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암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암이 걸린 것을, 저는 스스로 축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이, 제 영혼의 암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서,

주님이 저를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너무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숨겨주시기 위해서,

마귀에게 나를 더 이상 노출시킬 수 없어서,

 

하나님이 나를 만세반석 예수님께 숨겨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보상이, 제게, 암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천대와 멸시와 낮아짐과 모욕 받는 것으로, 나를 인도하신 것입니다.

 

교만하고, 불순종하고, 혼이 강해서 타락하기 쉬운 나를,

주님이 그렇게, 암으로 쳐서, 결국에는 나를 보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보호의 효과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리석은 사람들로부터, 나를 숨기신 것입니다.

제가 선교하다가 암에 걸렸다고 하니까,

‘어리석은 사람들’(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저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하나님이 저를 숨기신 것이고, 저를, 그들로부터 보호하신 섭리였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을 사람에게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성령께서 환란을 통해서, 우리를 낮추시는 방식으로, 또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이게 바로 성령께서, 제 믿음을 보호하시는 방식입니다.

 

질병의 고통을 통해, 암으로 인해, 제가 받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끊임없이 나를 겸손하게 하시고, 온유하게 하시는 이것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이 기초 없이, 우리가 어떤 사역을 한다고 하면.. 너무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신이 되고 싶은 이 욕망이 분초마다 있습니다. 지금도 제게 있습니다.

 

그런데 제게 통증이 너무나 심하게 올 때면,

제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실신하게 됩니다.

그때 기도는 ‘주님, 제 생명을 이제 거두소서’입니다.

 

제가 만약 선교사가 아니었으면, 저 20층 빌딩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상상을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면도칼로 팔을 째면,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하겠습니까.

제게 암의 통증이 올 때는, 그런 고통에 휩싸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저를 보호하시는 방식이, 통증을 통해서나,  

또는 저를 사람들에게 모욕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택한 백성들 가운데, 실족할 사람이 있을까봐서,

너무나 부족한 저희 부부가 ‘언더우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하나님이 제게 ‘주로’ 보상을 주신 것은, 멸시, 천대, 낮아짐이었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나를 존경하지 않고, 존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암환자니까요.

‘저게 뭔 죄를 지어서, 저 지경이 되었을까?’ 하고,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습니다.

 

그 멸시를 제가 받음으로 인해서,

사실은 제가 하나님 안에서 보호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겸손하게 되니까요.

그것은 지금 현재도 그러합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제가 상을 다 받을 것을,

하나님이 암을 보내셔서, 저 천국에서 상을 고스란히 받게 하시려고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방법과, 사람의 방법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다릅니다.

이 지혜로우심이, 저를 향하신 그 순수한 사랑이,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멸망을 받을 자들은, 십자가만 들이대면, 제게 신경질을 내고,

다른 데로 떠나 버립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위 말씀은,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자기가 바로 ‘멸망하는 자들’이라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섭게 생각하십시오.

십자가만 역사하면, 자기 자존심 건드렸다고 펄펄 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져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이 나 죽으라고, 내 자존심 파쇄 되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존심을 막 내세우다가,

그런 가운데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그러니까 주님이 응답을 주실 수가 없습니다.

 

‘네 손에 피가 가득하고, 네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네가 형제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데 뭔 기도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날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그래서 내 상태를 알게 하셔서, 겸손하게 만드셔서 복 받게 하시는 주님!

우리는 너무 어리석어서 그 심플한 것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이렇게 들이댑니다.

‘당신 왜 이러는 거야, 당신 바보야?’ 그렇게 대듭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가 바보가 맞습니다.

깊이 생각하면, 그게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나에게, 따귀 한 대를 때려도, 그것도 주님이 때리신 것입니다.

정신 좀 차리라고!

 

처음에는 맞은 내가 막 혈기를 내지만,

조금 지나서 내 머리를 식히고 나면,

그게 주님의 음성으로 들리는데요...

 

내가 그냥 하나님 되고 싶어하고,

스스로 신이 되고 싶은 이 찬란한 욕심이 내 앞을 가리니까,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내 따귀를 때려서.. 정신을 차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게 <하나님의 역사>로 보이고,

자기가 마귀로 충만한 사람은, 만사가 <마귀의 역사>로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모든 것이 다 정결한데,

양심이 썩은 사람은, 자기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다 더럽습니다.

 

로마서에 그랬습니다. 그게 (더러운 게) 내 마음의 상태를 가리켜 주는데도,

우리 신자들은 그걸 못 깨닫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더러움을 회개할 줄 모르고, 도리어 상대를 공격합니다.

 

    창세기에, 처음에 공허하고 혼돈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항상 주님은 운행하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에 이 혼돈과 무질서 속에, 우리의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그러면서 빛이 있으라 하시고, 빛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 빛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일을, 우리는 왜 그렇게 십자가를 팽개쳐 놓고,

    교회 와서, 뭘 주시옵소서 하면서, 목이 터져라 부르짖고 있느냐고요..

 

제가 과거에 그런 과오를 다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 수많은 고통 속에서, 세상에 이 간단명료한 것을!

 

세상에 이렇게 뼈가 타는 듯한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단 말인가요!

아시겠는가요? 여러분은 빨리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게, 내 마음에 안 들게만 하십니다.

회개하라고, 내 모습과 죄성을, 그 죄인을 통해서, 투사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나에게 태클을 걸면.. 자기를 살피시피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와 싸우지 마시고요.

 

◑나를 망치게 하는 자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야곱이 결혼했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눈만 뜨면, 걸리적거리는 레아만 자기 눈앞에 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날마다 눈만 뜨면, 내 웬수가 보이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웬수가 어디에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내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내 옛 사람, 내 자아가, 바로 내 웬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내 마음에 안 들 때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저를 용서하여 주소서!’ 하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주님과 천사들이 박수를 막 치시면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도를 깨달았다고.. 그렇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이, 마귀새끼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이란 사실을 꼭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비밀입니다. 아무리 신경질이 나고, 화가 나더라도,

‘예수님!’하고 그 은혜를 간구하십시오. 죄를 이길 수 있는 은혜 말입니다.

그리고 에서하고 단번에 친해지십시오.

 

에서는 사실 야곱을 죽일 마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성경에 확실하게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다만 야곱이, 자기 잘못을 자기가 깨닫고, 제 발이 저려서, 난리를 친 것입니다.

 

야곱의 원수는, 사실은 회개 못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녀와 아내를 얍복강을 먼저 건너게 하는 등 온갖 술수를 다 쓰다가

결국은 다리 병신이 되고나서야,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자기의 옛 자아가 바로 자기의 ‘원수’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형 에서가 아니라.

 

왜 다리 병신이 될 때까지 버티면서 회개를 안 하고, 인정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까!

우리는 주님 앞에 진심으로, 자기가 타락한 죄인 임을 인정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멸망하는 자에게, 십자가의 메시지(도)는 듣기가 싫습니다. 고전1:18

신경질만 납니다.

‘아니, 선교사님은 맨날 그런 말만 하는 겁니까?

그런 것은 제가 다 알고 있거든요, 귀가 따갑도록 들었잖아요?’ 하면서 막 신경질만 냅니다.

 

여러분이 혹시 그러하다면,

‘내 영혼이 멸망하는 자가 아닌가?’하고, 스스로 질문해 봐야 됩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교회를 훼방하는 자요,

내 가정에 마귀새끼가 바로 저입니다.

저는 광포자요, 훼방자요, 내 가정과 교회를 흔들어 무너뜨리는 원수입니다.

다른 아무개가 아닙니다.’

 

그걸 깨달아야 되고, 그걸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변화가 안 되어서, 내 사랑하는 남편이 고통을 당하고 있고,

진짜 회개한 사람은, 얼마나 내 남편이 나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지..

그게 자기에게 보여 집니다.

 

내 아내가 나 때문에, 내가 주님께 돌아오기까지 고통을 당한 것이 보여져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용서해 주시옵소서!’ 고 나오는 것이, 진짜 회개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생각해 보세요, 주님 제가 아주 바로 왕입니다.

제가 아주 우리 집안에 나타나기만 하면 다 얼음장 같이 만드는 얼음 공주입니다

식구들이 다 ‘대왕마마 오셨습니까?’ 인사하고, 제 각기 방으로 흩어집니다.

이런 왕 같은(마귀의 성품, 신이 되고 싶어 하는) 삶을 살면서도.. 우리는 회개하지 않습니다.

 

저희 아들이, 부모를 따라다니다 보니, 네 나라를 옮겨 다니면서 공부하면서

민감한 십대시절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가뜩이나 사춘기를 지나기가 어려운데,

공부하는 학교가 자꾸 바뀌고, 언어가 바뀌니까.. 스트레스가 더 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이 제가 새벽기도를 가는데,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그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 집에서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 여인의 자녀가 죽었습니다.

 

그때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왜 당신께서 오셔서, 내 죄를 생각나게 하십니까?’

 

왕상17: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기억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지금 여인은, 자기의 하나뿐인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보통 사람은, 남 탓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밥 얻어먹는 선지자가 기도를 게을리 해서 죽었나보다..

그 선지자를 집에 들인 게 화근이지..’

 

그런데 그 여인은, 그렇게 하지 않고, 남의 탓을 하지 않고,

자기 죄를 보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내 죄를 기억나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말합니다.

자기가 회개 안 한 죄가 있어서,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다는 식으로, 말한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 얘기를 하시는 겁니다.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여러분 앞에 있으면, 여러분의 죄가 폭로됩니다.

은혜를 그런 식으로 받는 것입니다. 내 죄를 기억해내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깜짝 놀라서(들켜서) 자기 죄를 회개하게 되고,

다른 사람은.. 반대로 짜증을 냅니다. 그 사람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회를 잘 못 다녀서, 다른 교회 다녀야 되는데, 이 교회를 다녀서.. 사업이 망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합이 그랬습니다.

엘리야를 보고,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하면서,

그 당시에 3년 반동안, 비가 오지 않은 것이, 엘리야 선지자 때문이라고 욕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에서 그가 새로 태어났는지/ 안 태어났는지.. 분별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죠?

 

하나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정말 내 사람이라면, 왜 네 아들이 방황해야 되겠느냐,

네가 아직 십자가를 모르지 않느냐, 네 마음에 내가 있느냐,

그렇다면 네 아들이 벌써 내 품에 안겼을 것을!’

 

거기서 처절하게 제가 회개했습니다.

얼마나 우리 아들을 통해, 제가 연단을 많이 받았느냐 하면,

저만 보면 아들이 열을 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십자가 안에 있으면, 평소에 저는 너무 나이스합니다.

그런데 걔가 날마다, 10대들이 다 그렇듯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쳐다보는 사람을 (저를) 아주 괴롭게 만듭니다. 그래서 제가 참지 못하고 폭발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십자가 안에 있는지, 육신에 있는지.. 이 마귀가 정말 영분별을 잘 합니다.

그래서 아들을 통해서 폭탄을 터트리는 것입니다. 저를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십자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처절하게 아들을 통해서,

연단을 받고, 교훈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쳐다보면, 제가 너무 짜증이 나서, ‘주님 제가 어떻게 하라는 말이에요?’

그러면 주님은 ‘너는 아들보다 더 해!’

그러면 제가 할 말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내가 어느 누구를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저는 누구를 만나든지, 오늘 만나는 사람을 딱 보면서,

그들의 부족함을 볼 때는, 저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 저는 더한 사람입니다. 주님 저는 더한 사람이잖아요!’ 하며 회개합니다.

 

그 마음 때문에, 지금 제 양쪽 폐에 암이 충만하고, 장에도 암이 가득해도,

아직 안 죽고 살아있고,

제 얼굴만 놓고 보면, 아무도 암환자인줄 모릅니다. 아주 건강한 사람인줄 압니다.

 

‘주님 저는 더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제가 늘 회개하니까,

주님이 그나마 은총을 내려주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회개하면, 성령이 임하시고, 문제 해결의 지혜가 따라옵니다.

 

▶제가 미국에 있는 동안에, 어느 분이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선교사님 어쩌고 저쩌고 얘기하고, 어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처한 상황이, 사면초가라는 것이지요.

 

저는 빡세게 얻어맞을 것을 항상 준비하고 삽니다. 늘 얻어맞을 말만 하니까요.

 

저는 내담자에게 위로를 하기보다는,

주님께서 저분에게 말씀하기 원하시는 것을, 분별해서 말씀드립니다.

 

‘집사님, 하나님은 절대로 문제를, 해결 안 해 주실 것입니다.

이 문제를 통해, 집사님이 회개해야 할 제목을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은 절대로 집사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그 집사님이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문제를 통해, 주님이 나에게 가르쳐 주시기 원하시는 내용을 깨닫고,

평소에 거기에 미치지 못하게 살았던 부족한 나의 모습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나면,

하나님은 내게 성령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면, 지혜가 같이 따라옵니다.'

 

주님은 지혜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내게 주십니다.

 

그러나 먼저는, 십자가 안에서 자기 죄를 철저히 깨닫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시든지, ‘네, 그게 바로 제 모습입니다.’하고

그렇게 회개할 때,

 

성령을 받고, 그 결과 지혜가 생기면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그 해결의 길이, 지혜가 생기니까, 너무 잘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멸망하는 자, 그 십자가의 메시지를 싫어하는 사람,

책망과 권면과 바르게 함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은,

아주 죽기로 작정,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시49:12, 20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 본을 보이셨잖아요.

‘나를 따라오너라, 멸시 받았던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니까 주님이 '내가 다 보여주셨다. 죽은 줄로 알고 살아라.. 그러면 내가 연합해 줄게'

이 간단한 진리를 제쳐두고, 우리가 늘 다른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자 그러면 다 눈을 감아보세요, 한 번 고백 좀 해 봅시다.

오늘 내가 싫어하고 있는, 정말 내가 분노하고 있는, 그러한 일이 내게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 영적인 상태라고,

그 사람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한 번 주님 앞에 서 보십시다. 인정을 한 번 해 보십시다.

 

‘주님, 접니다. 주님, 그 원수가, 바로 제 (회개 안 한) 모습이었습니다.

제 죄성을 보여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회개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여러분들께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가져오는 것을 제사로 받으십니다.

‘주님 제가 그런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그 제사를 가장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그 제사 외에는, 주님이 안 받으세요. 그것을 꼭 명심하셔야 됩니다.

그렇게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의 제사가 안 되고, 아벨의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성전 미문 앞의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뛰듯이

즐겁게 뛰면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너무나 쉬운 방법을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힘을 들일 필요도 없습니다.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입니다.

하나님, 주님께 나가는 그 길이 정말 나를 인정하는 것이며,

예, 주님 그렇습니다. 제가 원수입니다. 라고 인정하는 제사만 받으시는 것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평안, 진리, 자유, 안식, 성령의 충만함을,

성령의 열매를 맛보게 해 주실 것을 기다립니다.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